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구현의 방의 개방권한을 얻었다는 것은.
‘남들은 일 년에 한 번도 방문하기 어려운 곳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유지보수 뿐만 아니라 원하는 때에 와서 대 마족병기인 페르소나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의미.
‘그렇다면.’
이안이 처음 생각한 설계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해야 했다.
‘이후에도 업그레이드해서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범용성이 높게…’
고작 이틀 전에 처음 배운 것이지만, 보안시설을 직접 해킹하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워둔 이안에겐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만류귀종이라 하던가, 기본적인 논리는 프로그래밍과 유사했으니까.
‘간다.’
곧, 이안의 모든 정신은 페르소나의 구축에 쏠렸다.
‘관리자라길래 기대했더니, 마력설계방식은 너무 저급한데?’
기대에 못 미치는 이안의 설계과정을 보던 프레이야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신, 영웅, 환수, 병기 중 고작해야 병기급의 페르소나, 개중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규격을 만족하는 최하급.’
상대가 관리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진즉에 내쫓았을 것이다.
‘아슈타르에 어지간히도 인재가 없었나 보지?’
그녀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걸음마나 뗐을까 싶은 마력설계수준으로 이 방에 들어서는 자는 여태껏 없었으니까.
나름 자신이 관리하는 시스템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로서는.
‘내, 내 눈….’
저런 저급한 설계과정을 봐야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정신적인 고통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니?’
그녀의 생각은 설계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찡그린 눈가의 주름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
그녀의 눈은 이안의 설계시스템을 떠나지 못했다.
‘무슨 정보량이… 이렇게…’
인간의 상상력을 활용해 형태를 구축하는 페르소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전설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선 무게와 재질, 길이, 심지어는 사용할 때 무기의 범위와 사용방법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그것이 생명체의 범위로 넘어간다면 더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때문에, 지금껏 그녀가 봐온 자격자들이 만들어 낸 페르소나는.
‘병기, 혹은 환수.’
가끔 신급이나 영웅급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모두 가주급의 힘을 가진 절세의 영웅들이었다.
하지만.
‘관리자님은, 그 누구와도 달라.’
그가 설계한 병기급 페르소나에 쏟아내는 정보는 지금껏 프레이야가 경험해보지도 못한 수준.
이건 마치.
“문명…?”
한 문명의 모든 무기를 페르소나 안에 집어넣는다면 이와 같을까.
그녀가 놀라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안이 페르소나에 주입하는 정보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너무나 저급한 수준의 마력설계와는 정반대의 상황.
프레이야는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이안의 설계과정을 지켜봤다.
‘아아…’
마력을 깔고, 형태를 갖추고, 정보를 주입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시스템과 일체된 그녀의 감각을 자극했다. 이제는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는 지경. 그녀의 모든 감각이 눈앞의 설계시스템에 쏠렸다.
하지만.
“후아아, 힘들어.”
눈을 뜬 이안이 기지개를 켠 순간, 설계시스템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안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속으로 되뇌었다.
‘정보.’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
[등급: 병기]
[마력: 500]
[개방 필요마력: 1,000]
[증폭률: 5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
페르소나는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 마족을 사냥하는 전사를 육성하는 시스템.
시스템의 구성 중 하나인 정보창에는 이안의 비루한 마력과 페르소나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아쉽다, 아쉬워. 마력만 좀 더 쓸 수 있었어도…”
눈앞에 떠오른 정보들을 훑은 이안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500갈리움의 마력은 페르소나를 개방조차 하지 못할 만큼 적은 마력.
그나마 형태라도 갖춘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끄, 끝나신 건가요?”
곧, 제어정령인 프레이야가 이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좀 더 쑤셔 넣으려고 했는데, 내가 가진 마력운용법이 워낙 구려서 말야. 더미데이터로는 넣었는데 구현은 못 하겠더라고.”
다음에 업그레이드를 하던지 해야지.
장시간 움직이지 않아 뻐근한지 우드득 소리를 내며 목을 꺾어댄 이안을 보며 프레이야는 입맛을 다셨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끊긴 느낌이었으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그러면, 제작을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이지.”
“설계에 따라 병기 제작을 시작하겠습니다.”
파앗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현의 방을 감싼 어둠 한 켠에서부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빛은 점차 강해지더니 이내 어떤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병기를 빚어내던 그녀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야.’
시스템이 만들어진 지 약 800년.
800년의 세월을 거쳐 간 수많은 자격자들의 페르소나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이 세계의 토착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일곱 공가 내에 설계방법이 정립된 이후로는 일정한 틀에 맞게 만들어진 물건이 대부분.
하지만, 이안이 만들어낸 것은 800년 동안 수많은 페르소나를 목격한 그녀조차도 처음 보는, 너무나 생소한 물건이었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저, 관리자님. 이건 도대체 무슨 무기인가요? 저는 처음 보는 무긴데…”
“아, 이거?”
프레이야의 질문에 이안은 피식 웃으며 그가 만들어 낸 병기를 들어보였다.
