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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5화 (6/224)

#5화

영성의 홀의 숙소 중 하나의 문.

그 앞에 선 파이톤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꼭 이 방법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파이톤의 고민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미 결론은 나 있는 상태였으니까.

“해야 해.”

혼잣말과 함께 마음을 다잡은 파이톤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것이.

평생을 건 연구를 완성시킬 방법이었으니까.

***

“두 바퀴, 아니 한 바퀴만 더 돌았어도 좋았을 텐데.”

숙소로 돌아온 이안은 입맛을 다셨다.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였다.

밤이 되면 영성의 홀은 문을 걸어 잠궜으니까.

수련할 장소와 회복해줄 친구가 사라졌으니, 그보다는 차라리 페르소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구상은 그럭저럭 해놓은 상태인데, 마력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단 말이지.’

침대에 누워 가쁜 숨을 씩씩 내뱉던 이안은 생각했다.

‘설계는 이미 끝났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간지각능력과 기억력, 상상력을 바탕으로 수 일 간의 작전계획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던 이안이다.

그에게 병기의 형태와 작동방식을 머릿속으로 구현하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

문제는 마력이다.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춰야 하는 건가? 무협지나 판타지소설 주인공은 그냥 느낌으로 하던데. 그보다, 이 몸에 마력이 있긴 한 거야?’

혹시 몰라 기억창고를 뒤져봤지만,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쳐먹고 노는 것 밖에 모르던 전 주인이 그런 것을 생각이나 했을 리가 없었다.

“머저리같은 놈.”

이안의 입에서 절로 욕이 새어나왔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안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생각보단 상황이 좋아.’

최소한 이 버러지같은 몸을 최단시간 안에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은가.

설사 페르소나를 얻지 못하더라도 자다가 숨이 막혀 죽는 일은 없겠지.

기왕 얻은 삶이니, 이안은 가능한 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을 계획할 생각이었다.

“마력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안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그 때.

벌컥!

아무런 기척도 없이 방문이 활짝 열렸다.

“흡!”

이안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자세를 취했다.

살이 뒤룩뒤룩 찐 몸이라 어설프긴 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하지만, 문 뒤로 나타난 것은 이안의 예상을 벗어난 존재였다.

“…파이톤?”

문 밖, 백발의 소년이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무슨 일이지?”

혹시나, 이안의 기억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 찾아온 것일 지도 몰랐다. 이안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로브를 걸친 소년은 우물우물거리며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영성의 홀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할 말이 없다면 돌아가는 게 좋겠군. 나도 쉬어야 하니까 말이지.”

말을 마친 이안이 조심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해 올지 몰랐으니까.

곧, 이안의 두툼한 손이 문 손잡이에 닿았다.

그 순간.

“거, 거래를 하자!”

“…거래라고?”

발악처럼 내지른 꼬맹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

“그래. 눈을 감고 무의식 아래로 내려가는 거야.”

탈마공의 차남. 그의 머리칼과 같은 백색의 화염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백색의 파이톤은, 더듬거리며 이안의 명상을 도왔다.

눈을 감으며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결국, 이안과 파이톤은 거래에 합의했다.

마력운용법을 대가로 이안이 제공하는 것은 영성의 홀에서 지내는 이틀 동안의 신체데이터.

이 몸은 본디 그의 것이 아니었으니, 이안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눈을 감은 이안은 천천히 내면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마력을 다루기 이전, 먼저 몸에 있는 마력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이 돼지에게 마력이 있기나 할까?’

이 몸의 전 주인은 마력과 관련된 수련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마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일지도 몰랐다.

‘도노반 경에게 영약이라도 구해달라고 해야겠군.’

마력을 머금은 생물인 영약 한 두 개로 얻을 수 있는 마력은 미약하겠지만, 그렇게라도 마력을 만들지 않으면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안이 잡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의식은 점점 아래로 잠겨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안은 곧 자신의 모든 신체를 시야 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

몸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의 눈이 커졌다.

그는 몰랐지만, 이 몸의 전 주인인 이안 아슈타르가 먹어온 음식들은 내로라하는 영약들.

본디 마력이 담긴 재료들은 마력의 힘에 의해 일반적인 식재료와는 그 격이 다른 맛을 만들어내니까.

그러니.

‘뭐, 뭐야 이건?’

몸을 관조하던 이안의 눈에, 마치 마블링처럼 체내에 녹아든 거대한 마력이 보인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

영성의 홀 한 구석, 창에 어깨를 기댄 붉은 머리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길쭉길쭉한 팔다리와 잘 어울리는 한 자루의 적창(赤槍)에선 용이라도 일격에 격살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시퍼런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저거, 인간 맞아?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붉은 머리의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옆에 있던 청의 사내가 피식 웃었다.

“인간은 아니지, 돼지새끼잖아.”

“돼지새끼라기엔 너무 튼튼한데. 너라면 저런 식으로 할 수 있겠어?”

“너는?”

“…난 그냥 집에서 발 닦고 잘란다.”

청의 사내의 반문에 붉은 머리 사내는 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청의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도 알잖아? 우리는 저렇게 무식한 방법이 아니어도 충분히 단련할 수 있다고.”

사실이었다.

