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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1화 (22/224)

#21화

신검 레온하르트.

그 검을 쥔 자가 누구건, 공작령 내에서는 신과도 같은 지위를 지닌 신검공의 권위를 뒤집어쓴 명령이다.

신검을 앞세운 명령에 항명하는 것은 반역이나 다름없는 중죄.

그러니.

“공자님, 송구스럽지만 마경에 긴급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파비안이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명령이 내려지기 전 이안의 마음을 돌리는 것뿐.

하지만 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필요인원은?”

“최소 300입니다.”

“단장이 직접 움직여야하나?”

“아닙니다. 제3백인대장이 이끌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럼.”

철커덕

“나머지는 내가 좀 써도 별 문제는 없겠네?”

검을 다시 등 뒤에 집어넣은 이안이 파비안과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제야, 평범한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사냥단장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단장도 알거야. 어제 일어난 사건.”

“네, 희생자가 제법 많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제법이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현장이었지만, 마경에서 볼 꼴 못 볼꼴을 다 봐온 그로서는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래, 사람사냥은 잘 하나?”

“물론입니다.”

이안의 의도를 파악한 파비안은 씨익 웃었다.

***

기사단과 마탑의 명부를 확보한 이안과 파비안은 개중 핏빛 악마, 알테어 프리마와 일말의 관련이라도 있는 녀석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안이 지휘권을 회수한 지 고작 반나절만의 일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희도 같은 사자의 검이 아니더냐!”

“이 빌어먹을 사냥개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당장 풀지 못해?”

물론 고고함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쓸 데 없는 저항하지 마라. 공작 대리님의 명령이다.”

하지만 아슈타르의 주인, 신검공의 권위를 거역할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시원하군요.”

“그래?”

성 밖에 임시로 마련된 천막 안.

정말 어디서 소화제라도 먹었는지,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파비안을 보며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살아생전에 제 병사들이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감옥에 쳐넣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말을 마친 파비안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인간을 초월한 기사나 마법사와는 달리, 엽병들은 장교급을 제외한다면 마력을 다룰 줄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다.

분명 영지방어와 마경의 정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맞으나, 약간의 선민사상을 가진 저들에게 무시당한 것도 사실.

항상 후순위에 밀려있던 장교와 병사들에게, 이번 일은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행사나 다름없었다.

“마침 잘 됐네. 그럼 나머지도 단장이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문제 있으면 이것 좀 보여주고.”

이안은 종이 위에 대강 찍어낸 사자 인장을 파비안의 눈앞에 대충 흔들어댔다.

“어, 다른 일이 있으십니까?”

“집에 가서 잠이나 자려고.”

짧게 답한 이안은 파비안이 채 표정을 구기기도 전에 천막을 나섰다.

하지만, 천막을 나선 이안의 발걸음은 성 쪽이 아니었다.

그가 어딘가로 걸어 들어갈수록, 햇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수많은 집들 사이로 뻗어있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골목길.

햇빛조차 잘 듣지 않는 뒷길은 싸늘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

일부러 광장에 대놓고 수사본부까지 설치해가며 마법사와 기사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했던 것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진짜 적들을 자극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리고.

적은 생각보다 더 멍청했다.

타탓

등 뒤에서 들린 인기척에 이안은 발걸음을 멈췄다.

“와, 혹시나 했더니 진짜 미친놈들이었네? 이렇게 제 발로 나타나주고.”

등 뒤로 돌아선 이안은 다섯 사람을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얼굴은 눈을 제외하면 로브와 붕대로 철저히 가려 알아볼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그들이 손에 든 지팡이와 검은 그들이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마탑주가 보냈나?”

이안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놈들은 침묵했지만, 굳이 대답은 필요 없었다. 이안은 동공의 떨림만으로 그 답을 유추해낼 수 있었으니까.

“뭐, 좋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는 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었다는 얘기겠지? 설마 아슈타르의 핏줄을 죽이러 온 주제에 살아남을 생각은 아닐 거고.”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어나가는 이안의 오른손이 점차 홀스터를 향해 내려갔다.

지난번 전투의 피로를 회복한 권총, 미미르는 제 탄창에 채워진 총탄을 쏘아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타타탓

대답 대신 마법사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6급 이상의 마법사만이 맺을 수 있다는 수인(手印).

그들의 손이 순식간에 고도의 마법술식을 짜내기 시작했다.

‘단숨에 제압하고, 배후를 캐낸다.’

이안은 원래의 계획을 다시금 되새겼다.

상대는 마력으로 세계의 법칙을 조율하는, 인간을 초월한 자들.

하지만 그가 쥔 것 역시 이 세계의 상식을 초월한 병기다.

철컥

이안은 단숨에 뽑아든 미미르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탄창 안의 탄환이 채 노리쇠와 맞물리기도 전, 권총의 가늠좌가 놈들의 머리를 향했다.

방아쇠울의 걸린 이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타타타탕

방아쇠의 움직임에 맞춰 미미르가 납탄을 토해냈다.

탄피의 족쇄를 벗어난 탄두들이 제 주인의 의지에 따라 적의 머리통을 향해 음속으로 뻗어나갔다.

곧, 숨 한 번 들이키기도 전에 총탄은 적의 몸뚱이를 헤집어놓으리라.

하지만.

티티티팅

“하?”

두개골과 총탄이 닿았다고는 믿기 힘든 소리에 이안이 헛웃음을 날렸다.

