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공자님, 방금 뭐라고…”
“싫다고. 내가 왜 검을 배워야하는데?”
딴에는 합당한 질문이었다.
전 강민혁, 현 이안의 생을 합친 평생 동안 이안이 익힌 검술이라곤.
‘총검술이랑 나이프파이팅 밖에 없다고.’
보통의 기사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검을 수련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미 스무 살이 된 이안에게 검술수련이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나 다름없었다.
“공자님, 신검공 아슈타르 공작가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검을 쓸 줄 아셔야 합니다.”
노백작은 이안을 어린아이 보듯 바라봤다.
“물론 공자님께서 조금 늦게 시작하신 것은 맞습니다만, 저와 함께 검을 배우신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경지에 올라설 수 있으실 겁니다.”
말을 잠시 멈춘 칼리번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제 명예를 걸고 십 년, 아니 오 년 안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려드리지요.”
칼리번은 자신 있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검을 배울 생각이 없어. 마력운용법이나 오러 정제법엔 관심이 있긴 하지만.”
“어째서입니까? 공자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아슈타르 가문은 대대로 검의 극의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왔습니다.”
칼리번은 이안을 알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오러 마스터의 길이 이미 준비되어있는데, 그것을 걷어찰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만큼 검식의 위력 또한 마족놈들을 도륙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야, 너무 약하거든.”
이안은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오글거렸지만, 사실인 걸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칼리번은 이안의 웃음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지금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지난 삼십여 년의 수련을 말 한마디에 부정당한 기사가 눈에 쌍심지를 돋웠다.
눈앞의 작자는 현 신검공이자 검을 쥔 자의 정상, 오러 마스터에 이른 에드너 폰 아슈타르의 아들이다.
그런데 어찌, 신검공의 아들이 검술은 약하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검은 대인전에 최적화된 날붙이기는 하지만, 단점이 없진 않지.”
이안의 혀가 신랄하게 움직였다.
“타 병장기에 비해 비교적 긴 수련기간에, 전투간격도 짧은 편이야.”
그것은, 이미 지구의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오러의 힘으로 보완할 수 있다곤 하지만 굳이 그런 병장기를 내가 익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백작?”
백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안의 입에서 검에 대한 신랄한 비평이 쏟아져 나왔다.
이안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칼리번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아낸 기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공자님께선 마치, 검보다 더 뛰어난 무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반쯤은 비꼬는 어투였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이건 일종의 기세싸움이다.’
여기서 밀린다면 이안은 꼼짝없이 쓸 데도 없는 검술을 배워야 할 운명이었으니까.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페르소나, 권총의 형상을 한 미미르를 꺼내들었다.
“…설마 그 막대기가 무기라는 말씀은 안하시겠지요.”
칼리번의 물음에 이안은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씨익 웃었다.
“백작 손에 들린 막대기보다는 강한 무기지.”
이안이 칼리번의 허리에 찬 검을 가리키자 백작의 얼굴이 벌개졌다.
“저를 모욕하는 말씀은 그만두시지요. 아무리 공자님이라지만, 이 이상 저를 모욕하신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주군의 아들, 신검공의 피를 이은 공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입에서 쌍욕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모욕? 그 말이 더 모욕적인데. 내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린 거야?”
말과 함께 이안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총의 강력함은 그 사거리와 사거리를 순간에 좁히는 탄환의 속력에서 나오는 법.
그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선 가능한 한 상대와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럼, 그 헛소리를 저보고 믿으란 말씀이십니까?”
참다못해 폭발한 칼리번이 고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안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럼 시험해 보자고. 마침 대련을 하자고 하지 않았던가?”
“대련 말입니까?”
“내가 이기면 검술을 안 배우는 거고, 지면 배우는 거지. 간단하지 않아?”
그새 열 걸음 넘게 뒷걸음친 이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기사단장 씩이나 되면서 검 한번 뽑아보지 못한 초보에게 오러를 사용하지는 않겠지?”
“걱정 마십시오, 공자님. 곧 공자님께서는 제게 검을 배우게 되실 겁니다.”
거듭된 도발에 이를 악문 칼리번의 검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이안은 몇 걸음을 더 뒤로 물러섰다.
“그래? 자신 있으면.”
입에 비웃음을 머금은 이안은.
“덤벼봐.”
손에 든 권총을 까딱였다.
“사양하지 않고!”
이미 칼리번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은사자 기사단의 기사단장은 말이 끝나자마자 양 손에 검을 쥔 채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약해서 검을 배우지 않겠다고? 웃기는 소리. 온 몸이 빈틈투성이인 주제에.’
이안을 훑어보던 칼리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 그대로, 칼리번을 바라보는 이안의 몸은 어디 하나 허점이 없는 곳이 없었다.
공격을 막아줄 검도, 방패도 없이 맨 몸뚱이로 서 있는 인간은, 굳이 오러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두동강 내버릴 수 있으니까.
