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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40화 (41/224)

#40화

“미미르.”

[왜 그러는가.]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회색 세계에 홀로 남은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운이 좋았지.’

아무리 페르소나와 현대병기의 힘을 빌렸다고 한들, 그가 그림자신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아니었다.

“도대체 출구가 어디야?”

신을 이겨먹은들, 이 세계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법 걸었음에도 출구를 찾지 못한 이안은 점점 초조해졌다.

[일반적인 성역이라면 신을 상징하는 물건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림자신이 머물던 성역이라면 아마 그림자와 관련된 것이겠지.]

“그래서 그게 뭐냐고.”

[나도 모른다.]

“말을 말자.”

무책임한 미미르의 답에 이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삭막한 회색 평원이 슬슬 지겹기 시작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밖의 상황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놈들이 신기를 키우고 있던 것이 맞다면, 모종의 경보장치를 갖추고 있을 터.

신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은 트로이카의 병사들이 몰려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곤란해.”

하지만 이 공간 어딘가에 있을 출구를 찾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젠장, 못해먹겠네.”

털썩

결국, 마력과 체력을 거의 소진한 이안은 회색 초원 위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빌어먹을….”

하루, 아니면 이틀?

얼마나 걸었는 지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물론, 이안은 저격을 준비하기 위해, 수 일 동안 부동자세로 엎드려서 대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적의 실체가 존재했고, 언제 올 것이라는 기약도 있었다.

지금처럼 목표도, 단서도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은, 이안의 강철 같은 정신을 점차 녹슬게 만들었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신기도 자신의 힘을 외부에 내뿜기 위해선 출구가 있어야 하니까.]

미미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댔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림자, 그림자….”

그림자와 관련 있는 것.

대(大)자로 누운 채, 이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단서를 가지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햇빛이 따갑군.’

따가운 햇볕을 견디다 못한 이안이 한쪽 팔로 눈을 가렸다.

혹여나 강렬한 햇살에 눈이라도 다치면 곤란했으니까.

그 순간.

“햇빛?”

우당탕탕

무언가를 깨달은 이안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힘이라고는 한 오라기도 없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지금의 이안에겐 힘이 넘쳐흘렀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

미미르가 물었지만 이안은 대답 대신 잿빛 하늘을 바라봤다.

온통 회색으로 물든 무채색의 하늘 중, 유일하게 하얗게 빛나는 물체가 있었으니까.

‘빛.’

태양.

무채색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는 태양만이 그림자신의 성역에서 그림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미미르, 이 성역의 범위는 어디까지야? 실제 세계와 동일한 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거냐.]

“저 태양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말하는 거야.”

실제 세계라면 태양에 닿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안은 한 가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분명, 신기 내부의 성역은 매우 좁다고 했어.’

그림자신이 자신의 힘 대부분을 포기해야할 정도라면, 저 하늘에 떠있는 태양도 실제와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실제와는 다를 것이다. 신기에 딸려있는 공간이니 아무리 높아도, 채 백 미터도 되지 않겠지.]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닿을 방법이 없다는 건데….’

비행기도, 헬리콥터도 아닌 한낱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백 미터나 되는 높이에 오를 수 있겠는가.

마법이라도 배웠다면 모를까, 두 발밖에 없는 이안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나는 말이지.’

다행히도, 이안에게는 거기까지 닿을 가능성이 있는 무기가 있었다.

철컥

“미미르, 상징을 부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충전된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긴 이안이 태양을 겨누곤 물었다.

[글쎄…, 내 계산에 따르면 성역 자체가 붕괴할 확률이 76.1%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붕괴된 성역과 함께 사라지거나, 깨진 틈을 통해 외부로 나갈 수 있겠지.]

“그래?”

미미르의 답을 받아낸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드르르륵

곧장 태양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쐐애애액

33발의 납탄이 태양을 향해 아음속으로 쏘아져나갔다.

공중에 떠있는 물체를 맞추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다.

중력의 힘에 의해 포물선을 그리는 탄환의 궤적을 고려해서 쏴야할 뿐만 아니라, 비행물체의 이동속도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소총사격만으로 AN-2기를 잡아본 적이 있는 이안에게 가만히 떠있는 태양은 그저 조금 작은 표적일 뿐이었다.

드르르륵

이안이 연속으로 세 탄창을 비웠을 즈음.

[이안, 눈을 가려라!]

미미르의 갑작스런 경고를 듣자마자 이안이 즉각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파아앗

눈을 가리고도 느낄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 성역을 환하게 비추었다.

이안은 빛이 걷힐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성공인가?’

분명, 이안의 총탄에 담긴 마력이 태양에 무언가 영향을 주었음엔 틀림없었다.

그것이 어떤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슈우우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은 다시 사그라들었다. 가렸던 눈을 뜬 이안은 다시금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됐어.”

상태를 확인한 이안은 씨익 웃었다.

태양이 사라지고 검게 물든 하늘이, 유리처럼 조각조각 깨져나가고 있었으니까.

***

알자스 지하수로 어딘가.

수 십 번 확장과 폐쇄를 반복한 미로의 한 구석에는 인적이 끊긴 지 오래인 공간이 존재한다.

우우웅

그러니까, 조금 전까지는.

“여, 여기가 어디야?”

“냄새가….”

“시취다, 모두 숨을 멈춰!

