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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4화 (25/224)

#24화

슈바이크의 외곽.

“헉, 헉.”

한때 혈사자 마탑을 이끌던 대마법사, 키르케 모하임은 잡초로 가득한 땅에 주저앉아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마력을 봉인당하고 나서는, 늙은 육체가 가진 비루한 체력만으로 도시를 빠져나와야 했으니까.

“탑주님, 괜찮으십니까?”

“물론. 더 이상 안 괜찮을 일이 무에 있단 말이냐?”

그와 함께 탈출한 네 마법사들의 면면을 살핀 키르케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예상보다 눈치가 빨라.’

일주일.

일주일만 더 있었더라면 그들은 마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예정된 작전 역시 성공적으로 진행됐을 것이고.

‘그 어린놈만 아니었어도….’

빌어먹을 놈의 금발머리를 떠올린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안 아슈타르.

여태껏 장애물, 아니 발에 걸리는 돌부리로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망나니 녀석이 굴러온 바위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전송은 끝냈느냐?”

하지만, 그렇다 해서 노인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네. 실험 데이터는 모두 본국에 보내두었습니다.”

“그래, 잘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마법사에게, 키르케는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작전이 어그러진 이상,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노마법사는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봤다.

무엇인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곧, 기다리던 존재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래, 마지막 말은 다 나눈 거야?”

자신들을 구해 여기까지 데려온 여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실패한 요원에게 마지막 말이랄 게 무에 있겠소, 마왕.”

담담하게 읊조리는 노인을 바라보던 마왕, 바르바토스는 히죽 웃었다.

“뭐, 나야 안 그래도 마족이 좀 더 필요하긴 한데에…정말 괜찮은 거야?”

“안 괜찮으면, 도로 물릴 거요?”

“설마아.”

말을 마치고 눈앞에서 키득키득 웃는 요녀의 웃음은 그야말로 절세의 매력이라 할만 했지만, 바르바토스를 바라보는 다섯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마왕의 손에 들린 것은 베어낸 영혼을 모조리 타락시킨다 전해지는 낫, 아포칼립스.

눈앞에 다가온 파멸 앞에 초연할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인간은 참 재밌단말야. 언제는 힘을 합쳐서 죽일 듯이 달려 들다가도, 제 동족을 죽일 기회만 생기면 마족에게 영혼이라도 팔아버린다니까?”

그녀는 진심으로 흥미롭단 표정을 지었다.

인류, 그리고 대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배반자나 다름없었으므로.

“신념의 차이일 뿐이요. 마족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머, 지금 마왕 앞에서 마족 무시한 거야?”

바르바토스가 짓궂은 투로 물었지만,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너희가 있으면 일이 더 편해질 테니까.”

말을 마친 그녀의 낫이 치켜 올려졌다. 죽음, 아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다섯 마법사의 눈이 시퍼런 낫을 따라 흔들렸다.

“그럼, 할 말은 다 끝난 거지? 간다?”

서걱

바르바토스의 서늘한 웃음과 함께, 낫이 한 줄기 선을 그었다.

그 선의 범위에 닿은 것은 다섯 마법사의 목.

날아간 머리들이 검은 피와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머리가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

촤아악

머리 잃은 몸통 어딘가에서 퍼져 나온 촉수가 각자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곧, 농축된 마기로 인해 전신이 검게 물든 신체가 제 멋대로 꿈틀대며 변이를 시작했다.

비루한 인간의 육체는 마기를 머금고 단단해지며, 신체를 가득 채웠던 마력은 마기에 오염돼 더욱 강해졌다.

곧.

그으으-

다섯 마법사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것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다섯의 최하급 마족.

“…만세….”

“후후.”

한때 인간이었던 마족이 내뱉은 최후의 단말마에, 그녀의 입꼬리가 소름 돋게 비틀렸다.

***

예상하건 하지 않건.

비극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키에에-

그어어어-

수많은 마수들이 도시의 대지를 뚫고 솟아났다.

“어, 어디서 나온 거야?”

“오, 오크다!”

“도망쳐!”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도시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아슈타르의 모든 영지민들이 전투훈련을 받았다는 것이 맨몸으로 마수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전 방향 마수 출현! 어떡합니까, 십인대장님?”

