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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39화 (40/224)

#39화

이안이 그림자신을 향해 M60을 난사하고 있을 무렵.

스릉

정체불명의 병사들과 조우한 이안 일행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체를 밝히시게.”

도노반이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일격의 다이거다, 이 도둑놈들아.”

돌아온 것은 검은 갑옷 사내의 욕지거리였다. 곧 도노반의 눈이 녀석과 마주쳤다.

‘강해.’

눈을 마주치자마자 도노반은 상대가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못해도 익스퍼트 중급. 아니면 그 이상.’

이안 일행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초면에 말씀이 험하시군. 같은 기사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야.”

하지만 도노반은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 기세싸움에서마저 진다면 정말로 끝이었으니까.

그러자 검은 갑옷의 사내, 다이거가 코웃음을 쳤다.

“기사? 내가 기사라고? 얘들아, 저 도둑놈 대장 놈이 나보고 기사란다.”

푸하하하하-

사내 뒤의 병사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곧, 웃음을 멈춘 사내가 도노반을 매섭게 노려봤다.

“장난은 끝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신기를 내놓는 게 너희를 위해 좋을 거야.”

“신기? 미안하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네. 하루하루 늙어가니 기억력이 영 별로구먼.”

사내의 으름장에 도노반은 의뭉스런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댔다. 사내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우우웅

오러가 울부짖는다.

하지만 소리의 근원은 놈의 검이 아니었다. 애당초 놈은 검을 차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 대신 울부짖는 것은, 사내가 전신에 뒤집어쓴 금속갑옷, 그 자체였다.

파아앗

익스퍼트의 상징, 오러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내의 전신을 감쌌다.

“그래, 원래 짐승새끼들은 패야 말을 듣는 법이지.”

마치 귀화(鬼火)처럼 퍼렇게 타오르는 사내가 양손의 건틀렛을 맞부딪쳤다.

키이이잉

오러끼리 맞부딪치자 날카로운 소리가 공동을 울려댔다.

후우.

상대의 파괴적인 기세에 심호흡한 도노반이 힐끗, 뒤편을 바라봤다.

‘공자님…’

그곳에는 그림자에게 먹혀 검게 변한 이안이 쓰러져있었다.

‘지켜야 한다.’

도노반은 각오를 다졌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기사는, 그 순간부터 기사가 아니었으니까.

“경.”

에반이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도노반을 쳐다봤다. 도노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검을 굳게 쥔 두 기사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가 서서히 공동을 물들여갔다.

“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거냐? 소원대로 해주지.”

그 모습을 본 다이거가 코웃음 쳤다.

상대는 고작해야 익스퍼트 초급 둘.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둘이 아니라 다섯은 있어야 했으니까.

“질질 짜면서 아는 걸 전부 토해내게 만들어 주마.”

키이잉

으름장을 놓은 다이거의 오러가 그의 자신감처럼 거세게 불타올랐다. 자신이 패배할 것이란 생각은 한 올 만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라.”

“오라.”

두 기사가 입을 연 순간.

“뭐?”

비웃던 다이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둘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 역시 너무나 잘 아는 주문이었으니까.

“입실론.”

“이클립스.”

잠든 전설을 깨우는 시동어가 완성된 순간.

파아앗

두 기사의 몸뚱이에서 각각 희고, 검은 기운이 누에실처럼 뿜어져 나왔다. 두 기운은 이윽고 병기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흐, 같잖은 재주로군.”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다이거가 애써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하나도 아닌 두 개의 페르소나를 상대해야할 그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리고.

사내보다 더 당황에 빠진 자들이 있었다.

“페, 페르소나라고? 그것도 둘이나?”

아니, 지금 쓰러져있는 애송이를 포함하면 셋.

베티와 랄프, 데인은 그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을 쉽사리 믿기엔 자신들이 버려진 시간이 너무 길었다.

‘페르소나는 공국의 주요전력.’

특히, 일곱 공작 중 하나인 신검공은 근위대란 이름하에 공작령 내 페르소나 사용자의 대부분을 자신이 직접 컨트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말인즉슨.

