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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0화 (21/224)

#20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도노반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곧 찾아올 텐데. 운 좋게 익스퍼트 초급에 들기는 했지만, 날이 좀 무뎌. 경이 날을 좀 갈아줬으면 좋겠어.”

기사로 수 십 년을 살아온 도노반은 이안의 말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갈아놓을까요?”

이안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자라면 자신이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을 부릴 수 있어야 하니까.

‘드디어, 이안 공자님께서도….’

자신의 어린 주인이 드디어 자신의 사람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사실에 도노반은 기뻐했다.

하지만 이안의 다음 명령을 들은 도노반의 표정은 아리송해졌다.

“끝까지. 당장 영성의 홀에 가더라도 페르소나를 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예?”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페르소나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신화와 마력.

세계의 신화를 자신의 무기로 다듬고, 마력술식을 짜내어 무기를 현실에 구현시켜야 한다.

“공자님, 그 소년이 어떤 자질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르소나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습니까. 차라리 그 노력을….”

구현의 방이 열리는 것은 일 년에 단 한 번.

그 신성한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각 영지 당 오직 한 명뿐.

그 기회가 고작해야 평민 소년에게 주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 때.

“공자님, 손님입니다.”

문 밖에서 들린 앳된 목소리.

“들여보내.”

그 목소리의 주인이 하녀, 카트린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안은 흔쾌히 허락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곧, 들어온 사람을 확인한 이안은 피식 웃었다.

“공자님, 말씀하신 제안 때문에 왔습니다.”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예를 갖춘 소년, 에반이 이안을 향해 눈을 불태우고 있었으니까.

***

흑사자 사냥단.

아슈타르의 방패라 불리는 오대 무력집단 중 하나.

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사냥단장, 파비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칼에 코 박고 뒈져버릴 기사 놈들. 대가리가 마력에 녹아버린 마법사 새끼들.”

사냥단장, 파비안 포르테의 입에서 욕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욕지거리대로라면 세상의 기사들은 모두 칼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 정신박약이며, 마법사들은 죄다 마력에 뇌가 녹아버려서 마법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친놈들이리라.

하지만 옆에서 욕지거리를 듣고 있던 부관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사냥단장이 분노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단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저 정신 나간 놈들 똥이나 닦으러 가야지.”

씹어뱉듯 말한 파비안은 눈앞의 서류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서른.

열 명의 기사와 스물의 마법사가 마경에서 행방불명되었다.

마경에서 사람 한 둘 죽어나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이번엔 조금 심각했다.

개중 하나가 페르소나를 가진 근위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미친놈들. 그러게 길대로 다닐 것이지, 왜 이상한 데로 가서는….”

분명, 공명심에 빠진 기사 놈들과 마법연구라면 똥이라도 쳐먹을 마법사 놈들이 작당해선 상급마족의 영역까지 쳐들어갔으리라.

마경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다, 그 권세가 가장 약한 사냥단은 그 뒷감당을 하게 생겼고.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파비안은 나무의자에 몸을 기댔다.

생존자 추적, 마족의 이동경로 확인…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단장님!”

그 때, 막사 안으로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전령임에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던 사냥단장은 퉁명스레 답했다.

하지만.

“이, 이안공자께서 오고 계십니다!”

병사의 말을 들은 순간, 파비안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에이, 씨발. 왜 하필 지금 와서는.”

욕지거리를 내뱉은 파비안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

마경은 언제나 척박하다.

대지는 마기에 범벅되어 지기를 잃었고, 흐르는 물은 극독이 되어 생기를 잃었다.

그러니, 마경에 들어와 생존할 수 있는 자는 두 부류 중 하나다.

개인의 능력이 마경의 지옥같은 환경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뛰어나거나.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잘 훈련된 집단이거나.

아슈타르의 자랑, 은사자 기사단과 혈사자 마탑의 혼성파견대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

하지만.

“대 마수 마법진을 펴!”

“9시 방향 마수무리 출현! 대열 유지해!”

쉼 없이 밀려들어오는 마수의 파도 앞에선 그들의 능력도, 팀워크도 무의미했다.

“후방에 새로운 마수 출현! 오우거입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인 초인들이었지만, 상대의 숫자는 초인의 한계를 넘어섰다.

“끄아악!”

“오, 오러가… 끄헉!”

하나, 둘. 경지가 낮은 자들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하다 모든 마력을 소진한 자들은 그대로 마수들에게 물어 뜯겨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끼에에-

찢겨나간 인간의 살점을 탐하던 마수, 오크들은 곧 홀로 서 있던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상대가 오러를 다룰 수 있다 한들 숫자의 위력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마수들이 채 세 발자국도 떼기 전.

-끼이?

콰드득

그들의 몸뚱이가 위 아래로 분리되었다.

“후우, 후우.”

파견대장, 프리츠 헤겔은 세 마수를 일검에 베어버린 다음, 숨을 골랐다.

이미 이곳은 인세의 지옥이었다. 아직은 기사들의 용기와 마법사들의 지혜로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은 무한히 몰려드는 마수들과의 소모전 끝에 전멸당하리라.

“저 빌어먹을 년…”

프리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그 곳에 있던 자는, 검은 천으로 몸을 대충 가린 요녀.

관자놀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라난 두 개의 뿔과 날개뼈 뒤로 자라난 박쥐날개가 아니었다면, 물질계에서도 손꼽히는 미녀로 칭송받았으리라.

까득

하지만, 프리츠는 그녀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녀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난 마수들이 파견대를 덮쳐왔으니까.

“대장님, 트롤 2기가 증원되었습니다!”

“3시 방향 오크무리 출현! 오러 사용개체 3기!”

들려오는 것은 절망.

보이는 것은 파국.

이대로 가다간 예정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파견대장에게 남은 수는 하나뿐이었다.

