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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58화 (258/266)

# 258

<공략자들 258화>

무극인은 인한의 모든 것이었다.

트리아스 액셀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기술인 데 비해, 무극인은 인한과 함께 시작되었고, 발전해 왔으며, 완성되었다.

인한이 시작하고 뼈대를 세웠으며, 볼카누스가 다듬어 완성시킨 기술.

그 이름조차 인한의 다짐과 목표가 담겨 있었다.

그 기술의 마지막.

모든 기술의 정수.

극파.

‘아니지. 이게 아니잖아.’

발터와의 싸움에서 얻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애초에 무극인을 처음 얻어 냈을 때 자신의 기분은 어땠는가.

‘끝은 없다. 있다면, 그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의 마침표일 뿐이야.’

극파는 끝이 아니다.

모든 것의 시작.

돌고 돌아 또 하나의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기술.

그것이 인한의 기술, 무극인의 진수(眞髓)였다.

콰아아아아앙!

기껏해야 한 줌의 마력이 발했다고는 볼 수 없는 폭음이었다.

주먹이 뻗어지려는 순간, 인한은 극파의 완성형을 체득했다.

터엉-

튕겨 나간 것은 발터였다.

거대한 암석과 같은 육중한 거구가 힘없이 허공을 날아 지면에 처박혔다.

“크흑!”

쓰러진 발터가 신음 소리를 흘리며 꿈틀댔다.

설마 저 상태에서 또 일어나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끝장이다. 인한은 이제 호흡할 기력조차 없었다.

“…….”

다행히 곧 발터에게서 일어나려는 기척이 사라졌다.

인한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털썩!

인한의 무릎과 두 손이 지면에 닿았다.

지면을 한동안 바라보며 숨을 고르던 인한이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드를 쫓아가야…….’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인한은 그대로 기절했다.

만약 오리하르콘 슈트가 없었다면, 만약 용왕의 이빨이 없었다면, 만약 그때 호흡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오리하르콘 슈트의 무적 효과를 발동했다면, 만약 샛별의 포옹을 발동했다면…….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인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고, 승리했다.

아니, 그러나 과연 그것을 승리라 할 수 있을까?

분명 마지막에 일어서 있던 것은 인한이었으나, 그건 길드원을 생각한 인한에 비해 발터가 더 이상 일어날 이유가 없던 것뿐일지도 몰랐다.

인한이 승리한 것은 호흡 한 번, 아니, 기껏해야 내쉰 숨 한 번의 차이에 불과했다.

다시 싸운다고 한들 인한은 발터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날 그때의 컨디션, 주위의 환경, 마음가짐에 따라 승패는 달라질 것이다.

“크윽!”

천천히 눈을 뜬 인한이 몸을 일으켰다.

육체가 비명을 질러 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회복이 진행되고 있지만, 워낙 상처가 많아서 회복 전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일어났나.”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인한보다 먼저 발터가 일어섰던 것이다.

눈을 돌리자 팔짱을 낀 채 오연한 자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발터가 보였다.

‘정말…… 이건 무승부군.’

인한이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발터가 코웃음을 쳤다.

“그 싸움을 졌다거나 무승부라 생각하고 있다니. 지금껏 내가 네놈을 잘못 본 모양이군.”

“……생각도 읽을 줄 아는 건가?”

발터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을 뿐.”

발터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내 생애 첫 패배였다.”

“그래서?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기라도 하라는 건가?”

“그렇다. 승자는 승자답게 있어야 하는 법. 이렇게 어정쩡한 놈에게 졌다니, 인정하기 힘들군. 지금은 네가 이겼으나, 다음에는 지지 않는다.”

발터가 강렬한 눈빛으로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한이 뚫어져라 발터를 바라보다, 얼굴을 팍 찡그렸다.

“뭔가 훈훈하게 끝낼 생각인 모양인데, 개수작 부리지 마. 네놈은 길드와 세계를 담보로 삼아서 싸움을 거는 미친놈에 불과하니까.”

그 말에 발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동안 그 큰 눈을 껌뻑이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그래서, 지금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

“아쉽지만…….”

인한이 혀를 찼다.

여기서 발터에게 죗값을 묻고 싶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더 싸운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지금은 위로 가야 했다.

“나중에 각오해라.”

인한은 발터를 밀쳐 내고 바로 보스존의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발터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패배인가.”

어색한 느낌이다.

그러나…… 만족스럽다.

자신에게 아직 넘어서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

“후후, 후후…….”

낮게 웃음을 짓던 발터가 인한이 사라진 곳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 * *

92층 필드.

주위를 둘러보던 인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핏자국에…… 전투의 흔적.’

지면이 전부 뒤집어져 있었다.

확실히,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인한은 빠르게 지면을 박차며 92층의 보스존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져 있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인한의 몸이 휘청거렸다.

해태 길드. 그의 가족과 같은 동료들.

그런 동료들이…….

“……하여튼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우리는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만, 대장님의 명령이니까 따르는 겁니다.”

“쯧! 튕기기는!”

“……지금 뭐라고 했지?”

“어쭈, 눈 안 까냐?”

“감당할 수 있겠나?”

“감당은 개뿔!”

투왕 길드와 한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쪽에서 상처투성이인 임태호와 리베르가 티격태격하는 게 보였다.

“이, 이게…….”

비틀대며 다가온 인한을 발견한 길드원들이 벌떡 일어섰다.

“길드장님!”

