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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6화 (7/224)

#6화

‘위험하다.’

자신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알리아의 눈빛에, 그의 본능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뱉었다.

“돼지,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어설프게 방어 자세를 취한 이안을 본 알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고작 저 정도로의 힘으론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잉

곧, 그녀의 눈이 요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의 눈동자에 박힌 마력이 타오르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건.’

순간, 이안의 마음에서 그녀에 대한 적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면?’

이상함을 느낀 이안이 저항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잘못 걸렸어.’

방심했다.

이곳은 지구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신과 마법이 존재하는 곳이란 것을 이미 알면서도 잊고 있었다.

이안은 마력의 족쇄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페르소나를 자유롭게 다루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순간에도 알리아는 마력의 푸른빛으로 물든 눈과 함께 한 발짝씩 이안에게 다가왔다.

그 때.

“꺼져라, 미친년.”

자기 키만한 지팡이를 든 백발의 소년이 이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져있었다.

“왜 그래, 파이톤? 나는 그냥 우리 돼지가 걱정돼서 찾아온 거라고.”

파이톤의 기세를 느끼곤 마력을 거둔 알리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받은 듯한 은발 요정의 가련한 표정은 뭇 남성들을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탈마공의 자식 중 하나, 백염의 파이톤에겐 통하지 않았다.

“웃기지 마. 아직 영궁도 가지지 못한 네 년의 속셈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냐?”

“무슨 소린지, 나는 잘 모르겠는 걸?”

파이톤의 말에 알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안은 그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이런 빌어먹을 년이…’

눈앞의 아름다운 요정은 그의 영혼을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은 탈마의 계약자다. 솜털이라도 건드렸다간 전쟁을 각오해야 할 거야.”

“건드리긴 누가 건드린다고 그래? 꼬맹이 주제에 살벌하다, 살벌해.”

파이톤의 위협을, 알리아는 장난스레 받아쳤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우리 돼지, 그럼 앞으로도 수련 열심히 해야 돼?”

말을 마친 알리아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안에게 손을 흔들곤 자리로 돌아갔다.

“너도 알겠지만, 이게 네 위치야. 다른 공가의 사람들에게 언제든 네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위치.

굳은 얼굴로 알리아를 노려보던 파이톤이 입을 열었다.

“가문에서 벗어나 마경에 들어서게 되면, 마족보다 인간이 무섭단 걸 깨닫게 될 거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남의 입으로 듣자니 이안의 기분이 꽤 더러워졌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이안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우리는 정당한 계약에 따른 거래관계일 뿐이야. 실제로 네게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을텐데?”

파이톤의 말에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영혼이 뽑힐 뻔했다는 그 더러운 기분이 그의 입을 끈적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탈마의 계약자다. 계약기간 동안은 얼마든지 네 안전을 보장하지. 원한다면 연장계약도 좋고.”

말을 마친 파이톤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됐어.”

“역시 멍청한 놈이야.”

말을 마친 파이톤이 입술을 구긴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이안은 제자리에 서서 방금의 일을 곱씹었다.

‘반성해야겠어.’

너무 쉽게 생각했다.

요정의 도움 덕에 이안은 이곳이 제법 평화로운 곳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살생이 금지된 영성의 홀 안에서야 별 위험이 없겠지만, 이곳을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생존을 위해선 더욱, 더욱 더 높이 올라가야 했다.

봉우리의 정상까지.

이안의 육중한 다리가 힘 있게 땅을 디뎠다.

쿵쿵쿵쿵

몇 바퀴를 돌기도 전에 다리근육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이안은 생각했다.

‘이 불공평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육체의 단련.

그리고 다른 하나는.

‘페르소나.’

페르소나의 수여식까지는 앞으로 하루.

‘모든 걸 건다.’

이안의 눈이 빛났다.

***

마지막 날.

이안은 달리지 않았다.

이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자신의 페르소나를 다듬기 위해 수련했을 자격자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두가 영성의 홀 한쪽에 세워진 관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이 열리면 홀의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는 계속 개방되어있다. 그 시간 안에 저 구현의 방에 들어가서 페르소나를 제작하는 거지.”

“그러면, 조금 늦게 들어가도 상관 없는 거 아냐?”

이안의 말에 파이톤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돼서 문이 닫히는 순간, 페르소나의 제작도 멈춰버려. 내년에 다시 여기 올 게 아니라면 일 초라도 더 빨리 만들어내는 게 좋으니까. 자격자들이 대기기간 동안 수련하는 것도, 제한시간 동안 최대한 빠르게 페르소나의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말을 마친 파이톤은 이안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마족의 피를 이은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마력이 이안의 몸을 더듬었다.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이안의 살찐 이마가 찌푸려졌다.

곧, 이안의 몸에 붙어있던 손톱만한 측정 장치들이 파이톤의 손으로 돌아갔다.

“이것으로 계약은 끝이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이 녀석으로 연락하도록.”

말과 함께 파이톤이 무언가를 던졌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잡아챈 이안은 그것이 손가락만한 크기의 구슬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통신용 마법기.’

