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232화 (232/266)

# 232

<공략자들 232화>

73층, 해태 길드의 주둔지.

이정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펴졌다를 반복하다, 끝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그러니까…… 선제공격하자고?”

“어, 제대로 알아들었네.”

“아니, 그게, 어…….”

“넌 대외적인 시선이나 평판이나 명분을 너무 신경 써. 이러나저러나 우린 헌터 길드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어.”

이정환이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투왕 길드에서 돌아온 직후 인한이 문득 꺼낸 말 때문이었다.

“투왕 길드는 아마 끼어들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공격하자. 대충 리스트 있다며? 느닷없이 데스 파티를 치는 건 위험부담이 있어. 있으니까, 그 리스트에 있는 길드를 먼저 친다.”

데스 파티 및 동맹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몇몇 길드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말한 것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전 세계적으로 해태 길드가 가지고 있는 평판, 헌터들 사이에서의 이미지 등이 걸렸던 이정환이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게 문제가 될까 싶었다.

해태 길드도 어디까지나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공략조 내에서야 어느 정도 ‘탑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탑을 끝내는 것을 우선시하긴 하지만, 그들도 돈도 벌려고 하고 손득을 따지기도 한다.

‘그런 해태 길드가 갑자기 적대하는 길드를 친다라…….’

물론 주위에서 의아하긴 할 것이다.

지금껏 해태 길드는 데스 파티 때를 제외하면 길드 간의 분쟁에 끼어든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이제는 해태 길드의 채널이 된 ‘해태 채널’과 각종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해태 길드를 공격하려는 불온한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때문에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하면 감히 누가 뭐라고 할까.

‘믿든 말든 상관이 없어. 오히려 물러 보이던 지금까지의 인상과 다르게 강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효과까지…….’

하지만 과연 그렇게 간단하게 일이 풀릴지는 미지수였다.

다름 아닌 박철환을 상대하는 일이다.

거기다 이정환의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또 있었다.

‘애초에…… 그래도 되는 걸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이다.

물론 곧 자신들을 치겠지만,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다.

먼저 공격을 받아서 반격하는 것과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그때.

“부길드장님.”

리셴이었다.

회의 중에도 거의 입을 열지 않는 그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 네?”

“부길드장님께서는 머리가 좋으십니다. 판단도 빠르고, 복잡한 것을 속 시원하게 해결할 능력도 가지고 계시지요.”

“갑자기 왜…….”

“그러나 만사를 너무 신중히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지 않아요. 과감함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그 말에 이정환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과감함.

이정환에게 부족한 그것.

“또한, 지금 하고 있는 그 생각, 그건 그다지 좋은 경향이 아닙니다. 어찌 적의 목숨마저 신경 쓰는 것입니까. 그러다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

정곡이었다.

이정환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 최선을 선택한다고 최고의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이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각 팀의 팀장들에게 전해 둘게.”

이로써 선제공격에 대한 방향성이 잡혔다.

인한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옛 스승과 제자라…….’

리셴과 이정환.

혈맹 길드 시절, 희대의 신검과 그 제자인 클라이머의 대화다.

시간을 뛰어넘어, 리셴은 이곳에서도 이정환에게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인한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 * *

검은 탑 67층.

빙결사라는 히든 클래스 보유자이자, 극한의 페트로라는 이름이 붙은 사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분께서 원하셨다.’

그의 모습에는 경건함마저 묻어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은 기도를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성전이다.’

페트로는 다시 시선을 돌려 길드원들을 바라보았다.

67층 메인 던전 앞.

길드원들은 던전 공략 준비를 멈춘 채 메인 던전에서 나와 장비를 점검 중이었다.

2주에서 3주 정도의 시간만 주어졌다면 68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성전을 위한 준비다.

‘만반의 상태로 임할 것이니.’

