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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3화 (14/224)

#13화

기억창고에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꺼낸 이안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상대는 방금 전 상대하던 백인대장과는 격이 다르다.

아슈타르의 5대 무력집단 중 하나를 통솔하는 사령관.

그리고, 그가 언젠가 충성을 얻어 내야 할 대상.

“사냥단장이군. 사냥단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지?”

이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문제의 손쇠뇌를 들이댔다.

파비안의 표정이 조금 굳었지만, 대답은 곧장 나왔다.

“알고 있었습니다. 제 지시였으니까요.”

“이유는?”

“최근 예산삭감으로 인한 훈련비 부족, 그리고 잦은 훈련장비의 손망실로 인한 대체장비의 수요 때문입니다.”

“문제점을 각오하고라도?”

“단장의 입장에서, 훈련을 아예 중단하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파비안의 대답에 이안은 잠시 숨을 골랐다.

막무가내로 다그치기만 하는 것은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예산이 부족하다지만, 훈련용 무기를 따로 운용하는 건 전투력 손실이란 걸 알고 있겠지?”

“네, 공자님.”

“예산은 다른 데서 감축해. 정말로 어렵다면, 내 주머니라도 털어서 해결해주지.”

사재를 턴다니.

이안의 말에 사냥단장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대출이야. 이자는 연 1할.”

“풉… 크흠. 아슈타르의 뜻대로.”

이안의 농을 들은 사냥단장은 순간 표정이 무너질 뻔 했지만, 간신히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때.

“고, 공자님을 뵙습니다!”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가 거대한 연무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연무장에 갑자기 나타난 하녀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이름이, 카트린이던가?’

아는 얼굴이었다.

지난 번, 이안의 방에서 칼을 꺼내 자결하려던 그 하녀였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게, 공방의 카르밀 경의 전언입니다. 말씀하신 물건이 완성되었다고…”

곧, 이안은 그녀의 태도가 지난번과는 달라졌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말을 더듬는 것은 여전했지만, 학질에 걸린 사람마냥 몸을 떨던 지난번과는 달리 그녀의 상태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알았어. 시간 나는 대로 찾아간다고 전해 줘.”

“네, 네. 공자님!”

이안의 답을 들은 하녀는 왠지 모르게 기쁜 얼굴로 허리를 숙이고는 재빨리 연무장을 나섰다.

‘뭐지?’

이안은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곧 털어버렸다. 이안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럼, 이만 가보지.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 지 잘 알거라 믿어.”

“충.”

경례를 붙이는 사냥단장을 뒤로하고, 이안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에잉, 젠장. 완전 나가리잖아?”

연무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이안의 표정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원래 계획이라면 이안의 실력을 보여준 다음, 병사들에게 신뢰를 얻어 천천히 부대를 이안의 편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이안이 순간적인 분노를 참았다면, 아마 현실이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

‘젠장,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어. 경비대 쪽을 파봐야 하나?’

원반위에 올라탄 이안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

“단장님, 이안 공자님의 말을 정말로 따르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칼튼의 물음에, 파비안은 대답 대신 침음성을 삼켰다.

그는 조금 전의 이안을 떠올렸다.

‘생각은 있는 자였어.’

이안이 부대의 치부를 정확히 짚어내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슈타르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에게 감사권한이 있지 않았다면.

그는 훈련 중에 행패를 부리는 이안을 강제로 내쫓았을 것이다.

‘듣던 것과는 다르단 말이지.’

먹고 싸는 것에만 관심 있는 구제불능의 돼지란 소문에 비해선, 이안 공자는 예상외로 정상이었다.

채 빠지지 않은 덧살이 남아있긴 하지만 몸뚱이는 근육이 발달해 제법 탄탄했고, 뒤에서 다가갔을 때의 신속한 대응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저 눈빛은 보통의 훈련으로 갖춰지는 게 아니야.’

살인경험이 없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은은한 살기가, 이안의 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기는 잡아본 적도 없다는 세간의 평은 완전히 거짓이었단 걸 파비안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흥미로웠다.

“단장님?”

상념에서 빠져나온 파비안의 시선이 칼튼을 향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자신을 의뭉스럽게 바라보는 칼튼에게 그는 담담히 말했다.

”재무담당관에게 방금 들은 사항을 전달하게. 모자라면 본인 돈까지 보태준다니, 손해는 아니야.”

말을 마친 파비안의 입꼬리는.

스리슬쩍 올라가 있었다.

***

“공자님, 가죽의 질감은 괜찮으십니까?”

“최고야. 오크 가죽이라고 했던가?”

수 개의 가죽끈으로 이루어진 홀스터를 걸친 이안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카르밀의 물음에 이안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예, 맞습니다. 온갖 마수들의 가죽 중에서도 착용감이 제법 좋은 축에 속합죠. 저기, 주머니 부분은 마력감응도가 높은 고블린의 가죽을 사용했습니다.”

과연, 이안이 어떤 무리한 동작을 취하더라도 이안을 감싼 가죽끈들은 그 움직임에 따라 충분히 늘어났다.

‘마음에 들어.’

착용한 것 같지도 않은 편안함이, 오히려 전생의 물건보다도 나은 느낌이었다.

“이쪽은…”

곧, 이안의 시선은 오른쪽 허리춤의 권총집으로 향했다.

