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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45화 (46/224)

#45화

“아니, 귓구멍에 칼 박았어? 가면 진다니까?”

잠시의 고민도 없이 결정해버린 이안을 향해 베티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페르소나가 셋이면 환수급과도 겨뤄볼만 하다는 미친 생각을 하는 건 아닐테고 말야.”

병기급의 페르소나는 전설의 힘을 빌려 마력을 내뿜는데 그치지만, 환수급에 이르면 전설의 한 장면을 현실에 불러올 수 있다.

그 작은 차이가, 병기급과 환수급의 넘어설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냈다.

“혹시라도 신검공에게 전력을 빌려온다면 모르겠지만, 환수급의 페르소나를 다룰 수 있는 녀석은 이미 정보가 어느 정도 알려졌겠지. 페르소나를 개방하는 순간, 제국군이 얼씨구나 하고 쳐들어올걸?”

말을 마친 베티가 이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눈에, 이안이 스스로 투기장에 들어서는 것은 돼지가 몸에 소스를 바르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다.

그것은 도노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자님, 유명한 병법서에서도 싸우기 전부터 이겨놓은 상태에서 싸워야 한다고 적혀있지 않습니까.”

베티와는 달리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역시 이안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소신의 생각입니다만. 적의 함정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싸우기 전에 이미 패배를 안고 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공자님.”

질 것을 알면서 싸우러 가는 멍청이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노기사는 부디 주군이 생각을 돌려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기서 이기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끝이란 소리지. 아냐?”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트로이카가 만들어놓은 판에 들어가 부숴버리는 것만큼 놈들을 무너뜨리기 좋은 방법은 없었으니까.

“상대가 환수급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말이지.”

헹. 코웃음을 친 베티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인들 실행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헛소리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꼭 직접 상대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안의 입에서 나온 엉뚱한 말에 둘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야.”

이안은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든 다음 지도의 한 가운데, 알자스 성을 향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트로이카보다 강하다고 믿게 하는 것.”

입모양과 함께 이안이 지도 가운데 동그라미 친 성을 향해 총 쏘는 시늉을 했다.

그 실없는 모양새에 베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러니까 우선 환수급 페르소나를 데려오건 말건 하라니까? 심지어 저쪽은 두 명일 거라고!”

“그럼, 환수급 페르소나보다 강한 게 뭐지?”

“뭐, 있겠지. 영웅급이나 신급 페르소나, 아니면 오러마스터나 그랜드 오러마스터, 그것도 아니면 1급 이상의 마법. 이런, 전부 없는 것들이잖아?”

이안의 물음에 익살맞은 태도로 손가락을 하나씩 꼽던 베티가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너, 진심이야?”

그제야 베티는 이안의 말이 농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안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입꼬리를 비틀며 도노반을 바라봤다.

“도노반 경, 날 좀 도와줘야겠어.”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공자님.”

이미 이안의 말이 진심이란 걸 알아챈 도노반은 고개를 숙였다.

여태까지 주군을 모셔온 경험에 의하면, 분명 그의 주군에겐 상상도 못한 기발한 방책이 있을 터.

“연극.”

그 생각이 맞았는지, 짧게 답한 이안이 허리춤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

예정된 결투일은 빠르게 다가왔다.

애당초 모든 준비를 끝마친 트로이카에서 결투일정을 촉박하게 잡은 것이 그 원인이었다.

‘아무리 범죄조직이라지만, 정점에 오른 녀석들 치고는 치졸하기 이를 데 없군.’

문득 떠오른 생각에 도노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눈앞의 투기장을 바라봤다.

와아아아-

온 도시의 사람이 다 모이기라도 한 걸까.

투기장의 입구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안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환호성이 그의 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시작이다.’

도노반은 애써 굳은 표정을 풀었다.

앞으로의 계획 때문에라도, 그는 최대한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곧 입구를 지키던 트로이카의 조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검은 사자단의 대전사가 너군? 그렇게 늙어서 칼이나 쓰겠어?”

도노반과 수행원들의 가슴팍에 박힌 검은 사자를 본 녀석의 표정이 뒤틀렸다.

눈앞의 노인네는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위협하는, 다시 말해 밥그릇을 위협하는 존재였으니까.

그에게 힘만 있다면, 검은 사자단이라 자칭하는 노인을 갈갈이 찢어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감히 어디서…”

“이 분이 누군지 아느냐!”

조직원의 막말에 도노반의 수행원들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종자 대신 깡패들이라도 부리라는 것인지, 공자님도 참.’

이들이 어느 조직 소속인지도 알지 못하는 도노반에겐 우스울 따름이었지만.

“그만.”

노기사는 수행원들이 앞으로 나서려는 것을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건방진 조직원을 바라봤다.

“입조심 하게나. 버러지 같은 삶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다면 말일세.”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지만.

꿀꺽

노기사의 눈에서 서릿발처럼 싸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낸 조직원은 저도 모르게 뒤로 도망치듯 물러섰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조직원의 얼굴은 자신이 존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로 허옇게 질려있었다.

“그럼, 안내하게나.”