마도의 극의에 다다른 탈마공의 비전으로 만들어 낸 마법기라면, 밖에서는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싼 물건.

이런 귀물을 아무 말 없이 던져준다는 것만으로도, 파이톤이 얼마나 몸이 달아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놈이고 저년이고. 나한테 관심 있는 녀석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제로 뺏지만 않는다 뿐이지, 그의 영혼에 관심이 있는 것은 눈앞의 어린 마족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힘이 필요했다.

그 누구도 이안의 두 번째 삶에 훼방 놓을 수 없게 할 만큼의 강력한 힘이.

그 때.

기이이잉

귀를 찌르는 소리와 함께 구현의 방을 가로막던 대문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곧, 굳게 닫혀있던 거대한 문이 굉음과 함께 양쪽으로 열어젖혀졌다.

구현의 방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에 이안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타타타탓

문이 열린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 앞에 모인 자격자들이 순백의 방을 향해 달려갔으니까.

‘젠장, 늦었잖아?’

뒤늦게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린 그는 관문에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그가 관문 너머에 발을 디딘 순간.

위이잉

‘뭐, 뭐야?’

구현의 방을 처음 경험한 이안은 당황했다.

관문 너머로 발을 디딘 순간, 눈앞을 밝게 물들이던 빛은 사라지고 칠흑같은 어둠만이 남았으니까.

곧, 어둠 속에서 인공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리자의 자격 확인. 3급 권한 부여.]

‘관리자? 3급?’

처음 듣는 용어에 이안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도노반 경에게도, 파이톤에게도 구현의 방 내에서 이런 과정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정말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파아앗

어둠으로 가득 찼던 이안의 눈앞에 느닷없이 행성 하나가 나타났으니까.

‘지구가 아냐.’

옹기종기 모인 대륙이 셋, 그리고 행성의 반대쪽 절반을 차지하는 대양.

이건 분명, 이안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안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의 시선은 점점 행성과 가까워졌다.

대륙. 그리고 섬.

시야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곧, 이안은 눈앞의 섬이 영성의 홀이 위치한 이 곳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확대는 계속됐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면에 이안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순간.

행성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틈 사이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순백의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구현의 방에서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

연속된 이변에 이안은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안을 바라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관리자여.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을 살폈다.

‘적의는 없어.’

하지만 지금은 돌발 상황.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이안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넌 누구지?”

이안의 물음에 프레이야는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제 이름은 프레이야.”

그리고 그 대답은 이안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대 마족병기 제조시스템의 제어정령입니다.”

‘대 마족병기? 제어정령?’

대답을 들은 이안의 머릿속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대 마족병기, 제조시스템.

익숙한 용어가 이 세계에서 튀어나오자 이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 마족병기? 그럼, 너는 페르소나와는 관련이 없는 건가?”

“페르소나라, 그러고 보니 물질계의 거주민들이 이 병기를 그렇게 불렀군요.”

이안의 말에 프레이야는 웃으며 어둠 한 구석을 가리켰다.

지이잉

그러자 행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SF영화의 홀로그램과 같은 장치가 등장했다.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형태를 구현하도록 설계된 물건이니, 거주민들에게는 평범한 병기로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랑은 너무 다른데.”

“그래봐야 병기의 본질은 살육이니까요. 물론 그 대상이 마족을 향한다는 게 조금 다릅니다만.”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은 경계하면서도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그녀가 등장했을 때, 이안은 마법의 신이라던 갈리우스가 페르소나를 직접 내려주기 위해 재림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그저 병기공장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아닌가.

하지만 이안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그럼, 내가 얻었다는 3급 권한은 뭐지?”

도노반의 말을 떠올려보면,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은 보통의 자격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렇다면 저 듣도 보도 못한 3급의 권한이란 것도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3급의 권한을 가지고 계신 관리자께서는.”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적중했다.

“시스템의 상시 개방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지?”

“관리자님께서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스템의 정기개방일이 아닌 시기에도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것이 가능하십니다.”

막힘없는 프레이야의 대답에 이안은 잠시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말하자면, 이안은 이 시스템, 구현의 방의 자유이용권을 얻은 셈이었다.

그렇다는 건,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것.

“더 이상의 질문이 없으시다면, 병기 제작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대답과 동시에, 프레이야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눈앞에 흑색의 스크린이 떠올랐다.

[관리자님의 권한에 따라, 시각 연동형 설계시스템을 실행하였습니다. 원하는 형태와 작동구조를 떠올리시면 눈앞에 그 구현결과가 나타날 겁니다.]

이미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완벽히 끝낸 이안에겐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프레이야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안은 눈을 감고, 파이톤이 가르쳐 준 마력운용법을 떠올렸다.

마력운용법은 마법의 대상을 구현하기 위해 밑바탕에 깔아야 하는 일종의 마력 프로그래밍.

이안이 배운 것은 마력운용법 중에서도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었으니, 페르소나의 형태만을 갖추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리라.

하지만.

‘업그레이드가 가능하잖아?’

이안에게는 구현의 방 자유이용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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