‘팔 정도로 끝내야겠군. 그 정도면 공자님께 충분한 교훈이 되겠지.’
그 정도라면 연무장에 비치된 포션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으니까.
이미 칼리번의 머릿속엔 패배라는 단어가 삭제된 지 오래였다.
달려가던 그의 검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초대 신검공, 비르켄 아슈타르가 창안한 아슈타르가의 비전검술.
사자검(獅子劍)
패도를 추구하는 사자검의 원리에 따라, 검을 든 두 손이 높게 치켜 올라갔다.
이안과의 거리는 지척.
조금만 더 다가간다면, 공자의 팔을 베는 것쯤은 어린아이 팔목을 비트는 것보다 쉬우리라.
하지만.
‘무, 무슨?’
이안이 권총을 겨눈 순간, 칼리번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분명, 한낱 막대기일 뿐인데…’
이안이 들고 있는 것은 활도, 석궁도 아닌 손바닥보다 약간 커다란 막대기.
하지만 칼리번은 자신이 그 막대기의 공격범위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말도, 말도 안 돼…’
본능은 피해야한다 외쳤지만, 이성은 그에 따르지 않았다.
‘내려치기만 하면 된다. 이안 공자의 공격쯤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고작해야 오러조차 제대로 내뿜지 못하는 애송이다.’
백작이 수 년간 봐온 망나니 이안은 결코 자신을 이길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칼리번은 패배를 직감했다.
‘웃고, 있어?’
막대기를 든 망나니 공자가,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타타탕!
천둥소리가 연무장을 울려댔다.
“커, 커헉.”
동시에, 세 발의 9mm 탄을 적중당한 백작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망치가 복부를 짓이긴 것 같은 충격과 고통이 칼리번의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이안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던 몸은 이미 충격으로 인해 멈춰선 지 오래.
챙그랑!
쇳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검이 흘러내렸다. 내장기관에 상처를 입은 순간, 그의 몸은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
그가 수십 년간 단련을 거듭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가 아니었다면, 이미 충격에 의해 명을 달리했으리라.
‘오러, 인가? 마법?’
아무 기척 없이 원거리에서 자신을 해할 수 있는 것은 마력을 활용한 공격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터 이안 공자가 마력을 다룰 수 있었단 말인가?
“젠장, 이런 잔꾀를…”
털썩
총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칼리번은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그제야 이안은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후욱
이안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훅 불어 식혔다.
“휴, 하마터면 당할 뻔 했어.”
오러익스퍼트의 상급에 도달한 칼리번의 오러를 봉인하지 않고서는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오러를 몸에 두르는 것은 방탄복을 입는 것과 비슷한 방어력을 지니게 되니까.
심지어, 오러를 봉인한 상태에서도 찰나의 순간에 이안의 앞까지 다가오지 않았던가.
‘페르소나를 개방하지 않으면 이 이상은 무리겠는데?’
반동과 소음이 적은 대신 충격량도 낮은 편인 9mm 권총탄의 태생적 한계였다.
덕택에 마력소모량은 적은 편이었지만, 이안의 애병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페르소나의 봉인모드는 다른 권총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어쨌든 승리했다.
이안은 연무장 한 구석에 마련된 상자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강철같은 육체와 정신을 가진 칼리번이니 쇼크사의 염려는 없었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지도 몰랐으니까.
그 때.
“고, 공자님. 저는 빛의 신 마르콘을 섬기는… 꺄, 꺄악!”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연무장의 입구에서 백색의 사제복을 입은 숙녀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이안은 곧, 집사가 보내주기로 한 신관이 그녀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 잘 됐군.”
“네, 네?”
이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관이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다.
이안은 쓰러진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치료해, 빨리. 죽기 전에.”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걱정을 덜은 이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회복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신관의 치료를 받자마자, 칼리번의 복부에 뚫렸던 구멍이 메꿔지면서 근육 사이를 파고든 탄환들이 찌그러진 채 밖으로 뱉어졌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야.’
지구에 신법이 있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수백억의 연봉을 받았으리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부상을 수 분만에 치료하는 신법의 힘은 보면 볼수록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안은 신관의 표정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집중력이 흐트러진 듯 눈은 살짝 풀려있었다.
열 번을 넘게 신법을 펼쳐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던 다니엘과는 너무나 대비되었다.
‘차라리 포션을 먹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이안이 보기에,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신법은 기껏해야 하루에 두 번.
영성의 홀에서와 같이 수 번, 많게는 열 번 넘게 자기파괴적인 수련을 반복하려는 이안에게, 그녀의 능력은 너무나 빈약했다.
“끄, 끄으응…”
어느새 기력을 되찾은 칼리번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남은 고통으로 잔뜩 찌푸려져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이안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내가 이긴 것 맞지?”
“…오러를 사용했다면 제가 이겼을 겁니다.”
이안이 이죽거리자 칼리번이 반발했다.
공자가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런 불공정한 대련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테니까.
“그럼 뭐해, 졌잖아?”
하지만 이안은 당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