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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46화 (246/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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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 246화>

인한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눈에 펼쳐진 것은 처음 들어왔던 유적의 풍경이었다.

겪었던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야! 야! 너 어디야!

드루이드의 인형이 맹렬히 진동했다.

“어, 나 지금 가는 길.”

이정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다녀온다면서 어떻게 하루 종일 나가 있냐! 너 나간지 벌써 25시간 됐거든.

“뭐?”

하루가 넘었단 말인가?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아발론에서의 기억 대부분을 얻었으니…… 사실 더 지난 것 같긴 하지.’

인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인한은 팁에 합류했고.

퍼억!

임태호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에라이, 나쁜 놈! 어디 갔다 올 때는 언제 온다고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니냐!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하든가!”

인한으로선 억울하긴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동하긴 하셨네요?”

처음 자리를 잡았던 안전지대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는 안전지대였다.

그래 봤자 5킬로미터 정도 움직인 정도였지만, 불사족들이 뻔히 있는데 이동한 건 대단한 일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하루 종일 거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거기다…….”

임태호가 씨익 웃었다.

“그놈들, 생각해 보니까 완전 샌드백이더라고. 인간형인 데다 마력도 다루는데, 죽질 않잖아? 경험치만 안 줄 뿐이지 마음대로 공격 퍼부어도 괜찮으니까 수련하기 딱 좋다 이 말이지!”

그야말로 임태호다운 말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임태호만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겐지와 리셴이 흠흠, 낮게 기침을 하며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여간 천재들은…….’

천재면 좀 자만심도 가지고 자신의 실력을 믿고 대충대충 할 법도 한데, 이들에겐 그런 건 일절 없었다.

오히려 수련을 더하면 더했지, 쉬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그렇게 자만심을 갖지 못하는 데에는 인한의 역할이 지대했다.

아무리 성장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

거기다 그다지 재능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내 쥐꼬리만 한 재능 믿고 대충 해선 안 되지. 더 노력하자.’

잠도 줄여 가면서 수련하는데 더 강한 사람이 있다?

결국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성장의 기폭제는 인한이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넌 대체 뭐냐? 하루 동안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임태호가 인한을 살피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가 봐도 변한 기도.

평소의 인한은 거대한 산이나 큰 파도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몸에 지닌 엄청난 마력량과 철벽과 같은 무력 때문에 그랬다.

‘뭐랄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마력량은 물론이거니와 기세조차 마찬가지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인상이라는 게 있고 풍기는 기세라는 게 있는데, 지금의 인한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좀, 얻은 게 있습니다.”

인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거 뭔데? 좋은 거 있으면 나랑 좀 나눠 갖자.”

“형님, 전 세계인들 구하려고 불구덩이 뛰어들어 갈 수 있습니까?”

“뭐? 에이, 불구덩이 정도야. 크하하! 이 몸의 화상 면역이 몇 레벨인 줄은 아냐!”

“……그냥 표현이 그렇단 겁니다만.”

“흐음, 그런데 그런 짓을 왜 하냐? 걔네가 나한테 밥 먹여 주냐? 차라리 우리 길드 사람이 힘들면 죽더라도 도와줄 수 있지. 생판 모르는 남들 도우려고 왜 시간 낭비 하냐?”

임태호가 팔짱을 끼며 콧김을 훅 내쉬었다.

인한이 피식 웃었다.

“그럼 형님은 안 되겠습니다. 전 아무래도 손해 보는 성격이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뭐? 그게 뭔 소리냐?”

“그냥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형님도 7단계 도달하면 이렇게 될 겁니다.”

인한이 그 말을 뱉은 순간, 좌중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지금 이 새끼가 뭐라고…….”

“스승님, 지금 7단계라 하셨습니까?”

“와, 지린다. 형님, 7단계라구요? 그럼 뭐 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진짜 막 물을 반대로 흐르게 하거나 그런 것도 가능한 겁니까?”

6단계 원형 구현만 해도 심상을 통해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한다는,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7단계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이다.

