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공략자들 251화>
“끄아아악!”
“이, 이게 뭐야!”
“아, 안 돼!”
수많은 헌터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팔다리의 일부가 검은색 기운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 아, 안, 사, 살려…….
어느새 그들은 몬스터가 되어 있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기형적이고, 또 역겨운 모습의 몬스터가.
“히, 히이익!”
“도망가!”
-히히히히히!
귀신을 연상시키는 정체불명의 부유체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위이이이이잉
메뚜기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작은 몬스터의 무리가 폭풍처럼 이곳저곳을 휩쓸었다.
그 몬스터가 지나치는 곳은 살아 있든 죽어 있든 황폐하게 변해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됐든, 최악의 상황이었다.
“크으! 이 새끼들이!”
임태호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몬스터 무리를 바라보며 신음을 흘렸다.
벌써 메뚜기 형태의 몬스터를 향해 원형 구현을 몇 번이나 물리쳤음에도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나도 저 꼴이 나겠구만.’
바로 옆에서 같이 전투를 하던 동료의 팔다리가 풍선처럼 터지더니, 그 터진 부위에서 갑각류의 다리가 솟아올랐다.
랭킹 50위권에 드는 실력자였다. 그런 자가 저항 한 번 못 해 봤다.
-키에에에에에!
핏빛의 모래더미가 생물처럼 꿈틀대며 임태호를 향해 밀려들었다.
“크아! 또 그거냐!”
저 모래더미는 하나하나가 한 마리의 몬스터다.
모래더미의 형태를 한 탐욕스러운 몬스터는 인간의 마력과 생기를 흡수했다.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물리 공격뿐. 하지만 모래더미의 규모가 무려 작은 산 정도의 크기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은 느낌이었다.
“원형 구현! 거대화!”
임태호가 거대화를 사용하며 모래더미를 밀쳐 냈다.
임태호의 거대화는 특이하게도 검 자체가 실체로 변하는 기술이다.
변하기까지는 마력을 소모하지만, 그 후에는 실체를 가진 사물이 된다.
콰앙! 콰앙!
임태호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모래더미를 밀어냈다.
한 알이 피부에 묻을 때마다 피부가 괴사하며 썩어 들어갔으나, 기합으로 버텼다.
-형님.
“으응? 인한이?”
-10초 뒤에 물러나십시오. 폭발을 일으키겠습니다. 그다음 서쪽 지구 사람들 수습해서 정환이와 연락을 취하세요.
“뭐?”
인한은 그 말을 끝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정말 폭발이 일어나며 모래더미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의아했지만 임태호는 곧장 움직여 생존자들을 수습했다. 오러로 한데 묶은 후, 이동을 개시했다.
* * *
극파와 극파의 충돌.
인한은 깨달았다.
레오는 90층 구간의 모든 몬스터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90층의 펜데게니아, 91층의 캘러미티 그래스호퍼, 92층의 데리안, 93층의 샌드 타이푼…….
레오가 발하는 마력의 충격은 막아 낼 수 있었으나, 그 뒤에 따라오는 90층대의 몬스터들까지는 막아 낼 수 없었다.
사방으로 번져 나간 그 재앙들은 아비규환의 지옥을 만들어 냈다.
“후욱, 후욱…….”
인한은 분전에 분전을 거듭했다.
인한이 막아 내고 있는 것은 레오뿐이 아니었다.
비록 펜데게니아와 캘러미티 그래스호퍼, 데리안과 샌드 타이푼을 흘려 보냈으나, 그 외의 나머지 다섯 마리만큼은 막아 내고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버겁군. 막고 있는 나도 대체 어떻게 막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인한이 지친 표정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90층의 몬스터들은 힘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게 설계된 놈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놈들의 성질과 공략법을 아는 인한이기에 막아 내는 정도는 가능했다.
‘7단계, 그것도 트리아스 액셀로 이루어 내지 않았다면…….’
마력을 통해 이 세계의 온갖 현상을 구현해 낼 수 있는 힘.
막아 낼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거기다 레오, 저 녀석이 생각 외로 도움이 된다.’
지금 90층의 보스 몬스터들은 일정 구역을 빠져나가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굳이 인한과 이 공간에 공격을 퍼붓고 있지 않은 것이다.
레오가 자신과 싸우느라 세세한 명령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자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몬스터에게 공격을 하지 않도록 한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 부분이 가장 인한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허리춤에 메달아 두었던 드루이드 인형이 진동했다.