‘아슈타르가, 진심으로 움직인다는 건가? 알자스를 획득하기 위해?’

십 년 전, 페르소나는커녕 지원 병력도 없이 버려졌던 그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

‘진심으로, 알자스를 다시 탈환하겠다고?’

그것을 보고서야, 그들은 아슈타르의 애송이가 한 말이 진심이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연합공국의 개들이었군? 수호자를 자칭하는 버러지들.”

둘의 페르소나가 눈앞에서 가동된 것을 본 다이거가 야수처럼 으르렁댔다.

“버러지라니, 말이 심하군. 결국 그대들도 공국의 방패 아래서 살아가는 신세이지 않는가.”

깡 깡

사람 한 둘은 쉽게 가릴 수 있는 순백의 거대한 타워실드.

방패를 검으로 두드린 도노반이 그 너머에서 씨익 웃었다.

“우리가 공국에서 왔다는 걸 안다면, 이게 무엇인지도 잘 알 걸세.”

페르소나.

마법의 신이 직접 칠영웅에게 내려준 대 마족병기.

익스퍼트 중급이란 경지가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홀로 병기급 페르소나 둘을 상대할 수준은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다이거의 열세.

“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병력을 뒤로 빼는 것이 어떠한가? 내 명예를 걸고 살려주겠다 약속하지.”

도노반은 뒤의 쓰러진 이안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난전이 벌어진다면 일행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가능한 한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자 했던 탓이다.

하지만.

“지랄하지 마라, 도둑놈 새끼들. 좋은 말할 때 훔쳐간 물건이나 내놓는 게 좋을 걸?”

페르소나 둘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다이거는 물러서지 않았다. 놈의 몸에서 끓어오르는 투기가 두 기사와 맞부딪쳤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도노반은 푸른 오러로 감싼 거인족 왕의 방패, 입실론을 양손에 쥔 채로.

그대로 내리찍었다.

방패를 가득 채운 마력은 땅 밑으로 깊숙이 퍼져나갔다.

곧, 마력이 땅 속을 도도하게 흐르던 지맥을 건드린 순간.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

날뛰는 지맥에 의해 찢겨지고 부서진 땅거죽의 파도가 적을 향해 뻗어나간다.

‘끝이다.’

갑작스레 빠져나간 마력에 헐떡대면서도 노기사는 확신했다.

아마도, 에반의 힘 따위는 필요도 없을 것이다.

페르소나가 가진 전승과 이를 뒷받침하는 마력증폭력은 그만큼 강력했다.

“도, 도망쳐!”

“흙더미다!”

다이거의 뒤에 선 병사들이,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치는 파도를 보곤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본디 범죄자 출신이었던 저들에겐 의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도노반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비켜라.’

공자님을 구해야 하니까.

도노반은 굳은 눈빛으로 퍼져나가는 땅의 파도를 바라봤다.

당시에 거인족과 대적했던 마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곧 토사(土砂)의 파도가 적들을 땅 아래로 끌어내리리라.

“…오라.”

그렇게 생각했다.

“헛!”

익숙한 영창에 놀란 도노반의 눈이 방패 너머를 재빨리 살폈다.

토사의 파도 사이로 적 소드익스퍼트, 다이거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은.

“줄르만.”

웃고 있었다.

쿠르르릉

어떻게 도망갈 새도 없이 갈색의 파도가 다이거, 그리고 그 뒤에서 도망가던 병사들을 집어삼켰다.

파스스

파도는 다시 부서져 집어삼킨 이들과 함께 본래의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콰앙

“이 정도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굉음과 함께, 초록 피부의 거대한 인간형 괴수가 땅거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환수급….”

“말도 안 돼….”

어째서.

아슈타르도 아닌 이곳에 환수급의 페르소나를 다루는 자가 있었단 말인가.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도노반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왜, 아까처럼 기세 좋게 덤벼보시지 그래?”

