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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30화 (31/224)

#30화

이안이 만들어내는 것은 하나의 병기가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병기는 맞았다.

단지, 그 병기와 함께 기능할 수 있는 수많은 무언가가 있을 뿐.

[지난번에 뵈었을 때도 그랬지만, 관리자님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대단하군요. 지금껏 이런 신화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니, 과연 신화 속 물건이 맞기는 한 것일까.

수백 년 동안 온갖 종류의 페르소나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봐왔던 그녀에게, 이안의 페르소나는 삼시세끼 빵과 물만 먹다 만난 스테이크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미르는 코웃음을 쳤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제어정령으로서 자격 미달이군.]

[뭐라고요? 고작해야 신검의 복사품인 주제에….]

[잘 봐. 저게 단순히 상상속의 물건인지.]

난데없는 비웃음에 프레이야가 발끈했지만 미미르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상상속의 물건이라기엔 그 재현도가 너무나 뛰어나. 아무리 페르소나가 신화의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지만, 그 베이스는 창이나 칼, 갑옷 같은 실존하는 병기란 것은 제어정령이 더 잘 아는 사실 아닌가? 하지만….]

미미르의 말에 프레이야의 눈이 다시 이안의 작업물을 향했다.

[설마….]

순간, 그녀는 미미르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래, 녀석이 만들어내는 것은 상상이 아니야. 부품 하나하나의 디테일까지 본다면….]

실전에서 검증된 병기가 틀림없지.

미미르가 낮게 웃었다.

***

[그럼, 다음에도 또 방문해주시길.]

“시간이 나면.”

미미르의 교정을 끝낸 이안은 프레이야를 뒤로한 채 어둠에 한 발을 내딛었다.

곧, 이안은 환하게 빛나는 영성의 홀로 돌아왔다.

“아직인가?”

홀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안의 교정이 생각보다 일찍 끝난 탓이다.

“기다려야지, 뭐.”

이안은 근처 기둥에 몸을 기대곤 거대한 문을 바라봤다.

이안 역시 적은 시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리라.

‘정보.’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병기]

[마력: 1100]

[개방 필요마력: 1,000]

[증폭률: 1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

‘충분해.’

이안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환수급 페르소나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진 마력을 열 배로 늘려버릴 수 있는 증폭률은 이안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력부족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었다.

거기에, 이안의 단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형태까지.

‘나머진 내 노력에 달린 거겠지.’

이안은 이전보다 조금 커진 권총을 눈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오러익스퍼트의 단계에 도달한다면 마력부족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미미르는 만족스럽지 않아보였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니 불편하다.]

“대신 출력은 좀 강해진 것 같지 않아? 몸도 좀 가뿐하고.”

이안의 말에 미미르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새롭게 입력된 정보가 너무 많다. 왜 나에게 페르소나와 관련된 정보를 주입한 것이지?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가 너무 아프군.]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너도 뭔가를 막기 위해선 내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만난 지 긴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이안은 미미르의 목적에 대해 대강은 들을 수 있었다.

“그, 뭐시냐. 미래의 강대한 위협을 막기 위한 조금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라고. 그 정도는 도와줘야 내가 덜 힘들게 막지 않겠어?”

[작업 처리 중. 응답 없음.]

“꼭 이럴 때만 컴퓨터인 척 한다니까.”

할 말이 없어진 미미르가 침묵하자 이안이 잠시 툴툴댔지만, 곧 팔짱을 끼곤 일행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공자님!”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그를 호위하는 노기사였다. 구현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이안의 앞으로 달려간 도노반은 재빨리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경, 이젠 나이를 생각하라고. 그러다가 무릎 나가면 곧장 은퇴란 거 몰라?”

“무릎이 없으면 두 팔로 기어서라도 모실 겁니다.”

“허, 참.”

도노반의 말에 머쓱해진 이안은 도노반의 전신을 구석구석 살폈다.

당연하지만 신체적인 변화는 없었다. 신검공이 창안한 마력운용법, 그리고 아슈타르의 페르소나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저건가.’

달라진 것은 허리춤에 찬 또 다른 검뿐.

푸른빛의 검은, 닿으면 얼어버릴 것 같은 냉기를 줄기줄기 내뿜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공자님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공작부인께서도 분명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공작부인?”

도노반의 말을 들은 이안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아는 공작부인은 계모인 카밀리 아슈타르 뿐이었으니까. 그녀가 왜 핏줄도 다른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단 말인가.

하지만 도노반은 당황했다.

“공자님의 어머니이신 에밀리 아슈타르 공작부인 말입니다.”

“아…그래. 그렇겠지. 물론.”

모르는 이름이다. 이안은 머릿속의 기억창고를 쉴 새 없이 뒤적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상해.’

분명, 이안 아슈타르의 생물학적 어머니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기억은 모두 멀쩡한데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 사라져 있다면, 누구나 이상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곧 끊어졌다.

“공자님.”

“돌아왔습니다.”

남은 두 명.

에반과 파비안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허허, 허허허.”

파비안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주먹은 쉴 새 없이 쥐었다 펴졌다 하고 있었다.

‘뭔갈 얻었군.’

저 정도의 격한 반응이라면 굳이 이안이 아니라도 눈치 챌 수 있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공자님, 모두 공자님의 덕택입니다.”

이안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한 파비안의 어깨가 기쁨으로 쉴 새 없이 들썩거렸다.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 녀석을 평생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다시는 없을 기회라 생각했었으니까.

