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공략자들 228화>
당연하지만 전투는 해태 길드의 승리였다.
정찰을 온 인섹터는 고작 3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인한의 기습으로 시작되었기에 금세 제압했다.
“허억, 허억. 겁나 강하잖아?”
그러나 쓰러진 인섹터를 바라보는 길드원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쓰러진 인섹터를 바라보았다.
한 마리 한 마리는 확실히 강하긴 하지만, 60층이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세 마리가 협동을 해서 저항하니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빨리 이동한다. 정찰이 끊긴 걸 알기 전에 이동해야 해!”
인한이 외쳤다.
빠르게 지하 수로를 타고 안쪽으로 진입한 인한이 중얼거렸다.
“역시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네 말에 따르면…… 이제 슬슬 전투가 시작되는 거 맞지?”
“그래.”
정찰을 나간 놈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당연히 무슨 일이 있다고 판단하는 게 당연하다.
이게 지능을 가진, 그것도 집단으로 움직이는 몬스터의 까다로움이다.
40층의 용족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립성이 강해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섹터들은 각각의 개체의 능력도 뛰어나고, 인간처럼 단체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다.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침입자 수색에 들어설 게 분명했다.
그 뒤로 빠르게 이어진 이동.
지하 수로는 미로와 같이 복잡했고, 아무리 과거로 돌아온 인한이라지만 길을 일일이 모두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때문에 해태 길드는 여기저기 방황하기도 하고, 정령술과 마력을 통해 탐지하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키아아악! 침입자다! 침입자!
-캬악! 크륵?
얼마쯤 이르렀을까.
일단의 인섹터 무리가 해태 길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족히 100마리는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인한은 마력 탐지를 통해 인섹터들의 뒤편에서 커다란 존재감을 느꼈다.
‘메인 던전 여왕굴의 입구가 저기 있군.’
매복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정환이 인한을 붙잡으며 말했다.
“후퇴하자.”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미 말했잖아. 이 방법은 한번 쓰면 다음에 쓸 때까지 엄청난 시간이 필요해. 일단 시작한 순간 끝내야 하는 층이야. 거기다…….”
놈들은 지능이 있다.
지하 수로를 통해 침투한 이상, 이제 더 이상은 이곳으로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필드의 다른 곳에 있는 도시에 침투하려고 해도 저들끼리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방법이 있다면 놈들의 여왕을 죽이는 것, 그도 아니면 1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있다.
놈들은 종족 특성상 수명이 채 1년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1년을 기다리면 세대 하나가 바뀌고, 그때부터는 거짓말처럼 그 전 세대에 있었던 일이 거의 대부분 리셋된다.
하지만 인한에게는 그걸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우리 퇴로에도 있을 거다. 양쪽에서 협공당하면 정말 답이 없어.”
인한이 트리아스 액셀을 끌어 올렸다.
정면의 인섹터들에게서도 섬뜩한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역시 그냥 넘어가진 않는군.’
지금까지는 수월했다.
단순히 60층 자체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던전 공략을 말하는 것이었다.
인한의 몸에 담긴 무력도, 해태 길드의 무력도 절정에 달했으니, 주춤하긴 했어도 큰 사건이 터지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
60층, 70층, 그리고 상층에 해당하는 80층과 마지막 절망만이 가득했던 90층까지.
검은 탑을 오르는 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꿀꺽!”
그리고 그것을 느끼고 있는 건 인한만이 아니었다.
해태 길드 전원이 긴장하며 전신에 힘을 줬다.
코앞에 다가온 위협이, 그리고 지금 펼쳐진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캬아아악!
인섹터들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왔다.
인한이 주먹을 크게 당기고, 그대로 몬스터와 부딪혔다.
콰앙!
한 줄기 폭음과 함께 인섹터들이 우수수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건 충격에 의해 뒤로 밀려났을 뿐,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키아아악!
놈들의 진형은 어디까지나 방어형이다.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겠다는 심산.
‘고맙군! 그렇게 소극적으로 나와 줘서!’
인한의 주먹에 트리아스 액셀의 세 힘의 고리가 스며들었다.
다음 순간.
‘마극포!’
콰아아아아아아!
주먹을 뻗은 순간, 세 개의 힘의 고리가 타격점에 수렴됨과 동시에 균열을 일으켰다.
조화의 붕괴, 이어지는 가공할 파괴력.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졌다.
-키아아아악!
“진형이 무너졌다! 파고들어!”
이정환이 외치고, 그 명령이 그대로 각 팀의 팀장들에게 전해졌다.
임태호가 묵빛으로 번쩍이는 대검을 휘두르며 전진했고, 겐지가 적절한 위치에 적절하게 파고들어 적들을 도륙했다.
‘기세는 우리 쪽이다. 그런데……!’
이정환이 굳은 표정으로 전투를 둘러보았다.
