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263화 (263/266)

# 263

<공략자들 263화>

해태 길드는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아아앙!

폭음, 폭음, 그리고 또 폭음.

인한을 포함한 간부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라스틴에게 따라붙지만, 이미 한 번 진형이 무너진 해태 길드는 제대로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인한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라스틴에게 달려들었다.

“빨리 합쳐! 움직여라!”

이정환이 다급히 해태 길드를 움직였다.

사방팔방으로 떨어져 나간 해태 길드였으나, 금방 진형을 갖추고자 다시 모여들었다.

하지만.

-쿠우우우우우!

-캬아아아아악!

한데 합치려는 해태 길드원의 앞에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50층의 베히모스, 66층의 삼두룡…….

그동안 해태 길드의 앞을 가로막았던 몬스터들.

그들이 100층의 보스존에 등장한 것이었다.

“후후, 크크큭! 그 표정, 그야말로 가관이로구나!”

원정이 지구에 흡수되며, 라스틴은 보스 몬스터나 환경을 제멋대로 생성할 수는 없게 됐다.

그러나 90층의 보스 몬스터를 제작하며 연구했던 수많은 몬스터들의 생체 정보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마력을 매개로 한 유사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그 표정을 보기 위해 바로 이 순간에 저것들을 만들어 냈다.”

“이 자식……!”

“답이 생겼다고 생각했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라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나? 나 혼자면, 내 레갈리아만 막는다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라스틴이 조소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네놈들은 그래 봤자 최하위 위계의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다. 찬탈자에게 힘을 빼앗겼다 한들, 네놈들이 나를 어찌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크하하하!”

콰앙! 콰앙!

인한과 라스틴이 부딪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인한이 주먹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아, 안 돼! 으아아아악!”

인한의 뒤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악!

익숙한 형태의 몬스터, 블러드리드다.

전신이 혈액으로 되어 있는 놈이 길드원 하나를 집어삼켰다.

“……!”

인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제야 라스틴만 보고 있던 시야가 넓어져 사방을 바라보았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안 돼! 제기랄! 손을 잡아라!”

“이 새끼가! 감히!”

“아, 안 돼!”

비명, 그리고 또 비명.

보스 몬스터의 등장은 절망으로 이어졌다.

“큭!”

인한이 체중을 모두 실어서 전력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막대한 트리아스 액셀의 힘이 주먹에 서렸으나.

쩌엉-

라스틴이 간단하게 그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애초에 인한은 라스틴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그 공격을 라스틴이 막아선 순간, 인한이 뒤로 거리를 벌리며 손을 양쪽으로 확 펼쳤다.

‘지금은 길드원을 구해야 한다!’

한 명, 한 명, 가족만큼이나 서로의 사정을 알고, 서로를 그 누구보다 믿어 주는 동료다.

절대, 절대 죽게 둘 수 없다.

구우우우웅-

한순간, 공간 전체의 마나가 인한의 통제하에 놓였다.

인한이 이름 붙인,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7단계의 힘.

만상투영(萬狀投影).

공간 장악의 원형 구현에 이어진 만상투영에 의해, 순식간에 길드원들 개개인의 주위의 마나가 저절로 움직여 강대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어어!”

위험에 처했던 사람들 모두가 그 방어막에 의해 시간을 벌었다.

이정환이 다급히 길드원들을 통제했고, 해태 길드는 순식간에 다시금 진형을 갖췄다.

그러나 그 순간.

“날 잊고 있었군.”

라스틴이 인한의 뒤를 잡았다.

“그럴 리가!”

만상구현을 해제함과 동시에 인한이 뒤편을 향해 극파를 쏘아 냈다.

아니, 쏘아 내려는 순간.

“인한아!”

“안 돼!”

콰아앙-

인한의 몸이 무언가에 얻어맞아 튕겨 나갔다.

“크윽!”

전신이 비명을 질렀다.