-형님! 벙커의 일반인들 다 이동시켰습니다! 일단 5층으로 이동했고, 층을 클리어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정환이 형님이랑 세릴 씨가 끌고 던전으로 향했습니다!
이창훈이다. 미리 명령해 둔 바를 다 끝낸 모양이다.
“잘했다. 너도 이제 물러나.”
-예? 형님은 어쩌시려고…….
“알아서 한다!”
그 순간, 레오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제기랄! 상도덕도 없이 남의 기술을 그렇게 마음대로 가져다 쓰다니!’
그 검에 휘감긴 힘은 나선류였다.
인한도 나선류를 뻗었다.
콰앙!
나선류는 일정 방향으로 회전하는 마력의 흐름이다.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나선류를 쏘아 버리면 힘이 상쇄되어 흩어진다.
“허억, 허억…….”
인한이 팔을 떨어뜨렸다.
마력계가 비명을 질러 댔다.
애초에 79층의 보스 몬스터 단탈리온을 상대로도 고전했는데, 지금은 90층 보스 몬스터 다섯을 상대하고 있었다.
드루이드 인형에서 여러 외침이 속속들이 들려왔다.
-스승님! 대피 완료했습니다! 북쪽 지구는 물의 마을로 일단 대피 후 5층에 합류하겠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한! 시작의 마을에 생존자의 기척은 없어요! 이제 인한만 빠져나오면 돼요!
“그래, 그렇다 이거지…….”
인한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주먹의 방향은 레오가 아닌 지면을 향해서였다.
지면이 폭발하며 모래 먼지가 확 피어올랐다.
그 순간,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인한의 제어가 모조리 풀려 나갔다. 동시에 90층의 몬스터들이 사방에 뻗어 나갔다.
화악!
레오가 모래 먼지를 걷어 냈다.
하지만 그곳에 인한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레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걸렸다.
* * *
검은 탑 5층.
인한이 합류했을 때, 주변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했다.
“대체 그게 뭐야! 제기랄! 팀원들이 다 죽었어!”
“엉엉! 엄마…… 엄마…… 흐윽! 내가 탑에 들어오자고만 안 했어도…….”
“제기랄…… 그게 내 전 재산이었는데…….”
“흐흐흐! 우린 다 죽었어…… 다 죽었다고…….”
인한은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수십 명의 헌터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오셨어요?”
이창훈이 피곤한 표정으로 인한을 반겼다.
인한은 회의실을 바라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많이 줄었군.”
연합의 규모는 사실 굉장히 컸다.
해태 길드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이 정체불명의 사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인한의 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합류한 길드의 수는 무려 백 수십 개.
한 길드당 대충 이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합류했으니 총 병력은 수천에 달했다.
그런데 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의 수는 기껏해야 50명도 안 되어 보였다.
“일단 도망치긴 했지만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거요? 쫓아오면 그대로 끝장날 텐데…….”
“차라리 건곤일척의 승부를…….”
“어차피 탑에서 나갈 수 없다면 정답은 없습니다. 블러드 워커를 잡읍시다.”
아무리 도망쳤다 하지만, 일단 의견을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싸우자는 자, 도망치자는 자 등 수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블러드 워커를 죽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일반인들을 버립시다.”
그때 한 헌터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다들 알 텐데? 그들은 도움이 안 돼. 쓸데없이 숫자만 많고…… 만약 장기전이 되면 물자나 소비하게 될 거야.”
“지금 그게 사람이 할 소리요!”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방법이라도 있나?”
그건 그야말로 지구의 멸망이 찾아올 것이다.
좌중에 정적이 찾아왔다.
“실제로 현재 1층 땅의 돌에만 등록한 일반인들을 5층에 합류시키기 위해 팀 하나가 움직이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정환, 세릴이 이곳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시끄러워! 새끼들아!”
쾅! 와르르!
그때 임태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몬스터의 부산물로 만든 특제 테이블이 마력 하나 사용하지 않은 임태호의 일격에 박살 나며 주저앉았다.
“지금 이게 무슨……!”
“어디서 피라미 같은 것들이 입을 털고 있어. 우리들이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뒤질래?”
“아니, 이 사람이 정말……!”
그때였다.
위이이잉!
인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드 코어가 불길한 예감을 알려온다.
쨍그랑!
인한이 땅을 박차고 창문 너머로 뛰쳐나갔다.
“뭐야? 왜 저래?”
임태호가 의아해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지축이 흔들렸다.
