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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8화 (29/224)

#28화

이안은 요제프와 함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와 요제프를 제외하면, 모두가 아슈타르의 검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지금쯤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마족들에게 어떤 징벌을 내려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안!”

문을 나서자마자 요제프가 이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건방진 놈, 몇 번 싸워봤다고 기고만장해졌군.’

이번에야말로 건방진 동생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요제프는 이안을 노려봤다.

이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둘째 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으, 으….”

아무 말도 없이, 일말의 감정도 없는 눈과 마주한 요제프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무, 무슨 눈이….’

저건 살기도 아니다.

살기 역시, 살의의 감정을 담아야만 뿜어낼 수 있는 종류의 기세였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무생물인 조각상도 조각사가 감정을 담아 넣을진데, 눈앞의 동생에게선 만들어진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형님, 무슨 할 말이라도?”

이안의 목에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골렘이라도 된 양, 이안은 일부러 아무런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안 돼.’

자신이 불러놓고 물러난다면 형으로서, 아슈타르의 공자로서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이를 악문 요제프는 이안을 향해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고작 병기급 페르소나 하나 가졌다고 자만한 게냐? 주제파악을 좀 하거라. 너 역시 가문의 일원이라면, 가문에 공경심을 보여야 할 게 아니냐?”

지난 식사부터, 요제프는 이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형이자 오러익스퍼트의 최상급에 도달한 오베르트라면 모를까, 고작해야 처음 페르소나를 얻고 우쭐해하는 녀석 따위에게 무시당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스릉

“그럼, 할 말은 끝나셨는지요?”

신검공을 상징하는 검이자 존재만으로 신검공의 권위를 빌려올 수 있는 아슈타르 공작가의 신물.

이안의 등에서 뽑혀 나온 신검, 레온하르트 앞에서.

“그, 그….”

요제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말 한 마디로 요제프를 제압한 이안은 곧장 원반에 올라탔다.

‘우선은 페르소나를 손본다.’

알자스라 했던가.

신검의 권한과 공작의 위에 도전할 자격을 대가로, 그는 알자스로 가라는 공작의 명을 수락했다.

그가 가야할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터.

대부분의 화력을 페르소나에 의존하고 있는 이안에게 더욱 강력한 페르소나란 필수적인 존재였다.

‘우선은 알자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지.’

그리고, 이안의 허리춤엔 공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지식창고가 꽂혀있었다.

“미미르.”

[무슨 일인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허리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미르가 이안의 부름에 깨어났다. 이안은 그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신검공이 알자스의 남작 자리를 줬다, 그 말이로군.]

“정확해. 말하는 걸 보니 어딘지 아는가봐?”

미미르의 답에 이안은 반색했다.

미미르의 자아는 레온하르트가 쌓아둔 800년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니, 분명 알자스에 대한 정보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다. 나, 아니 레온하르트 역시 그곳에 잠시 들렀던 적이 있었으니까.]

“좋아. 그래서, 거긴 어떤 곳인데?”

이안은 집무실에서 얻은 불길함을 애써 무시한 채 미미르의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거긴 공작령이 아니다.]

“뭐?”

공작령이 아니라니.

이해할 수 없는 미미르의 말에 이안이 눈을 끔뻑였다.

“잠깐,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봐.”

[알자스는 마르센 제국과 공작령 사이의 완충지대다. 신검의 법도, 제국의 법도 닿지 않는 무법의 땅이지.]

“그렇다는 건….”

[아마 아슈타르의 성을 가진 자가 알자스의 남작 자리에 앉는 순간, 82.68%의 확률로 제국군이 알자스의 경계를 넘어올 거다.]

미미르의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하자면.

전쟁.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이안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

이안과 요제프가 떠난 집무실.

“전하, 외람되오나 이번 일은 위험합니다.”

아슈타르를 지키는 다섯 방패.

그 중 사냥단을 맡은 파비안 자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동료가 아니꼬운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족을 앞에 둔 상황에서, 자칫하면 양면전선을 형성할 우려가 있습니다.”

삼공자를 알자스로 보낸다.

그것이 곧 제국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 까닭이다.

“아무리 아슈타르의 힘이 강대하다 하나, 양쪽에서 적을 맞이한다면 분명 어려움은 가중될 것입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사냥단장, 말이 심하군. 그대는 아슈타르의 힘을 무시하는 것인가?”

“평민들과 함께 지내더니 자네도 나약해졌어.”

근위대장과 칼리번이 이죽였지만 파비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신검공, 에드너 폰 아슈타르에게 고정되어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하.”

“허나.”

말을 마친 에드너는 파비안을 똑바로 바라봤다.

“사냥단장은 저 배은망덕한 제국과 연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드너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자신들이 누구의 보호를 받는지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러면서도 탐욕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지.”

신검공의 검지가 벽에 걸린 지도를 향했다.

검게 칠해진 마경을 벽처럼 가로막은 연합공국 동쪽으로, 거대한 땅 두 덩이가 지도 끝까지 펼쳐져있었다.

