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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9화 (30/224)

#29화

골든라이온.

수십의 마력포와 수백의 전사를 실어 나를 수 있으며, 그 존재만으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전략병기.

작지만 강한 군사력을 가진 아슈타르에서도 단 한 척만을 보유한 1급 전투 비행함은.

“공자님, 곧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단 한 명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알았어.”

“충!”

이안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던 골든라이온의 함장은 경례를 붙이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안은 슬며시 등 뒤에 찬 신검, 레온하르트를 만지작거렸다.

‘녀석 덕분에 더 쉬워졌어.’

신검공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 검이 아니었다면, 이안이 이렇게 빨리 비행함을 지휘할 권한을 얻을 일도, 섬으로 돌아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미미르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리고 파비안도.

“공자님,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사냥단장, 파비안 포르테 자작이 여전히 의심스런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뭐가?”

“공자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구현의 방은 일 년에 한 번만, 그 것도 가문 별로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잘 알고 계시면서, 굳이 일을 벌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파비안의 말은 꽤 무례했다.

하지만 파비안은 궁금증을 풀어야만 했다.

‘알고 싶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돼지처럼 살아왔던 삼공자다.

‘그래, 페르소나를 얻기 전까지는.’

제멋대로 살던 망나니가 어떻게 공국의 뒤를 맡길만한 인재로 변한 것일까.

그의 눈빛이 마치 이안을 꿰뚫기라도 할 것처럼 강하게 쏘아졌다.

“자작님, 방금 말씀은 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공자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주군에 대한 무례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도노반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만.”

이안은 손을 들어 노기사의 말을 끊었다. 의자를 빙글 돌리자 파비안의 눈빛이 그의 정면으로 향했다.

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럼, 자작은 왜 나를 따라왔지?”

말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나에게 뭐라도 바라고 온 거 아니었어?”

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고 여기까지 따라올 리가 있나.

말을 마친 이안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이안의 말에 파비안은 할 말을 잃었다.

분명, 그가 이안을 찾아온 것은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페르소나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의 페르소나를 구현의 방에서 최소한 다섯 번은 교정해왔던 다른 단장들에 비해, 파비안은 고작해야 두 번.

‘설사 공자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잃을 것은 적어.’

그가 잃을 것은 며칠의 시간이요, 얻을 것은 강함이었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자신보다 스무 살은 어린 공자에게 솔직히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더 할 말 없으면 두고 보기나 하지 그래?”

한 마디로 파비안을 침묵시킨 이안은 다시 의자를 돌렸다.

소용돌이들 사이에 끼어있는 조그마한 섬이 창밖으로 드러났다.

“공자님, 저 곳입니까?”

“그래.”

에반의 물음에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칠영웅과 마법의 신 갈리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섬, 리아나.

“생각보단 작은 곳이군요.”

“굳이 쓸데없이 클 필요도 없잖아?”

이 섬의 목적은 오직 페르소나의 제작과 관리.

창밖으로 섬의 중앙에 자리 잡은 유일한 건물, 영성의 홀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쿠구구구-

곧, 약간의 진동과 함께 함선이 지면에 착륙했다.

“공자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꽤 걸릴 테니까.”

“충.”

이안과 일행은 함장과 선원들의 경례를 받으며 함선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성의 홀에 도달한 그들의 발걸음은 굳게 닫힌 거대한 문 앞에서 멈추었다.

“이게 바로….”

“허, 허허. 생전에 내가 이 문을 보게 될 줄이야.”

제대로 그 위용을 접한 에반과 도노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곳에 도착한지 오늘로 세 번째인 파비안조차 문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파비안의 두 눈에는 아직 의심스러운 빛이 남아있었다.

“공자님, 문이 닫혀있습니다만.”

[자, 어찌할 테냐. 아슈타르의 자식이여.]

파비안과 미미르의 의심 속에.

후우.

이안은 잠시 심호흡했다.

‘관리자라.’

처음 구현의 방에 들어섰을 때, 컨트롤러라고 자신을 소개한 프레이야가 자신에게 붙여준 말.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안의 눈앞에 놓인 이 문은 그의 말 한마디에 활짝 열릴 것이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개방.”

이안의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그러자.

파앗

굉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살짝 벌어진 문 사이로 새어나온 백광이 홀을 환하게 비추었다.

곧.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관리자님.]

환한 빛 아래, 시스템의 제어정령 프레이야가 환하게 웃으며 이안을 맞이했다.

***

“이, 이것이….”

“구현의 방….”

생전 처음 구현의 방을 목격한 도노반과 에반은 찬란한 빛 앞에 눈을 떼지 못했다.

기사로써 은퇴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도노반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공자님, 제 남은 목숨은 오로지 공자님의 것입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페르소나는 선택받은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병기다.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도노반이 그런 기회를 얻을 확률은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오러마스터에 도달할 확률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죽어서라도 공자님을 지킬 것이다. 반드시….’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얻은 노기사는 이안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도노반의 뺨에는 어느새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어정령이라니, 해석 불가능한 상황이군.]

‘녀석을 알아? 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들었어. 알 수도 있겠는걸.’

