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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37화 (38/224)

#37화

숫자의 힘은 강하다.

개인이 아무리 강한 무력을 가진들, 비슷한 수준의 여럿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

그런 의미에서, 라비린토스에 나타난 수백의 그림자들은 최강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였다.

퍼퍼퍽

베어내고 또 베어내도 결국엔 다시 나타나는 무한한 숫자의 그림자.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과 공격에 대항해 스스로 진화해나가는 적응력.

아무리 강한 적을 마주할지라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 적과 유사한 강함을 손에 넣고선 숫자의 힘으로 압도한다.

“아, 악마…!”

최강.

아니, 악마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그림자들은 이미 라비린토스의 추방자들 대부분을 집어삼킨 상태였다.

이안 일행을 제외하고는.

드륵 드르르륵

초당 20발, 분당 1,200발의 속도로 미미르의 총구에서 탄환들이 쏘아져나간다.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면 보통 인간의 몸으로는 피할 수 없는 속도와 숫자.

[-!!]

그건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푸푸푹

어지간한 오러의 파괴력에 비견될만한 탄환들이 그림자들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몸뚱이에 치명상을 입은 그림자들이 하나 둘 소멸하기 시작했다.

철컥

드르르륵

뜨거운 탄피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탄창이 비워지고, 이안의 번개 같은 손놀림에 다시금 서른 세발의 탄환이 미미르의 뱃속에 채워진다.

드르르륵

다수의 힘은, 그보다 많은 숫자의 총탄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아, 아인 경?”

반쯤 쓰러져있던 알론소는 이안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러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자신이 자랑하는 검술이 무색할 정도의 파괴력.

그림자 떼가 속절없이 몰살당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알론소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저건 제국의 것이 아냐.’

제국의 것일 리가 없었다.

언제나 협력과 합동을 강조하는 제국이 황족이 아닌 개인에게 저만한 무력을 쥐어줄 리 없으니까.

그리고, 이안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빛깔.

망나니처럼 지냈다고는 하나, 제국의 황자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페르소나….’

마족을 막아낸다는 핑계로 제국의 통치를 거부하는, 불충한 자들의 마법병기.

그 때.

“황자 전하.”

이안이 잠시 고개를 돌려 황자를 바라봤다.

“급히 신기의 기능을 중지시켜야할 것 같습니다. 혹, 길을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이미 정체가 밝혀졌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안의 태도는 황자를 처음 만났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 말에, 황자는 생각했다.

‘연합공국의 인물이다. 내가 도와줄 수는 없어.’

황자의 신분으로 연합공국을 도와줬다는 말이 황제폐하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끝이지.’

그 순간 황위, 어쩌면 자신의 목도 영영 안녕이었으니까.

하지만.

“…알겠네.”

알론소는 거부할 수 없었다.

푸시이익

이안의 손에서, 조금 전 그림자들을 도륙하던 흉기가 입김을 내뿜고 있었으니까.

***

“오른쪽. 여기선 왼쪽.”

드르르륵

알론소의 말에 고개를 까딱인 이안은 다시 그림자를 향해 권총을 쏘아댔다.

제법 먼 거리를 걸어왔지만, 그림자들은 아직 이안의 총탄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대로만 가면 좋겠는데.’

이안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더라도 원하는 목표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티티팅

‘막아내는군.’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팔을 방패처럼 들어 총탄을 막아낸 그림자를 본 이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드륵

곧 팔과 팔 사이의 틈새를 노린 총탄이 놈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

[--!]

어느새 거대한 팔을 들어 올린 그림자들이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

심지어 녀석들의 팔은 방패처럼 점점 넓적해져갔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이안이 쏘아내는 9mm탄은 놈들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하지만 이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무기교체.”

적이 적응하기 전에 뚫어낸다면 이안의 승리, 그러지 못한다면 패배.

말하자면, 이것은 신기와 이안 사이의 치킨게임이었다.