“형님!”

“스승님!”

“야! 야! 짜샤! 빨리 말해 봐! 7단계는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말 안 하면 칼부림이라도 날 정도의 분위기가 되자, 인한이 흠칫 놀라며 외쳤다.

“저도 아직 잘 모릅니다! 좀 기다려 봐요!”

인한이 저도 모르게 마나를 움직였다.

순식간에 외부의 마나가 마력으로 변환되며 몰려든 사람들을 밀어냈다.

“헉! 지금?”

“봤죠. 마나가 마력으로 바로 변환됐어요!”

“와, 그래서 마력이 없다는 건가?”

또 난리가 날 것 같았다.

인한이 흠칫 놀라며 몸을 뺐다.

한쪽으로 뺐을 때쯤, 이정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이제 널 잘 모르겠다.”

“……왜 그러는데?”

“잠깐 밤 운동 다녀올 것처럼 나간 놈이 하루가 다 지나서야 돌아오질 않나. 드루이드의 인형은 연결도 되지 않고, 돌아오고 나서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하지 않나. 또 뭐 깨달음 얻었거나 기연 얻었거나 그런 거겠지.”

“…….”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걸 그렇게 축약해 버리는 이정환이었다.

‘아니, 뭐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렇긴 해도 뭔가 아니다 싶었다.

인한은 자리에 앉아 이정환이 주는 차를 마셨다.

차는 잘 모르지만 이정환이 달여 준 차는 언제나 좋은 향이 났다.

“흠! 나 뭘 좀 얻은 기분이다! 야! 겐지! 나와 봐!”

“아아……! 이것이 바로 상승의 경지……!”

“역시 스승님은…….”

떠들썩한 길드원들을 바라보니 복잡한 생각을 해 오던 것들이 모두 쓸데없이 느껴졌다.

“얼마 안 남았구나.”

이정환이 돌연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투에 묘한 기색이 느껴졌다. 분명 이정환이 말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인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이정환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정환도 마왕의 씨앗을 품고 있어.’

인한이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왜 난 이정환에 대한 건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 * *

땅의 목소리를 들은 이정환의 지휘 능력은 족히 열 배는 좋아졌다.

“힐러들, 10초 뒤에 바로 힐! 마법사들 준비 완료됐지? 버프 시작! 근거리 팀들은 1분 20초만 버티고!”

거의 초 단위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팀원의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적의 스킬, 마력의 유동 모두를 파악해서 머릿속에서 계산한 뒤 최적의 방법을 도출해 낸 결과였다.

‘괴물이다.’

삼국지 속 제갈량이 부활하면 이럴지 모르겠다.

거기다.

-몇 마리나 어그로 끌었어?

“서른네 마리다만.”

-거기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만 더 가면 커다란 낭떠러지가 있다. 거기로 떨어뜨리면 우리 쪽으로 접근해 오지 않을 거다.

“어, 으응…….”

지도도 없는데 맵을 파악하고 있으니, 지형마저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필드 심층부로 진행하다 보니 인한 혼자서 모든 불사족들을 끌어당길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불사족들과 전투를 벌이게 됐는데, 이정환은 전투를 벌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필드를 진행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이정환은 공략조를 보스존 앞까지 안내하는 데 성공했다.

‘대체 얼마나 빨라진 거야?’

전투를 최소한으로 줄이다 보니 훨씬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75층 보스존.

불사왕은 수십 명의 인간을 지점토처럼 뭉친 듯한 외견을 하고 있었다.

고깃덩어리 같은 육중한 몸에는 사람의 팔다리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수십 개의 얼굴이 여기저기에 달려 있기까지 했다.

‘저기 있다. 곡옥.’

휘어진 옥 형태의 보석이 고깃덩어리의 가장 위쪽에 박혀 있었다.

-감히 누가 내게 도전하는가.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지면에서 수도 없이 많은 불사족들이 솟아 올랐다.

족히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그 불사족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해태 길드를 노려보았다.