온 몸에 퍼런 반점이 돋아난 초록빛의 거대한 괴물.

아니, 괴물의 형상을 한 다이거가 씨익 웃었다.

‘위험해.’

환수급 페르소나가 나타난 순간, 도노반은 승률을 3할 이하로 낮춰 잡았다.

환수급의 격은 병기급의 페르소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으니까.

그 때.

콰앙

도노반의 옆에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에, 에반!”

쐐애액

도노반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송곳처럼 뾰족한 검을 쥔 에반이 검은 오라에 휩싸인 채.

“죽어라-!”

푸욱

거대한 송곳을 놈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이, 이겼어? 환수급을?”

그 모습을 본 베티와 일행의 두 눈이 커졌다.

지금 그들은 일순간이지만 병기급 페르소나가 환수급 페르소나를 압도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으니까.

곧.

“후욱.”

숨을 들이킨 에반이 검을 쑤욱 뽑아낸 순간.

푸슈슈슈-

관통당한 괴수의 심장이 녹색 피를 분무기마냥 몸 밖으로 뿜어대기 시작했다.

누가 생각하더라도 죽음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을 만큼, 녀석의 상세는 위중했다.

하지만.

“에반, 피해라!”

“네?”

오직 도노반만은 그것이 끝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줄르만이라면 분명…!’

힘의 오우거, 무리의 오크, 재생력의 트롤.

녹색 거죽을 가진 수많은 마수들 중에서도, 세 가지 재능 모두를 타고난 마수들의 왕.

“녹색의 왕은 억겁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

비록 그것이 녹색의 왕 중 가장 약할지언정.

“…죽음 속에서 다시 부활하리라.”

일개 병기의 능력만을 사용할 수 있는 병기급 페르소나와 [전승]을 불러낼 수 있는 환수급 페르소나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났으니까.

콰앙

죽음을 ‘되돌린’ 다이거의 녹색 다리가 에반을 향해 뻗어나갔다.

부웅

발길질에 얻어맞은 에반이 힘없이 하늘을 날았다.

환수급 페르소나의 출력에 의해 이미 페르소나는 강제로 해제된 지 오래.

“에반!”

“쿨럭, 쿨럭.”

바닥에 나뒹군 에반의 기침에서 선혈이 섞여 나왔다.

“그래, 이제 좀 힘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허리를 숙인 채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던 괴수가 씨익 웃으며 녹색 침을 흘렸다.

“좋은 말할 때 신기를 내놔. 다음엔 죽여 버릴 테니까.”

조금 전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왕의 전신에 푸른빛의 오러가 감돌았다.

후웅

녀석의 양 주먹이 허공에 위협적으로 휘둘러졌다. 도노반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틀린건가.’

상대가 환수급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단 사실을 안 순간.

도노반은 이미 승리하기를 포기했다.

함께 싸웠다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었겠지만, 굳이 에반이 먼저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승패에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내 상태도 멀쩡하지는 않구먼.’

첫 공격에 마력은 거의 바닥. 거대한 방패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마력만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하지만.

“아슈타르의 기사는 물러섬이 없다네.”

호위기사 된 자가 어찌 주군을 두고 먼저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원한다면, 나를 뚫고 가는 게 어떻겠나?”

자신보다 곱절은 강한 상대 앞에서, 노기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헹, 내놓을 생각이 없다면 죽여서라도 뺏어야겠지.”

코웃음 친 줄르만이 주먹을 쥐곤 천천히 도노반을 향해 다가왔다. 녀석의 주먹에, 파괴적인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도노반의 두 손이 방패를 굳게 붙들었다.

그 때.

구우웅

검은 빛이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뭐, 뭐야?”

후웅

다이거는 당황했다. 기습일까 싶어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봤지만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슈우우우

검은 빛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다이거의 녹색 눈 역시 원래의 시야를 회복했다.

하지만.

“이, 이 개새끼들이…!”

눈앞의 광경을 본 다이거는 분노했다.

“감히, 도망을 쳐!”

검은빛이 사라진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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