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공략자들 249화>
아비규환이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시작의 마을을 부수며 날뛰고 있었다.
공략조를 제외한 해태 길드의 팀은 곧바로 인명 구조를 시작했다.
이정환이 크게 고함치며 지시를 내렸다.
“공략조는 바로 몬스터 퇴치로 넘어간다!”
“예!”
시작의 마을에는 헌터의 수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다.
그런 마을 한복판에 몬스터가 습격해 왔으니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저희는 서쪽 지구를 담당하겠습니다. 그러니 사천왕 길드분들은……!”
데스 파티와의 일 이후로 이정환은 지속적으로 타 길드와 교류해 왔다.
다른 마을은 모르겠으나 시작의 마을에 있어서 해태 길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정환은 드루이드의 인형 수십 개를 나란히 세워 놓고 여기저기 명령을 하달했다.
한편, 인한은 몬스터의 중심에 서서 몬스터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역시 평범한 몬스터랑 다르다.’
인한의 표정이 굳었다.
전신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아마도 모종의 버프성 스킬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더 빠르고, 더 강했다.
콰아앙-
그러나 인한은 그들보다 더 강했다.
마극포가 방출되고, 빛의 기둥이 뻗어 나가 정면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다.
일당백, 일기당천이란 인한을 위해 존재하는 말이었다.
“으아아악!”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생존자 무리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
-키히히히!
78층 보스 몬스터, 뱀피르가 기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퍼져 나간 마력의 폭풍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대로 절명했다.
인한이 몬스터들을 향해 손을 쭉 펼치며 그대로 내리그었다.
‘압축, 폭발, 소멸.’
세 가지 원형 구현이 순식간에 발동됐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한 점에 집중되었다가, 사방으로 폭사했다.
폭발의 여파조차 끝자락에 이어진 원형 구현으로 지워 버렸다.
“으, 으아악! 사, 살려 줘! 살려 줘!”
“진정하십시오. 지금부터 대피소로 안내할 테니 제 뒤를 따라오셔야 합니다.”
인한이 사람들에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패닉에 빠져 있던 헌터들과 일반인들이었으나, 마력이 담긴 그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진정시키는 힘이 담겨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인한은 멈추지 않고 몬스터를 쓸어 냈다. 인한이 가는 곳에 곧 길이 열렸다.
-크락슈!
“크윽!”
콰앙!
결국 인한의 정면에 정체 모를 공격이 날아와 폭발했다.
훨훨 날아 벽면에 처박힌 인한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저건……!’
-꾸오오오.
79층의 보스 몬스터, 인간형 몬스터인 단탈리온이다.
길드원 전체가 합심해서 쓰러뜨렸던 보스 몬스터를, 그것도 더욱 강해진 놈과 홀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위험해!’
위잉!
인한이 튕겨 나가는 바람에 일반인들이 위험해졌다.
‘중력, 역전!’
용언의 발동이다.
인한은 바로 마력을 움직여 일반인들을 허공으로 도약시켜 버렸다.
‘실리암! 그들을 대피소로 데려가!’
정령술을 이용한 인한이 단탈리온의 앞에 마주섰다.
“허억, 허억, 허억…….”
인한은 단탈리온을 쓰러뜨린 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인한의 몸에도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물론 금세 회복되고 말았지만, 대체 어떻게 쓰러뜨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쥐어짰다.
‘예전이었다면 마력량이 부족할 뻔했다.’
이제는 마력량이 소용없어진 상황.
그러나 마력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마력계가 사용된다.
한계까지 쥐어짠 인한의 마력계는 벌써 상처투성이였다.
바스락!
그때 건물의 잔해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생존자!’
인한이 다급히 잔해를 뒤집어 냈다.
그러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정신 좀 차리십시오!”
인한은 바로 사내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콰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인한이 구해 준 사람 중 한 명의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인한의 몸을 향해 자신의 팔이 부서질 정도의 속도로 단검을 뻗은 것이다.
-죽어. 최인한. 변수.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목소리. 눈동자에는 초점마저 없었다.
인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내의 팔다리의 말단 부위부터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쯧!”
인한이 사내를 붙잡고 그대로 날려 버렸다.
체내에 마력의 폭탄을 심어 두었다.
벽면에 처박힌 사내는 그대로 절명했다.
‘설마 사람까지…….’
이번 블러드 워커의 능력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한이 혀를 차며 몸을 움직였다.
상당한 피로를 느꼈지만, 지금은 불평할 때가 아니었다.
* * *
동이 틀 무렵엔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자잘한 몬스터의 처리를 부하들에게 맡긴 인한은 전선에서 이탈했다.
시작의 마을 지하에는 벙커가 준비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해태 길드의 이름으로 지어진 공간이었다.
벙커 내부에 들어오자 이정환이 다가왔다.
“산의 마을과 물의 마을이 무너진 모양이다.”
“……뭐?”
1층의 마을 중 하나이자, 영미권 헌터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이 산의 마을이었다.
“영국의 브레이엄 길드가 분전했지만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물의 마을 경우엔…… 데스 파티 때의 일로 사실상 쓸 만한 전력이 없는 상황이었어.”
“쯧.”