프리츠는 자신의 장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오라.”

이것은 신화를 소환하는 주문.

”악시온.”

프리츠의 읊조림에, 검이 울었다.

장검의 내부에 빽빽이 짜여진 마력술식이 푸른빛으로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기사의 몸 주위를 거대한 마력이 감싸 안았다.

일순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진해졌던 마력은 곧 페르소나의 마력운용법에 따라 형체를 이루었다.

한때 마족의 제1 대적이었던 용의 형태로.

-그워어어어

땅을 뒤덮은 마수와 인간들을 모두 가리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흑룡.

검게 물든 하늘 위로 솟아오른 에인션트 드래곤, 악시온이 울부짖었다.

‘원판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내부에서 고룡을 통제하던 프리츠의 눈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환수급 페르소나에 불어넣은 신화는.

오천 마족을 일 숨에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전해지는 소멸룡(掃滅龍).

-크아아아아

악시온이 울부짖을 때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비늘이 진동했다. 진동과 함께 생겨난 자잘한 음파들이 용의 아가리에 모여들었다.

“어머.”

그제서야, 공중에서 손을 휘젓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그녀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하지만 그녀가 멈춘 것은 상대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귀여운 녀석이네?”

입술을 핥은 요녀의 눈이 오시리스, 그리고 프리츠와 마주쳤다.

‘무, 무슨 눈동자가!’

순간, 프리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녀의 눈동자에 드리운 것은 끝없는 욕망.

무저갱 저 깊은 곳까지 들어찬 소유욕이 강인한 기사의 정신을 침범하려 했다.

상대는 사람의 꿈과 정신을 먹는다는 몽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다간 그의 정신이 송두리째 요녀의 손에 들어가리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어어

고룡이 거대한 입을 벌린다.

그 안에 모인 것은 끝없이 중첩된 음파가 내뿜는 진동.

악시온, 그리고 프린츠는 들이킨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끼이이이-

동시에 악시온의 입에 모여 있던 음파가 몽마를 향해 뿜어져나갔다.

그것은, 상대의 고유진동수를 찾아내 물질의 근원부터 파괴하는 흑룡족의 고유기술.

소닉 브레스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분해해버리는 멸세의 파동이 요녀를 덮쳐왔다.

악시온의 한 입 크기나 될까 싶은 그녀를 박살내기엔 지나치게 거대한 에너지.

하지만.

“흐으음.”

그녀가 숨을 한 번 들이키는 순간.

거대한 파동은 온전히 그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어어?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일에, 성대구조가 인간과 다른 악시온의 입에서 말 대신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부서져야 할 마족은, 그를 향해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으니까.

“으음, 제법 배가 찼는걸?”

입맛까지 다시며 살짝 부풀어 오른 배를 만지작거리는 그녀 앞에 선 프린츠, 에인션트 드래곤 악시온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아무리 원판보다 약하다지만, 막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흡수해버린다고?’

상대의 정체를 깨달아버린 순간.

그의 마음속에 들끓던 투쟁심이 일순간에 꺼져버렸다.

‘저건 상급 마족 따위가 아니야. 저건…’

마왕.

동족을 버린 자를 제외한, 열 한 개체로 구성된 마족의 지배자.

평소에는 자신의 성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도 않는다는 노괴물들이, 어찌하여 이 자리에 나타났단 말인가.

“제법 귀엽긴 하지만, 내가 바빠서 말이야. 미안해.”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프린츠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말을 마친 그녀의 작은 입에서, 조금 전 고룡이 쏘아낸 파동이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죽겠군.’

전멸.

이미 기사의 머릿속은 오로지 한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고룡의 얼굴에 호박처럼 박힌 눈동자의 떨림이 의미하는 것은 공포.

이윽고.

-콰아아아아

마왕, 바르바토스의 입에서 쏟아진 굉음과 함께 그의 생각은 끊어졌다.

***

“오늘따라 일진이 영 별론가봐, 단장? 표정이 영 안 좋네.”

“그러게 말입니다.”

빙글빙글 웃는 이안을 바라보던 파비안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눈앞의 공자에게 ‘너 때문에 두 배는 더 미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자님, 죄송합니다만 곧 긴급한 작전 회의가 잡혀있습니다. 혹 급한 일이 아니시라면 다음 기회에 찾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말만 존댓말이다 뿐이지, 파비안의 말은 곧 축객령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 사실 내가 좀 급해서 말야. 단장이 아니면 안 될 일이 있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장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안은 말 대신 등에 매달린 신검을 뽑아들었다.

“이게 뭔지는 알지?”

“이, 이건….”

아슈타르의 다섯 검 중 하나를 이끄는 그가, 아슈타르의 신물을 몰라볼 리 없었다.

이안이 검을 꺼내들자 마자 지휘실 안에 있던 파비안과 부관이 곧장 부동자세를 취했다.

상대의 반응이 마음에 든 이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얘기가 쉽겠네. 일단, 내가 여기 왜 와있는 건지는 알겠지?”

“…저희의 힘이 필요하신 겁니까?”

파비안은 오래 생각지 않고 대답했다.

이안의 손에 들려있는 검, 레온하르트는 신검공의 권한을 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말 그대로 손에 쥔 채 사냥단의 장을 찾아올 다른 일이 무에 있단 말인가.

“역시 단장은 말이 좀 통하는 것 같단 말야. 저번에 말한 것도 제대로 처리했고.”

파비안의 대답에 이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킬 일이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쪽이 나았으니까.

“사자의 심장을 쥔 신검공을 대리하여, 나 이안 아슈타르는 흑사자 사냥단의 지휘권을 양도받겠다.”

이안은 레온하르트의 검 끝으로 흑사자 사냥단의 단장, 파비안의 심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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