작은 마법진이 새겨진 권총집은 희미한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처리해두었습니다. 사실 마법의 난도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말을 듣고 있던 이안은 권총 형태의 페르소나, 미미르를 권총집에 꽂아 넣었다.

권총집에 정확히 맞게 들어간 미미르에서, 마법진과 동일한 푸른빛이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왔다.

“음, 좋아. 내 생각보다 더 잘 만들어졌어. 당장 전투에 나가도 될 정도야.”

물건을 꼼꼼히 확인한 이안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들어찼다. 그제야 굳어있던 장인의 표정 또한 풀어졌다.

이안은 허리춤의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손가락 한 마디만한 루비를 꺼내들었다.

이안의 방을 뒤덮고 있던 보석 중 하나였다.

“고, 공자님. 저는 아슈타르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건…”

“아, 그래? 그럼…”

“…주시면 감사합죠.”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카르밀은 보석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던 이안의 손을 덥석 잡더니 루비를 제 주머니에 슬그머니 챙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태도변화에 이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일하나?”

“부여마법 연구에는 언제나 돈이 들어가는 법입죠. 헤헤. 제가 더 높은 수준의 부여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아슈타르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카르밀은 허리를 굽신거렸다.

딴에는 맞는 말인데다, 원래 주려고 했던 보석이니 이안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럼, 대신 이것도 부탁할게.”

이안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내 카르밀에게 건넸다.

종이를 슥 훑어본 그는 허리를 푹 숙였다

“아, 물론입죠. 내일까지 완성해놓도록 하겠습니다. 헤헤.”

“좋아.”

양 손을 요사하게 비비는 아슈타르 최고의 장인을 뒤로 하고, 이안은 원반에 올라탔다.

이안은 원반 위에서 창문 밖을 바라봤다. 평원의 지평선 뒤로 붉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시간이 됐어.’

곧,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해 낼 차례였다.

그것은.

생물학적 가족들과의 첫 만남이자 만찬.

‘기대되는 걸?’

얼마나 날 잡아먹으려 들지 말이야.

원반을 타고 이동하는 이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

이안의 예상과는 달리, 저녁식사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식기와 나이프가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뿐.

‘생각보다, 이 세계의 음식도 맛있단 말이지.’

큼직하게 썬 정체불명의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고기 고유의 육즙이 혀끝을 간지럽힌다.

조리법이 크게 발전하진 않았지만, 마력을 머금어 한 단계 격이 올라간 식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조미료에 찌든 이안의 혀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안, 식사 중에는 격식을 차리 거라.”

육즙의 여운에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이안은, 누군가의 앙칼진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평민도 아니고, 아슈타르의 사람이 배를 채우는 음식 따위에 취해서야 되겠느냐?”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린 중년의 여인이 도끼눈을 뜬 채 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카밀리 공작부인. 내 어머니.’

물론, 계모였지만.

그녀와는 애초에 머리색부터 달랐다.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왜 이 몸뚱이의 전 주인이 가족식사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라도 밥 먹는데 저런 눈빛으로 보면 체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괜스레 신경 쓰이는 것이 방금 뱃속으로 들어갔던 고기가 다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 왜 대답이 없지?”

이안이 평소처럼 겁먹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표독스런 목소리로 꾸짖었다.

“네 어미가 없다 해서 네가 천둥벌거숭이처럼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냐?”

독설의 수위는 점점 올라갔다.

따지고 보면 생물학적 어머니와의 관계는 거의 없었으니, 상처입거나 화날 일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아.’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었다지만,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면전에서 저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일까.

“어머니, 고정하세요. 아무리 사자의 피가 섞였다 한들 평민의 피는 지울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 오른쪽에 앉은 자신의 둘째 형, 요제프가 어머니를 달랜답시고 개소리를 퍼부었다.

순간, 이안과 요제프의 눈이 마주쳤다.

생물학적 둘째형의 눈에, 경멸이 가득 담겨있었다.

피식.

‘이게 가족식사 자리인지, 투기장인지, 원.’

어처구니가 없었던 이안은 아버지, 에드너를 바라봤다.

하지만 신검공은 이 상황을 그저 흥미롭게 바라볼 뿐, 사태를 중재할 생각 따위는 없어보였다.

‘시험인가. 아버지가 되어선…’

공작의 의도를 알아챈 이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내 자리를 찾고 싶다면, 스스로 만들라는 의미겠지. 그것이 신검공가, 아슈타르의 사람들이 지켜온 전통이었으니까.

판은 깔렸다. 남은 건 이안의 선택뿐.

이미 선택을 끝낸 이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주제에 어딜 노려보고 그러는 게냐? 그러고도 신검공의 피가 섞였다고…”

“어머니.”

이안은 그녀의 도끼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순간.

‘무슨 눈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이안의 눈동자를 바라본 카밀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어질 이안의 말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였다.

“어머니의 몸에는, 신검공의 피가 섞여 있습니까?”

“뭐, 뭐라고?”

이안의 말을 들은 그녀의 머리가 순간 정지됐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그리고 성을 이어받았다지만, 그녀에게 신검공 아슈타르가의 피가 섞여있을 리 없다.

그녀의 가문은 제국의 이름난 공가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니.

“죄송하지만, 피도 섞이지 않은 외부자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안의 궤변에 반박할 수 없었다.

‘우선 하나는 끝냈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진 카밀리의 얼굴을 마주한 이안의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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