몬스터들이 땅의 돌에서 침입했으니 땅의 돌을 통해 도망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래도 위쪽 다른 층에 있는 헌터들이 1층으로 모여들고 있는 추세다. 우리가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모을 생각이야. 따로따로 움직여선 답이 없다. 연합을 만들어야 해.”
이정환의 말은 타당했다.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마을이 있는 1층부터 70층까지의 모든 땅의 돌이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듯했다.
“혹시 투왕 길드에 대한 소식은 없나?”
“없어. 아마도 80층을 공략 중인 것 같다.”
인한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건 그렇고 위쪽 상황은 어때?”
이정환의 말에 인한이 한숨을 쉬었다.
“몬스터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답이 없어.”
레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블러드 워커의 목표는 헌터의 말살이다. 층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헌터를 사냥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레오의 모습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대체 뭘 노리는 거냐.’
인한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이길 수 없다.”
라스틴은 그렇게 단언했다.
인한의 정보를 바라보고 있던 라스틴이 이를 바득 갈았다.
“79층의 보스 몬스터를 단독으로 사냥했다고……? 하물며 강화된 몬스터를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고? 이런 개 같은!”
쾅!
라스틴이 의자를 쾅 내리쳤다.
이곳에서 나갈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상황에 분노가 치솟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놈을 쳐 죽이고 싶었다.
최후의 최후를 위해 만들어 뒀던 블러드 워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까지 했건만, 놈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의 블러드 워커라면…….’
라스틴은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들을 이끌고 부딪친다면 인한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나, 인한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과 하찮기 그지없는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다.
‘90층의 몬스터들은 놈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인가?’
블러드 워커 프로젝트는 실패다.
그렇다면 마지막 보루는 90층 구간의 몬스터들뿐이다.
그러다 라스틴이 멈칫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지. 그렇군. 그 방법이 있었어.’
라스틴은 곧 천문을 조작을 실행했다.
* * *
한편, 검은 탑 71층.
필드 탐색 중이던 또 하나의 길드를 무너뜨린 인한의 곁에는 핏빛으로 물든 사람들이 하나둘 끼어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레오는 사방이 새까만 공간에 내동댕이쳐졌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자 땅바닥에 커다란 이동진이 보였다.
검은 탑 90층으로 가는 이동진이었다.
“…….”
그의 곁에 있던 몬스터의 군단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레오는 곧장 이동진 위에 올라탔다.
90층 구간은 검은 탑의 그 어떤 구간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면 결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거기다 필드의 크기는 기껏해야 1시간이면 전부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이고, 메인 던전이 즉 보스존이라고 할 정도로 던전의 규모도 적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90층 구간의 메인 던전에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는 몬스터가 헌터들을 맞이한다.
90층 보스, 펜데게니아.
불멸(不滅)을 지닌 영혼형 몬스터.
물리 공격은 맞질 않고, 마력을 통한 공격도 무시한다.
형체가 없기에 원형 구현도 소용이 없으며, 다른 약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격 방식은 딱 하나인 ‘빙의’.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으며, 한번 빙의되면 자살을 하게 된다.
데스 파티가 이들을 이긴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봉인이다.
90층에서 데스 파티는 공략조 100명이 죽을 동안 봉인을 완성시키고, 놈을 봉인하는 것으로 공략을 완료했었다.
그런 펜데게니아의 앞에 레오가 섰다.
-아글리렉 탁슈!
기이한 언어를 내뱉는 펜데게니아.
회색 불투명한 천과 같은 것들이 허공에 날아다닌다.
레오가 펜데게니아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 순간, 펜데게니아가 갑자기 움찔 몸을 떨더니 레오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아!
어느새, 90층의 보스 몬스터 펜데게니아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레오의 붉은 눈동자가 더욱 크게 빛을 발했다.
* * *
모든 일이 시작된 닷새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었다.
연합이 탄생했다.
임시로 검은 탑 연합이라 이름 붙은 연합의 장은 임시로 최인한이 맡았다.
처음에는 동양계 헌터 길드 위주의 구성이 이루어졌으나, 차차 여러 지역의 길드들도 연합에 합류 의사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합의 유지는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로 하겠습니다.”
대형 길드쯤 되면 사태의 진행 상황이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개인의 정보망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해태 길드만큼은 아니었다.
그렇게 길드 연합이 발족했다.
굳이 나뉘어져 있는 상태로는 또 한 번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때 처리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시작의 마을에 한데 모였다.
다른 마을이어도 딱히 상관없으나, 일반인들이 숨어 있을 수 있는 벙커가 있는 마을이 시작의 마을뿐이었다.
일반인들은 벙커에서 생활하도록 하며, 각 지역을 구역별로 나눠서 특정 길드에서 담당하기로 되었다.
“일단 레오를 찾아야 합니다.”
이 탑, 어딘가에 있을 레오를 찾기 위해 각 길드에서 인원들이 몇 명씩 여러 층으로 보내졌다.
“그가 우리에게 무언가 할 생각이라면 그냥 직접 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굳이 몬스터만 계속 보내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알 수 없지요. 마치…… 시선을 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다 쓸모가 없어졌다.
월드 퀘스트 발생 10일째.
시작의 마을의 중앙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전신에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은 사내.
그 이름은 레오 뒤보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