날아간 인한을 임태호가 받아 내고는 재빨리 해태 길드의 진형으로 돌아왔다.

“괜찮냐!”

임태호가 다급히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한이 힘겹게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죠, 그럼.”

벌떡 일어나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인한.

하지만 임태호에게 한 말과 달리,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제기랄…….’

분명 외상은 금세 치료가 되었으나, 안쪽은 아니었다.

인한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마력계의 상처였다.

치료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투 중에 회복이 될 정도로 만만한 상처가 아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마력이 다닥다닥 끊겼다.

‘급하게 만상투영을 펼친 데다…… 무방비로 공격을 당했어.’

그래도 단순 마력에 의한 공격이었다면 큰 상처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그런 종류의 공격이 아니었다.

어떤 맥락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공격에 얻어맞는 순간 마력계에 침투해 중요 지점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인한이 길드원들을 바라보았다.

절로 피곤과 피로가 느껴진다.

벌써 몇 시간째 싸운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한 시간도 안 지났을지도 모르고, 하루나 이틀 정도가 지났을지도 몰랐다.

‘답은…….’

극멸기뿐.

불완전하나마, 닿을 수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

“틈을 만들어 주세요.”

인한이 임태호에게 말했다.

임태호가 눈가를 찌푸렸다.

“주위 보스 몬스터들이 개입하는 정도는 상관없으니까…… 라스틴에게 틈을 만들어 주십시오.”

“뭔가…… 방법이 있는 거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험해 볼 가치는…….”

“알았다.”

인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하며 진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뭐지……?’

인한이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묘한 기색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그러나 뭔가를 물어보기도 전, 라스틴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났나?”

라스틴이 뚜벅뚜벅 해태 길드를 향해 걸어왔다.

“뭐든지 실험해 보거라. 모조리 뭉개 줄 테니!”

콰앙!

폭음과 함께 또 한 번의 전투가 이어졌다.

해태 길드원들은 차례로 보스 몬스터들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콰아아앙!

임태호, 겐지, 리셴, 조나단 최, 아나스타샤까지.

해태 길드의 간부들 모두가 라스틴에게 달라붙었다.

-크어어어!

단연 위력을 발휘한 것은 네크로맨서인 조나단 최.

그의 시체 병사들은 가감 없이 라스틴에게 달려들어 시간을 벌었다.

“쓸데없는 짓을. 이 몬스터들을 내가 만들었음을 모르는 것이냐!”

콰아아앙-

시체들이 무더기로 먼지로 변했으나, 그만큼의 몬스터가 또다시 생성되며 라스틴에게 달려들었다.

“쯧!”

라스틴이 대형 마법을 수십 개 준비했다.

준비 시간 하나 없이 곧장 발사된 그 마법들을 향해.

“크하압!”

“받아라!”

거대화와 검화가 마주했다.

뒤를 노리는 것은 날렵한 검술의 아나스타샤.

순식간에 마력의 방벽을 갈라내며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콰아아아앙!

라스틴이 마력을 터뜨린 순간, 사방으로 파동이 퍼져 나가며 모조리 밀려났다.

해태 길드 전체가 덤벼서 간신히 백중세를 유지했던 상대다. 고작 간부 몇 명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커억!”

틈을 노렸던 리셴이 라스틴의 일격을 직격당해 튕겨져 나갔다.

임태호와 겐지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마력을 휘둘렀을 뿐이건만, 그 막대한 양의 힘에 속수무책이었다.

“하하! 그야말로 부나방이 아닌가!”

임태호가 다시금 검을 휘두르며 라스틴에게 접근했다.

라스틴이 조소를 품은 채 주먹을 휘둘렀다.

“……?”

그러나 그 순간, 임태호가 갑자기 검을 거두며 몸을 피했다.

그 뒤편에서 거친 소음이 흘러나왔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임태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한이었다.

“하아아압!”