미미르의 반응에 이안은 조금 놀랐지만 이내 납득했다. 하지만 미미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도대체 네 정체는 뭐지? 초대 신검공도 시스템의 제어정령을 불러내지는 못했다.]

‘이안 아슈타르. 아슈타르 공작가의 삼공자지. 더 필요해?’

[정보가 부족하다.]

‘그럼 알아서 찾아보던가.’

이안은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굳이 미미르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공자님, 저건 도대체 뭡니까? 관리자란 말은….”

갑작스레 등장한 프레이야를 보고 놀란 파비안은 급히 품속의 페르소나를 손에 쥔 채 눈앞의 정령을 노려봤다.

‘생긴 것만 봐서는 정령인 것 같지만….’

지금까지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구현의 방에 정령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안 들어갈 거야?”

이안은 대답 대신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거다.’

그 순간.

파비안은 삼공자가 환골탈태한 계기가 저 정령, 아니 어쩌면 구현의 방 그 자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음에는 분명했다.

‘구현의 방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이 대륙은 진즉에 페르소나를 전군에 도배한 연합공국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리라.

구현의 방을 열기 위해 일곱 공작령의 마법사들이 모두 모여 연구한 적도 있었지만 거대한 문은 끝끝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요.”

파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파비안이 다시금 페르소나를 교정할 기회를 잡았단 것이니까.

파비안이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예를 갖추자 이안은 말없이 손을 내저었다.

“그럼, 알아서들 만들어 오라고. 시간은 충분하니까.”

이안은 거대한 문 안쪽을 향해 한 발을 디뎠다.

그러자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어둠이 이안의 눈앞을 덮쳤다.

우우웅

곧, 희미한 빛과 함께 프레이야가 나타났다.

“오랜만이야, 프레이야.”

[손님을 데려오셨군요? 언질이라도 남겨주셨다면 좋았을 것을.]

이안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지만 프레이야는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시스템의 개폐권한은 나한테 있다며? 설마 누굴 시스템에 집어넣을 건지에 대한 권한은 없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할 말이 없어진 프레이야가 입을 다물자 이안은 손을 내밀었다.

“됐지? 그럼 시스템부터 켜줘.”

[…제작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조금 뾰루퉁해진 목소리로 프레이야가 손짓하자 흑색의 스크린이 떠올랐다.

[클클, 가관이군. 정령 주제에 인간 따위에게 삐지다니.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야.]

‘뭔 개소리야, 어차피 기억이 지워질 일 따위도 없는 주제에.’

[인간들이 자주 사용하는 관용어구로 표현해보았다.]

프레이야에게 쌓인 것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미미르가 기분 나쁘게 낄낄대기 시작했다.

이안은 애써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흠, 지난번과 바뀐 것은 없군.’

스크린에 떠오른 미미르의 설계를 주욱 훑어본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만 처음 이후로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으니 무언가가 바뀌었을 리 만무.

하지만 설계를 죽 훑어본 이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런 걸 여태 쓰고 있었다니,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칼리번에게 아슈타르 고유의 마력운용법을 배우고 나니, 그가 만들어낸 페르소나의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 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였다.

‘여긴 안정성이 너무 떨어지고, 이 부분은 효율이 너무 안 좋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그 당시에 가진 것이라곤 기초라 하기도 민망한 몇 줄의 마력운용법과 얼마 되지 않는 마력뿐이었으니까.

‘한 번을 쓰고 터지더라도 일단 쓸 수는 있어야 할 것 아냐?’

그러니 안정성이나 범용성보다는 출력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다. 총기의 형태만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이제 그걸 손봐야겠지.’

이번엔 이안의 열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안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스크린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은 지구의 온갖 병기들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을 찾기 위해 이안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였다.

[병기의 수준에 비해 정보량이 너무 많군. 비효율적이다.]

미미르가 옆에서 조잘댔지만 이안은 눈앞에 집중했다.

언제 다시 구현의 방에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이상, 최대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우선은 범용성부터.’

현재의 미미르가 약한 것은 아니다. 아니, 코트자락에도 숨길 수 있는 휴대성에 비하면 이 세계에선 말도 안 되는 위력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달려있지 않은 권총으로 원거리 저격이나 제압사격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페르소나를 24시간 내내 켜놓을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안의 해답은 간단했다.

‘나눈다.’

권총의 형태만을 가진 미미르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기사단장인 칼리번에게 배운 대로라면 투구, 흉갑, 각반과 같이 신화 속 갑옷의 각 부위를 구현해낸 자격자도 있었으니,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구성하는 데 필요한 마력은 비교할 수 없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후우우….”

지방에 박힌 마력들을 대부분 뽑아낸 이안에겐 별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우웅

호흡과 함께 체내에 저장된 마력을 바깥으로 내뱉자, 어느새 스크린은 마력을 상징하는 푸른빛으로 가득 찼다.

곧 슬라임마냥 꿈틀대는 마력의 덩어리가 이안의 의지에 따라 나뉘고, 깎이고, 합쳐지면서 제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건…]

이안의 작업을 뾰루퉁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프레이야의 눈이 곧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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