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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30화 (230/266)

# 230

<공략자들 230화>

최근 들어서 길드원들의 원형 구현을 봐주고 있는 인한은 공략 중일 때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으음, 분명 같은 오러로 다루는 기술인데 원형 구현은 잘 못 베끼겠습니다.”

인한은 길드원이 있는 안전지대를 향해 리셴과 나란히 걸어갔다.

“그래도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이제 위력만 낮추면 즉발로도 가능하죠?”

“예, 그렇습니다.”

“대단하네요. 난 그렇게 빨리 펼치기는 힘들어서.”

인한은 다양한 원형 구현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펼치는 데 어느 정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 준비 시간이라는 것도 그다지 길지는 않다.

“다 끝났어?”

인한이 해태 길드가 있는 안전지대로 돌아왔을 때, 이정환이 인한에게 다가왔다.

“어, 그런데 왜?”

“그럼 이리 와 봐. 회의할 시간이다.”

한쪽으로 향하자 간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음? 그런데 겐지는?”

“음…… 수련하는 데 방해될까 봐 말 안 걸었어. 아무래도 후배한테 추월당한 게 자존심에 걸렸나 보지.”

이정환이 쓰게 웃으며 리셴을 바라보았다.

임태호는 물론이거니와 리셴마저 원형 구현을 이뤄 냈음에도 겐지는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으음, 6단계는 깨달음의 영역이라…… 어차피 언젠간 도달하게 될 텐데. 일단 도달하고 나면 벌려진 거리가 금세 좁혀질 거고.’

리셴이 괴물 같은 재능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겐지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거기다 리셴보다 더 일찍 해태 길드에서 성장해 온 겐지는, 지금도 원형 구현만 빼면 리셴보다 앞서 나갔다.

인한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정환이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현재 연락받은 사항들부터 보고할게. 일본의 용검, 중국의 혈맹, 인도의 왕두 길드로부터 지원 요청이 있어서 2팀과 4팀을 보냈다. 어느 정도 보상은 받을 건데 과하게 요구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해. 동맹은 계속 유지해야지.”

원래 한중일의 3개의 국가에서만 동맹을 찾았지만, 점점 규모를 넓혀 가서, 최근에는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영미권의 헌터 길드에까지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말을 먼저 꺼냈다는 건…….’

그리고 동맹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다음 안건인데, 데스 파티의 동향이 수상하다.”

회의에 참석했던 전원의 표정이 구겨졌다.

데스 파티.

인한의 과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사람도 그들이 해태 길드에게 뭘 원하는지는 알고 있다.

“놈들이 현재 우리와 같은 층에 있는 건 알고 있지?”

“그래.”

60층 중반 때부터 공략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엎치락뒤치락하며 탑을 오르는 중이었다.

‘아니, 사실 진작 추월당했을지도 모르지.’

데스 파티는 49층에서 해태 길드에 의해 아인종을 규제하는 일을 실패한 이후로, 포기하지 않고 몇몇 아인종 마을을 다시 한번 규제했다.

모종의 집착마저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병력이 분산되는 바람에 공략 속도가 늦어졌고, 해태 길드가 치고 나가면서 차이가 벌어졌었다.

워낙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탓에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지만, 박철환은 검은 탑의 특수성이라는 것으로 일축하며 모조리 묵살해 왔다.

“심어 놨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어. 최근 길드 몇 곳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공략 중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한데, 주력 헌터들이 움직임을 멈췄어. 데스 파티 자체적으로는 그다지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머지가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이거군.”

“그렇지.”

지난 몇 년간 데스 파티는 해태 길드와 거의 부딪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박철환은 인한을, 그리고 해태 길드의 확실한 몰락을 원하고 있으니까.

“네가 볼 땐 어때. 확실할 거 같나?”

“확실해.”

인한이 생각에 잠겼다.

이정환은 언제나 길을 제시한다.

이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고, 저쪽으로 가면 뭐가 나올지 알려 준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을 결정하는 것은 길드장인 인한.

“이번 층을 일단 클리어부터 하자. 이번에 메인 던전으로 가는 길을 찾았으니까.”

장장 3개월 만에 필드를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워낙 울창한 밀림인 데다, 길이 복잡해서 그동안 헤맸던 것이었다.

“얘기할 거 더 있어?”

“그래, 투왕 길드 건이다.”

전원의 눈이 반짝 빛났다.

사실 해태 길드원들은 인한을 가장 강한 헌터로 생각하고 있다.

인한이 들었다면 억울하다고 가슴을 퍽퍽 쳤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세계 최고의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사람을 인한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1세대 헌터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랭킹 1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발터도 무시할 수 없는 적이긴 하다.

애초에 레오와 박철환과 싸워 이겼던 인한이지만, 레오는 어디까지나 2인자였고, 일인자는 발터였기 때문이다.

그런 발터가 세운 길드, 투왕.

사실상 직접 만든 길드라기보단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을 길드라는 울타리 안에 모은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탑을 올라 72층에 도달했다.

“그런데 투왕 길드가 왜?”

“이번에 북쪽에서 길을 발견한 모양이야.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잘못하면 부딪힐지도 몰라.”

“아이고! 그 싸움광들은 진짜…….”

“그거 태호 형님이 말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야? 이 새끼가 내가 걔네들처럼 싸움에 미쳤다고 하는 거냐?”

“아니, 제가 언제 그렇게까지 말했습니까!”