“이 세계에는 없는 무기지.”
“네? 그게 무슨…”
“그보다, 이름을 지어야하지 않아? 힘을 개방하려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쓸 데 없는 말은 피하고 싶었다. 이안의 물음에 그제서야 프레이야는 자신의 직무를 깨달았다.
“맞습니다. 관리자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신다면, 자동으로 페르소나에 그 이름이 입력될 겁니다.”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도구인 병기에 이름을 짓는다는 발상은 그의 일생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어색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있어야만 그 이름을 불러 페르소나의 힘을 개방할 수 있다.
선택이 아닌 필수.
잠시 생각하던 이안은 지구의 신화를 떠올렸다.
지혜의 샘을 지키는 거인.
“미미르.”
“네?”
“미미르로 하지.”
페르소나를 손에 꾹 쥔 이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구현의 방은 여전히 그 빛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었다.
처음 열렸을 때처럼 눈부시지는 않았지만, 홀 안을 밝히기엔 충분한 밝기.
하지만 구현의 방에서 나온 자격자들은 모두 관문 너머 빛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왜… 아직도 닫히지 않는 거지?”
파이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읊조리며 홀의 벽면에 뚫린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 밖으로, 검은 하늘 위에 달과 별이 쏟아질 듯 다닥다닥 박혀있었다.
“이런 진기한 일을 볼 줄이야, 운이 좋은데?”
붉은 머리의 사내, 참룡공의 장남 라이덴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지 않았다.
칠영웅으로 불리는 일곱의 초대 가주들이 마족의 침공을 막아낸 이후, 마법의 신 갈리우스로부터 페르소나를 수여받는 시스템이 갖춰진 지 언 800년.
인간의 수명으로는 감히 가늠도 할 수 없는 긴 시간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때문인지는 알 것 같군.
뒷말을 삼킨 다니엘은 고개를 돌렸다.
본래 닫혀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긴 구현의 방에 남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하나였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다니엘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공가의 망나니인 줄 알았다. 단련도 제대로 하지 않은 나태한 돼지.
무슨 방법을 써서 자격자의 권한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나약한 녀석은 페르소나를 얻지도 못하고 쫓겨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사흘 전까지는.’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평소에는 얼굴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녀석이, 실력은 좀 부족했지만 맹호공의 핏줄을 이은 녀석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그 다음부터였지.’
온 몸이 부서졌다가 재생되는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고는 다시 자기파괴적인 고행을 사흘 넘게 반복했다.
그 전의 이안과는 완전히 다른, 강철처럼 단단한 정신력.
어떻게 그런 정신력을 가지고도 사육장의 돼지마냥 살아왔던 걸까.
‘아버지께 보고해야겠어.’
80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괴사(怪事)다.
공국의 일곱 기둥 중 하나인 성광공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니엘이 생각에 잠긴 그때.
파앗
점점 희미해져 가던 관문 너머의 불빛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이 징조가 무엇인지, 이 자리에 모인 여섯은 잘 알고 있었다.
“나온다.”
“드디어…”
이 사태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두의 시선이 관문과 그 너머 구현의 방을 향해 집중됐다.
곧.
환한 빛 사이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살에 파묻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턱선. 금방이라도 뱃살 때문에 터질 것처럼 위태로운 셔츠.
신검공의 셋째 아들, 이안 아슈타르였다.
“음?”
방에서 나온 이안은 자신을 경계하는 여섯의 눈길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왜 그러지?’
살기는 아니었지만, 고작해야 조금 살 빠진 돼지일 뿐일 자신을 이토록 경계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아, 설마 나 때문에 집에 늦게 간다고 그런 건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이안이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네 페르소나는 뭐냐.”
“응?”
어깨에 붉은 창을 맨 붉은 머리의 사내가 물었다. 이안은 곧 그가 참룡공의 자식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네 손에 들린 이상한 물건이 뭐냐고 묻는 거다.”
라이덴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기본적으로, 각 공가에서는 세계의 모든 신화를 암기하도록 강요한다.
신화적인 힘을 낼 수 있는 페르소나를 만들기 위해선, 그 무기를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하니까.
라이덴 역시 이 세계의 신화와 전설이라면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뭐지, 저건?’
이안이 들고 있는 페르소나만큼은,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아, 이거?”
무슨 말인지 깨달은 이안은 오른손에 들린 페르소나를 들어 보였다. 여섯 쌍의 눈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페르소나를 그대로 따라갔다.
“풋.”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안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녀석을 쥔 순간, 전생의 자신감이 몸 어딘가에서 샘솟았다.
마침내, 이안의 입이 열렸다.
“소개할게.”
이것은 개인병기의 정점.
지구를 수천 년간 지배한 냉병기의 시대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물건.
그리고 이안이, 지구의 강민혁이 다루던 애병.
“글록19.”
만병지왕(萬兵之王)이지.
흑색의 권총을 빙글, 돌린 이안이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