회의실에 있던 헌터들 전원이 다급히 창가로 다가갔다.
“……따라왔어!”
몬스터의 군단, 그리고 레오 뒤보아.
그들이 나타났다.
절망적이다.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없고, 절망만이 가득하다.
“크아압! 거대화!”
임태호가 대검을 휘둘렀다.
어느샌가 접근한 겐지와 리셴도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확연한 열세, 거기다 그들은 인한과 달리 회복할 수단도, 마력을 보충할 시간도 없었다.
인한이 레오를 바라보았다.
‘끝장을 볼 생각이로구나.’
어떤 방법인지 모르겠으나, 놈은 이쪽을 추격할 수단을 갖고 있다.
앞뒤를 계산할 수 없다.
어차피 이곳에 모여 있는 인원으로는 90층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없다.
인한조차 전력을 다해 상대한다 할지라도 이곳에 모여 있는 몬스터 전체를 쓰러뜨릴 방법이 없다.
그러나 딱 하나의 방법, 레오를 쓰러뜨린다면?
레오가 죽는다면 이 모든 일이 끝난다.
그게 이 일의 유일한 타개책이다.
인한이 땅을 박찼다.
“인한아! 위험해!”
임태호의 외침이 들렸지만, 지금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콰아아아앙!
거의 적진의 중앙이다.
레오와 인한이 격돌했다.
충돌의 여파에 사방 50미터의 모든 물건이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래, 끝장을 보자!’
푸슉!
레오의 쾌속한 검격에 인한의 전신에서 피가 솟구친다.
극파, 극파, 그리고 또다시 극파.
다른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력, 펼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 냈다.
이 뒤의 일은 생각할 수 없다. 수명을 깎아 내더라도 레오를 쓰러뜨려야 했다.
원래 전투란 수 싸움을 통해 이득을 얻은 후, 마지막에 최후의 일격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싸움은 오히려 뒷골목 개싸움에 가깝다.
계산이나 수 싸움을 할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고 있으면서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크윽!’
레오의 일격 일격의 정밀도가 끝도 없이 높아져 갔다. 거리를 좁히려는 인한의 공격을 모조리 쳐 내고 있다.
천무의 신안을 통해 모조리 읽고 있음에도, 반응할 수조차 없는 검술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한의 표정이 굳었다.
인한이 순식간에 안으로 파고들었다.
쾅!
곧장 주먹을 뻗었다.
귀신처럼 그 주먹을 흘려내며 인한의 빈틈을 향해 레오의 검이 찔러졌다.
푸욱-
검이 인한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치명적인 일격.
그런데 인한의 표정엔 미소가 걸렸다.
“잡았다.”
카각!
인한의 손이 검을 움켜쥐었다.
급소라고 해 봤자 죽지 않는다.
내장 한두 개 내줘도 상관없다!
코앞에 있는 레오의 안면을 향해 주먹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그 순간.
카앙!
그야말로 신기(神技)였다.
레오는 몸을 트는 것으로 검의 각도를 조금 틀어 그 주먹마저 막아 냈다.
회심의 일격마저 막힌 인한.
그럼에도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천무의 신안이 그것조차 못 볼 줄 알았냐? 못 막으면 어쩌나 했다.”
위이이이이이잉!
레오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진다.
인한의 주먹에서 기이한 소음이 흘러나온다.
새하얀 빛이 공간을 잠식한다.
극멸기.
레오의 검이 소멸되고, 그 힘조차 소멸된다.
레오가 몸을 뒤로 뺐으나 이미 인한은 주먹을 끌어당긴 채 준비 자세에 들어간 상태였다.
‘극파.’
인한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뻗었다.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이번엔 닿았다.
주위의 마나가 소멸한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인한에게 이어질 테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쓰러뜨려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레오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빛의 기둥이 뻗어 나가고, 레오의 몸이 그 안에 소멸되었다.
한 점 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레오의 몸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세상에.”
그 공방을 눈짓으로나마 보고 있던 헌터들이 경악했다.
그게 과연 인간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의 싸움이었다.
[투귀 블러드 워커를 처치했습니다.]
[월드 퀘스트 클리어.]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4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땅의 돌의 제한이 풀립니다. 탑의 외부로 나갈 수 있습니다.]
끝났다.
모든 게 끝났다!
헌터의 승리다!
“어, 어……?”
그러나.
-크아아아!
-쿠오오오오!
투귀가 사라졌다고, 몬스터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절망은 여전히 그 자리 그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