“뭘 어떡해? 고블린 놈들한테 모가지라도 들이밀려고?”

“놈들을 막아! 영지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도시 전역에 촘촘하게 깔려 감시망을 이루고 있던 병사들이 전역에서 튀어나온 마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곧, 도시 전역은 마수와 인간이 맞부딪치는 전장으로 탈바꿈했다.

그것은 광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룩, 구루룩.

오우거.

사람 머리를 간식으로 여기는 5M키의 식인귀가 광장에 모인 먹이들을 보며 눈을 데룩데룩 굴리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파비안은 고민에 빠졌다.

‘페르소나를….’

오우거는 상급에 해당하는 마수.

현재 그들이 무장하고 있는 쇠뇌 따위로는 생채기밖에 내지 못한다.

하지만 페르소나를 개방하기에는 지속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마족이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페르소나를 미리 써버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결정은 빨랐다.

‘죽는 것 보다야.’

여기서 오우거에게 죽을 바에는, 그 편이 차라리 나았다.

그가 제복 안으로 손을 뻗자 따뜻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오라.”

결심한 파비안이 페르소나를 개방하려던 순간.

타타탕

별안간 들려온 천둥소리에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파비안의 눈이 커졌다.

-구어어….

그의 눈에, 두 눈을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오우거가 보였다.

그리고.

타타탕 타탕

쉴 새 없이 손에서 천둥을 뿜어내는 이안의 모습도.

***

도시에 마수들이 솟아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데이지 가(街)로부터, 오크 6기 사살 완료했습니다.”

“사자대로의 코볼트 무리 정리 완료, 안전 확보했습니다!”

사냥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마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평범한 자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마수와의 혈전을 수없이 겪어온 베테랑 사냥꾼들이었으니까.

“트, 트윈헤드 오우거입니다! 증원 필요!”

하지만 숙련된 사냥꾼들이라 해도 한계는 있었다.

오우거, 트롤, 미노타우르스와 같은 상급 이상의 마수들의 피륙은 공격에 막대한 마력을 싣지 않고선 뚫어낼 수 없었으니까.

구슬 너머로 보내진 지원요청에, 잠시 자리에 앉아 쉬고 있던 이안이 손에 쥔 구슬을 바라봤다.

“칼리번, 들었지?”

-예, 이미 제 3분견대가 출동한 상태입니다.

“좋아.”

그 말에 이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마력은 정말 대단해.’

이안은 천막의 뚫린 문 너머로 지붕을 벼룩처럼 뛰어다니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마력은 다른 동물이나 종족, 혹은 마수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최악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을 생체병기로 탈바꿈시키는 힘.

마력을 사용하는 자는 식량을 많이 요구하지도 않고,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바퀴 대신 두 다리로 뛰고 달리니 전차나 장갑차처럼 이동의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

거기에 위력은 어지간한 중화기에 버금간다.

지구의 군인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저 아름답기까지 한 효율성,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될 무궁무진한 전략전술의 가능성에 얼마나 흥분했을까.

‘나 같은 놈 백 명쯤 납치해서 생체실험이나 했겠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 뻔한 결과에 이안은 혼자서 피식 웃었다.

‘이안 공자는, 도대체…’

하지만 파비안은 웃지 못했다.

그의 눈은 이안의 뒷모습, 그리고 이안의 허리춤에 얌전히 잠들어있는 정체불명의 무기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페르소나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기괴한 무기의 형태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페르소나는 신화의 일부를 인간의 상상력으로 떼어내 현실에 구현한 마력병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어떤 형태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병기이지만,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아무리 신화와 상상의 산물이라 한들 그것에는 분명 원전이 있는 법.

하지만.

‘에르피나의 화염궁? 아냐. 형태는 오히려 난쟁이왕의 만능손가락에 가까운데… 애초에 신검공의 피를 물려받고선 사격 무기를 쓴다는 것도 말이 안 돼.’

파비안 역시 페르소나의 자격자가 되기 위해 세상의 수많은 신화들을 머릿속에 암기했고, 그 대부분을 지금 당장이라도 암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신화와 전설 속에 이안의 것은 없었다.

