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성공했어.’
아슈타르의 마력운용법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파이톤에게서 받은 기초중의 기초급 마력운용법과는 다른, 가문의 정식 마력운용법.
간신히 페르소나를 지상에 구현시킬까 말까한 이안의 기초적인 마력운용법과는 그 정밀도와 복잡도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그 덕택에, 이안은 한 단계 높은 격의 페르소나를 설계해내는데 성공했다.
‘지금 만들러 갈 수 없다는 건 좀 아쉽지만.’
이안은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영성의 홀이 존재하는 라이나 섬에 가기 위해선 비행함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고작해야 아무 직함도 없는 3공자에게 비행함을 움직일 권한이 있을 리 없었다.
아슈타르를 지키는 오대 무력집단 중에서도, 부단장급 이상의 자리를 차지해야만 얻을 수 있는 권한.
이안이 영성의 홀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선, 제법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리라.
“공자님, 무언가를 얻으셨습니까?”
“꽤? 당장 쓸 수는 없겠지만.”
“큰 걸 얻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칼리번이 축하인사를 했지만, 이안은 별 감흥이 없었다. 즉시 전력이 되지 않는 더미 데이터들은 이미 수백 개가 넘었으니까.
“그보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지?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아, 카르밀 경 말씀이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뵙도록 하지요.”
“그쪽도 오늘은 가서 쉬어. 집사에겐 넉넉히 쥐어주라 했으니 애들 고기라도 사 먹이고.”
“네, 공자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안의 말에 신관, 세리아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음?’
그녀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이안은 굳이 첨언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연무장을 나서자 높이 100M에 달하는 성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원반이 그를 반겼다.
하지만 이안은 원반을 타는 대신, 그 옆의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또각또각
몇 층이나 내려갔을까. 이안의 발걸음이 또 다른 연무장으로 향했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야. 아무리 넓다지만…’
제6 연무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몇 번이고 봤던 광경이었지만, 연무장의 내부를 본 이안은 턱에 손을 얹은 채 감탄했다.
숲이었다.
잡초로 덮인 흙바닥과 그 위로 곧게 뻗은 빽빽한 나무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까지.
마치 숲의 일부분을 뚝 떼어서 성 내에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 병사들이 있었다.
‘흑사자 사냥단.’
마수 가죽으로 만든 검은 갑옷을 몸에 두르고, 등에는 몇 종류의 석궁과 배낭을 멘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족과 제국을 감시하는 아슈타르의 눈이자 전쟁의 선봉대, 레인저들.
그리고.
‘훈련은 잘 돼 있어. 군기도 바짝 들어있고, 행동에도 군더더기가 없어. 눈빛을 보아하니 다들 실전을 경험해 본 모양이야.’
그들을 보는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이안이 여태껏 영지에서 봐온 자들 중, 가장 군인다운 자들이었으니까.
기사들은 군인보다는 무예를 연마하는 구도자다.
개개인의 무력은 출중하지만, 자신의 무력에 대한 자존심이 드높은 그들은 그 무력을 집단의 강함으로 연결하지 못한다.
마법사들은 학자다.
자신의 것에만 몰두하는 외곬수가 아니라면 마법사가 될 수조차 없다.
고위마법사가 다른 마법사와 협력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일대 사건일 정도이니, 이들 역시 집단의 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검도 마법도 다루지 않는 이안이 부릴 수 있는 곳은 하나.
군부(軍部)뿐.
이안은 천천히 연무장 안에 들어섰다. 잡초와 섞인 부드러운 흙의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안이 향하는 곳은 이 인공 숲의 한 쪽에 마련된 사격장-과녁과 석궁이 있었다-.
“사격!”
피피피핏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엔 몇몇 병사들이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보통의 사격연습은 아니었다.
표적 대신 세워진 허수아비들이 상하좌우 제멋대로 움직여댔으니까. 심지어 속도와 거리 또한 제멋대로였다.
당연히 병사들의 명중률은 절반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정도.
“뭐야, 왜 이렇게 못 쏴? 아슈타르 최정예라더니만. 실망인데?”
이안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어떤 무기, 어떤 상황, 어떤 자세에서도 적을 명중시키는 트릭샷을 배워둔 이안에겐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걸 듣는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어떤 개자식이….”
쌍욕을 박아 넣으려던 털북숭이 사내는 이안의 화려한 차림새와 사자문장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누구지?’
하지만 그의 기억에, 저렇게 생긴 아슈타르가의 인물은 없었다. 금발머리….
금발머리?
“흑사자 사냥단 제2백인대장 칼튼입니다. 혹, 이안 도련님이십니까?”
“그래.”
“…충.”
털북숭이, 백인대장 칼튼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쩔 수 없이 경례를 올리는 그의 얼굴색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아무리 아슈타르의 공자라지만.’
자신을 모욕한 것은 이미 소드마스터의 벽에 도달했다는 오베르트 공자님도, 6급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요제프 공자님도 아닌, 밥이나 쳐먹을 줄 아는 돼지였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관심은 이미 사격장과 앞에 널브러진 손쇠뇌들로 향해 있었다.
‘오, 제법 정교한데? 1회용이긴 하지만 휴대성도 괜찮은 편이야. 전투할 땐 여러 자루를 챙기는 건가?’
