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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46화 (47/224)

#46화

털썩

머리 잃은 시체가 차가운 흙바닥에 쓰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흥분에 못 이겨 환호성을 내지르던 수만 관중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말 하지 않았나?”

얼어붙은 듯한 고요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다이거와 도노반뿐.

가만히 서있다 부하 하나를 잃어버린 다이거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정말 놈이 심살을 익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씨X, 그건 그냥 지어낸 거잖아!’

그 존재가 기록된 대마법사와 달리, 그랜드 오러마스터는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상의 경지다.

애당초 심살,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능력도 무도의 길을 걷는 자들이 대마법사의 언령에 빗대어 꾸며낸 망상이 아닌가.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다고.”

스윽

그 모든 것들이 오롯이 망상의 결정체라면.

손가락질만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영감탱이는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이익….”

“이제 셋 남았군. 서두르지 않으면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할 걸세.”

마치 속세를 잊은 수도사마냥 도노반이 허허로운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손가락만으로 두 사람을 죽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표정.

스윽

그의 손가락이 살아남은 두 검투사 중 하나를 향한 순간.

“나, 나는 살고 싶어! 이렇게 개죽음 당하려고 올라온 게 아니라고!”

“나, 나도!”

지목당한 검투사 둘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런,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겨!’

차라리 창칼에 맞아 죽었다면 실력이 부족했다고 납득이라도 할 수 있다.

마법에 당했다면, 비겁하다 욕할지언정 공포에 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 영창도, 준비도 없이 손가락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위였다.

‘이건 개죽음이야, 완전 개죽음이라고….’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것에 적의가 아닌 공포를 느낀다.

타타타탓

이미 공포에 전신을 지배당한 검투사가 죽을힘을 다해 다리를 놀렸다.

그가 환호성과 함께 입장한 투기장의 입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저기만, 저기만 넘으면….’

삶의 희망을 발견한 검투사의 다리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예외는 없었다.

머리 잃은 검투사의 몸뚱이가 입구 앞에 쓰러졌다.

“이런 미친 새끼가….”

다이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전신을 짓누르는 무력감을 애써 이겨내려 했다.

그는 내심 저 저주받은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하나 남았군.”

도노반이 다시금 수염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힘든 것은 도노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군.’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사기극이란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직은 공자님의 말씀대로 되고 있지만….’

이것은 마치 강 위로 펼쳐진 살얼음판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공하면 강을 건널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강바닥에 잠겨버리는.

‘이대로만, 이대로만 가면 된다.’

주군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상상 속 그랜드마스터를 연기하는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모를까.

“왜 가만히 있는겐가? 분명 결투는 이미 시작했을 터인데.”

그가 할 일은 주군을 믿는 것뿐.

깨달음을 얻은 그랜드마스터로 빙의한 도노반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슬쩍 웃었다.

“이 개자식이….”

노기사의 도발에 다이거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는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노인네가 깨달음이라 주장하는 저 것이 진짜건 가짜건.

노인의 손가락질에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검투사들이 죽어나갔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그 대상이 검투사들의 왕인 자신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흠, 움직일 생각이 없는가보군.”

상대가 꼼짝도 하지 않자 도노반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등 뒤로 슬쩍 신호를 보냈다.

연극의 클라이막스가 시작될 때였다.

“그럼,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니 내 승리로 하지.”

“누구 맘대로!”

도노반의 말에 다이거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끝나면…!’

주먹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끝난다?

누가 보더라도 압도적인 패배가 아닌가.

설사 패배하더라도, 겁쟁이처럼 질 수는 없었다.

우우웅

다이거가 주먹을 쥔 채 노기사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노기사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패배한 트로이카는 일주일 안에 성에서 떠나게. 그게 내 마지막 자비일세.”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순식간에 접근한 다이거는 노인의 말에 분노해 주먹을 휘둘렀다.

채 페르소나를 가동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주먹에 가득 담긴 오러에서 모든 것을 파괴할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후웅

거력이 담긴 주먹은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어, 어디 갔지?’

다이거의 온 감각이 사라진 적을 찾기 위해 뻗어나갔다.

그럼에도, 그의 감각 영역 내에 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곧.

‘정말이야?’

‘도대체 이게….’

‘트로이카는….’

그의 귓가에 관중들의 환호성 대신 수군거림이 맴돌자.

“이 개새끼가아아!”

투기장 한 가운데에 서서.

분을 참을 수 없었던 다이거는 악을 써댔다.

***

“경, 연극은 좀 할 만 했어?”

그림자신의 힘으로 도노반을 데려온 이안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씨익 웃었다.

편리한 능력임엔 분명했지만, 소모되는 마력이 제법 컸으니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제 평생 이렇게 긴장한 적은 처음입니다. 차라리 마족을 앞에 두는 게 낫겠군요.”

힘없는 표정으로 도노반이 고개를 저었다.

생전 인연도 없던 연기를 하려니 너무나 피곤한 탓이다.

