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공략자들 256화>
몬스터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은 18일.
해태 길드는 보스존에 진입했다.
-키에에! 우매한 인간들이여!
보스의 이름은 백두사(百頭蛇).
이름처럼 백 개의 머리를 가진 몬스터였다.
87층의 보스 몬스터답게 극독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고, 높은 마력량과 그에서 비롯된 고도의 마법까지 가지고 있었다.
각 머리 하나하나마다 서로 다른 수많은 힘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매 패턴마다 허물을 벗으며 모든 상처를 회복해 버렸다.
거기다 놈의 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은 엄청난 강도와 경도가 엄청나서, 인한의 일격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재생, 하위 계체 생성, 순간 재생…….’
갈수록 보스 몬스터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백두사의 비늘 조각에서 생성된 수십 마리의 삼두사를 상대하며, 인한의 눈이 빛났다.
이 하위 계체들만 하더라도 70층 중후반의 보스 몬스터에 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그걸 거느리는 것은 고도의 마법을 쓸 정도의 지능을 가진 몬스터였다.
하지만.
“하영 씨! 북쪽 밀립니다! 지휘를 맡기겠습니다! 3차 클래스 스킬로 버프를 주세요!”
“원거리 1조는 5초 뒤 날려! 5…… 2, 1, 지금!”
콰아아앙!
그러나 지휘에 있어서 해태 길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잘 짜인 오케스트라와 같이, 이정환은 수많은 변수들을 철저히 계산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했다.
돌발 상황은 없었다. 아니, 있어도 모조리 통제되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이정환의 4차 클래스 업그레이드에서 얻은 스킬 덕분이었다.
[빛의 인도].
[띠링!]
[근거리 1조는 즉시 근거리 3조와 교체.]
[10초 뒤 광역힐 발동.]
…….
이정환은 모든 명령을 상대의 천문에 적어 넣을 수 있게 됐다.
그뿐 아니라 동의를 한 길드원에 한해 그들의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과 잔여 마력량, 체력 등을 수치화해서 천문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스킬을 얻은 후로, 이정환은 마치 체스 게임을 하듯 모든 전황을 완벽히 컨트롤했다.
“됐다! 기다리던 3번째 패턴이다! 화염 폭풍 다음은 냉기 폭풍! 인한아! 막자마자 5초다!”
“알았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울려 퍼지고, 무극인의 리버스 스트림과 백두사의 화염 폭풍이 부딪혔다.
그것을 간단히 막아 낸 인한은 곧장 주먹을 쥐고 정면을 향해 휘둘렀다.
쩌정-
냉기 폭풍을 쏘아 내고자 입을 벌린 백두사의 몸통이 크게 흔들렸다.
비늘이 후두둑 떨어지며 하위 계체들이 생성됐으나.
“원형 구현, 거대화!”
“원형 구현, 검화!”
쿵! 쿵! 쿵!
해태 길드는 그것들이 제대로 전투태세를 갖추기 전에 그 모든 것을 일거에 쓸어 버렸다.
“큰 거 한 방 간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직후 피해를 회복하려는 백두사의 몸통에 빙결 폭탄이 터지며 움직임이 멈췄다.
레이드의 꽃은 누가 뭐래도 마법사다.
긴 시간이 주어지고, 전열이 굳건히 버텨 주기만 한다면 누구보다 강력한 공격을 뻗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키에에에엑! 고작 이따위 것들에게!
백두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두사는 분명 강하다.
아니,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보스 몬스터는 강하다.
하지만 해태 길드가 바라보는 것은 이곳이 아니었다.
더 높은 곳, 이 탑의 끝자락.
검은 탑 100층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백두사는 그저 지나가는 대상에 불과했다.
“잘 가라.”
우우우우웅!
극파.
백색의 섬광에 의해 세상이 덧칠해지고, 빛의 기둥이 백두사를 분쇄했다.
* * *
타이틀 천무에 의해 인한은 무인, 신안, 관조라는 스킬을 얻은 바 있었다.
무인과 신안은 패시브 스킬이었으나, 관조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관조]
[효과 : 전신의 마력계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하게 됩니다. (진행률: 71퍼센트)]
인한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시간을 만들어서까지 언제나 관조 스킬을 사용했다.
관조 스킬을 사용하면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속속히 살펴보는 느낌이었다.
몰랐던 것, 알았던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까지.
천문 그대로 인한은 자기 자신의 마력계에 대한 이해가 날로 깊어져 갔다.
그러나 얼마 전.
관조의 진행률이 70퍼센트를 돌파한 순간, 인한은 드디어 또 하나의 마력원인 탑 코어를 발견해 냈다.
-탑 코어를 열게. 거기에 세계의 모든 게 담겨져 있으니.
그렉의 말이 아니더라도 인한은 탑 코어에 대한 궁리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탑 코어라 하기에 막연히 뇌에 있는 마력원이라 생각했지만, 머리 쪽에는 마력원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엉킨 실타래처럼 많은 마력로가 몰려 있긴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이래서 알아내지 못했던 건가. 탑 코어로 이어지는 마력로가…… 막혀 있었던 거야.’
인한이 쓰게 웃었다.
머리에는 상당량의 마력로가 밀집되어 있다.
감각을 좌우하고 몸을 움직이는 곳이기에 트리아스 액셀 운용을 위한 중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리 중심부에서 미간 쪽으로 살짝 치우친 부위에 어떤 마력로도 존재하지 않는 빈공간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마력을 다루다 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력로가 뻗어 있으나, 철저하게 막혀 있기 때문에 그 정체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마 중심 마력로가 이어져 있었다니 말이야.’
마력로를 뿌리에 비유한다면, 중심 마력로는 원뿌리라 할 수 있다.
