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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38화 (238/266)

# 238

<공략자들 238화>

검은 탑 68층.

데스 파티의 주둔지.

박철환은 그의 수하인 임재창의 보고를 받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협곡으로 들어갔다고?”

“네, 그렇습니다.”

데스 파티를 겨냥한 해태 길드의 전투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데스 파티에 힘을 더해 주고 있던 유럽계 최상위 길드 다섯 곳이 무너졌고, 상위권 랭커 3명, 중위권 랭커 10명 정도가 제압되거나 죽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데스 파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에 있던 일이었고,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이정환은 즉시 전체에 연락을 돌려 공략조 전원을 67층에 집합시켰다.

그 외의 동맹 길드들에도 병력을 요청했다.

아군은 이미 전투를 치른 상태라 지쳐 있긴 하지만, 전투 자체가 금방 끝난 데다 데스 파티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있기 때문에 회복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해태 길드가 데스 파티를 이길 거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박철환.

혼자의 몸으로 길드 하나 정도는 간단하게 몰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그자를 막을 수 있는 건 해태 길드 측에서 오직 한 명, 인한뿐이었다.

그나마 임태호와 리셴이 대적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데스 파티에는 박철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둘은 다른 사람들을 마크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67층에 동맹 길드들과 공략조, 그리고 2팀이 집합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인한은 오지 않았다.

연락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이정환은 곧장 사람들을 물리고 필드의 심부에 있는 협곡으로 진입했다.

“그쪽에서 연락은?”

“끊겼습니다.”

“이유는?”

“그…… 운석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뭐? 운석?”

박철환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예. 마을에 운석이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근방 수십 킬로미터가 황무지가 된 모양입니다.”

“……거창하게도 하는군. 누가 전쟁의 왕이 만든 물건이 아니랄까 봐.”

“예?”

“아니다. 그래서?”

“추가로 인원을 보내 놓았으니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어중간하게 죽었으리라 확신하는 건 사양이다. 무조건 시체를 확인하고 가져오라고 해.”

“예.”

박철환은 피식 웃었다.

이걸로 끝이다.

아무리 불완전한 왕이라지만 이동민이 품은 것은 분명 레갈리아였다.

인간이 왕을 대적한다?

하루살이는 아무리 날아다녀도 호랑이를 죽일 수는 없다.

왕의 힘을 감당하는 건 어찌어찌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적의를 가진 왕과 싸워 이기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임재창이 잠시 드루이드의 인형을 들고 자리를 피했다.

다시 돌아온 그가 입을 열었다.

“방금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인한의 죽음.

그 뒤에 이어지는 건 해태 길드의 몰살이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인과율 중의 하나.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본래 50층 이하 구간에서 무너뜨려야만 했다.

그래야만 인과율의 흐름에 맞다.

이미 너무 많이 뒤틀려 버렸으니, 최대한 빨리 그 흐름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런데.

“최인한으로 확인되진 않았습니다만,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땅의 돌을 통해 이동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뭐?”

“근방 수십 킬로미터가 황무지가 되었으니 웬만한 헌터들이 땅의 돌로 찾아올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최인한으로 사료됩니다.”

“…….”

박철환이 입을 꽉 깨물었다.

화악!

그의 얼굴이 노기로 일그러지고, 한순간 마력이 뿜어지며 사방에 돌풍이 일었다.

“이 바퀴벌레 같은 자식이…….”

몇 번이나 인한을 죽이고자 했다.

몇 번이나 계획을 했고, 싸웠으며, 상황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또 살아왔다.

‘이제 그만 죽으란 말이다!’

꽈득!

꽉 움켜쥔 주먹에서부터 뼈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먹을 쥔 채 몸을 부르르 떤 박철환.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곧 미묘하게 풀어졌다.

“그래, 살아 있다는 거지…….”

박철환의 상태를 보며 임재창은 조심스레 자리를 피했다.

‘왕을 쓰러뜨렸다고? 그럴 리가.’

그런 힘을 가졌다면 지금쯤 인한은 100층에 닿아 있어야 정상이었다.