“수고했어. 덕분에 반쯤은 해결된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도노반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자님, 아직 저들에겐 환수급 페르소나가 남아있습니다. 이번엔 적당히 눈속임으로 넘어갔다지만, 결국은 그들을 상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겠지, 아마도. 지금은 아니겠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도노반이 눈을 끔뻑이자 이안이 씨익 웃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그 쪽 상태가 썩 좋진 않을 테니까. 조만간 반란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일걸?”

“네? 반란 말입니까?”

도노반이 물었지만, 이안은 뜻 모를 미소만 흘릴 따름이었다.

***

“말해.”

신드라의 말에 아라곤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하부조직들 상당수가 이탈을 선언했습니다. 남아있는 조직들도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말을 마친 아라곤은 그녀의 분노가 자신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 고개를 조아렸다.

“버러지같은 것들이….”

신드라가 이를 갈며 아라곤을 노려봤다.

트로이카가 거대한 조직이긴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조직들로 쪼개져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짜여진 그들이 조직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트로이카의 붕괴를 의미했으니까.

“죄송합니다, 누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도망칠 줄은…”

다이거가 이를 갈며 신드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 대만, 한 대만 갈겼더라면….’

그 노인네의 속임수를 만천하에 까발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 심살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였다면,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누님, 그건 분명 속임수입니다. 제 눈은 틀림 없….”

다이거가 신드라를 향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려했다.

하지만.

“속임수라면, 이 상황이 해결이 되느냐?”

그녀가 차갑게 받아쳤다.

“속임수이건 아니건 이젠 별로 중요한 게 아냐.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들이 투기장에서 뭘 봤는질 생각해 봐.”

일 대 오의 상황.

손가락만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압도적인 무력.

트로이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에, 이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누님.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됐다. 이미 지나간 일.”

다이거가 재차 사과를 했지만 신드라는 고개를 젓고는 납작 엎드려있는 아라곤을 바라봤다.

“앞으로 사흘 동안, 이 탑에 아무도 들이지 마라.”

“사흘, 말씀입니까?”

“그래. 마법사와 검투사들을 불러서 봉쇄해. 설마 그 버러지들을 상대로 사흘도 못 버티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그녀의 물음에 아라곤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럼, 이만 나가보도록 해.”

“예.”

신드라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라곤은 얼굴이 새파래진 채 황급히 첨탑을 나섰다.

“누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첨탑에 둘만 남게 되자, 다이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 날 이후로 검투사들도 슬슬 제 말을 무시하는 분위기입니다. 누님쪽은 걱정이 없습니다만….”

“상관없다.”

다이거의 말을 단칼에 끊어낸 그녀가 품에서 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아슈타르에서, 우리가 페르소나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잊었느냐?”

“누님, 설마 그걸 지금 사용하시겠단 겁니까?”

신드라의 말을 들은 다이거는 경악했다.

그녀가 말한 것은, 500년 동안 그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는 일.

다이거 역시 그녀와 일곱 용의 명에 따라 페르소나를 제작하긴 했지만, 그걸 정말로 써먹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걱정 말거라. 너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테니.”

“예? 누님,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뜬 다이거가 신드라의 눈을 바라본 순간.

지잉

그녀의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요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 아….”

마치 이지를 잃어버린 백치처럼, 검투사의 왕이 얼빠진 얼굴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 죗값은 이것으로 대신 치르거라.”

요정만이 다룰 수 있다 알려진 제령안(制靈眼)으로 다이거의 영혼을 뽑아낸 그녀가 싸늘한 표정을 짓고는.

꿀꺽

손에 들린 하얀 구슬모양의 영혼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러자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점차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잠시 숨을 고른 신드라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아우의 몸뚱이를 향해 다가갔다.

곧, 아우의 손에서 건틀렛 모양의 페르소나를 벗겨낸 그녀는 양 건틀렛에 뚫린 구멍 안으로 나뭇가지를 밀어 넣었다.

철컥

쇳소리와 함께 그녀의 페르소나가 아우의 것과 맞물린 순간.

파앗

페르소나로부터 흘러나온 붉은 색의 마력이 그녀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실패했다면, 굳이 버러지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겠지.’

붉은 구체에 둘러싸인 그녀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결투가 벌어진 지 이틀이 지났다.

“이보다 좋을 순 없겠어.”

지도에 새롭게 합류한 조직을 하나하나 체크하던 베티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지난 결투의 결과가 알자스의 범죄자들에겐 충격적이었던 것이리라.

“놈들의 페르소나만 막아낼 수 있다면 말이지.”

반대로 말하자면.

트로이카가 가진 두 페르소나를 막아낼 힘만 얻어낼 수 있다면 알자스는 이미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걱정 마. 전문가를 불러왔으니까.”

“전문가?”

말을 마친 이안은 손에 든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이안이 기억하는 녀석이라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순식간에 달려올 테니까.

딸랑

“아, 잠깐만. 벌써 온 모양이야.”

미리 바깥에 설치해놓은 경보장치의 울림을 들은 이안은 권총을 쥔 채 급히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넌 뭐야?”

이안이 기다리던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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