길드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어째서 코앞에 던전 클리어를 앞두고 정비를 위해 마을로 돌아가야 하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필드를 횡단해야 하고, 던전 공략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 그렇기에…… 가련한 놈들. 이 세계의 진실을 지금이라도 가르쳐 주고 싶구나.’

페트로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검은 탑, 박철환, 그리고 신.

박철환은 신의 대변자였다.

그의 등 뒤에 솟은 네 쌍의 날개와 심장에 심어 주었던 씨앗으로 페트로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페트로. 준비 끝났어.”

페트로의 아내, 릴케 밀러가 다가왔다.

같은 헌터인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페트로를 바라보았다.

‘바뀌었어.’

거칠고 폭력적인 사내가 바로 페트로였다.

그리고 그는 그런 모습 뒤에 철저히 계산적인 면모마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무언가가 그의 눈을 가리고 있다.

그와 벌써 십수 년째 같이 살아온 릴케가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느닷없는 연합에…… 해태 길드를 친다니?’

해태 길드와 딱히 교류를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척을 진 적도 없다.

릴케는 내심 누구보다 빠르게 탑을 오르며 공략에 대한 정보는 대중에 가감 없이 공개하는 해태 길드를 존경하고 있던 참이었다.

“알았다. 돌아가겠다.”

페트로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며 돌아섰다.

더 이상 그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다.

릴케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쉰 채,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있었다.

“1조, 보고합니다. 페트로가 지금 마을로 복귀합니다. 반복합니다. 페트로가 마을로 복귀합니다.”

해태 길드의 숨겨져 있는 인한과 이정환의 직속 조직.

정보 수집과 탐색을 전문으로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알았다. 조심히 복귀하도록.

“예!”

* * *

릴케는 모험가 클래스를 지닌 헌터였다.

모험가 클래스는 한 분야에 특화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스킬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임기응변만 따라 준다면 다채로운 전투가 가능한 클래스였다.

‘저건…….’

그런 모험가 클래스의 스킬 중 하나.

탐색 스킬 중 하나인 ‘이글 아이’에 묘한 기척이 발견됐다.

‘사람?’

다수의 사람이다.

대충 가늠해도 200명 안팎.

더 자세히 확인해 보고자 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마력의 잔향이 파악하기 힘들게 꼬아져 있다.

‘이런 식으로 마력을 숨길 수 있다고?’

보통 탐색 스킬은 상대의 마력의 잔향을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잔향의 규모와 양을 계산해 상대의 숫자를 파악할 수 있다.

릴케가 다급히 자신의 남편, 페트로를 바라보았다.

“앞에 사람들이 있어. 길드 한 개 분량의 사람이야.”

“사람? 적인가?”

“그건 모르겠어. 굳이 움직이고 있지 않기는 한데…….”

“이곳은 어차피 세 갈래 길이다. 돌아가면 그뿐이지.”

페트로가 명령을 내리고, 길드가 방향을 틀었다.

중앙은 가깝긴 하지만 사람의 모습이 느껴졌던 곳과 멀지 않다.

그렇다면 조금 좁은 길이긴 하지만 오른쪽이 나을 터였다.

철그럭! 철그럭!

길드원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졌다.

나란히 길게 서면 20명 정도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길이었다.

‘잠깐, 협곡?’

릴케가 흠칫 놀랐다.

양쪽 위, 낭떠러지의 높이는 기껏해야 5미터이긴 하지만 분명 양옆이 막혀 있다.

“자, 잠깐! 안 돼! 잠깐만!”

릴케가 다급히 외쳤다.

페트로가 다시 한번 표정을 찡그렸다.

“돌아가자. 매복당하면 끝이야. 중앙으로 가야 해.”

“……타당하군. 알았다.”

그들은 다시 한번 길을 돌렸다.

중앙으로 쭉 뻗은 길.

사방이 탁 트인 평지인 게 당점이자 장점이긴 하지만, 적어도 빠르게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때.