“와아아! 길드장님 오셨다!”

동료들이 우르르 일어나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와! 진짜 이기신 겁니까! 연락 받았을 때 진짜…….”

“진짜 대단하십니다!”

“멋지십니다!”

“자, 잠깐. 지금 거기 뼈가…… 크아악!”

콰앙-

인한이 비명을 지를 때쯤, 갑자기 허공에 폭발이 일어났다.

오러의 광채가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폭발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소영이었다.

“지금 환자를 앞에 두고 뭐 하는 거야? 너네 똑바로 안 해? 그리고 지금 분명 휴식 취하라고 했을 텐데?”

소영의 손에 들린 검이 시퍼렇게 빛났다.

길드원들이 재빠르게 물러났다.

“네, 넵…….”

길드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제야 인한은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겨,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투왕 길드…… 맞잖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해태 길드의 옆에 분명 투왕 길드가 있었다.

발터에 의해 전투를 벌였을 사람들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저…… 소영 씨, 이게 대체…….”

이소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인한의 팔을 이끌었다.

“일단 이리 와요. 치료부터 해요.”

인한과 발터의 싸움이 끝나고, 발터가 먼저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리베르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장?”

-적당히 즐겼으면 멈춰라. 그리고 이 뒤로 해태 길드를 도와라.

그 말만 툭 내뱉고 발터는 연락을 끊어 버렸다.

리베르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검을 인벤토리에 휙 넣어 버렸다.

“아, 뭐 이런 명령을 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는데.”

“지금 그게 무슨 짓이지?”

리베르와 마주하고 있던 임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리베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쪽 대장이 이긴 모양이네. 다들 멈춰라! 대장님이 멈추란다!”

“닥쳐! 나는 아직 안 끝났다!”

리셴과 겨루고 있던 샤샤가 리베르를 쏘아봤다.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의 임태호에게 리베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는 검을 들어 자신의 길드원들에게 휘둘렀다.

“큭! 너 이 새끼, 배신이냐!”

“아니, 대장이 멈추라고 했다니까?”

“크악!”

한숨을 내쉰 리베르는 거침없이 자신의 동료들을 때려 부쉈다.

그 광경을 임태호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왜 그렇게까지 한 거지?”

대충 정리가 끝나자 임태호가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료들이 아닌가. 이해할 수 없었다.

“말 안 들으면 맞아야지. 대장 명령인데 싸움에 미쳐서 정신을 못 차리네. 하이고, 내가 이런 정신병자들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다니. 이 싸움광들.”

아무리 봐도 리베르가 할 말은 아니었으나, 어찌 됐든 멈추기는 했다.

진형을 갖추고 적을 상대했던 해태 길드에 비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던 투왕 길드는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일단 정비하는 시간을 가진 뒤, 리베르는 이정환과 몇 가지 의견을 조정했다.

“뭐, 우리가 연계해서 싸우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거 알 테고. 우린 우리대로 싸울 테니까 그쪽은 그쪽 알아서 하십쇼. 그럼 그런 걸로…….”

그렇게 말하며 리베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그때.

“잠깐만 멈춰 주시죠.”

“잉? 왜 그러쇼?”

“이제 배상금 문제로 넘어가지요.”

“아아, 우린 그런 거 안 받으…….”

“‘우리’라니요? 저희가 받아야지요.”

싱긋 웃는 이정환을 보며, 리베르가 정체 모를 오한을 느꼈다.

투왕 길드는 강했다.

해태 길드가 좋은 무장에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정규군과 같다면, 투왕 길드는 거칠게 단련된 전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방해도 어지간하긴 하지만.”

이정환이 옆쪽에서 몬스터 수십 마리를 상대로 무작정 달려들며 싸우는 투왕 길드를 바라보았다.

투왕 길드가 몬스터의 어그로를 풀어 버리는 바람에 공략이 꼬여 버렸다.

“비켜, 새끼야! 내가 잡을 거야!”

“뭐, 이 새끼야?!”

멀리서 보고 있던 임태호도 기가 찬지 비웃음을 흘렸다.

“어이구, 지들끼리 싸우네.”

어떻게 저런 길드가 최상층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

그런데 그렇게 하는데도 묘하게 공략이 됐다.

처음에는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으나, 그들은 정말 해태 길드에는 아무런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렇게 두 길드의 기묘한 동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몬스터 웨이브 카운트 다운 : 2일]

해태 길드는 검은 탑 99층 보스존에 도달했다.

한 층 한 층의 간격이 좁다 보니 공략의 속도는 월등히 낮아졌고, 투왕 길드의 합류가 그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어 줬다.

“도착했군. 정말로…… 불가능할 줄로 알았는데.”

이정환이 중얼거렸다.

80층에서부터 99층까지, 20층에 달하는 최상층 구간을 모조리 클리어해 버렸다.

그건 3차 웨이브 당시 탑을 올랐던 인한의 업적보다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90층의 보스 몬스터가 없었다고는 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여정이었다.’

인한이 99층 보스존의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텅텅 비어 있는 보스존.

인한은 이동진으로 향했다.

“후우…….”

이제 남은 건 100층이다.

그곳이 코앞에 있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1층에서부터 100층까지.

탑의 안에서의 일, 탑의 밖에서의 일.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인한을 이곳까지 올려 주었다.

우웅-

그날, 피의 5월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시기에 터진 몬스터 웨이브의 위험 탓에 패닉에 빠져 있던 세계는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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