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공략자들 241화>
해태 길드와 데스 파티가 피 터지게 전투를 벌이고, 또한 그 사후 처리로 공략조가 탑에 거의 붙어 있지 못할 동안이었다.
발터의 투왕 길드는 73층 메인 던전으로 입장해 버렸다.
인한은 굳이 뒤쫓지 않고 73층에서 공략을 계속하고 있었다.
73층, 잠시 비워 뒀던 해태 길드의 주둔지.
그곳에서 인한은 모닥불 앞에 앉아 박철환의 수첩을 펼쳤다.
‘볼수록 말이 안 되는 것들이군. 각층의 공략, 히든 던전의 위치, 그곳에서 얻어야 할 것들이나 몬스터의 특징이나 습성, 아이템이나 클래스, 앞으로 일어날 굵직한 일들과 유능한 헌터들의 신상까지 없는 게 없군.’
도저히 한 사람이 정리했을 거라고는 볼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회귀할 때마다 아이템을 들고 오지도 않았을 테니 이 모든 걸 외웠다는 건가?’
아무리 굵직굵직한 것들만 적혀 있다고 하지만 상당한 양이었다.
머릿속에 담고 있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적었을 것 같다.
‘대체 넌 몇 번이나 죽음을 반복한 거지?’
이 정도의 정보를 단순 암기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건만, 이런 것들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인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라면 당장 탑을 오를 수 있겠군.’
아마 현재 해태 길드의 진행 속도가 몇 배나 상승할 것이다.
물론, 길드원들의 성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철환이 데스 파티를 이끌고 빠르게 오르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게 클 것이다.
‘금세 오르겠어. 90층까지.’
박철환의 수첩에 적힌 것은 분명 무가지보의 정보들이었다.
또한 해태 길드에는 그 공략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력자들이 포진해 있다.
인한은 수첩을 잠시 더 읽다가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일단 무엇보다 75층이야.’
전투의 왕이 전해 준, 인벤토리 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템 ‘진실의 열쇠’를 떠올린 인한이 눈을 빛냈다.
75층은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를 하는 곳이다.
이 열쇠를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가면 알게 될 게 분명했다.
“후우…… 그럼.”
인한이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둔지 입구.
불침번을 서고 있는 건지, 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던 겐지가 인한을 발견했다.
“어라? 어디 가십니까?”
“수련.”
“아, 네, 그렇게 말해 두겠습니다.”
인한이 워낙 자주 밤마다 필드로 나가다 보니 별로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인한은 바로 73층 깊은 곳으로 향했다.
73층 중심부, 몬스터들이 가득한 곳.
인한은 자신의 주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의 그 기술…….’
인한은 박철환과 부딪혔던 순간을 떠올렸다.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부은 일격이었다.
‘지금 펼치라 그러면 못해.’
그걸 알고 있지만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니, 온몸이 그 순간의 전율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박철환의 검격, 자기 자신의 권격.
두 가지 모두가 눈에 화인처럼 새겨져 잊히지가 않는다.
거기다…….
‘조금, 아주 조금이면 될 것 같다.’
마나 스킬 7단계인지, 아니면 정체 모를 어떤 경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손에 잡힐 듯 애매모호하게 아른거리는 게 느껴졌다.
전투의 왕과의 전투에서 인한은 7단계에서 8단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눈으로 보았다.
이론, 혹은 환상으로만 존재했던 경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인한이 박철환과의 전투에서 무도(武道)의 극한을 체험했다면, 전투의 왕과의 전투에서는 마나 스킬의 극한을 체험했다.
‘해 보자.’
인한이 눈을 빛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크륵?
몬스터들이 인한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어둠 속,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는 몬스터들이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 * *
무극인의 기술은 총 12가지다.
일점 폭발의 기술 ‘풍제’와 일점 관통형 기술인 ‘나선류’.
방어를 관통하는 초근접 기술인 ‘제로 어택’.
유일한 원거리 기술인 ‘파공탄’과 유일한 발 기술인 ‘데몰리션 킥’.
겐지의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업그레이드된 ‘투인’.
세 힘의 조화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가공할 파괴력을 일으키는 ‘마극포’.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방어 기술 ‘리버스 스트림’.
광범위한 곳을 마력으로 휩쓸어 버리는 ‘코로나 임팩트’와 공격 기술이 아닌, 스텝과 보법에 대한 정리인 천종(天從).
근접 거리에서 상대를 제압한 후 미친 듯한 난타를 때려 박는, 데들리 러시.
‘마지막 열두 번째…… 극파(極破).’
펼칠 일이 거의 없는 데들리 러시나 기본적인 스텝으로 이루어진 천종과 다르게, 극파는 인한이 지금껏 못 펼친 기술이었다.
어렵거나 복잡하거나를 떠나서,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기술명과 마지막 기술이란 것만을 알 뿐, 그걸 어떻게 펼치는지와 어떤 기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극인은 인한이 만든 기술이기는 했으나, 인한이 완성한 기술은 아니었다.
아직 자신만의 기술이란 것이 미완성되어 있을 무렵, 40층에서 큐베리아 와의 전투에서 돌연 천문이 생성되며 완성형이 머릿속에 주입됐기 때문이다.
‘아마 이게 박철환과의 마지막에 펼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이어 가던 그때.
-크어어어엉!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키메라형 몬스터, 만티코어가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쾅!
쭉 뻗은 일격!
순식간에 만티코어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지금 인한이 한 것은 지금껏 펼쳐 오던 어떤 기술과도 다른 일권이었다.
극파.
그 단초가 잡혀 가고 있다.
‘아직 부족해. 그때에 비해선 조잡한 수준이다.’
-크르르…….
그 증거로 만티코어가 일어서고 있다.
