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침대에서 눈을 뜬 이안은 가장 먼저 몸 상태를 확인했다.
‘완전히 정상이야.’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러진 팔과 앞니도, 으깨진 내장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으니까.
지구의 의학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기억창고를 뒤적거린 이안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력, 혹은 신성력인가.’
지구와는 달리, 이 세계의 생물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형태의 에너지들.
‘참, 대단해. 어떤 면에선 지구보다 발달한 세계란 말이지.’
잠시 기적에 감탄하던 이안은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비루먹은 몸뚱이부터 사람처럼 만들고…’
아무리 좋은 무기를 손에 쥔들 육체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전투는 성립되지 않는다.
목표는 전생의 육체.
‘육 개월, 길어야 일 년이면 되겠지.’
이안이 갖고 있는 온갖 트레이닝 방법이라면 이 비계로 가득 찬 몸뚱이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개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페르소나.’
사실, 이안은 페르소나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마법의 신이 내려주는 병기라는 것 정도.
이 몸의 전 주인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쾌락을 탐닉하길 원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도노반 경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경험 많은 노기사라면, 분명 마력병기인 페르소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결론이 썩 마음에 든 이안이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때.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깨어난 이안을 발견한 도노반이 이안에게 달려와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그만해.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아니까.”
도노반의 부담스러운 걱정을 참다못한 이안이 노기사를 슬쩍 밀쳐냈다. 노기사는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제 주인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자님의 곁을…”
“아냐, 그건 이미 끝난 문제야. 그보다.”
이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호위 따위가 아니었다.
정보.
“페르소나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줘.”
“페, 페르소나… 말입니까? 페르소나는…”
도노반은 이안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설명을 시작했다.
페르소나는 마경의 마족들로부터 인계를 지키기 위한 대 마족병기.
그 기원부터 얻는 방법과 위력까지. 자격자가 아님에도 도노반의 설명은 제법 상세했다.
하지만 설명을 듣는 이안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붙은 뒤룩뒤룩한 살들이 기괴한 각도로 푸들거렸다.
“…입니다.”
“그게 끝이야?”
“네. 제가 아는 한에서는 전부 설명해 드렸습니다, 공자님.”
“젠장.”
“…공자님?”
이안의 입에서 나온 상소리에 도노반이 당황해했지만, 이안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노반의 말대로라면.
이안이 페르소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0에 한없이 가까웠으니까.
***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영성의 홀을 가득 메웠다.
본디 영성의 홀은 페르소나의 자격자들이 대기기간 동안 자신이 가질 페르소나의 형태를 다듬어내는 곳.
페르소나를 만드는 데에는 육체의 힘보다는 마력의 설계능력과 실체를 구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요구되었으니, 육체단련을 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지만 굳이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헉, 허억.”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무릎은 망가진 경첩마냥 삐걱댔고, 다리근육에서 불구덩이에 집어넣은 것 같은 격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일 초도 쉬지 않았다.
단련이라기보다는 고행, 혹은 자해라고 해야 할 수준의 무자비한 질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로 인해 뇌에서 뿜어내는 마약은 이미 듣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근육과 관절의 한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결국.
우드득!
육중한 몸뚱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안의 무릎은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반대방향으로 꺾여버렸다.
“으윽…”
바닥에 나뒹군 이안의 잇새에서 미처 참지 못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안도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의 무리한 훈련은 몸을 망가뜨릴 뿐이란 것을.
지구의 강민혁이라면 절대로 이런 무식한 방식의 훈련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였다면 말이다.
“마르콘이여, 이 자를 치료해주시오.”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오만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이안의 몸으로 눈부신 빛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파아앗
오만한 목소리에 담긴 말은 신을 향한 것이라기엔 너무나 불경했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우득 우드득
꺾인 무릎이 제 자리를 되찾고, 끊어지기 직전이었던 근섬유가 더욱 튼튼하게 재생되었다. 한 톨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던 근육에 다시금 힘이 차올랐다.
파앗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이안의 몸은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의 상태로 돌아왔다.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구라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지.’
아무리 뛰어난 의학기술이라도 걸레짝이 된 사람을 오 분 만에 완치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신성력은 가능했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근섬유를 회복시켜 이전보다 더 강인한 근육을 갖게 해준다.
그 이야기인 즉.
‘이론상, 무한한 단련이 가능하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안은 큰 책을 옆구리에 낀 청년을 보며 씨익 웃었다.
“고마워. 매번 신세만 지는데?”
“감사는 저 쪽 요정에게나 해. 그리고 나한테 말 걸지 마, 돼지 자식아.”
말을 마친 사내, 다니엘은 경멸의 눈초리로 이안을 훑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짜식, 성격 한번 뭣같네.”
이안은 툴툴댔지만, 그렇다고 고마운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 재수 없는 녀석이 가진 힘, 신성력 덕분에 몸을 만드는 시간을 제법 단축시킬 수 있었으니까.
녀석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이런 무식한 방법은 애초에 경우의 수로 넣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놈이지. 만신전(萬神殿)의 힘을 모두 이끌어낼 수 있다니.’
저 따위 기도문으로 신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들의 총애를 얻고 있다는 것.
분명, 녀석 역시 성광공에 뒤지지 않는 신성력을 지니고 있으리라.
그러나.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지.’
페르소나를 얻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이안이 신경 쓸 상대는 아니었다.
