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새롭게 성장중인 신흥 조직, 검은 사자단에 대한 소문은 점차 알자스 전체로 퍼져나갔다.
“트로이카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더군.”
“실제 조직원은 몇 되지 않는다던데?”
“개개인이 일당백의 전사들이라더군. 혼자서 조직 한, 두 개는 하루아침에 정리해버린다니, 당할 도리가 있나.”
“하, 그걸 믿는다고? 그런 실력이 있었으면 진작 트로이카에서 처리했겠지.”
물론, 직접 두 눈으로 그들을 보지 못한 대부분은 믿지 않았다.
그런 뜬소문을 믿기에는, 속고 속이는 게 일상인 알자스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으니까.
개중, 하루하루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도둑들과 하급 조직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자문양을 따라가면 조직에 들어갈 수 있다더군.”
“보수도 제법 괜찮다던데?”
“지금 행동대장 새끼 영 맘에 안 드는데, 나도 그냥 갈아타버릴까?”
소문을 들은 알자스의 하류인생들은 하나둘 검은 사자의 표식을 따라 하수도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물론, 내려온 자들의 목적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놈들의 흔적을 이렇게 빨리 잡아내다니, 생각보다 일이 쉬워졌어.’
트로이카의 세 하부조직 중 하나, 하사신의 단원인 그도 그 중 하나였다.
이름조차 없이 7호라 불리는 그는, 검은 사자단의 정체를 밝히라는 장주의 명에 망설임 없이 냄새나고 어두운 하수도에 몸을 던졌다.
‘전면에 나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흔적을 남기다니, 멍청한 놈들이 따로 없잖아?’
폐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7호는 속으로 자신들을 사자라 칭하는 머저리들을 비웃었다.
곧 녀석들의 근거지와 정체가 낱낱이 밝혀지고 나면, 감히 금지된 사자를 칭하는 자들은 존귀하신 장주의 발밑에서 자비를 구걸하게 되리라.
“아, 여기군.”
곧, 7호는 벽에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을 발견하곤 썩은 미소를 지었다.
‘검은 사자라니, 자살하는 방법도 가지가지군.’
온갖 오물로 범벅된 하수도의 벽 위에 그려진 검은 사자의 문양.
분명 트로이카의 명에 의해 금지된 문양이었다.
‘이제 근거지를 확인한 다음, 신호를 보낸다.’
7호는 검은 문양 앞에서 다시금 계획을 점검했다.
휘익
‘무슨!’
등 뒤에 선 그림자가 그의 몸뚱이를 집어삼키기 전까진.
그림자를 뒤집어쓴 그의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긴?’
어둠이 지나가고, 눈앞의 광경을 본 7호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불결한 하수도는 온데간데없었고, 퀴퀴한 냄새는 나지만 제법 정돈된 방만이 그의 눈앞에 보였다.
‘침착하자. 일종의 이동마법일 수도 있어.’
혹독한 훈련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그다.
7호는 표정을 숨긴 채, 몸 상태를 파악했다.
‘묶였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깨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은 기운.
‘일단은 기다려보자.’
하지만 그는 섣불리 나서지 않기로 결심했다. 직감적으로 이 기운이 자신을 위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지만, 괜히 저항했다가 의심을 살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 때.
쾅
“안녕?”
한 사내가 벌컥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헙!’
금발의 사내를 마주한 그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머리색과는 달리, 사내의 눈은 흰자 하나 없이 소름끼치도록 검었으니까.
‘분명 두목이 금발머리라 했지.’
동요한 와중에도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떠올린 7호는 애써 동요를 억눌렀다.
“당신이 검은 사자단의 두목이요?”
앞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내를 통과해야만, 놈들의 본거지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여기 오면 먹고 살만 하다 길래 찾아왔수. 근데 생각보단 누추하구먼?”
아무것도 모르는 촌뜨기 말단조직원인 척, 그는 신기한 표정으로 이안과 방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하지만.
“그래, 트로이카도 영 사정이 안 좋나봐? 이런 지하까지 찾아오는 걸 보면.”
이안은 대번에 7호의 정체를 간파했다.
“트로이카라니, 무슨 소리요? 내가 트로이카에서 일했으면 이런 데를 쳐다나 봤겠수?”
7호는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감정적인 동요 때문에 일을 그르칠 만큼 그는 무르지 않았으니까.
“아, 그래?”
하지만 7호의 변명을 들은 이안은 씨익 웃었다.
“네 심장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오러로 강화된 이안의 청력은, 점점 빨라지는 상대의 심장소리를 놓치지 않았으니까.
“하, 검은 사자단의 단장은 강력한 무력에 담대한 심장을 가졌다더니 순 거짓말이었군. 얄팍한 거짓말로 사람이나 떠보려 하다니.”
분명 자신을 한 번 떠본 것이라 짐작한 그는 이안의 추궁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뻗댔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었다.
[곧장 자백했다면 편했을 텐데, 안타깝군.]
설마하니, 자신을 묶고 있는 그림자를 통해 그의 땀방울 하나, 심장소리 하나까지 모두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건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한 이안의 검은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
“하사신이라.”
트로이카의 잔당에게서 얻어낸 단어를 읊조린 이안이 손으로 턱을 괴었다.
[트로이카를 이루는 세 조직 중 하나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더니, 생각보다 쉽게 잡았어.]
처참한 몰골이 되어 정신을 잃은 하사신의 조직원을 보곤 미미르가 기분 좋게 갸르릉거렸다.