음속으로 쏘아져나간 총탄은, 채 놈들에게 닿기도 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버렸으니까.

투두둑

허공에 막혀 납작해진 탄두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마법을 뚫지 못했다…라.’

이안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총이 만병지왕이라고는 하지만, 총이라 뭉뚱그려진 개인화기의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이안이 쏘아낸 탄은 권총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9mm 파라블럼탄.

크기에 비해 위력은 강력한 편이었지만, 그 한계는 명확했다.

‘저 자인가?’

이안은 개중 가운데에 있는 마법사를 바라봤다.

무리의 가운데에 위치한,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거인.

마법사의 신체가 마력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마탑주가 직접 등장할 줄이야.’

꿀꺽.

이안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아슈타르 소속의 마법사 중 유일한 4급마법의 사용자.

4급의 방어마법이라면, 현재의 이안으로써는 뚫어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 마탑주가 직접 나타날 줄이야.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 심지어 부하들까지 데려오셨네?”

애써 당황을 숨긴 채 이안이 비웃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슈웅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놈들의 마법세례뿐.

화살과 칼날의 형태를 띤 수많은 원소마법이 이안의 목숨을 노렸다.

‘젠장.’

이안은 몸 전체에 퍼져있는 마력을 움직였다.

마력의 보조를 받은 근육이 이안의 몸뚱이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쌔앵

온갖 마법들이 이안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얼마 되지 않는 마력이었지만, 전신의 근육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이안의 능력과 합쳐지자 이안의 회피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왼쪽.’

골목은 거미줄처럼 뻗어있다.

마법이 채 날아오기도 전, 이안의 몸은 이미 다른 골목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마법사들을 뿌리치기엔 무리가 있었다.

콰아아아

사람 머리통만한 불의 구체가 도망치던 이안을 향해 날아들었다.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폭발해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삼키는 5급 마법.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피할 수 있는 걸 던져야지!”

폭발구체를 발견한 이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할 순 없으니, 깨트려야 했다.

이안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타타타탕

총구에서 뿜어져나간 탄환들이 순식간에 구체를 꿰뚫었다.

콰아앙-

채 이안에게 닿기도 전, 구체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젠장.’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마력은 고작해야 500 갈리움.

그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공격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줄어드는 셈이었으니까.

‘과부하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 재사용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이안의 조잡한 마력운용법으로 만들어 낸 페르소나는, 과부하의 반동을 연달아 버텨내기에 너무나 약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마탑주는 공격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이안의 공격을 경계하기 때문일까.

이안에게 날아오는 공격은 주변의 마법사들뿐, 가운데에 선 마탑주는 방어마법을 펼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부술 수 없는 벽 너머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일방적으로 피하는 것은 놈들이 아니라 이안이었으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다.

‘레온하르트.’

이안은 그의 등 뒤에 매달린 신검을 떠올렸다.

그의 약하디 약한 페르소나가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상, 조금이라도 기대를 걸어볼만한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문제라면.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이안은 검술은 커녕, 양손검을 어떻게 잡는지도 잘 모른다는 것.

차라리 소총이었다면 총검술을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때.

콰앙

골목 사이로 후퇴하던 이안의 벽 옆에서 무언가가 터져나갔다.

스윽

폭발의 범위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폭발에 튕겨나간 날카로운 돌조각이 이안의 뺨을 긋고 지나갔다. 상처 입은 뺨에서 뜨거운 핏줄기가 새어나왔다.

‘더는 어려워.’

마력이 소모될수록, 승률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스릉

검집에서 뽑혀 나온 신검의 손잡이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심상찮은 기세에, 다가오던 마법사들이 잠시 멈춰 섰다.

“거추장스럽네.”

총 대신 생전 만져본 적도 없는 양손 검을 쥔 이안의 자세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녀석을 휘두르기 위해 쥔 것이 아니다.

‘우선은 마력을.’

이안은 신검, 레온하르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초대 신검공의 요청에 의해 검의 신이 직접 벼려낸 검에는, 검의 신이 가진 신력이 담겨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레온하르트가 가진 힘에 대한 정보는 극비.

어떤 힘인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 쓸모도 없는 능력일지도 몰랐다.

그렇다 해서 손 놓고 당할 생각도 없었지만.

우웅

푸른 마력을 머금은 금빛 검이 기분 좋게 울어댔다. 마법이 계속 날아오는 와중에도, 이안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윽고, 마력이 검에 가득 채워진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파앗

‘빛?’

이안의 등 뒤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등록되지 않은 마력패턴 발견. 자격을 판정합니다.]

순간.

이안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

얼마나 지났을까.

이안은 곧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뭐, 뭐야?”

깨어난 이안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온통 순백색으로 가득 찬 공간.

“도대체, 여긴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던 이안은 전 주인의 기억창고를 샅샅이 훑었지만, 놀기 좋아하던 전 주인 놈에게 무언가에 대한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설마, 죽었나?”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분명, 그가 상대하던 것은 4급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강자였으니까.

어쩌면, 이곳은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이안의 사후세계일지도 몰랐다.

“젠장, 이게 끝이라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안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번째 삶을 위해 악착같이 버텨온 것 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으니까.

그 때.

[후보 적합성 평가 중.]

어디선가 들려온 중후한 음성. 주저앉은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레온하르트…?”

곧, 저 홀로 공중에 떠 있는 신검을 본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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