검은 빛과 함께 나타난 이안 일행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에 숨을 멈췄다.

“우욱, 전능한 마르콘이시여….”

오랫동안 묵은 오물냄새를 참지 못한 세리아가 헛구역질과 함께 급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파앗

곧, 세리아에게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빛이, 쌓이고 쌓였던 불결함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후우….”

그제서야 일행은 참았던 숨을 쉴 수 있었다. 도노반은 베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쪽,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소?”

“후욱, 들어본 적은 있어. 아마도 지하수로의 폐쇄구역인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나가봐야 알겠는걸?”

신선한 공기를 급하게 들이마시던 베티가 주변을 둘러보며 답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어떻게 여기 온 거야?”

분명, 일행은 조금 전까지 알자스의 지하 감옥인 라비린토스에서 트로이카의 개들과 싸우고 있었다.

상대가 가진 환수급 페르소나에 당해 패배를 눈앞에 두었을 때, 갑자기 사방을 덮친 검은 빛.

그녀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 때.

“쿨럭, 쿨럭!”

방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기침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그 곳엔.

“고, 공자님!”

“아슈타르?”

아슈타르 공작가의 3공자, 이안이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빌어먹을, 죽는 줄 알았네.”

의례상 하는 말이 아니라, 이안은 말 그대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신력의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것을 감사히 여겨라. 잘못 휘말렸다면 영혼까지 산산조각 났을 테니까.]

미미르의 사자머리가 이안을 향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안이 한 행위는,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으니까.

[인간의 마력으로 폭주하는 신의 힘을 제어할 생각을 하다니, 미친 놈.]

“살았으니 된 거 아냐?”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마지막에 기지를 발휘해 몰아치던 신력의 폭풍 일부를 마력으로 유도해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이안은 지금쯤 신력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을 테니까.

“공자님, 괜찮으신 겁니까? 우선 이걸….”

주군의 회생을 두 눈으로 확인한 도노반이 급히 이안에게 달려가 품에 들어있던 포션을 권했다.

꿀꺽

이안은 포션을 단숨에 들이켰다. 포션의 청량한 기운이 그의 몸 전체에 퍼져나갔다.

“후우….”

포션의 힘으로 체력을 빠르게 회복한 이안이 간신히 숨을 돌렸다.

‘이제 좀 살겠군.’

마력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

이안은 자리에서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고마워, 경. 덕분에 살았어.”

“가, 가당치도 않습니다. 호위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이안이 고개를 숙이자 당황한 도노반이 손을 내저었다.

한때 망나니로 소문났던 이안이 감사를 표한다는 것 자체가 노기사에게는 영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이봐, 아슈타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알자스에 남겨졌던 세 요원.

베티와 랄프, 데인이 이안을 의뭉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까지는 어떻게 데려온 거지? 신기의 힘인가?”

“아마도.”

베티의 말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폭주하는 신력을 억지로 제어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느라 정확한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우연이거나, 무의식중에 벌인 일이겠지.’

이안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행을 이곳까지 불러온 힘은, 지금 당장 자신이 다룰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대신, 이안은 페르소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정보.”

이안이 시동어를 외치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열렸다.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병기]

[마력: 2100]

[개방 필요마력: 1,000]

[증폭률: 1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그림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확연히 늘어난 마력량.

그림자신의 힘을 제어하는 동안, 그의 마력은 비약적인 진보를 거듭해 익스퍼트 중급의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안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림자]

“흠….”

특성 칸의 맨 마지막, 그림자라 적힌 것을 확인한 이안은 턱을 매만졌다.

“미미르, 뭔가 바뀐 게 느껴져?”

[이질적인 무언가가 내부에 들어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써먹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구가 필요하겠어.”

그림자들과의 전투 당시에 느낀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린 이안은 입맛을 다셨다.

그림자신이 부렸던 힘 중 일부만을 다룰 수 있더라도, 이안의 전투방식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었으니까.

“이봐, 아슈타르. 이제 어쩔 거야?”

이안에게 다가온 베티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신검공의 의지는 잘 알겠지만, 트로이카는 만만한 놈들이 아냐. 여차하면 제국을 끌어들이고도 남을 걸?”

그러면 네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겠지.

말을 마친 베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안이 과연 무슨 답을 내놓을지, 그녀의 호기심이 동했다.

뚜벅 뚜벅

이안은 대답 대신 구석에 쳐박혀 있는 황자를 향해 다가갔다.

“난 너와 할 말이 없다.”

이안의 시선을 느낀 알론소가 눈을 부릅떴다.

“그래? 난 많은데.”

알론소의 말에 이안은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지 마라!”

부아가 치민 알론소가 버럭 소리쳤다.

비록 몸은 구속되어있을망정, 아직 황가의 자존심은 남아있었으니까.

‘뭐, 예상은 했지만.’

신기를 빼앗기고, 팔다리 관절에 총탄이 박히고도 녀석이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들을 것이란 생각 자체가 오만이다.

“난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다. 이를테면.”

그래서.

“황제라던가.”

“뭐?”

이안은 판돈을 올리기로 했다.

“감히, 아슈타르의 쥐새끼가 황제를 논해?”

그 말을 들은 알론소가 애써 눈에 쌍심지를 돋웠다.

하지만.

[황태자 녀석, 눈은 솔직하군.]

녀석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욕망의 불꽃을 읽은 미미르가 낄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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