휘리릭! 쾅!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폭발의 여파를 빙결 마법으로 막아선 페트로.

그러나 갑작스러운 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앙! 콰앙!

지면이었다.

지면에서 무언가가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지뢰?!’

아티팩트를 이용한 지뢰라는 것을 페트로가 알아차렸다.

그 순간.

쑤우욱! 콰앙!

오러의 참격이 날아들었다.

“크하하! 이것들 진짜 이리로 오는구나!”

족히 100미터는 멀리서 달려오는 인영.

그가 오러를 날렸다.

‘이 위력은 무슨!’

간신히 거리 탓에 위력이 감소되어 간신히 흘릴 수 있었지만, 근거리에서 맞았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힘이었다.

“크윽! 누구냐!”

“정말 이정환 그 녀석! 사내자식이 비실비실하니 마음엔 안 들지만, 머리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

한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근육질의 육체에 동양인답지 않는 거구.

어깨에 걸친 것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대검.

‘설마?’

릴케는 그 대검을 본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대검을 사용하는 헌터는 드물다.

하물며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더더욱.

“괴인(怪人)?”

검은 탑 랭킹 5위, 괴인 임태호.

그가 정면에 우뚝 선 채 막아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멀리서 화염구 하나가 길드원을 향해 날라들었다.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마법, 마법, 그리고 또 마법.

마법의 폭격이 이어졌다.

“분명 좌측 길에 있었는데 어떻게 벌써……!”

“아, 내가 먼저 왔거든.”

“뭐?”

거짓말이 아니었다.

주위의 기척을 살펴봐도 임태호는 혼자다.

“우측 길은 우리 길드에서 짱구 굴리는 친구가 절대 안 갈 테니 지키지도 말라고 했고 말이야. 중간으로 가면 지뢰가 시간 벌어 줄 거니까 일단 좌측 길에 있으라고 하더라고.”

릴케의 표정이 구겨졌다.

임태호가 귓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채 거칠게 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혼자 온 거지?”

“아니, 뭐, 좀 쑤셔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뒤에서 따라오고 있기는 한데, 아마 늦어서 저렇게 마법 던지는 걸 거다.”

휘이이익! 콰앙!

그때 또 한 번 마법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뢰는 단순한 함정에 불과했다.

날아오는 마법도 위력이 약한 견제용이다.

다른 이들이 다급히 뛰어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직 오려면 한참 걸리는 거리였다.

“후후후! 우매한 것! 그렇다면 먼저 네놈을 죽여 주마! 크하하! 성전의 시작이다!”

“우매한? 성전? 이 새끼 이거, 좀 안타까운 친구였어? 참 나, 너희들도 고생한다.”

릴케를 바라보며 관자놀이 부근에서 손가락을 휘휘 흔드는 임태호.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는 손짓이었다.

그 모습을 본 페트로의 얼굴이 더없이 구겨졌다.

“건방진! 나와라, 빙결의 괴수들이여! 프로즌 카니발!”

콰르르릉!

그 순간, 얼음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를!

-컹! 컹!

주위의 공간에 차오른 괴수들이 임태호를 보며 적의를 드높였다.

무지막지한 마력량을 바라보는 임태호의 눈에 호승심이 가득 차올랐다.

최근 랭킹 10위 권 안에 들어온 강자, 극한의 페트로의 진면목.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흐하하!”

“4천 마리의 얼음의 괴수들! 과연 네놈은 버틸 수 있겠…….”

“원형 구현! 거대화!”

콰과과과광!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외친 목소리.

그 순간, 임태호의 존재감이 순식간에 증폭됐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대검이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하며, 끝내 태양의 빛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게 변했다.

콰르르릉!

운석이 떨어지는 듯하다.

대검이 지면을 강타하고, 지축이 흔들리며 얼음의 괴수들이 깔려 뭉개졌다.

임태호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크하하! 이제 100마리뿐이군! 네놈들이야말로 이 검을 막을 수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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