신성력이나 마력을 활용한 치료는 각 공가의 수련방법에 하나씩은 꼭 끼어있지만, 그것이 무릎이 꺾이고 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고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 정도 수준의 자기학대라면 회복하기도 전에 그대로 죽어버릴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적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너, 사흘 전의 저 녀석 기억해?”

“그냥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포대자루였지. 처음 봤을 땐 어떻게 살아있나 싶었다니까?”

“다시 잘 봐봐. 그 때랑 뭐가 달라졌는지.”

적의 사내의 턱짓에 청의 사내는 다시 이안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친구를 향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에 오러 빵빵하게 넣고 다시 봐봐. 뭐가 다른 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청의 사내는 눈에 오러를 주입시킨 다음 영성의 홀을 뛰어다니는 이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오러가 이안의 비만한 신체 내부를 낱낱이 밝혀냈다.

그리고 이안을 한참동안 바라본 사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 마력이…”

‘마력이 녹아들고 있어.’

벌써 네 번의 질주를 마치고 무릎이 박살난 이안은 격통을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

전신의 지방에 마블링처럼 박혀있던 마력은, 이안이 달리기를 하면서 지방을 연소시킬 때마다 불판에 올라간 꽃등심 속 지방처럼 체내에 녹아들었다.

이제, 심장을 중심으로 모여든 마력은 이안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제법 거대해졌다.

‘마력을 전부 녹여내면 전생보다 더 강해질지도 모르겠는걸?’

전생에 사용하던 완벽에 가까운 육체에, 인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마력이 결합한다면 그 힘은 제법 쓸 만 하리라.

‘우선은 페르소나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겠지만.’

그게 이안이 이곳에 찾아온 본 목적이었으니, 우선은 거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마르콘, 치료.”

무심한, 아니 불경하기까지한 목소리에 신성력이 깃들었다.

‘저런 기도로 치료를 해도 되는 건가?’

박살난 연골이 제 자리를 찾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성광공의 핏줄이 신의 사랑을 받는 자인 가즈 러버(God‘s Lover)라곤 들었지만, 저건 기도가 아니라 숫제 명령이지 않은가.

“이봐, 친구. 아무리 그래도 신인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다니엘에게 딱히 대답을 바랬던 건 아니다. 대답을 해주지도 않았고. 치료받는 동안 심심해서 말이나 걸어봤을 뿐.

하지만.

“어차피 아버지나 내가 없으면 물질계에 손톱만큼의 영향도 행사할 수 없는 반푼이들이다. 고위 신법도 아니고, 이런 간단한 신법에는 그 정도면 충분해.”

무슨 일인지, 오늘따라 그는 이안의 말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뭐 잘못 먹었나?’

미묘하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본 이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니엘의 속내는 달랐다.

‘강철같은 정신력이야. 어떻게 이런 녀석이 여태껏…’

신과의 소통을 위해선 신의 존재감에 지워지지 않을 강인한 영혼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성광공의 피를 이어받은 다니엘 역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정신력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난 못해.’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다.

신체를 분해했다 재조립하는 고통을 하루에도 수번씩 겪는 것은 제 아무리 뛰어난 정신력을 가졌다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초대 통합주교께서도 이 정도의 정신력을 지니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는, 쓰러져있는 돼지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럼, 필요할 때 불러라.”

할 말만 간단히 끝낸 다니엘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회복된 몸을 일으킨 이안은 자신의 몸을 훑어봤다.

‘변화가 있어.’

지구였다면 놀랄 일이다.

아무리 강도 높은 운동을 한들, 고작 사흘 만에 신체의 변화가 일어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난 사흘 동안 이안의 운동량은.

‘한 달치는 되는 거 같은데?’

신성력이 가져다준 무한한 체력과 이안의 강철같은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살은 좀 들어갔군. 아직 뚱뚱하긴 하지만…’

최소한, 이제는 단추 사이로 살이 삐져나오는 일은 없었다. 소시지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있던 팔다리도 조금은 제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자다가 살에 눌려서 숨도 쉬지 못하던 사흘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운이 좋았지.’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이안은 홀의 한 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안공의 차녀이자 차세대 신궁, 알리아 이그드라실이 신목으로 만든 장궁을 든 채 벽을 겨누고 있었다.

‘벌써 여덟 시간 째군.’

이안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뛰어난 눈썰미를 가진 이안은 여덟 시간 전과 지금 그녀의 자세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수 시간동안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은 요정의 혈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도의 기예이자 재능.

‘저런 녀석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나를…’

이안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단련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은 나태한 돼지. 신검공의 피를 이었음에도 아비 얼굴에 먹칠을 하는 희대의 불효자.

그런데, 모든 요정의 지배자라는 심안공의 차녀에 차세대 신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정점에 다다른 기예를 지닌 자가.

‘뭐가 아쉬워서?’

돼지나 다름없는 이안에게 친절을 베푼단 말인가.

그때.

‘음?’

여덟 시간동안 일말의 움직임도 없던 그녀가,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뭐야, 돼지 아냐?”

은발머리를 허리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채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알리아의 모습은 제법, 아니 굉장히 유혹적이었다.

이 몸의 전 주인이었다면 곧장 눈앞의 요정을 향해 달려들었을 만큼.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위험해.’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 위에 자리 잡은 눈.

이안은 저 눈빛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포식자.’

뱀의 눈을 마주한 이안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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