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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38화 (39/224)

#38화

알론소 폰 마르세니아, 마르센 제국의 5황자는 분명 강했다.

의지와 마력의 결합체인 오러를 무기와 신체에 자유자재로 실을 수 있는 오러 익스퍼트의 경지.

그 중에서도 상급에 이른 황자를 해할 수 있는 자는 인간 중 몇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투타타타타타

그의 힘으로도 두 정의 M60이 만들어내는 탄막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푸푸푹

검을 휘둘러 몇 발은 막아냈다.

그보다 수 배, 수 십 배는 많은 탄환이 황자의 몸을 헤집었다는 것이 문제지만.

“커, 커억….”

벽에 쳐박힌 황자의 입에서 선혈이 배어나온다. 급소를 가리지 않고 박혀 들어간 7.62mm탄이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아니, 저게 인간이야?”

하지만 이안은 혀를 내둘렀다.

지구의 평범한 인간이라면 살아있기는커녕 시체조차도 온전히 남기지 못했을 테니까.

이안의 옆에서 미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걱정마라. 아무리 익스퍼트 상급이라 하지만, 저 정도의 부상이라면 자력으로 회생할 가능성은 없다.]

익스퍼트 상급의 오러에 배어 든 강력한 의지가 이미 죽었어야 할 황자의 생명을 조금 더 붙들고 있을 뿐, 이대로 가면 그의 죽음은 예정되어있었다.

곧 뒤따라온 일행이 신기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도, 도련님! 그림자들이 사라졌…, 도련님?”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황자와 양 손에 기관총을 쥔 이안을 본 순간, 도노반은 말을 잊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도노반의 눈이 혹 이안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를 살폈다.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는 지형에 따라 홀로 오백 명의 일반 병사를 상대할 수 있는 인간병기.

개중에서도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은 칠영웅의 후손들과 비견할 정도였으니까.

“나야 보다시피, 나보단 저 황자가 문제지.”

이안의 말대로 황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대로 두기엔 너무 아깝잖아?’

상대는 제국의 황자다.

그 말인즉슨.

‘협상의 카드로 쓸 수 있다는 말이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 그 중에서도 자식은 인질 중 으뜸이었으니까.

“적당히 치료해줄 수 있겠어, 세리아?”

“끄으, 끄으으….”

이안의 손이 죽어가는 황자를 가리켰다. 세리아의 눈이 커졌다.

“네?”

“완전히는 아니고,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팔다리는 못 쓸 정도로. 또 날뛰면 곤란하니까.”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를 아무 장비도 없이 생포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우, 정말 저를 사제로 보시긴 하는 건지….”

“그래서?”

“해야죠.”

애들이 걸렸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세리아가 쓰러진 황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안의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좋아, 그럼….”

이제 이 지하에서 빠져나갈 차례.

제법 소란이 있었으니, 분명 머지않아 병사들이 이곳을 포위할 것이다. 그 전에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고, 공자님! 뒵니다!”

놀란 에반의 말에 이안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하?”

뒤를 돌아본 이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

어느새 다시 본모습을 되찾은 그림자 심장이 제 자식들을 토해내고 있었으니까.

***

투앙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굉음이 동굴을 울려댔다.

‘머리가 아파.’

여러 번 들었지만 적응되지 않는 소리에 에반은 눈살을 찌푸렸다.

탈출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리라.

하지만 에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도노반 경.”

에반은 옆에서 배후를 감시 중이던 노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음?”

에반의 부름에 도노반이 잠시 눈을 돌렸다. 그는 곧 에반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 챘다.

“무슨 일이지, 에반? 몸이 좋지 않다면 뒤로 물러나서 쉬게.”

에반이 지나치게 긴장했다 여긴 도노반은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전투 중에 오랫동안 긴장하게 되면 피로를 호소하는 경우는 제법 많았으니까.

하지만 에반이 느끼는 것은 전투피로 따위가 아니었다.

“피곤하진 않습니다. 단지….”

“흠?”

“공자님께서, 저희를 왜 데리고 다니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을 마친 에반은 뒤를 돌아봤다.

투앙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쥔 주군은 그림자가 태어나는 족족 원래의 상태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이 미궁에 들어와서부터는 저희가 한 일이 없지 않습니까. 마치….”

짐. 이라는 말을 억지로 삼킨 에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반 뿐만이 아니라, 주군과 함께하는 모두가 그의 등을 쫓아가기 바빴으니까.

실제로 라비린토스에서 그가 한 것이라곤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는 것뿐이지 않았는가.

“우리의 임무를 잊지 말게.”

도노반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주군의 등 뒤를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할 일은 다한 셈이니까.”

반평생 누군가를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도노반은 에반을 향해 웃어보였다.

“지금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군께서도 언젠가 다른 이의 손이 필요할 때가 올 걸세.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릴 뿐이야.”

그것이, 도노반이 호위기사로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잠시간의 여유가 생긴 도노반은 주군, 이안이 버티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 공자님!”

이안을 본 도노반은 대경실색했다.

어느새 손에 검은 심장을 쥔 이안은.