이안은 가볍게 -하지만 워낙 비만한 몸이라 이 마저도 힘겨웠다- 스트레칭을 한 다음 다시 홀을 달렸다.
‘우선은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페르소나를 만들기 위해선 마력을 다룰 수 있어야했지만, 마력의 `ㅁ`도 모르는 이안이 당장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이 고갈되지 않는 한 소진되지 않는 체력을 얻었으니, 육체를 조각하는 데 힘을 쓸 뿐이다.
‘목표는 전성기의 육체.’
일어선 이안은 다시 달리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
영성의 홀 한 구석.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던 백발의 소년이 번쩍 눈을 떴다. 소년의 고개가 헐떡이는 숨소리를 따라갔다.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살덩이를 가득 안고, 몸에서 땀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달리는 금발의 돼지.
하지만 소년은 그를 비웃지 않았다.
‘다섯 번째.’
이안이 달리기를 한 횟수.
다시 말해, 이안의 몸뚱이가 반나절 동안 네 번이나 부서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저 돼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뛰고 있다.
단순히 몸이 회복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받는 고통은 똑같을테니까.’
아무리 몸뚱이가 회복된다 한들, 정신이 고통을 거부한다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 돼지는 벌써 다섯 번째.’
그 고문의 끝에 무엇이 다가올지 알면서도 그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좋아.’
그 기행, 혹은 자해를 지켜보던 소년의 눈에 순간 광채가 번뜩였다.
***
“…뭐라고?”
뒤틀린 양 쪽 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격통에 인상을 찌푸린 이안이, 눈앞의 작달막한 소년을 바라봤다.
“나와 거래를 하자.”
“무슨 개소리야?”
이안은 어이가 없었다.
나이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백발의 소년. 그 것도 일면식도 없는 녀석이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거래요청이라니.
‘백염의 파이톤.’
녀석의 정체를 가까스로 기억창고에서 떠올리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핏줄과 지방뿐인 이안에게 도대체 무엇을 거래하자는 것인가.
하지만, 소년의 다음 말에 이안은 생각을 바꿨다.
“페르소나, 필요하지 않나?”
“…페르소나?”
“분명 너같이 허약한 녀석이라면 마력운용법도 모를 테지. 페르소나를 만들러 온 주제에 말야.”
분했지만 사실이었다.
페르소나보다는 술과 고기에 관심 있던 전 주인 덕분에, 이안은 마력설계는커녕 마력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기초수준이긴 하지만, 내가 알려주겠다. 거래에 응하기만 한다면.”
“뭘 원하지? 살이라도 좀 떼 줄까?”
이안이 비아냥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이안에겐 정말로 줄 게 없었으니까.
눈앞의 소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경계뿐이었다.
“아니, 그런 더러운 건 필요 없다. 필요한 건 네 기억이지.”
“기억?”
상대가 원하는 것은 이안의 예상 밖이었다.
‘농담인가?’
하지만 농담이라기엔 상대의 반응이 너무나 진지했다. 이안의 두터운 이맛살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
“네 녀석이 가진 강철 같은 의지의 근원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어째서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녀석이 이렇게 나태한 삶을 살아왔는지도.”
파이톤은 로브 주머니에서 자신의 주먹만 한 구슬을 꺼내들었다. 구슬의 내부에 차 있는 회색의 기체가 불길한 모양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이 곳에 네 기억을 복사해주기만 하면 된다. 고도의 흑마법으로 제작된 마법물품이라 기억을 잃을 염려도 없지. 마력을 건 계약은 마법의 신 갈리우스께서 직접 관여하시니 사기당할 걱정도 없다.”
제법 괜찮은, 아니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거래였다.
가문 고유의 마력운용법은 마력을 다루는 각 가문의 극비중의 극비. 그것이 기초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지금 눈앞의 소년은, 아무리 기초라지만 마법의 극의에 다다른 탈마공의 마력운용법을 제공하겠다 말하고 있었다.
고작 기억 따위로.
“돌았군.”
“마력운용법을 넘기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증거로, 파이톤의 말을 들은 다른 자격자들이 그를 미친놈 보듯 하지 않는가.
누가 봐도 이안에게 크나큰 이득이 아닐 수 없는 거래.
파이톤도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득의한 웃음을 만면에 꽃피웠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
“…뭐? 어째서?”
이안의 대답을 들은 파이톤의 미소에 금이 갔다.
설마 이안이 거절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당황이 삐져나와있었다.
“사정이 있거든. 내 기억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썩 내키진 않고.”
이안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으니까.
하지만 저 거래에 응할 수는 없었다.
‘내 기억의 반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니까.’
혹여 기억을 제공했다가 이안의 정체가 들통 나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아쉬웠는지, 이안은 연신 살찐 입술을 쩝쩝댔다.
“하, 고작 과거의 데이터 따위를 지키겠다니, 생각보다 멍청한 녀석이었어.”
비틀린 미소를 지은 파이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뭐, 별 수 있나.’
이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으니까.
“멍청한 놈.”
옆에서 둘의 거래를 지켜본 다니엘이 비웃었다.
정말, 차기 신궁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이런 돼지 녀석에게 아까운 신성력을 퍼붓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안은 다니엘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나도 알아.”
멍청하고 미련하지 않다면, 이런 정신 나간 고행을 계속할 리 없으니까.
“뭐라고?”
다니엘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엉덩이를 툭툭 턴 이안은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여섯 번을 더 쓰러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