품에서 금색으로 빛나는 구슬을 꺼내든 파비안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환수급?”

“예.”

“축하해.”

이안의 축하에 파비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흑사자 사냥단의 단장인 그가 환수급의 페르소나를 가진 이상, 그가 지휘하는 사냥단의 지위 또한 그만큼 올라갈 게 분명했으니까.

이안이 구현의 방을 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짤랑

결심을 굳힌 파비안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손에, 검은 사자가 그려진 금패가 쥐어져 있었다.

“뭐야?”

난데없는 행동에 이안이 당황했지만 파비안은 거침이 없었다.

“이 순간부터, 흑사자는 언제나 공자님의 적을 사냥할 것입니다.”

“뭐?”

“제가 살아있는 한, 이 언약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아슈타르의 다섯 사자 중 검은 사자를 이끄는 자.

충성을 맹세하는 파비안의 눈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이안은 조금 놀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안이 구현의 방에 파비안을 끌고 온 이유 중 하나는 흑사자 사냥단을 그의 세력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으니까.

하지만 일은 예상보다 더욱 쉽게 풀렸다.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빠른 거 아냐?”

“사냥할 때야 사냥개가 왕이지만, 사냥이 끝나면 쓸모없어지는 법이죠. 굶어죽지 않으려면 뼈다귀라도 잘 주는 주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안은 장난스레 물었지만, 사냥단장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사냥개라 지칭했다.

“그리고, 이미 뼈다귀는 충분히 받은 것 같습니다만.”

말을 마친 파비안이 손에 쥔 금구슬을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했다.

이안이 씨익 웃었다.

“자작이 사냥개면, 나는 망나니 사냥꾼쯤 되겠군.”

“망나니가 무슨 상관입니까, 개는 뼈다귀만 잘 주면 그만입니다.”

[똑같은 놈들이군. 인간이란.]

서로를 향해 입꼬리를 올린 망나니와 흑사자 사이에서, 미미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섬에서 돌아온 이안은 자신의 영지인 알자스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은 가장 쉬운 것부터.

“허억, 허억.”

이미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아슈타르의 공기는 싸늘했지만, 이안이 수련하던 제1연무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뭐야, 꼬맹이. 벌써 지친거야? 고작 뜀박질 좀 한 것 가지고?”

이안은 쓰러진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숨만 헐떡이는 에반을 보곤 코웃음을 쳤다.

에반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고작? 장난해?’

이미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오러를 체내에 자유롭게 퍼뜨릴 수 있는 에반에게, 달리기 정도는 몸 풀기조차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하루에 60킬로미터를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렇게 무식하게 훈련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아마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면, 역시 망나니 이안공자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 뻔했다.

신체능력을 키우겠답시고 하루 종일 달리기만 시키는 교관이 도대체 이 대륙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오러는 바닥났고, 근육과 관절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비명을 질러댄 지 오래다.

“아, 아닙니다.”

하지만 에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앞에 쓰러져있는 이안은, 자신보다 두 배는 많이 뛰었으니까.

“그럼, 마저 뛰어야지? 다음은 턱걸이 500회다.”

“…네.”

‘이건 지옥이다. 인세의 지옥…’

무릎이 망가진 이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반은 똥 씹은 표정으로 일어나 다시 연무장을 달렸다.

“공자님, 며칠 동안 봐오긴 했지만 저건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쓰러진 이안을 보살피던 도노반은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진 에반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왜, 경도 관심이 좀 생겼어?”

“저런 도전은 젊음의 패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소신은 이미 나이가 나이인지라. 커흠.”

이안의 말에 턱수염을 쓰다듬던 노기사가 허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안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대는 정말 독특하군. 인간의 평균적인 정신력과 체력을 감안할 때, 저런 식으로 단련을 지속한다면 중도 포기할 확률이 99.82%다.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분명 효율적인 훈련법은 아니었다.

전신의 근력과 지구력을 단련시키는 데에는 제법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상의 위험도 큰 데다, 전투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마력은 달리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대신 효과는 확실하지.’

직접 겪어본 이안은 장담할 수 있었다.

지구였다면 모를까, 이 세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세상을 비추는 전능한 마르콘이여…”

마르콘의 신관, 세리아의 기도와 함께 신성력이 이안의 온 몸으로 퍼진다.

무리한 움직임에 의해 박살났던 근육과 관절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이안은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내가 고른 건 개중 0.18%고.’

이안의 경험상, 저기서 헉헉대는 꼬맹이의 정신력은 충분히 이 무식한 훈련을 버티고도 남을 동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안이 몸을 회복하는 사이, 도노반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

“왜?”

“이걸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안이 도노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노기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표지에 알 수 없는 기호가 쓰여진, 누렇게 빛바랜 종이뭉치.

“성의 비고 구석에서 찾았습니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더군요.”

“그래?”

왜 하고많은 것 중에 그런 종이뭉치를 주워왔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안은 이 성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기사의 안목을 믿었으니까.

도노반으로부터 종이뭉치를 받아 든 그는 단번에 종이뭉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비문이군.’

그것도, 제목조차 알아볼 수 없게 암호화시켜놓은 특급 기밀문서.

아슈타르의 일족, 혹은 관련된 일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면 읽을 수조차 없는 복잡한 암호였다.

‘칼리번에게 익혀두길 잘했어.’

지금쯤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백작을 잠시 떠올린 다음, 이안은 암호로 쓰여진 서류의 제목을 읽었다.

[뻐꾸기 계획]

“허.”

너무도 뻔한 제목에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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