콰득-
인한이 주먹을 뻗었다.
-크릉?
또다시 위력이 약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인 데다 스킬 보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큭!”
뒤편에서 달려든 다크 드레이크에 의해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인한은 재빨리 일어서며 다시 한번 자세를 잡았다.
쾅-
펼쳐진 주먹에 휘감긴 마력의 흐름이 이전과 달랐다.
더 위력적이고, 더 빨랐다.
우우웅!
마력은 정체 모를 힘에 의해 주위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결코 그동안 인한의 트리아스 액셀이 보여 주던 마력의 성질이 아니었다.
이 순간, 이 시점.
분수령이었다.
기술적으로도 마력적으로도, 인한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보스 몬스터 하인즈의 체내로 진입한 해태 길드는 빠른 속도로 공략을 진행했다.
“긴가민가했는데 정말 그 공략집 말대로 이루어지는군.”
이정환은 허탈한 듯한 소리로 말했다.
인한은 이정환에게 박철환의 수첩의 일부를 보여 주었다.
그 수첩에 따르면, 해태 길드가 3개월간 고생해서 찾은 메인 던전으로 향하는 길은 사실 길이 아니었다.
수첩에 따라 길을 찾았을 때야 비로소 해태 길드는 메인 던전이 진입할 수 있었다.
수첩의 설명에 따라, 해태 길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진행했다.
‘물론 다들 성장한 덕분이야.’
인한과 간부들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온갖 풍파를 겪으며 해태 길드의 길드원들도 한층 더 성장했다.
콰앙! 콰앙!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해태 길드의 전진을 알리는 축포와 같았다.
“가자.”
인한이 굳센 목소리로 말했다.
“예!”
길드원들이 외쳤다.
73층 공략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하인즈의 체내, 심장이 있는 방으로 향한 해태 길드는 보스 몬스터 하인즈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어진 74층 공략.
74층 필드, 천공도(天空島).
허공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섬이 떠 있는 이곳은 필드 자체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몬스터도 각 섬에 드물게 나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섬과 섬 사이의 길이가 말도 안 되게 길었다.
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력을 사용해도 닿지 않을 정도였다.
[천공선을 이용.]
[설계도에는…….]
[몬스터의 특징은…….]
[보스 몬스터는…….]
박철환의 수첩은 유효했다.
박철환은 섬에 있는 재료를 통해 섬과 섬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배의 제작법을 수첩에 적어 놓았다.
-우매한 인간들이여. 감히 나의 공간에 발을 들이느냐.
순식간에 메인 던전에 진입한 해태 길드는 75층 보스 몬스터 ‘천룡(天龍)’과 마주섰다.
서양의 드래곤보다는 동양의 용에 가까운 생명체.
구름과 구름, 섬과 섬 사이로 몸을 걸치고 있는 그 몬스터의 모습은 50층 보스존에서 마주했던 베히모스보다 족히 두 배는 거대해 보였다.
“저거 그냥 무시해! 역린(逆鱗)이 있을 거니까 그거 찾아!”
-감히 나의 말을…….
“찾았습니다! 어엇! 후방! 마법 옵니다!”
-나의 말을…….
“거기에 딜 집중시켜!”
“역린 부러뜨린 후에는 페이즈가 바뀐다! 섬이 흔들릴 거니까 다들 집중해!”
-나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이냐!
천룡의 외침에 대검을 치켜들었던 임태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용가리 새꺄! 우린 다음 층으로 간다!”
회귀 전, 인한의 기억 속 가공할 위력을 보여 주었던 보스 몬스터 천룡은 그렇게 쓰러졌다.
75층, 불사자(不死者)의 지옥.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필드에는 오직 핏빛으로 가득한 하늘과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그리고 75층에 진입한 해태 길드를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몬스터의 습격이었다.
-크아아아아! 죽어라! 죽어!
“으윽! 이거 뭐야! 왜 안 죽어!”
“일단 제압부터 해!”
온갖 몬스터가 그곳에 존재했다.
아인족, 인족, 용족부터 시작해서 고블린이나 각종 층에서 볼 수 있는 몬스터들까지.
다만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지 않는다는 것.
-크어, 윽, 아아…….
상반신이 모조리 터져 나간 몬스터가 순식간에 재생하며 달려들었다.
“윽! 이거 완전 그놈 같잖아!?”
-죽어라. 가증스러운 인간들이여.
레오 뒤보아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들의 습격.
인한이 외쳤다.
“천문 뜰 때까지만 기다려!”
그 뒤로는 지리멸렬한 싸움이었다.
족히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퀘스트가 주어졌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 / N]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난이도 : A+]
[성공 조건 : 불사자의 곡옥(曲玉)을 획득하십시오.]
[실패 조건 : 곡옥 획득 실패.]
[보상 :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그동안 클래스를 얻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언제나 유적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르 불사자의 지옥은 아니었다.
“천문 떴으면 빨리 이동해!”
인한의 외침과 함께 해태 길드 전원이 75층에서 빠져나갔다.
* * *
해태 길드 사무실.
1층에 모인 길드원들에게 인한이 입을 열었다.
불사자, 혹은 불사족(不死族)이라 불리는 존재들.
75층의 몬스터들은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언데드가 아닙니까?”
이창훈의 질문에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다르다. 75층의 메인 던전에는 불사왕(不死王)이라는 몬스터가 있다. 그놈이 장착하고 있는 불사의 곡옥을 강탈하면 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허…… 그럼 메인 던전까지 설마…….”
“그래, 전투를 해선 안 되지. 아니, 해도 되지만 아무것도 못 얻겠지. 애초에 죽지 않으니 부산물도 얻을 수 없어.”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60층 중상위권의 보스 몬스터 급인 필드.
그 필드를 쓰러뜨릴 수 없는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