“공자님, 잘못 건드시면 위험합니다!”
권총과 비슷한 크기의 손쇠뇌들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이안을 바라보며 백인대장이 우려했지만, 이안은 한 술 더 떴다.
핑-
방아쇠를 당기자 팽팽하게 당겨진 쇠뇌의 줄이 풀리면서 장전된 볼트가 허수아비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하지만 볼트는 목표한 허수아비를 한참 벗어난 곳으로 날아갔다.
“공자님, 저희도 훈련을 해야 하니 이만….”
핑-
백인대장이 제지하려 했지만, 어느새 다른 녀석으로 바꿔 쥔 이안은 재차 볼트를 쏘아냈다.
하지만 명중시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조금 근접하긴 했지만, 결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
‘젠장, 아무것도 못하는 돼지 주제에 입만 살아선.’
백인대장, 칼튼은 제 멋대로 행동하는 이안이 아니꼬웠다.
아무리 아슈타르가의 공자라지만 군부에서는 지켜야 할 법도가 있는 법.
‘더는 안 되겠어. 이대로 훈련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해.’
고작해야 백인대장에 불과한 그가 신검공의 아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왕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지 않는가.
칼튼은 이안을 끌어내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이안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피피피피핑
쏘고, 버린다.
한 자루의 손쇠뇌가 버려질 때마다 한 발의 볼트가 목표를 향해 쏘아진다.
던져버린 쇠뇌가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음 쇠뇌를 발사하는 이안의 움직임엔 일말의 군더더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것은,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말살하기 위한 포식자의 절제된 움직임.
“저, 저게 무슨…”
“사람의 움직임이… 저럴 수 있다고?”
사격훈련을 위해 하나 둘 모인 병사들의 눈이, 쉴 새 없이 쇠뇌를 쏘아내는 이안에게서 떠나지 못했다. 개중에는 멍하니 입을 벌리는 자도 있을 정도.
이윽고.
툭
사격을 마친 이안이 손에 쥔 석궁을 떨어트린 순간.
연무장은 쥐죽은 듯이 침묵했다.
“탄성이 부족해서 탄도가 불안정하잖아. 재료를 바꿀 게 아니면 볼트의 형태를 다시 잡아야겠는데?”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품고 있던 볼트를 토해낸 수십의 손쇠뇌. 개중 하나를 만지작거리던 이안의 뒤쪽.
제 멋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의 머리통엔 이미 수십의 화살이 고슴고치처럼 박혀있었으니까.
“그, 그걸 어떻게…”
백인대장, 칼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타 부대에 밀려 부족해진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습용 손쇠뇌의 활대를 마족의 뿔 대신 물소나 염소 따위의 것으로 대체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기라곤 한 번도 다뤄본 적 없을 공자가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
“쏴 보면 아는 걸 왜 몰라? 설마, 그 쪽은 아직도 몰랐던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이곳에 배치된 병기들은 연습용으로…”
“연습용?”
연습용.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잘 알고 있던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이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자, 당황한 칼튼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네. 실제로 전투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마족의 뿔을 이용했지만, 이곳의 쇠뇌들은 처음 배치되는 신병들의 적응을 위해서…”
“야. 미쳤냐?”
그리고, 그 말이 이안의 역린을 건드렸다.
“고, 공자님. 아무리 공자님이시라지만 말씀이 너무…”
“연습용 병기와 실전 병기의 성능을 다르게 만들어? 그게 제정신인 지휘관이 할 짓거리야?”
이안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교보재로 연습탄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이건 마치, 훈련 때는 권총으로 연습하다 전쟁이 터지면 자동소총을 지급하는 것과 같다.
화살을 쏜다는 것만 유사할 뿐, 사용하는 탄종부터 역할, 조준방법까지 완전히 다른 무기를 지급하는 셈.
가장 먼저 전투에 참여하는 전장의 첨병이란 것들이. 아슈타르의 적을 철통같이 감시한다는 것들이.
이런 병신들이라니.
“고, 공자님…”
아직 오러 유저 초급 수준의 마력 밖에 다루지 못하는 칼튼의 얼굴이 하얘졌다.
극한의 단련으로 뭉쳐낸 마력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너무나 흉험했으니까.
“실전에서 완전히 다른 무기를 받은 신병들이 어떻게 싸울지 생각은 해봤냐?”
이안이 분노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고된 훈련을 거친 그가 처음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수많은 동료들을 잃은 이유였으니까.
제대로 된 장비와 교범 대신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정신 나간 윗대가리들.
“훈련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작동되는 무기. 연습했던 감대로 나가지 않는 화살. 그게 신병들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 같아? 엉?”
“아, 아아…”
이안이 사자의 기세를 풍기며 한 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백인대장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죽어갔다.
악귀의 얼굴을 한 이안이 백인대장의 코앞에 도달했다. 칼튼은 이미 반쯤 기절한 상태.
하지만 그 순간.
‘뒤다.’
이안은 급히 몸을 뒤로 돌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타오르던 분노는 순식간에 꺼져버리고, 냉철한 이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충! 이안 아슈타르 공자님을 뵙습니다.”
이안의 앞, 건장한 중년의 사내가 짧고 강한 경례를 붙였다.
‘사냥단장, 파비안 포르테 자작.’
바로 이안이 충성을 얻어내야 할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