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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35화 (36/224)

#35화

오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마수들 중,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족 중 하나.

개중에서도 오러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오크 투사는 어지간한 인간 기사와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하다.

하지만.

“오, 오크 투사가….”

그 강함으로도 손가락두께의 철판을 관통할 수 있는 유탄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뒤늦게 도착한 일행이 발견한 것은 머리가 날아간 오크투사의 시체뿐.

놀란 일행은 숨을 헐떡이는 이안과 시체를 번갈아 쳐다봤다.

“허억, 허억. 빌어먹을.”

시체를 만들어 낸 장본인, 이안은 마력소진으로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다잡았다.

[일격에 모든 마력을 소모했다. 효율이 극도로 나쁜 공격방식이다.]

“여기서, 허억, 빌어먹을 페르소나를, 허억, 쓸 순 없잖아.”

이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페르소나는 본디 칠영웅의 것.

페르소나의 힘을 완전히 개방하는 순간, 이안의 신분이 만천하에 드러나리라.

연합공국에서 왔다고 광고할 것이 아닌 이상, 페르소나를 개방하는 것은 최후의 최후까지 미뤄야 했다.

“공자님, 이건 도대체…언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신 겁니까?”

도노반의 눈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페르소나를 가졌다 한들, 오크 투사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이안이 오러 익스퍼트의 방어를 뚫어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의미였으니까.

“엥?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당연히, 그 경지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이안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이안이 한 것은 오러공격이 아니라 마력을 유탄의 형태로 그냥 때려 박았을 뿐.

오러를 다루는 기술로 치자면 바위 굴리기 수준의 저열한 공격이다.

“무슨 소리냐니요. 공자님께서 방금 오크 투사를 쓰러뜨리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내가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거랑 연관되는 거냐고.”

그러니 노기사와 공자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하지만 둘의 대화는 이내 끊겼다.

“베, 베티? 여긴 어떻게?”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오크 투사에게 쫓기던 사내가 놀란 눈으로 베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 꿇은 데인의 밑에는, 오크 투사에게 맞고 벽에 쳐박힌 사내가 쓰러져있었다.

“데인, 랄프는?”

쓰러진 친우의 처참한 몰골에 베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데인은 고개를 저었다.

“벽에 부딪치면서 내상을 입었어. 일단 나가서 치료사나 사제에게 치료를 받지 않으면…미친 오크자식.”

머리가 날아간 오크 투사를 향해 침을 뱉은 데인이 안타까운 눈으로 쓰러진 친우를 바라봤다.

입에서 검은 피를 줄줄 흘리는 랄프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었지만,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것은 어려운 일.

서둘러 라비린토스를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랄프의 상세는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세리아가 없었다면.

“전능한 마르콘이여….”

사제의 기도와 함께, 태양의 신성력이 지상을 넘어 지하에 강림했다.

파앗

치료의 빛이 쓰러진 사내를 비추었다. 백지장 같았던 랄프의 얼굴에 점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사, 사제님?”

그제야 마르콘의 사제를 알아본 데인의 눈이 커졌다.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들로 득실거리는 알자스.

그 중에서도 도저히 살려둘 수 없는 극악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지하 감옥 라비린토스에 고결한 사제가 내려왔다니.

“사제님께서 어떻게 이 비천한 곳까지…”

“비천한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태양 아래에서는 모두가 마르콘님의 어린양인걸요.”

데인이 경외심 어린 눈으로 사제를 바라보자, 세리아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신과 직접 소통하는 칠영웅의 그림자가 워낙 강한 연합공국에서야 신전의 권위가 약한 편이었지만, 연합공국을 벗어나면 그렇지 않았으니까.

‘이 지하에서 마르콘의 어린양을 만나게 될 줄이야….’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엔 슬쩍 미소가 서려있었다.

[저 수전노가 사제인 척을 하다니, 별 일이군.]

“동감이다.”

그녀의 본모습을 잘 알고 있는 이안과 미미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쿨럭, 쿨럭!”

이윽고, 거멓게 죽은피를 몇 번 토해낸 랄프가 깨어났다.