‘다른 뭔가가 있었겠지. 그놈은 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없어.’

인한은 마왕의 씨앗 보유자다.

그리고 이동민은 왕좌를 품은 존재였다.

모종의 상호 작용이 이루어졌을지 몰랐다.

‘나는, 어쩌면 놈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 이건…… 기대를 한 것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 떠오른 것은 또다시 살아난 최인한에 대한 분노였으나, 마음 한편에서 어쩌면 최인한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도통 알 수 없었다.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다.

어째서 숙적의 생존을 기대했단 말인가.

‘그래, 어찌 됐든 상관없다. 오히려 잘됐다. 네놈은 내가 쓰러뜨려 주마. 운 좋게 얻은 기회로 지금껏 탑을 올랐겠지만, 그래 봤자 네놈은 버러지에 불과하다. 죽여 주마, 최인한.’

박철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검은 탑 67층.

임태호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의사 선생, 나 이제 죽는 거요?”

“…….”

“거, 아프지 않게만 해 주쇼.”

임태호는 눈을 질끈 감고 팔을 내밀었다.

그 팔에는…… 기다란 검상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물론 한참을 꿰매야 할 것이고, 출혈도 상당해서 중상이라면 중상이라 말할 상처긴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마력을 극한으로 단련한 헌터들의 입장에서는 금세 회복할 수 있는 외상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임태호는 엄살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 진짜, 형님! 허구한 날 사나이, 사나이 그러는 양반이 그거 무섭다고 죽는 소리 냅니까?!”

“이창훈, 이 새끼가! 너도 칼자국 하나 그려 줘?”

“와, 저러다 사람 치겠네! 해 보쇼! 해 보시라고요!”

“둘 다 좀 조용히 좀 하십쇼!”

임태호의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성이 표정을 찡그렸다.

“자꾸 움직여서 실이 끊기잖습니까! 좀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크흠! 알겠으니까 거, 약하게…… 살살, 알겠소? 살살…….”

“시끄러워요!”

부분 마취 후 소독과 봉합을 끝낸 의사는 상처 부위를 찰싹 손바닥으로 치고는 다음 환자를 향해 이동했다.

데스 파티와의 충돌 없이 바로 이동을 개시한 해태 길드 측이었으나,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이동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임태호는 그것을 위해 후방을 지키다 상처를 입고 말았다.

퍽!

임태호가 옆에 있던 이창훈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악!”

“야야, 창훈아.”

“아, 왜 때립니까!”

“억울하면 네가 형님 하든가.”

“이익!”

“그건 그렇고, 그 새끼 이름이 뭐였더라?”

“누구요? 형님 상처 낸 사람이요? 임, 임…… 뭐더라?”

이창훈이 임태호의 물음에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을 때, 이정환이 다가오며 말했다.

“임재창입니다. 단검의 귀재라 불리는 사람이고…… 최근 랭킹 6위에 오른 모양이더군요. 박철환의 오른팔입니다.”

“오케이, 기억했다. 그놈은 내가 나중에 만나면 죽인다.”

임태호가 이를 까득 갈며 으르렁댔다.

그때였다.

쿵! 콰아아아앙!

폭음이 협곡 안쪽에 울려 퍼졌다.

임태호가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뭐지?”

“적습입니다! 적습입니다!”

콰아아아앙!

그다음 순간 또 한 번 폭음이 울려 퍼졌다.

협곡의 특성 탓에 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렸다.

“……움직였군.”

임태호가 대검을 쥐고 일어섰다.

“이제 더 이상 못 도망간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미로 같은 여기로 들어오긴 했는데…… 이게 끝이겠네요.”

“흥! 수적으로는 우리가 두 배나 많은데 왜 도망치냐? 그냥 때려 부수면 된다! 으하하!”

콰아아앙!

또 한 번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해태 길드 측이 숨어 있는 곳 입구 쪽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됐다.

* * *

박철환은 강하다.

단독으로 길드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콰르르릉!