꿀꺽.

그대로 심장을 삼켰으니까.

***

“뭐야, 이건?”

주변을 둘러본 이안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평원이었다.

조금 전만해도 분명 캄캄한 지하 동굴에 서 있었던 이안은, 어느 순간 지평선이 보일 만큼 드넓게 펼쳐진 평원 한 가운데에 도착해 있었다.

“일단…성공한 것 같군.”

이안은 처음 라비린토스에 들어왔을 때 들은 베티의 말을 떠올렸다.

‘먹는 거야.’

그녀의 말에 따라 이안은 그림자 심장을 씹어 삼켰다.

심장을 먹는 것으로 마력을 흡수할 수 있다면, 신기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여긴 도대체 어디야?”

이안은 바닥에 자란 회색 풀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하늘부터 땅까지, 풀부터 개울까지.

이 드넓은 평원은 바깥의 공간과 거의 똑같았다.

이 평원의 모든 것이 회색 톤으로 칠해져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하지만 공간을 둘러본 미미르는 크게 놀랐다.

[어떻게, 성역이…?]

“성역?”

이안이 묻자, 사자머리가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만신전의 신들이 가진 개인공간을 말한다.]

“그게, 뭐? 그림자신도 신이잖아.”

이안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사자머리를 바라봤다.

[잊혀진, 이 빠졌지.]

놀람을 미처 가라앉히지 못한 미미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이 잊혀졌다는 것은 만신전에서 그 이름이 지워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신에게 할당된 성역 역시 빼앗기는 법이지.]

“응?”

미미르의 말을 듣고, 이안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 말대로라면.

“그럼, 여긴 뭔데?”

그가 밟고 있는 이 공간은,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공간이란 말이 아닌가.

이안의 물음에 미미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도 신기 내에 할당된 성역의 일부겠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때.

스윽

땅에서 무언가가 솟아났다.

철컥

순간.

이안의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장전된 M60의 총구가 솟아난 그림자를 향했다.

곧,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굳이 그걸 알 필욘 없을 것 같군.

이안이 자신을 씹어 삼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림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했다.

이안은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다.

“그림자신이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이안의 물음에 그림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애매한 답에 이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밖에 나간 네 친구들처럼 되기 싫다면 말이지.”

이안이 총구를 들이대며 을러댔다.

하지만 그림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어떻게 된다는 말이지?

어느새 둘로 늘어난 그림자는.

웃었다.

스윽

둘에서 넷, 넷에서 여덟.

그림자가 무한히 분열하기 시작했다.

“어디 해 보자는 거지?”

타앗

상대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안은 전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다수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선 거리를 유지해야 했으니까.

32, 64, 128…

무한히 분열하는 그림자들의 육체가 입체적인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런 미친 새끼가.”

완성된 그림자들의 형태를 확인한 이안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림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안과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직시하는 소감은 어떠한가?

어떠한가, 어떠한가, 어떠한가….

“지랄하네, 아주.”

수백의 그림자가 일시에 입을 열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거대한 울림에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이곳까지 제 발로 걸어온 네 녀석의 무지를 탓하라.

스윽

그림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많은 군단의 손에 무기가 들려졌다.

이안이 쥐고 있던 큼직한 기관총, M60을.

스윽

군단의 손에 들린 수백의 총부리가 이안을 겨누었다.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총부리를 마주한 이안은 일순 힘이 빠졌다.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들이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는 직접 사용했던 이안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이안이 황자를 일방적으로 압도했듯, 그림자군단은 그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그림자로 만들어진 수많은 이안이 웃었다.

동시에.

-자신의 힘 앞에, 무릎 꿇어라.

수많은 이안이 파멸의 방아쇠를 당겼다.

‘끝인가.’

두 번째 생의 마지막.

이안은 두 눈을 감는 대신 부릅떴다.

이안의 적들이 그랬듯, 자신을 향해 다가올 수많은 총탄을 기다리며.

하지만.

틱 틱

총탄 대신 날아온 것은 허공을 치는 공이 소리뿐.

-무, 무슨?

수많은 회색 이안이 하나같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틱 틱틱

그림자군단이 재차 방아쇠를 당겨봤지만, 애초에 없는 총알이 다시 튀어 나올 리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래, 어째서?’

당황한 것은 살아남은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제할 것이면 전부 복제할 것이지, 총만 복제하는 것은 무어란 말인가.

[힘의 한계를 넘은 모양이군.]

미미르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계?”

[명색이 신인 녀석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신격을 신기 내부로 이동시키면서 힘의 대부분을 잃었다.]

-말도 안 돼. 내 격이, 여기까지 떨어졌다고?

그 와중에도 당황한 그림자신은 텅 빈 총을 어떻게든 쏘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미미르는 오열하는 그림자신을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네 녀석의 무기가 복잡한 탓도 있겠지만, 녀석의 격이 그만큼 떨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뭔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미미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철컥

이안은 장전한 M60을 앞으로 겨눴다.

“이제 내 차례란 거잖아?”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이안은.

투타타타타타

기쁜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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