“과연, 그들이 마족과 싸우는 공국의 등을 가만히 내버려 둘 거라 생각하나?”

주군의 물음에 파비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주군이, 어떤 의미에서 망나니 삼공자를 보낸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으니까.

“이번 원정에는 공국의 전력을 쏟아야 한다. 녀석 정도라면 충분히 방패 역할을 할 수 있겠지. 생각보다 더 쓸모 있어졌어.”

그러니.

“그런 쓸 데 없는 걱정보단, 씹어 먹을 마족 놈들을 어떻게 찢어버릴 지부터 고민하세나.”

말을 마친 에드너의 눈이 조용히 타올랐다.

***

전쟁.

전생의 경험 덕택에, 이안은 그 단어의 의미와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피 묻은 총칼, 울부짖는 군중, 시체의 산.

앞으로의 일이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공작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냐.’

이안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가 알고 있는 이 세계의 제국, 마르센은 대륙의 사분지 일을 점유한 대국.

칠영웅의 유산인 연합공국의 무력은 분명 막강하나, 전쟁은 무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신검공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미미르, 알자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줘.”

이안은 그가 가진 지식의 보고, 미미르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자아가동을 위해 배당된 마력을 모두 소모했다. 휴식하겠다.]

“뭐?”

권총의 주제넘은 통보에 이안이 되물었지만, 정말로 가동한 마력이 떨어진 것인지 미미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끄응….”

침묵하는 미미르를 째려보던 이안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제국과 공작령 사이의 화약고로 떠나기 전, 앞으로의 계획을 미리 세우고 준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이안이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공자님?”

“물어볼 게 있어.”

갑작스런 삼공자의 방문에 호위기사인 도노반은 당황했지만, 이안은 다짜고짜 설명부터 시작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노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드디어 작위를 얻으셨군요. 후우….”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노기사의 표정은 축하와 거리가 멀어보였다.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인데.’

“하필, 하필 알자스라니…”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다음, 그 위에 짐 하나를 더 얹은 것 같은 도노반의 얼굴을 본 이안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문제는 없습니다. 그게 문제죠.”

문제가 없어서 문제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애당초 아슈타르의 것도 아닌 것을 쥐었으니, 손해 본 것은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남작 작위는 허울만 좋은 종이쪼가리나 마찬가지란 의미였다.

“군사를 일으켜서 무력점령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아슈타르의 힘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군요.”

“그러면 제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지만.”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점령은 최악의 수다.

기껏 얻어낸 영지를 전쟁터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당연히 선택지에서 배제해야 했다.

“맞습니다. 알자스의 무력도 제법 강한 편이고요.”

이안의 말에 도노반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력?”

“몇몇은 페르소나를 가졌다는 소문도 들리더군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아슈타르는 아니었지만, 다른 공작의 영역에서는 외지인에게 페르소나를 얻을 기회를 준 적도 있었으니까.

“공자님께는 송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알자스에 대한 일은 그저 무시하시는 게….”

개개인이 전략병기에 가까운 페르소나의 자격자들과,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제국을 상대하기엔 아직 이안의 힘이 부족했다.

하지만.

“나쁘진 않아.”

방법이 없진 않았다.

이안이 가진 지식을 모두 동원한다면,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랐다.

“공자님, 하지만….”

이안의 혼잣말에 도노반이 만류하려 했지만, 노기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이안은 외투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경.”

마족을 잡은 뒤 얻은 부산물을 팔아 만든 비자금.

“알자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아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풍문이나 전설이라도 좋아.”

“공자님, 진심이십니까?”

두 손으로 묵직한 주머니를 받아낸 도노반은 의아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장난 같아?”

하지만 이안의 뜻은 확고했다.

“…아닙니다. 모든 것은 아슈타르의 뜻대로.”

이안의 명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노기사는 한 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곧, 이안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노기사를 바라봤다.

“아, 그리고.”

“무슨 일이신지….”

“그때 말했잖아. 페르소나를 다룰 수 있을 만큼 만들어놓으라고. 꼬맹이는 얼마나 준비됐지?”

말을 꺼내긴 했지만, 이안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에반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려야 해.’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임무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선 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의 모든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에반에겐 페르소나에 대해 기초적인 부분만을 가르쳐놓은 상태입니다. 아마 자질이 출중하거나 미리 준비를 했었다면, 기초적인 형상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요.”

이안에겐 다행히도, 도노반의 입에선 긍정적인 답이 흘러나왔다.

‘우선은 데려가 봐야겠고….’

결심을 굳힌 이안의 시선은 곧 노기사의 주름진 얼굴을 향했다.

“좋아. 그러면 경은?”

“예?”

이안의 입에서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도노반은 당황해 입을 살짝 벌렸다.

이안은 놀란 도노반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같이 가야지. 하루 줄 테니 준비해 둬.”

“가, 가다니요. 어딜 말씀하시는 건지….”

“페르소나.”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말을 마친 이안의 등 뒤에서.

레온하르트의 손잡이에 새겨진 사자 문장이 금빛으로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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