정령술과 마법, 거기다 오러의 폭풍이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리고 한순간, 그 세 가지 힘이 융합을 시작하고.

꽈앙!

폭발이 일어나며 주위를 휩쓸었다.

순식간에 몇 명이나 사상자가 생겨났다.

트리아스 액셀을 사용하는 것을 어색해하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박철환의 힘은 완숙에 도달해 있었다.

“크으! 저거 완전 인한이의 힘 아니냐!”

임태호가 박철환의 마법을 오러로 베어 내며 이를 으득 갈았다.

지면에서 흙더미가 헤일처럼 쏟아져 오고, 바람의 칼날과 물의 폭풍, 불의 폭발까지 이어진다.

저 정도 되면 사실상 인간보다는 신에 가깝다.

박철환은 근접전을 펼치지도 않은 채 원거리에서 공격을 쏟아 냈다.

“난 저놈 잡으러 간다!”

“안 돼요! 형님!”

임태호가 땅을 박차며 박철환에게 접근했다.

거의 적진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방심했군.”

“이 자식!”

임재창이 수십 자루의 단검을 허공에 띄운 채 임태호에게 마주섰다.

그 순간.

콰앙!

임태호의 후방에서 정령술에 의한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비겁하게 뒤를!”

“전투에 비겁함이고 뭐고 없는 법이다.”

서걱!

임재창의 단검이 허공을 날았다.

아무리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라지만 양쪽 다 엘리트 헌터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혼전이 일어나기보다는 일대일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직까지 사상자가 전무한 게 믿을 수가 없지만……!’

이정환은 전황을 살피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런 상황으로 흘러가면 수적 우위에 있는 해태 길드 측이 유리하다.

하지만 저쪽에는 박철환이 있다.

‘왜 후방에서 마법과 정령술만 사용하는 거냐.’

직접 움직였으면 벌써 전황은 기울어졌을지도 모른다.

우웅!

그때, 이정환의 드루이드의 인형이 울렸다.

“인한아!”

-어디야! 위치를 말해!

“세 갈래 길 북서쪽으로 쭉 올라오는 길에 있는 협곡이다!”

그다음 순간.

쑤우우우우웅! 콰앙!

유성과 같은 것이 날아와 지면에 처박혔다.

후드득 튀어 오르는 모래 먼지.

아무리 오러와 마법과 정령술이 쉴 새 없이 터져 나가는 전장이었지만, 좌중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왔구나!”

먼저 외친 것은 박철환이었다.

후방에만 있던 박철환이 지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콰앙-

뇌성과 같은 울림이 사방을 잠식했다.

쩌어어엉!

또 한 번.

모래 먼지 속에서 박철환이 누군가와 부딪혔다.

‘저건!’

해태 길드 측의 표정에 화색이 맴돌았다.

“인한아!”

해태 길드 길드장, 최인한이 도착한 것이었다.

콰앙!

한 줄기 폭음.

6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보지 못하는 충돌이다.

원형 구현과 원형 구현의 충돌.

박철환이 날린 분해의 원형 구현이 인한의 원형 구현에 맞아 상쇄됐다.

인한이 휘두른 원형 구현.

그 성질이 일전에 봤던 인한의 원형 구현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박철환이 순간 흠칫 놀랐지만, 금세 다시 원형 구현을 휘둘러 상쇄시켰다.

“그건 뭐지? 지금 두 가지 원형을 차례로 펼친 건가?”

“그래, 이런 건 못 하나 보지?”

빙글빙글 웃으며 도발하는 인한.

박철환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래선 끝이 없겠군.”

인한이 원형 구현 수십 개를 동시에 구현해 펼치는 것이라면 모를까, 같은 경지에 도달한 박철환이라면 같은 원형 구현을 펼치는 것으로 상쇄시킬 수가 있다.

결국, 원형 구현의 싸움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우우우웅!

인한과 박철환 양쪽에서 트리아스 액셀의 힘이 증폭되었다.

콰앙!

부딪치는 양측.

“결국 이렇게 되는 거겠지!”

박철환이 그렇게 외치며 힘을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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