인한이 말했다.

“저 짜잘한 놈들 부탁한다.”

“뭐? 뭘 하려는 거야?”

“보스 몬스터를 혼자 해 볼게.”

인한이 지면을 박찼다.

아니, 박차는 모습도 없었다.

불사왕의 정면과 인한이 서 있던 공간이 교체되듯, 인한의 모습이 어느새 불사왕의 앞에 나타났다.

인한의 눈이 빛났다.

‘그래, 이런 거였군.’

왕들이 보여 주던 초동(初動)을 읽을 수 없는 이동법.

인한이 해낸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 흐름에 발을 얹는 거였어.’

세계의 온갖 힘의 흐름이 느껴지는 ‘그 세계’.

포말처럼 번져 있는 이 백색 선들은, 그저 손을 얹거나 따라갈 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카식 레코드에서부터 뻗어져 나온 하나의 힘의 줄기다.

힘이란 사용할 수도 있는 법.

7단계에 도달해 세계의 근원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 인한은 포말과 같이 퍼져 있는 이 흐름을 일부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원하는 위치에서 족히 10미터는 떨어진 곳에 이동하게 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아직 7단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될 뿐이다.

-어떻게 나의 방벽을……!

불사왕에게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그렇군.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몸으로부터 10미터 거리 이내에 마력 방벽을 펼쳐 놓았지?’

그걸 뚫지 못해 공략은 엄청난 힘이 들고는 했다.

“그럼 얌전히 곡옥을 내놓을 준비는 됐나?”

-감히! 우매한 인간 주제에!

“시끄럽다!”

인한이 주먹을 끌어당겼다.

한순간 세상이 하얗게 물들 정도의 백색 기운이 주먹을 감쌌다.

오래전, 볼카누스가 펼쳤던 일격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힘이 주먹에 집중됐다.

“극파!”

후욱-

주먹을 뻗은 순간.

백색 섬광이 세상을 잠식했다.

모든 소리도, 소음도 한순간 사라졌다.

그 끝에는…….

-크르아아아아아!

불사왕의 신체 일부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역시 이걸론 안 된다, 이거지?”

트리아스 액셀은 7단계에 도달했으나, 아직 극파는 완성형이 아니었다.

-이 우매한 인간 주제에!

콰앙! 콰아아앙!

불사왕이 독과 마법과 오러를 순식간에 사방으로 뿜어 댔다.

그러나 인한은 그 모든 걸 태연하게 맞으며 허공을 날아 불사왕에게 다가왔다.

뿌득!

양손을 크게 끌어당긴 인한의 두 팔에 세 개의 힘의 고리가 뭉쳐졌다.

‘데들리 러시.’

무극인, 그 열두 가지 기술 중 하나.

방어나 회피를 도외시한 채, 초근접 거리에서 무분별한 난타를 때려 박는 기술이었다.

쾅! 쾅! 쾅! 쾅!

인한의 주먹이 맹렬히 휘둘러지고, 불사왕의 육체가 뻥뻥 터져 나갔다.

-크어어어! 크어아아!

거친 비명이 토해졌다.

그 모습을 해태 길드원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 저게 사람이야?”

-크륵!

이창훈의 그 말에 곱린이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몬스터 ‘불사왕’을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75층 메인 던전 ‘불사족의 궁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채 1시간도 안 됐을 무렵.

결국 인한은 불사왕을 단독으로 처치해 버렸다.

“허어…….”

모두가 인한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인한이 천천히 지면에 착지했다.

주위에 가득하던 불사족들은 이미 쓰러진 지 오래였다.

“야…… 지금 뭐 한 거야?”

이정환이 당황한 어조로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잖아!”

이정환이 버럭 소리쳤다.

“곡옥까지 깨 버리면 어떻게 하냐! 저게 있어야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를 할 거 아니야!”

“……앗!”

“앗은 무슨! 크아악! 이 시간 낭비 어쩔 거야!”

이정환이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인한은 미안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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