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229화 (229/266)

# 229

<공략자들 229화>

검은 탑 73층 필드, 하인즈.

그곳에서 한 줄기 폭음이 주위에 몰아쳤다.

콰아아앙-

메아리치듯 폭발음이 긴 여운을 남기며 흘러나왔다.

콰앙! 콰앙!

이곳저곳, 때때로 멀어졌다 때때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두 존재.

한 번 충돌할 때마다 가공할 힘의 폭풍이 사방에 몰아쳤다.

검을 든 사내와 붉은 장갑을 낀 사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접전을 벌이는 순간, 검을 든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큰 것이야말로 강한 거다! 원형 구현, 거대화(巨大化)!”

그 순간, 사내가 쥐고 있는 검이 무지막지한 크기로 팽창했다.

대체 얼마나 커다란 건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의 크기.

한순간 지면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그대로 양단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대검이 휘둘러졌다.

일단 휘두를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만, 휘두른다는 전제하에 그 정도로 거대한 검이라면 당연히 속도도 느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속 같은 것은 없었다.

중력이며 관성이며 저항이며 모든 물리 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일말의 느려짐도 없이 순식간에 적수공권의 사내에게 휘둘러졌다.

“…….”

그리고 그걸 마주하며, 사내가 주먹을 뻗었다.

쩌엉-

유리장이 깨진 듯한 소음.

그동안 천지를 뒤흔들 듯 터져 나오던 폭음에 비하면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소리였다.

퍼어어엉!

하지만 그 소리의 끝에 찾아온 것은 경악이다.

거대한 산맥과도 같던 대검이, 풍선 터지듯 한순간 거센 오러를 사방으로 흩뿌리고는 크기가 줄어들었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물건의 갑작스러운 소멸.

그곳으로 바람이 비어 있던 공간을 차지하며 태풍과 같은 거센 돌돌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도저히 사람과 사람의 싸움으로 볼 수 없는 전투.

끝내 돌풍이 멎자, 한 사내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푸하! 졌다!”

“이제 상당히 다듬어졌네요.”

“크으! 넌 어떻게 이런 걸 뻥뻥 써 대냐? 이거 오러양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네!”

“형님이 유난히 많이 잡아먹는 것 같군요. 그래도 쓸 만한 것 같습니다.”

“아직 멀었지!”

붉은 장갑의 사내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러자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니, 이제는 청년의 풋풋함보단 성숙한 느낌이 흘러나오는 사내였다.

그리고 그와 마주했던 사내는 다름 아닌 임태호였다.

“두 분! 그쯤하고 얼른 와서 식사하세요!”

그때쯤 한 단아한 인상의 여성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흐흐, 좋겠다?”

“……예?”

“이 난봉꾼 자식. 뭘 모르는 척이야? 소영이에, 아나에…… 그리고 하영이라 그랬나? 저 사람?”

“으윽!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개뿔이 아니야. 그래서? 어느 쪽이 이상형인데?”

“아니라고요!”

인한이 도망치듯 땅을 박찼다.

그 뒤를 임태호가 능글맞은 표정을 하며 따라붙었다.

둘이 도착한 곳.

안전지대에 일단의 무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태 길드의 모습이다.

볼 때마다 가슴 벅찬 광경.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인한은 이 광경을 볼 때마다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인한 씨. 식사 준비됐어요.”

“고마워요. 오늘 당번 누구였죠?”

“저예요.”

“오, 기대되는데요?”

검은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여성.

과거, 인한의 연인이었던 사람.

하영이 인한의 옆에서 배시시 웃었다.

인한은 간부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 털썩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꽤 많이 지났구나.’

하얀 그릇에 담긴 스튜를 먹으며 인한이 생각에 잠겼다.

60층 공략으로부터, 3년이 흘렀다.

* * *

60층 공략 이후.

해태 길드 공략조에서는 이탈자가 발생했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법이고, 지키고 싶고 위하고 싶은 것은 많으니까.

다행히도 이탈 희망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12명 정도만이 공략조에서 빠져나왔다.

거기다 그마저도 아예 길드를 빠져나가길 원하는 게 아니라, 4팀이라는 신규 팀을 창설해서 후방에서 지원하는 정도를 원하는 이들이었다.

그로써 해태 길드의 공략조의 총인원은 124명이 되었다.

때때로 인원이 충원되기도,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12명씩이나 빠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고작 12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략조가 10개의 작은 팀으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거의 한 개 팀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후 해태 길드는 정비 기간을 가졌다.

때마침 2팀에서 1팀으로 승격할 사람도 있었고, ‘슈페르 아스트라’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길드원들이 홀로 수련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정비가 끝나고, 61층 공략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에 도달했다.

3년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66층 보스 몬스터 ‘삼두룡’ 공략은 역대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사상자도 발생했다.

공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4차 몬스터 웨이브의 알람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임태호가 마나 스킬 6단계 원형 구현에 도달하며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다.

60층 중반부부터는 한 층 한 층을 공략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67층에 머물러 있을 무렵, 63층쯤 올랐던 하영이 공략조에 합류했다.

계속해서 사업 규모를 키우던 해태 길드는 시가 총액 4천억대로 진입했다.

리 쉔펑을 필두로 한 연구진들이 개발한 몇 가지 아이템들이 대박을 친 것이 주효했다.

