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0화 (1/224)

#프롤로그

“나약한 인간이 주제도 모르고 홀로 찾아왔구나.”

마경을 지배하는 열한 군주 중 하나.

아스타토트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인간 사내를 비웃었다.

“혹, 투항을 원하는 것이냐? 안타깝지만. 우리 마족들은 포로를 잡지 않는다.”

그의 앞에 선 인간의 수준은 필멸자들이 말하는 마스터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자.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강함을 가진 그의 기준에는 너무나 하찮고도 나약했다.

하지만.

“야.”

코트 안에 두꺼운 조끼를 걸친 금발의 사내는.

“한 번만 말한다.”

자신보다 곱절은 거대한 마족을 상대로 씨익 보였다.

“뭐…?”

“지금 당장 손들고 무릎 꿇어. 시키는 대로 하면 목숨은 붙여줄 테니까.”

장난스레 두 손을 들어 보인 사내는.

곧 손에 쥔 짧은 막대기를 마왕을 향해 겨누었다.

동시에 마왕의 몸에 붉은 점 하나가 작게 생겨났다.

“…크흐흐. 겁에 질려 미쳐버리기라도 했나 보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아스타토트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지 않았다.

그 웃음 안에 숨겨진 것은, 지독하리만치 진한 살의.

“마경을 다스리는 열한 군주 중 하나, 나 아스타토트의 이름에 걸고 맹세한다.”

숨을 크게 들이킨 마왕이 씹어뱉듯 말을 이어나갔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낸 다음, 그 영혼을 뽑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지.”

마왕의 맹세에는 힘이 담겨있다.

지키지 못한다면 자신조차 파멸해버릴 만큼 강력한 저주.

그것은 곧,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눈앞의 인간을 찢어버리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마음대로 하라고. 찢어 죽이던, 영혼을 뽑던.”

듣고 있던 금발의 사내, 이안에겐 별 감흥을 주지 않았지만.

짤깍

빈정거리던 사내는 두려워하는 대신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뭐.”

10초.

“이걸 맞고도 살 수 있다면 말이야.”

시계를 다시 집어넣은 사내는, 분노한 마왕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마왕의 맹세가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아스타토트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말을 마친 마왕이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오오오

대기가 전율했다.

공기 중에 흩어진 마기 중에서도 마왕만이 다룰 수 있는 순도 높은 마기가 그의 몸에 가득 스며들었다.

저 필멸자의 나약한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엔 차고도 넘치는 힘.

“차라리 죽여 달라 울부짖게 해주지.”

아스타토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때.

쐐애애애액

하늘을 찢어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마경을 뒤덮었다.

“음?”

아스타토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점이었다.

밤하늘의 별보다도 작은 별이 하늘에 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이 다가오자.

“기둥?”

아스타토트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꽁무니에서 흰색의 연기와 굉음을 뿜어낸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저 거대할 뿐인 기둥.

쐐애액

그 기둥이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하, 고작 이런 기둥 따윌….”

아스타토트는 코웃음 쳤다.

마왕은 마경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스물 안에 드는 강자.

고작 금속으로 만든 기둥 따위로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안쓰럽구나.”

아스타토트는 결정했다.

“네 알량한 자신감의 근원이 고작해야 저런 쇳덩이라는 게 말이다.”

눈앞에서 비릿하게 웃고 있는 사내를 찢어버리기 전에, 최대한의 절망감을 심어주기로.

“보아라, 그리고 절망해라!”

온몸에서 보랏빛 기운을 뿜어낸 마왕은 가슴을 죽 편 채 낙하하는 금속 기둥을 응시했다.

우우웅

마왕만이 다룰 수 있는 고순도의 마기로 만들어 낸 보호막은, 잘 벼려진 검조차 통하지 않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네놈의 나약함에!”

쇳덩이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마왕이 불쾌한 목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곧 절망에 빠질 사내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안은 절망하는 대신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누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

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쇳덩이가 아니었으니까.

“처맞기 전까지는.”

P-700 그라니트.

바다에 떠다니는 요새,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슈퍼 캐리어(Super Carrior)급의 항공모함을 사냥하기 위해 태어난 최강의 대함미사일.

"무슨…."

아스타토트가 순식간에 다가온 미사일에 채 반응하기도 전.

쐐애애애애액

길이 10M, 무게 7톤의 쇳덩이가 마왕을 향해 마하 7의 속도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후폭풍과 뜨거운 열기가 제법 멀리 떨어진 사내의 피부를 자극했다.

마왕의 몸뚱이를 찢어발기기에, 미사일에 담긴 1톤의 폭약과 운동에너지는 차고도 넘칠 수준.

마경의 열한 군주 중 하나, 아스타토트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고오오오

마왕.

아니, 한때는 마왕이었던 붉은 화염을 향해서.

“병신.”

신검공의 자식이자 아슈타르 공작가의 막내, 이안 아슈타르.

그의 몸에 빙의한 지구인 강민혁은 살포시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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