거친 기합성과 함께 뻗어진 주먹에 서려 있는 백색의 기운이 라스틴에게로 쏘아졌다.

극멸기.

마나마저 소멸시키는 그 힘이 펼쳐졌다.

‘됐다……!’

인한의 눈이 빛났다.

될까 안 될까 그야말로 도박과 같았던 일격.

그 도박이 성공했다!

모든 빛이 소멸한 후.

인한이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팔을 잃었어.’

팔꿈치부터 아래의 마력계에 감각이 없었다.

조절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어쩌면 평생 인한은 팔을 쓰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100층을 공략했다.

라스틴을…….

“쿨럭.”

그때, 낮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큭, 큭큭…….”

라스틴이다.

그가 죽지 않고, 지면에 쓰러진 채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라스틴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오른쪽 팔과 몸통의 절반이 둥그렇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당연히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극멸기…… 이 저주받은 찬탈자들은 기어코 아리아의 힘에까지 손을 뻗은 것인가. 대체 어떻게 네놈들이 그 힘을 사용하는 거지?”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역시 찬탈자의 끄나풀답군. 아무것도 몰라.”

라스틴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큭큭! 대전제를 잊고 있군. 왕은 왕만이 죽일 수 있다. 네놈의 극멸기는 날 소멸시킬 수 없다. 애초에 그 힘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몇 번이고 극멸기를 사용해 보거라. 지금과 같은 결과만 반복될 뿐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애초에 ‘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네놈의 극멸기는 빗나갈 것이다.”

“그게 무슨……!”

“큭! 큭큭큭! 어차피 파국은 약속된 것이었다. 설마 이런 모습으로 끝을 맞이하게 될 줄은…….”

라스틴이 손을 치켜들었다.

불길한 검은 기운의 크기가 무지막지하게 거대해졌다.

그러나 그 순간.

“아니야. 이제 끝이야, 라스틴.”

이정환이 라스틴의 앞에 나타났다.

라스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네가…… 어떻게…….”

“오랜만이야. 그리고.”

그건 이정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손에 휘감겨 있는 정체불명의 힘도, 이정환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쉬도록 하자.”

* * *

이정환은 고개를 저었다.

라스틴 하나만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데다 진형이 흩어진 순간 보스 몬스터까지 등장해 버렸다.

“인한아, 애초에…… 라스틴은 우리로선 어떻게 할 수 없던 거였다.”

낮게 중얼거리는 그 말은 상당히 묘한 말투였다.

추측이나 판단이 아니라, 미리 알고 있었던 것과 같은 확신에 찬 모습.

그렇다면 어째서 이정환은 길드원들을 위험한 곳에 밀어 넣은 것일까.

-인간은 왕을 죽일 수 없다.

-라스틴은 불완전한 왕이야. 하지만 그래도 왕이지. 아직 그 자격은 온전하다.

-놈은 타락했어. 그렇기에 더 강해.

이정환의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당신은 이길 수 있죠.

이정환은 쓰게 웃었다.

이때다.

이정환은 지금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아주 오래 전, 5층에서 그녀들을 만나고, 그녀들과 계약을 나눈 그 시점부터 이정환의 역할은 이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는 해의 왕.

-나는 달의 왕.

-나는 별의 왕.

각자 다른 목소리였으나, 분명 같은 사람이 발하는 목소리였다.

-다시 한번 말할게요.

-미안하다. 너에게는 말도 안 되는 역할을 맡기는 우리를 원망하라.

-우리의 힘을 네게로.

-너는 미래로 이어지는 통로가 될 것이니.

우우우웅-

이정환의 손에 묘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왕은 왕만이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육체가 없는 왕이 있다.

그녀들이 힘을 발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육체뿐.

‘내가 그 그릇이 된다.’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그릇이 된다.

편법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길을 열 수 있는 힘이 된다.

지금 그 짧은 순간, 해와 달과 별의 왕의 의식이 이정환이란 존재의 내면에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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