언더 코어와 미드 코어를 연결하는, 모든 마력로의 원류.
그런데 이번에 인한은 관조 스킬을 통해, 미드 코어에서부터 위쪽으로 뻗어져 있는 추가적인 경로를 발견했다.
마력을 통해선 알아낼 수 없었던 길이었다.
‘다만…… 미드 코어에서부터 뚫을 수는 없어. 이건 탑 코어에서부터 내려와야 한다.’
이 마력로는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일방통행이다.
인한은 발견 직후 곧장 마력로를 개방하는 작업을 시도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즉, 탑 코어를 얻어야 미드 코어와 이어진다.’
탑 코어를 열라는 그렉의 말.
굳이 열라는 말을 사용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탑 코어는 금제(禁制)와 같다.
열 수 없게 굳게 잠가져 있다.
어떤 방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금제는 열 수 없다. 어디까지나 ‘열쇠’가 필요하다.
‘후우…….’
88층 땅의 돌.
수면을 취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인한은 자신의 내면에 점점 더 파고들어 갔다.
* * *
[몬스터 웨이브 카운트다운 : 11일]
88층 공략에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빠르면 나흘, 길어야 닷새를 예상했으나, 예상외로 보스 몬스터 공략에 시간을 뺏기고 말았다.
그 뒤로 88층 필드를 나아가던 중, 해태 길드는 안전지대에서 투왕 길드의 흔적을 발견했다.
“……조금 된 흔적이군. 아직 차이가 조금 벌어져 있는 모양이야. 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거지?”
인한이 재가 된 모닥불을 발로 툭 건드렸다.
그런 인한을 바라보던 이정환이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걱정이다.”
“뭐가?”
“지금은 한시가 촉박해. 90층 구간의 보스 몬스터가 없더라도 최소한 4일…… 아니, 5일은 여유롭게 잡아 두고 싶어.”
이번 피의 5월을 통해 몬스터 웨이브가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건 해태 길드의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그 여유 시간이 가능하겠지만…….”
“투왕 길드가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아무래도 예측할 수가 없는 인종들이니까.”
인한이 굳은 표정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발터 에스키엘.
그는 여러모로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인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검은 탑 92층 보스존 앞.
리베르는 정체 모를 고기를 모닥불에 구우며 콧노래를 불렀다.
“어이.”
그때, 리베르의 앞에 한 여인이 다가왔다.
커다란 체구에 근육질의 몸매, 꽉 닫힌 입술과 짙은 턱선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샤샤 마리체프. 랭킹 10위의 헌터였다.
“무슨 일이지?”
“이대로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 건가?”
“크크! 또 좀이 쑤셔서 못 버티겠어? 저기 체력 남아도는 놈들 많으니까 두들겨 패든가.”
리베르가 턱짓으로 길드원들을 가리켰다.
샤샤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이미 하고 왔다.”
리베르가 그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킥킥 웃었다. 그러고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조금 썰어 입에 넣었다.
“음음…… 퉤! 이 층의 몬스터들은 육즙이 별로군. 썩은 마늘을 튀긴 것 같은 맛이 나.”
“……변태 같은 놈.”
우웅!
그때 리베르의 옆에 놓여 있던 드루이드의 인형이 진동했다.
리베르가 드루이드의 인형을 손에 쥐었다.
“예, 대장.”
-해태 길드가 갈 거다.
발터는 느닷없이 그렇게 말했다.
리베르와 샤샤가 시선을 마주쳤다.
그때 드루이드의 인형 너머로 또 한 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리베르와 샤샤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몬스터 웨이브 카운트다운 : 6일]
해태 길드는 드디어 89층 공략을 완료했다.
“정말…… 믿을 수 없이 힘들군.”
심력을 너무 많이 소비한 까닭인지 이정환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총 18시간에 가까운 공략전이었다.
전투를 하면서 음식을 먹고, 한쪽에서 마력을 채우면 한쪽에선 전투를 속행했다.
그렇게 결국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공략을 완료했다.
“부러진 곳이 어디야.”
“여기…… 이 다리입니다, 길드장님.”
“조금만 참아.”
“으윽!”
하지만 치열한 전투였던 까닭에 부상자들은 많았다.
서포터 계열의 길드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마력을 쏟아부었고, 그중에는 인한도 있었다.
화악!
생명의 원정을 통해 얻은 마력 특성, 거기다 7단계에 도달한 인한은 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치료, 아니, 재생이었다.
“다음부터는 몸 좀 사려. 아무리 탱커라도 그렇지, 그렇게 들이대다간 금방 죽는다.”
“흐흐! 길드장님이 할 말은 아니죠.”
어느 정도 정비가 끝났을 무렵, 해태 길드는 90층으로 진입했다.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빛을 발하는 것은 땅의 돌뿐이었고, 사방에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우우우우-
멀리서 정체 모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공략조 전원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인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여긴 그냥 넘어간다. 어차피 이곳의 필드 몬스터는 환술 효과밖에 걸지 못해. 혈랑이 그냥 달리게 둬.”
90층을 공략하는 데는…… 아니, 사실상 이동하는 데는 채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텅텅 비어 있는 보스존을 넘어 91층으로 진입한 해태 길드는 일단 휴식을 취하고자 자리를 잡았다.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자. 99층까지는 달려야 하니까.”
그렇게 하루 휴식을 취한 해태 길드는 곧장 필드 공략으로 넘어갔다.
분명 피곤할 테지만, 길드원들의 표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 정말로 검은 탑의 클리어가 코앞에 남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해태 길드는 빠르게 91층 보스존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었군.”
그곳에 그가 있었다.
발터 에스키엘.
인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