해태 길드의 이름은 헌터들에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실생활에도 많이 파고들 수 있었다.

그 무렵 간부의 수가 늘어났다.

리셴과 조나단 최였는데, 실적도 실적이지만 간부들과 길드원들 사이에서의 평판이 가장 좋았던 사람들이라 반발은 없었다.

70층에 도달했을 무렵, 그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발터 에스키엘이 전면에 드러났다.

언제까지나 홀로 다닐 줄 알았던 그는 백 명 안팎의 헌터들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투왕 길드의 탄생이었다.

* * *

식사가 끝나고, 리셴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인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다음은 제 차례입니까?”

그의 손에는 광택이 없는 묵빛의 검이 들려 있었다.

S급 성장형 아이템, 천검(天劍)이다.

66층 공략 성공 직후, 리셴은 홀로 수련하던 도중 무한의 열쇠를 획득했다.

인과율일까, 아니면 정해진 운명이었던 걸까.

회귀 전에도 얻었던 인피니티 시리즈가 지금의 리셴에게도 찾아왔다.

인한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식후 운동 삼아 한번 해 보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스승님 소리 그만하라니까.”

인한과 리셴은 해태 길드의 주둔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마주섰다.

리셴은 검을 쥔 채 눈을 반쯤 감았다.

그 순간, ‘그 공간’에 접속해 있는 인한의 눈에 리셴의 검이 녹아내리듯 소멸되는 것이 보였다.

원형 구현.

예리한 기운이 인한의 정면에 생성됐다.

원형 구현을 얻지 못한 사람은 감지할 수조차 없는 힘.

리셴 또한, 임태호와 마찬가지로 원형 구현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리셴의 원형 구현은 심검.’

마음이 닿는 곳, 의지가 향하는 곳이라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격.

레오와 비슷한 검격이지만, 조금 다르다.

레오가 극한의 예리함을 띤 검격이라면, 리셴의 검은 정도(正道)가 스며 있다.

워낙 수많은 기술을 간단히 습득하는 천재이기에 주위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사실 리셴은 겐지나 아나스타샤보다 더한 기본 중심의 검술을 펼치는 사내였다.

미련할 정도의 올바름.

만약 검술의 교과서라는 게 있다면 그걸 그대로 드러낸 듯한 베기 그 자체.

그렇기에 강하다.

극한까지 연마된 기본의 무서움이 바로 리셴의 검이었다.

‘계속 감상만 할 수야 없지.’

우우웅!

임태호도, 리셴도 원형 구현에 도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한이라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었다.

쿠구구구! 쾅!

리셴의 원형 구현에 인한의 주먹이 맞부딪혔다.

그걸 바라본 리셴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원형 구현이 순식간에 분해되는 것과 동시에, 정면에 무지막지한 힘을 품은 원형 구현이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

“크으읍!”

리셴은 신음을 머금으며 전력으로 오러를 소모했다.

덕분에 시간 차로 날아오는 두 개의 원형 구현을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화악! 콰당!

리셴의 몸이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지면에 처박혔다.

“으윽!”

“발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었네요. 수고했어요.”

“하아…… 정말 강하십니다.”

인한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선 리셴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원형 구현을 몇 개나 가지고 계신 겁니까? 방금 제 첫 공격을 막은 건 얼마 전까지 못 보던 거였는데…….”

“아, 새로 발견한 겁니다. 신기술이죠. 원형 구현, 폭발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요?”

인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3년간의 시간 동안, 인한도 성장했다.

아직 탑 코어를 개방하지 못했기에 인한은 그렉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갈고닦았다.

그리고.

인한은 23가지의 원형 구현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아니, 사실상 카운트를 하는 게 의미가 없나?’

만약 원한다면, 인한은 30개고 40개고 펼칠 수 있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인한만이 가능한 기예일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는 겁니까?”

“흠…… 그냥 하니까 되더군요. 리셴 씨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보고 천재, 천재 하시는데, 제 눈에는 스승님이야말로 사기입니다.”

리셴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후우, 이제 좀 강해졌다 생각했건만,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는 건가.”

그 말에 순간 머쓱해진 인한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자만심 좀 가져도 되는데…… 내가 너무 사람 기를 죽여 놓았나.’

그래도 명색에 검의 신으로까지 불렸던 양반이 주눅 든 모습을 보니 내심 미안해지는 인한이었다.

* * *

검은 탑 1층, 물의 마을.

어두컴컴한 밤이 찾아왔을 무렵,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는 사내에게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원자시여.”

“구원자시여.”

“이곳에 저희들이 찾아왔습니다.”

모여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중한 말투로 몸을 낮췄다.

사내는 그 뒤로도 한동안 마을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끝내 와인을 다 마셨을 때, 사내가 시선을 돌려 안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 있는 일단의 인물들.

전원 랭커로서 이름을 떨치는 서구권의 헌터들이다.

또한, 그들은 저마다 굴지의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이기도 했으니.

“구원자시여, 저희에게 길을 보여 주소서.”

그들의 눈에는 묘한 광기마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구원자시여!”

“구원자시여!”

저마다 몸을 낮추며 하나같이 그렇게 외치는 자들.

와인을 마시고 있던 사내.

아니, 박철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전(聖戰)을 시작하겠다.”

그 말이 끝난 순간,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내들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들의 눈에 사이한 백광(白光)이 한순간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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