“랄프, 정신이 들어?”

“랄프!”

“닥쳐봐, 머리 울리니까. 어떻게 된 거지? 오크 투사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건지, 랄프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도움을 받았어. 그러니까…베티?”

“어, 음.”

이안 일행의 정체를 몰랐던 데인이 눈치로 설명을 요구했지만,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베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친우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지만, 그 대상이 아슈타르의 공자라니.

하지만.

“이안 아슈타르다. 후욱, 보다시피 너희를 오크새끼로부터 구해냈지.”

베티가 채 변명을 늘어놓기도 전, 얼굴이 창백해진 이안이 다가가 정체를 밝혔다.

“아슈타르라고?”

“그래.”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순간, 데인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어느새 그의 손이 이안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만큼, 아슈타르에 대한 증오는 깊고도 어두웠다.

‘죽인다.’

오러를 근육에 가득 들이 부은 손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이안에게 쇄도했다.

숨 한 번 쉬기도 전에, 놈의 손은 이안의 심장을 꿰뚫으리라.

터억

누군가에게 그 팔을 잡히지 않았다면.

“무슨 짓이야, 베티. 다시 놈들의 개로 돌아간 거냐?”

데인의 팔을 막아낸 베티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친우들이 잡혀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일단 나가자.”

분노도, 증오도 살아야만 느낄 수 있다.

“나가서, 나가서 얘기하자.”

그녀는 그만큼 간절했다.

“너, 진짜….”

베티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자 데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친우의 간절한 표정에 데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그의 붙잡힌 오른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저 개자식 때문이 아냐. 랄프를 구해주신 사제님 때문이다.”

잡힌 손을 뿌리친 데인은 세리아에게 고개를 숙이곤 랄프가 쓰러져있던 쪽으로 물러났다.

“빌어먹을, 아슈타르라고? 이게 무슨 일이야….”

어느새 몸을 일으킨 랄프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이안과 베티를 번갈아 바라봤다.

[개판이군.]

‘별 수 없지. 그들에게까지 정체를 속일 순 없었으니까.’

이미 아슈타르에게 한 번 속아 넘어간 이들이다.

신뢰를 주지는 못할망정, 괜히 잔꾀를 부렸다가 일이 틀어진다면 안하느니만 못할 것이 뻔했으니까.

그 때.

[11시 방향 82m, 한 개체가 접근중이다.]

미미르의 말에 이안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베티, 친구가 더 있나?”

“아니, 이게 전부야. 왜…”

되묻던 베티의 말이, 일순 끊겼다.

동굴의 입구 끝에 낯선 자가 등장했으니까.

스릉

쇳소리와 함께 도노반과 에반의 마법검이 뽑혀 나왔다. 페르소나를 봉인한 검날이 시퍼렇게 빛났다. 이안은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곧, 상대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져왔다.

백은발을 뒤로 묶은, 제법 장성한 미청년.

그리고.

“나는 알론소 폰 마르세니아다! 마르콘의 사제는 어디에 있는가?”

마르세니아.

마르센제국 황실의 피를 가진 자만이 쓸 수 있는 성.

‘미친.’

생각지도 못한 조우에 이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그래, 그대는 제국의 귀족이라고?”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쉬타 가문의 아인이라 하옵니다.”

이안은 백은발의 소년, 마르센 제국의 5황자 알론소에게 미리 준비해 둔 신분을 밝힌 다음 고개를 숙였다.

[사자가 도마뱀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거 참 볼만하군. 신검공이 알면 당장 목을 베러 오겠어.]

그 꼬라지를 보고 가만히 있을 미미르가 아니었다. 미미르의 사자머리가 이안 주변을 돌며 히죽거렸다.

“이쉬타? 흠, 변경의 가문인가 보군.”

“본디 선대 황제폐하의 은덕으로 남작의 작위에 봉해졌으나, 현재는 영락하여 작위를 반납하였사옵니다. 무엇들 하는가? 황자 전하께 인사드리지 않고?”

제법 공손하게 말을 마친 이안은 뒤에서 미친놈 보듯 이안을 바라보던 일행에게 눈짓했다.