파앗

이안의 시동어에 따라 손에 쥔 글록이 푸른빛을 뿜으며 흩어졌다.

이안은 자연스레 양 손으로 새 무기를 쥐었다.

산탄총, M870레밍턴.

재빨리 탄환을 채워 넣은 이안이 샷건의 아랫부분을 당겼다.

철컥

기분 좋은 쇳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울림.

“이번엔 이거다, 새끼들아.”

이안은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투앙

산탄(散彈)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게, 미미르의 아가리에서 튀어나온 것은 손가락만한 굵기의 큼직한 탄환.

[--!]

여태까지와 같이, 그림자들은 그 거대한 팔을 방패처럼 몸 앞에 겹쳐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퍼엉

수십의 산탄이 아닌, 단 한발의 거대한 슬러그(Slug)탄의 충격력이 문자 그대로 그림자들을 뒤로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시지?”

모든 것에 적응하고 파훼할 수 있다면.

“이 개새끼들아.”

투앙

적응하기 전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될 뿐이다.

곧, 수십 발의 슬러그탄에 찢겨나간 그림자들 사이로 일순간 공간이 생겨났다.

“황자폐하?”

“…왼쪽.”

이안의 병기가 가진 힘에 질려버린 알론소가 힘없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이안은 그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

지향사격자세를 취한 채 이안은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림자들이 그의 앞길을 막았지만.

투앙 투앙

그가 쥔 산탄총 앞에선 허수아비만도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계속은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별 방해 없이 진행할 수 있으리라.

[정말 질려버리겠군.]

그 참상에 미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위력은 크지 않지만 범용성과 지속력이 높아졌어. 지속력만큼은 이미 환수급에 뒤지지 않는다.]

이안이 쏘아내는 슬러그탄과 유사한 위력을 내는 페르소나는 많다.

투앙

하지만, 이안의 페르소나는 보통의 것과는 지속력과 범용성 면에서 궤를 달리했다.

[처음에는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는데, 확실히 이유가 있었군.]

모든 마력을 일점에 뿜어내는 형태의 페르소나는, 위력 면에선 흠 잡을 데가 없지만 단발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 때문에, 파비안도 최후의 최후에서야 페르소나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당연하지, 누가 만들었는데.”

철컥

미미르의 말에, 샷건을 장전하며 이안이 이죽댔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안이 다루는 총기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신과 영웅들이 넘쳐나는 제 힘을 아낌없이 뿜어내던 전설의 무기나 능력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선 병기였다.

[!!]

[-!!]

페르소나의 힘으로 마력을 증폭한 이안이 슬러그탄 한 발을 발사하는 데 소모하는 마력은 고작 0.1.

투앙

단순계산만으로도, 이안은 약 일천의 그림자들을 소멸시킬 수 있었다.

[그림자가 점점 줄어드는군.]

이안의 학살극을 지켜보던 미미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줄어든다고?”

그 말에 이안이 앞을 자세히 살폈다.

“흠.”

그림자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동일했다.

‘비어있어.’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며 자세히 살펴본 이안은 군데군데 빈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말해봐.”

[그림자들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서 쉐도우베인이 미처 채워 넣지 못했거나.]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거나.

말을 마친 사자머리가 갈기를 털어댔다.

‘좋지 않군.’

미미르의 말에 이안의 손가락이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놈이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굳이 맞아줄 이유는 없잖아?’

[--!!]

[!!!!]

퍼퍼퍽

이안의 마음이 급해질수록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림자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어서, 이제는 그림자들 사이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을 만큼 의 공간이 보였다.

타타타탓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안은 슬라이딩으로 그림자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

놈들도 감정이 있었는지, 그림자들이 당황한 몸짓으로 파고드는 이안을 막으려했지만.

투앙 투앙

정확히 사각지대로 이동한 다음, 뒤통수에 슬러그탄을 날리는 이안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쏘고 달리기를 반복한 이안은.

“저건가?”

신기가 있는 장소에 도달했다.