말단이긴 하지만, 알자스의 어둠과 함께한다는 하사신의 일원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더 이상 녀석에게 뽑아낼 것은 없어 보이는데.]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거야. 목표는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미미르의 물음에 이안의 눈이 한쪽 벽면의 지도를 향했다.
베티가 준 알자스의 전도.
지도에는 그녀가 지난 십년간 새롭게 덧쓴 정보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새롭게 그려진 붉은 동그라미들이 지도의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섯 곳인가.’
트로이카를 전복시키기 위해 노려야 할 목표들.
오늘, 이안은 그중 하나를 공격할 예정이었다.
“아슈타르, 어떻게 할 거야?”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안이 고개를 돌리자 베티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예정대로라면 병기고를 공격하는 게 맞을 걸. 소문이야 나진 않았지만 지하 감옥은 이미 붕괴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트로이카가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병기들을 모아 둔 병기고.
그곳이 공격당한다면 트로이카가 더 이상 건재하지 못하다는 신호가 되리라.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이안은 말꼬리를 흐리며 쓰러진 하사신의 단원을 바라봤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말야.”
“하사신을 치겠다고? 실체도 없는 녀석들을?”
이안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눈치 챈 베티가 고개를 저었다.
“놈들의 은신처는 아무도 몰라. 알지도 못하는 은신처를 치겠다고?”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어.”
“뭐?”
이안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자, 베티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지도 못하는 적의 근거지를 어떻게 치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안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곧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길잡이는 이미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
알자스 어딘가.
“후후.”
하사신의 장주, 하캄은 요즘 들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 년이 제 스스로 고개를 숙이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란 말이지.”
고작해야 신흥 조직 하나를 처리하는 것으로 그녀에게서 대가를 얻어낼 수 있다니.
트로이카의 온갖 어두운 일들을 담당하고 있는 그에겐 이보다 쉬운 일이 없었다.
“이번엔 쉐도우들을 보내야겠어. 그 정도는 해줘야 딴 소릴 못하겠지.”
하사신에서도 스물 남짓한 숫자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들이라면, 그깟 조직 따위는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아삭
하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에 쥔 사과를 베어 물었다.
그가 결정한 순간부터, 그가 원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남은 것은 신드라가 자신에게 합당한 대가를 바치길 기다리는 것뿐.
그 때.
탁
분명 아무도 없던 천장에서 복면을 뒤집어쓴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장주님.”
“뭐지?”
“검은 사자단으로 보낸 종자의 보고입니다.”
바닥에 부복한 복면의 사내가 서신을 뜯은 다음, 두 손으로 바쳤다.
“흠, 좋아. 오늘 중으로 처리하면 되겠군.”
하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신을 받아 채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중으로 놈들의 본거지에는 쥐새끼 하나 살아남지 못하리라.
곧, 하캄은 본거지의 위치가 적혀있을 서신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이게 무슨….”
서신에 써 있는 것은 단 한 단어 뿐.
[위험.]
그 단어를 보자마자, 하캄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번에 깨달았다.
“이런 미친놈이…!”
툭
서신의 내용을 본 하캄의 손에서 떨어진 사과가 바닥을 굴렀다.
***
[생각보다 더 멍청한 놈이었군.]
“낮은 위치에 있을수록 공에 목마르기 마련이거든.”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이안이 한 일은 얼마 없었다.
덜 떨어진 하사신 하나를 고문하고, 놈들의 본거지를 공격할거란 암시를 준 다음, 녀석이 눈치 못 채게 탈출할 길을 열어줬을 뿐.
고맙게도 녀석은 탈출하자마자 본거지에 서신을 보냈고, 이안은 서신의 발신경로를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설마하니 놈들의 본거지가 병기고일 줄은 몰랐지만.’
아니, 오히려 병기가 오가는 곳이기에 그들이 더욱 눈에 띄지 않았으리라.
끼릭끼릭
알자스의 어느 건물 옥상에서, 이미 페르소나를 발동해둔 이안은 병기를 설치했다.
철컥
정확히는, 이안이 아니라 그림자 손이었지만.
“잡일시키기엔 딱 좋단 말이지.”
신의 힘이라기엔 내구성은 비할 바 없이 약했지만, 그림자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쉐도우베인의 힘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네가 유일할 것이다.]
“내가 주인인데 알 게 뭐야?”
탁
미미르의 핀잔을 받아친 이안은 미리 따놓은 사격제원에 맞춰 바닥에 세워둔 병기를 조준했다.
“이 정도면 걸릴 일은 없겠고.”
2킬로미터나 되는 거리에서 갑자기 공격이 날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리라.
계획을 마지막까지 점검한 이안은.
들고 있던 포탄을 포구 안으로 미끄러트렸다.
포옹
곧 거무튀튀한 색의 61mm박격포가 포탄을 토해냈고.
콰아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지점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일어나났다.
[제법 강력하군. 위력으로 치면 5급 마법정도겠어. 연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미미르가 그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
이안이 페르소나를 통해 불러내는 무기는 언제나 합당한 화력을 뿜어냈으니까.
“왜?”
[고작 병기급의 페르소나로 이만 한 거리에서 이 위력을 계속 내뿜지는 못할 것 아닌가.]
이안의 물음에 미미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마법은 그만큼 숫자가 적었으니까. 하물며 연속사용까지야.
하지만.
“이제 시작인데.”
이안은 피식 웃고는 다음 포탄을 박격포에 밀어 넣었다.
[뭐?]
포옹
또다시 하늘을 가르는 포탄을 본 미미르가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