하지만 도노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투기장에 들어섰다. 도노반은 천천히 투기장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역시, 이 도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 맞기는 하군.’

노기사는 투기장의 숨겨진 복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일꾼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투기장은 제법 체계가 잡혀있었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조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에 도착하자, 그를 맞이하기 위한 간식과 하녀까지 준비되어있을 정도였으니까.

으적

그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푹신한 소파에 앉아, 도노반은 준비된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흠.’

순간, 도노반은 하녀의 숨이 일순 멎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진짜 먹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겠지.’

상식적으로, 목숨을 건 결투 앞에서 독이 들었을 지도 모르는 음식을 입에 대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가 장담컨대, 이 투기장이 생긴 이래로 간식에 입을 댄 것은 그 자신뿐이리라.

“흠, 맛있군. 이거 더 없나?”

도노반은 한술 더 떠서, 부스러기만 남은 쟁반을 하녀에게 넘겼다.

“더, 말씀입니까?”

“그래. 혹시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네만.”

“아, 아닙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지시에 당황한 하녀가 쟁반을 들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도노반은 깍지를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어떤 수를 쓰건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만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몸수색 한번 없이 도노반을 방 안에 들이진 않았을 것이니까.

아무것도, 심지어 검 한 자루 챙기지 않은 도노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간식을 가져왔습니다.”

“거기 내려다 놓게나.”

‘나도 늙었군. 단 게 당기는 걸 보니 말이야.’

으적

곧 있을 결투를 생각하며 도노반은 노릇하게 구운 쿠키를 입에 넣었다.

***

와아아아아-

투기장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성.

투기장의 지배자이자 검투사들의 왕, 다이거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했다.

지난 십 년 동안 검투사 노릇을 해온 그에게, 관중들이 보내오는 응원은 곧 힘이었으니까.

비록, 그 중 절반은 적이나 다름없는 검은 사자 놈들의 것이라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승리는 내 것인데 말이야.’

환수급 페르소나와 오러 익스퍼트 상급.

그가 오만한 눈으로 적을 기다리기엔 두 가지면 충분했다.

곧. 투기장의 맞은편에서 검은 사자단의 대전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너, 너는?”

결투의 대전 상대로 나온 상대를 확인한 다이거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모든 검투사들의 왕인 그와 단언컨대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대전사 넷.

트로이카의 정예 중 정예라 할 수 있는 다섯을 상대하기 위해 나온 검은 사자단의 대전사는 단 하나.

“구면이로군.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

알자스의 지하 감옥, 라비린토스에서 마주친 늙은이 기사였으니까.

“설마, 사자 놈들의 대전사라고 나온 게 너 혼자는 아니겠지?”

다이거는 기가 막혔다.

녀석은 분명.

‘익스퍼트 중급에 불과할텐데…’

상대의 실력은 직접 놈과 주먹을 맞대본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여유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행동이 더 기가 막힐 수밖에.

“왜 아니겠나. 혹시, 다섯이 나와야한다는 규칙이라도 있었던 건 아니겠지?”

“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도노반이 의뭉을 떨자 다이거가 박장대소했다. 오러가 실린 그의 웃음소리는 관중들의 함성을 금세 묻어버렸다.

곧, 다이거는 싸늘한 눈빛으로 노기사를 바라봤다.

“네놈들도 어지간히 인재가 없긴 한가 보구나. 너처럼 노망 든 늙은이를 내보낼 줄이야.”

“허허, 고작 검투사 몇을 상대하는 데 둘이나 필요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곧 죽을 때가 되니 말이 많아지는구나.”

다이거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웃는 도노반을 비웃었다.

그와 동시에 다이거의 감각이 예리하게 곤두섰다.

‘나와 겨뤄봤으면서도, 저렇게 여유롭다고?’

패배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찾아왔다기에, 상대의 태도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분명 달라진 것은 없다.’

그가 오러를 포함한 온 감각을 동원해 노기사의 몸을 탐색했지만, 알아낸 것이라곤 노기사의 경지가 익스퍼트 중급이란 것뿐.

‘뭐지? 뭘 숨긴 거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의 근원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그래, 이미 결투는 시작했으니 보여주겠네.”

도노반은 그 답을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자네와 싸운 뒤로 내가 얻은 깨달음을 말일세.”

말을 마친 도노반이 검지 손가락을 곧추어 세웠다.

그러고는.

옆에 선 검투사 하나를 향해 그었다.

‘무슨 짓이지?’

당연하지만, 허공에 손가락을 휘젓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전설에서나 나오는 대마법사, 혹은 그랜드 소드마스터나 사용할 수 있다는 언령이라면 모를까.

‘진짜 노망이라도 들은 모양이지? 결국 버림 패로군.’

다이거는 합당한 결론이라 생각하곤 노망난 기사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파육음과 함께 그의 옆에 선 검투사의 머리가 사라지기 전까진.

“…어?”

선 채로 머리가 사라진 검투사를 본 다이거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

투기장으로부터 약 1,500미터 떨어진 곳.

철컥

‘시작은 좋군.’

노리쇠를 당겨 차탄을 장전한 이안이 다시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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