[내가 아는 쉐도우베인과는 조금 다르군.]

“그러게. 원래 저렇게 역겹게 생기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대로, 눈앞의 녀석은 너무나 흉측하게 생겼으니까.

“무슨 썩은 심장 같군. 전해들은 것과는 너무나 다른 형태야.”

뒤늦게 따라온 알론소 역시 그 역겨운 모양새에 코를 찡긋거렸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그림자처럼, 검게 썩은 심장이 허공에 붕 뜬 채 썩은 피를 사방으로 내뿜고 있었다.

[!!]

[!!!]

거무죽죽한 피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뿜어져 나온 피가 뭉쳐 지금까지 싸워온 그림자를 형성해냈다.

투앙 투앙

물론 나타나자마자 이안의 산탄총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럼, 저걸 끝내면 되는 거지?”

철컥

얼마 남지 않은 탄환을 장전한 이안이 심장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무, 무슨 짓인가?”

[그, 그만둬라! 신기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아느냐? 저 것만 얻는다면 내 능력도…]

이안의 행동에 미미르와 알론소가 기겁했다.

신기는 각 신마다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유니크한 물건이었으니까.

강력한 힘은 둘째치더라도, 그 희소성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다.

하지만.

“안 돼.”

얻는 방법도 모르는 판국에, 모험을 감행할 생각은 없었다.

투앙

이안이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를 빠져나간 회색의 슬러그탄이 정확하게 검은 심장의 한 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갔다.

[아, 안 돼. 시, 신기가….]

산산 조각나는 심장을 보며 사자머리가 오열했다. 이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강해지면 내가 좋은 거지, 웃기는 놈일세.”

이미 포기한 물건이다. 굳이 미련을 가질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미미르가 강해진다면 나쁠 건 없지만, 현재의 힘으로도 제 한 몸 지키기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 강한 힘은 적을 만들지.’

적이 이안을 찾는 게 아니라면, 당장은 적당한 수준의 힘만을 가지는 것이 자유로운 삶을 위해선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몰랐다.

스릉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아인 경, 아니, 연합공국의 첩자여.”

어느새 칼을 뽑아 든 알론소가 이안을 보고 이를 갈았다.

“너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

신기를 얻기 위해 제국을 벗어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왔던가.

이 더러운 도시와 도시 아래 지옥을 떠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신기가 눈앞에서 산산 조각난 순간.

“죽어라!”

황자는 총 앞에 꺾였던 용기를 되살려냈다.

우우웅

검에서 오러를 줄기줄기 피워낸 황자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곧.

파앗

황자가 이안을 향해 도약했다.

‘무슨 술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만 막으면 된다.’

그러면, 저 빌어먹을 놈을 죽일 수 있다.

이미 분노에 이성을 잃은 채 몸을 날린 황자의 앞에서.

“허.”

이안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폭음과 함께 탄환이 쏘아져나간다.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납탄이 황자의 생명을 노렸다.

하지만 익스퍼트의 상급에 이른 알론소의 검은 무디지 않았다.

채앵

쇳소리와 함께 납탄이 검을 감싼 오러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됐어.’

충격에 알론소의 몸이 뒤로 밀려났지만.

막아냈다.

팔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함에 알론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그의 심장은 환희에 두근대고 있었다.

‘저 구멍, 구멍만 보면 된다.’

연합왕국의 첩자 녀석이 다루는 힘은 오로지 저 막대기의 구멍에서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구멍의 방향을 본다면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다는 것.

“끝이다!”

놈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을 찾은 이상, 더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자신감을 되찾은 황자의 검은 언제든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니?’

이안의 손에 새롭게 나타난 무기를 본 알론소는 혼란에 빠졌다.

이안의 손에 들린 것은.

‘두…개?’

구멍이 뚫린 두 개의 거대한 막대기였으니까.

곧.

“어디, 이것도 막아보던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이안의 양 손에서.

투타타타타타

두 정의 M60이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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