“화, 황자전하를 뵙습니다.”

“황자전하를….”

이안 일행을 시작으로, 베티와 랄프, 데인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예를 갖추었다.

세 요원이 굳이 어깃장을 놓지 않은 것만으로, 그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 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제국의 귀족과 신민들을 만나다니, 과인은 참으로 운이 좋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자는 자신의 신민들을 만났다는 것에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좋아, 그대들을 만난 것은 분명 마르콘께서 과인에게 길을 알려주신 걸 테지. 마치 폭풍 속을 걷던 초대 황제폐하께 빛을 내려주신 것처럼 말이야.”

굳이 발설할 필요 없는 이야기까지 입 밖으로 낼 정도로.

“그게 무슨….”

“영광으로 생각하게. 그대들은 과인과 함께 초대 황제폐하의 영웅행을 함께할 것이니, 이제부터 그대들은 잔다르 폐하의 열세 기사가 될 것이로다.”

이안의 말을 끊은 은발의 소년은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황자란 놈이 중2병 새끼일 줄이야.’

아니, 황자이기 때문에 저럴 수 있는 것일까.

분명 이안과 동년배였지만, 현실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소년의 언행에 살짝 질릴 정도였다.

“저 자식, 괜찮은 거야?”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온 베티가 걱정스런 눈으로 이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안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면 여기서 묻고 가는 게 맞을지도.’

이안은 최후의 방책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온 건진 모르겠지만, 이 지옥에 호위 하나 없이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선 중2병 황자의 위험성은 증명된 셈이었으니까.

휴식 간에 마력은 이미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

이안의 오른손이 천천히 허리춤의 미미르를 향해 뻗어나갔다.

하지만.

“과인은 잊혀진 신기를 얻어 초대 황제폐하와 같은 업적을 세우고, 나아가 현 황제폐하께 정명한 후계자로 인정받을 것이다!”

‘신기?’

황자의 말을 들은 이안의 손이 순간, 우뚝 멈췄다.

신기.

분명, 미미르가 그에게 알려준 단어였다.

[내 경쟁자가 있었군. 빨리 처리해라, 아슈타르의 공자여.]

아니나 다를까, 미미르의 사자머리가 황자를 향해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안은 미미르의 말을 듣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신기,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아인 경. 어느 날, 과인은 이 저주받을 지하 감옥에 제국에서 잃어버린 신기 중 하나가 잠들어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들었네.”

이안이 묻자, 황자는 엄청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제국의 기밀이 맞긴 하겠지만- 속삭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도 얌전히 궁에 쳐박혀 있다면, 어디 사내라 할 수 있겠는가? 곧장 도성을 박차고 나와 이 사악한 도시에 발을 들였지.”

황자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뽐내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알기 쉬워서 좋군.’

한 번 건드려주기만 하면 정보가 쏟아져 나오니, 이안으로서는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곧, 쉐도우베인은 과인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임에 틀림없네.”

황자가 신기의 정체를 입 밖으로 내기 전까지는.

[쉐, 쉐도우베인이라고?]

황자의 말을 들은 사자 눈이 크게 떠졌다. 이안은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겼다.

‘뭔데, 그게?’

[잊혀진 그림자 신이 만들어 낸 무형의 검이다.]

‘그래서?’

[현존하는 신의 신기를 흡수하는 것은 어렵지만, 잊혀진 신의 신기에는 주인이 없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누가 봐도 흥분한 표정으로 미미르가 마구 지껄여댔다.

벌게진 사자머리가 제법 웃기기는 했지만, 이안은 웃는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얻을 것, 잃을 것, 방법. 필요한가?

생각은 길지 않았다.

“황제폐하께 영광을!”

계산을 끝마친 이안은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다.

“소신, 황자전하를 위해 분골쇄신 하겠나이다!”

“도련님?”

“어, 어….”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

반쯤 적국인 제국의 황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신검공의 아들이라니.

순간, 일행이 다시금 이안을 미친놈 보듯 쳐다봤지만.

‘이게 답이다.’

이안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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