평소처럼 티격태격대는 임태호와 이정환.

그들의 말처럼, 투왕 길드는 여기저기 싸움을 걸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데스 파티처럼 확실하게 해태 길드의 적인 건 아닌데, 그렇다고 확실하게 아군인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독보.

그들은 탑을 오르고, 싸우는 것에만 미쳐 있는 종자들이었다.

“70층에서 기억나지? 던전 공략 중에 갑자기 쳐들어와서 개싸움 난 거. 그런 일 발생하지 않으려면 조정을 해야 할 거 같아.”

“조정이라…… 그래,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전귀 길드야.”

“응? 전귀 길드?”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3년 전, 30층 중반 부분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 이후, 그들은 단 한 번도 전면에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젠 길드라고 불러도 되나 모르겠네.”

“왜?”

“옛 전귀 길드의 길드원 중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어. 모습을 드러낸 층수는 36층. 그런데…… 지금 고작 일주일 만에 50층에서 발견됐다. 이동만 해도 그렇게 빠르게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정보원들을 닦달을 했는데…… 지금 다 다른 말을 하고 있어서 모호해.”

인한의 표정이 구겨졌다.

전귀 길드.

왕, 그것도 전쟁의 왕의 씨앗을 받은 자.

아직도 그 소름 끼쳤던 집착을 잊지 못한다.

“일단 그건 보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또 있어?”

“아니, 이게 끝이다.”

“그럼 난…… 투왕 길드를 만나고 올게.”

인한이 숨을 훅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발터와의 전투 이후, 전귀 길드는 무작정 도망쳤다.

사상자를 챙기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다.

중요한 건 부상자였다.

사실상 전원이 다 중상을 입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상자를 챙길 여력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이동민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도망가던 도중, 묘한 감각을 공유했다.

‘던전이 근처에 있다.’

본 것도 아니고, 지식에 있는 것도 아닌데, 히든 던전이 근처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귀 길드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야야! 거기 좀 더 잘 파 봐! 뭐가 있다잖아!”

“금속 탐지기 가져온 놈 꺼내고! 그 비싸게 준 거 있었잖아! 그것도 꺼내! 어쩌구 파 검사기!”

하지만 그곳엔 이미 정체 모를 길드가 히든 던전을 탐색하고 있었다.

출현 조건을 모르기 때문에 조건을 파악하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전귀 길드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아니, 사실 시선을 교환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바로 달려들었고…….

“크악! 네, 네놈들 뭐…… 커으억!”

“꺄아악!”

“쿨럭!”

100명이 넘는 길드 하나를 전멸시켰다.

“크윽.”

물론, 아무리 전귀 길드라 한들 발터와의 전투 직후에 다시 전투를 치른 것이었다.

당연히 중상자가 나왔다.

“사, 살려…… 도와줘…….”

중년의 사내는 스쳐 가는 이동민의 발목을 잡았다.

‘뭐지? 왜 도와 달라고 하는 거지?’

뭔가 정체 모를 감정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동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자신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악!

세 명이 죽어서 딱 200명이 된 전귀 길드.

그들은 히든 던전으로 입장했다.

입장 조건도 던전의 위치처럼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고, 조건을 충족해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 히든 던전 속에서.

전귀 길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육전을 시작했다.

누가 먼저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던전 안으로 전원이 들어온 순간, 검을 휘둘러 가장 가까이 있는 전귀 길드원을 후려쳤다.

모든 길드원이 동시에 똑같은 일을 행했다.

누군가는 정면에서 맞섰으며, 누군가는 도망쳤고, 누군가는 몸을 사리며 사태의 추이를 살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생존.

모두가 산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들 중 마지막에 남은 한 명이 되겠다는 게 그들의 선택이었다.

전귀는 서로를 서로가 사냥해 갔다.

타인에 의해 죽었을 때와 달리, 전귀의 내에서는 죽인 순간 상대의 힘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이동민, 그는 끝까지 숨었다.

먹을 음식이 없어서 몬스터를 먹었고, 쥐나 벌레를 잡아먹었다.

물 대신 죽은 길드원의 피를 마셨으며, 땅을 파서 숨은 뒤 며칠 동안 웅크린 채 지냈다.

그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숨고, 숨고, 또 숨고, 죽기 직전까지 숨었다.

그렇게 3년간 숨어 지냈다.

지루함이나 고통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그저 숨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끝끝내 이동민을 제외한 두 명이 남았다.

그들은 강했다.

이틀을 내리 싸운 후, 그들 중 하나가 생존했다.

그때 이동민은 숨는 걸 그만뒀다.

밖으로 튀어나온 그는 전투로 지쳐 있는 자의 목을 베었다. 사내의 목에선 시뻘건 선혈이 치솟았다.

그리고.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합니다.]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비정상적인…….]

[씨앗을 받아들였습니다.]

[씨앗이 개화합니다.]

[왕좌를 완성했습니다.]

[레갈리아가 생성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동민은 전신에 가득한 미증유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히든 던전에서 나왔다.

햇빛은 너무 눈이 부셨고, 신선한 공기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동민은 검을 쥐었다.

-최인한을 죽여라.

그건 절대 명제와 같은 것이었다.

이동민은 그 명령을 따랐다.

각성자가 된 후로 지금껏 끝도 없이 찾아왔던 가슴속의 공허.

그 공허함을, 최인한이라는 사내라면 채워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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