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고풍스러운 장식과 가구들이 가득한 호화로운 방.
방의 한 가운데, 세 사람은 너끈히 잘 수 있을 만큼 넓은 침대 위에 한 사내가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컥, 커흑.”
얼마 지나지 않아, 힘겹게 숨을 헐떡이던 사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민혁은 번쩍 눈을 떴다.
“허억!”
정신을 차린 그는 몸을 벌떡 일으키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 어떻게…’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NIS의 특급 블랙 요원인 강민혁은.
분명.
‘죽었는데…’
죽었으니까.
살아날 확률이라곤 절대 있을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죽음.
자신이 죽기 전 기억을 되새긴 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작전은 실패했지.’
은퇴를 앞둔 민혁이 맡은 마지막 임무.
여러 나라의 최고 정예요원들로만 구성된 팀에는 당연히 강민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젠장, 사람이 둘만 더 있었더라도.’
하지만 작전은 실패했고.
‘타앙!’
그 대가는 민혁의 죽음이었다.
‘꽤 시끄럽겠는데?’
여러 국가가 얽힌 작전이었으니, 그 실패의 반동 또한 만만치 않으리라.
‘사냥개인 내가 알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일은 민혁의 윗사람들이 처리할 문제.
민혁이 정말로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민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강인한 인간인 들, 뇌와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뛰고 있어.’
목에 갖다 댄 그의 손가락엔 심장의 힘찬 고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천국이라도 되나… 어?”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은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언어도.
‘한국어가 아니야.’
타국 요원과의 합동작전을 위해 민혁은 5개 국어를 익혔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언어는 한국어도, 영어도, 프랑스어도 아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언어. 하지만.
‘20년 배운 영어보다 쉽게 써지다니.’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익힌 모국어처럼 정체불명의 언어는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거기에, 몸은 또 왜 이리 무겁고 축 쳐져있단 말인가.
‘무슨 모래주머니라도 찬 것처럼…’
민혁의 의문스러운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으로 향했다.
그리고.
몸 상태를 확인한 그의 눈썹이 팔자 모양으로 휘어졌다.
“내 몸이 이런 돼지라고?”
민혁은 짧게 탄식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조차 하지 않은 것 같은 허여멀건 한 피부.
햄과 소시지를 얼기설기 붙여놓은 것 같은 비만한 팔뚝과 손.
셔츠 아래로 보이는 터질듯한 뱃살.
‘인간이 아니라 그냥 돼지잖아?’
평생을 훈련과 함께 살아온 민혁에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살덩이들이 마치 모래주머니처럼 민혁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거울, 거울을 봐야겠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입을 쩍 벌린 민혁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의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이, 이건 누구야?”
거울을 확인한 민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거울 반대편에는 옛날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옷을 입은 금발의 비만한 소년이 서 있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자신의 몰골을 두 눈으로 목격한 민혁은 경악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
아무리 냉철한 정신을 가진 민혁일지라도 혼란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때.
“이안 공자님, 도노반 입니다.”
하늘에 맹세코, 민혁이 살아온 동안 처음 들어본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꽂혔다.
그리고, 민혁의 머릿속 깊숙이 파고든 이름.
‘이안.’
민혁이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인 순간.
파앗
그의 눈앞이 빛으로 새하얘졌다. 동시에.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