그 정체불명의 무기가 거대한 오우거를 포함해 수많은 마수들을 쏘아죽였음에도.

‘공자님은 도대체….’

이안, 그리고 권총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이 점점 깊게 가라앉았다.

그 때.

‘!’

이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있던 의자가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그는 창밖의 거대한 기운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안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이안이 보는 방향과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마치 눈 온 뒤처럼 적막한 고요 속에, 악의와 사기(死氣)로 가득 찬 무언가가 도시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쿠웅

곧, 검은 생물이 대로에 내려앉았다.

2층 건물만한 개의 몸통에 원숭이의 얼굴을 붙여놓은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

하지만 그것보다는 녀석의 머리 위에 달린 두 개의 염소 뿔이 더욱 중요했다.

“마, 마족….”

병사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 역겨운 모습을 본 모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실물은 처음이군. 최하급인가?’

지난번 연구실 지하에서 처치한 유사악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세에 이안의 솜털이 곤두섰다.

마족.

발 닿는 곳을 모조리 마기로 물들여버리는 물질계의 대적(大敵).

이지조차 갖추지 못한 최하급이라 한들, 그 위험도까지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끼에에-

“흐, 흐으으….”

“수, 숨이….”

원숭이 얼굴을 한 마족의 입에서 소름끼치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사이한 기운에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하나 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두 눈을 잃은 채 쓰러진 오우거의 시체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그어-

두 눈에 붉은 눈 대신 시퍼렇게 타오르는 귀화(鬼火)를 집어넣은 좀비 오우거가 마족의 옆에 호위 기사마냥 서 있었다.

마족의 머리에 자라난 뿔만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사냥꾼과 사냥개로 보였을 테지만, 먼저 병사들을 덮친 것은 오우거였다.

피 대신 흐르는 마기의 힘으로 바닥을 박찬 오우거가 앞으로 돌진했다.

이미 생명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놈의 증오는 여전히 자신을 죽인 인간들을 향하고 있었다.

“오라, 라이오넬.”

파비안이 자신의 병기급 페르소나를 부르기 전까지는.

파지직

숨 한 번 들이쉬기도 전에, 파비안의 손에 푸른빛의 장궁이 쥐어졌다.

파직 파지지직

번개를 유형화시킨 활의 시위를 한껏 당기자 스파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릴리즈(Release).

콰릉!

화살대신 뻗어나간 번개가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쐐애액

하지만 번개는 오우거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놈의 목표는 죽은 오우거가 아닌, 그 뒤에서 오우거를 부리는 최하급 마족.

파지직

시퍼런 번개가 마족의 몸통을 꼬챙이처럼 꿰뚫었다.

번개의 형태로 구현된 반마(反魔)의 역장이 마족의 체내에 들어찬 마기의 흐름을 조각조각 끊어버렸다.

마치 인간의 몸에 흘러들어온 살모사의 독 마냥 순백의 번개가 마수의 몸뚱이 전체로 퍼져나갔다.

고작 최하급 마족이 가진 한 줌의 마기로는 병기급 페르소나, 라이오넬의 전력을 견딜 수 없었다.

끼이이

남은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족이었던 검은 재와 단말마, 그리고 달려들다 엎어진 오우거의 사체뿐.

“후우, 후우.”

어느새 페르소나를 해제한 파비안이 숨을 돌렸다.

방금 전의 번개는 그의 모든 마력을 쏟은 필살의 일격.

아무리 최하급 마족이라 한들, 단 일격에 적을 잡아내기 위해선 효율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잡아냈으니 망정이지.’

만약 일격에 녀석을 잡아내지 못했다면, 설사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냥단과 도시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저 마족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안도감이 그의 마음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안 공자님…?’

이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그의 눈은 계속해서, 조금 전 마족이 서 있던 곳을 노려보고 있다.

‘왜지?’

무진장한 악의에 가라앉은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으니까.

쿠구궁

무언가 내려앉은 소리가 들린 후에야 이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섯이라니.”

제각기 기괴한 형태지만, 머리에 달린 뿔만은 한결같이 똑같은 생물들.

다섯 마리의 마족이 도시 위에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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