인한의 일격이 그대로 진형을 무너뜨리고, 그 뒤로 겐지와 임태호가 파고들며 커다란 틈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인한이 제멋대로 날뛰며 뒤흔들어 주는 덕분에 전투 자체의 승기는 해태 길드에 있었다.
하지만 인섹터가 너무나 강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4, 50층의 보스 몬스터급이니,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크어어어! 하찮은 인간들 주제에!
“저건!”
이정환의 눈에 덩치가 훨씬 커 보이는 인섹터가 보였다.
인섹터 챔피언.
인섹터로 치면 영웅, 혹은 장군 정도로 불리는 존재.
신장이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이는 놈이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대도(大刀)를 휘두르며 전진해 왔다.
‘안 돼!’
저건 일반 길드원으로는 막을 수 없다.
간부, 그중에서도 임태호나 겐지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최전선에서 날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되돌아왔다간 전선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때.
“내가 상대해 주마!”
리셴이 나섰다.
마나 스킬 5단계의 강자.
리셴이 오러 익시드로 육체를 강화하고, 각종 오러 기술을 펼치며 인섹터 챔피언을 막아섰다.
‘좋아! 그대로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기껏해야 5분 정도일 것 같아 보이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중요한 건 다른 쪽이었다.
“아나 씨! 소영 씨.”
“알았어요!”
아나스타샤가 이정환의 외침에 주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날렵하게 땅을 박차고 검격을 날렸다.
그리고 이소영.
그녀는 진형이 무너지는 곳에 따라붙는다.
이정환이 전투 전체의 전세를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이소영은 전투의 부분과 순간순간을 이끌어 나가는 존재였다.
“뭐 해! 집중하라고! 버텨!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평소답지 않은 거친 어조.
그러나 그녀의 외침에, 순식간에 무너지던 전열에 힘이 붙었다.
“죽음에서 일어설 지어다. 리바이브!”
“파이어 스톰!”
“레이지 썬더!”
이런 단체전에 힘을 발휘하는 네크로맨서, 조나단 최.
전세는 점점 더 해태 길드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크르락 릭슈타잇!
-카라라!
그때, 인섹터 무리에서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법이다!’
이정환이 다급히 뒤를 바라보았다.
“3팀! 방어 마법 준비해!”
“네!”
사방에 공격 마법을 뻥뻥 터뜨리던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동시에 영창을 시작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
인섹터 무리에서 거대한 녹색의 구가 날아들었다.
“빨리!”
이정환이 재촉했다.
아슬아슬 녹색구가 전선에 떨어지기 직전.
우우우웅!
수십 겹의 마법진이 펼쳐지며 벌집 같은 형태의 반투명한 막이 해태 길드의 공중에 펼쳐졌다.
콰우우우-
녹색구의 정체는 독이었던 건지.
막았음에도 알싸한 향기가 사방에 훅 퍼져 나갔다.
“크아아악!”
“아, 안 돼! 여기 지원 좀!”
다급한 외침, 비명이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 치열한 전투의 장소에 해태 길드 전원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건 거의 전쟁이잖아?’
사방에서 피가 튀겼다.
아군의 피인가, 적군의 피인가.
그도 아니면, 나 자신의 피인가.
그마저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순간이다.
“크아아악!”
-키이이익!
길드원도, 몬스터도.
생존과 승리를 위해 각자의 무기를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 * *
60층 공략까지 걸린 시간은 57일, 족히 두 달이었다.
지하 수로에서의 치열한 전투 이후, 해태 길드는 곧장 메인 던전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일단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안전지대를 찾아 휴식과 치료를 진행했다.
메인 던전은 그야말로 땅굴이나 다름없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했고, 공기는 눅눅하고 뜨거웠다.
다행히 거대한 인섹터의 육체에 맞춰져 만들어진 땅굴은 그 규모만 해도 엄청났기 때문에, 이동에 큰 영향은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의 질이 훨씬 교활하고, 강력해졌다.
안전을 우선시하며 나아갔지만 매 전투마다 부상자가 이어졌다.
그렇게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며, 보스존에 도착했다.
보스 몬스터 여왕 인섹터는 그다지 힘이 강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지키는 엘리트 인섹터들의 힘은 믿을 수 없이 강력했다.
때문에 고작 10마리에 불과했음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고, 후방에 있는 여왕 인섹터가 마치 이정환처럼 버프 효과를 끊임없이 내주는 바람에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결국 공략에는 성공했다.
다만.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해태 길드에 사상자는 없었다.
모두 장비를 강화한 상태였고, 간부들이 빠르게 대처하며 위험한 상황을 극복해 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정환이라는 지휘자, 적진을 뛰어 다니는 인한의 존재가 피해를 줄였다.
그러나 사상자만 없을 뿐이었다.
중상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으며, 그중 긴 시간 요양이 필요한 사람과 헌터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된 사람이 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힘들 줄이야…….’
‘죽을 뻔했어, 분명히…….’
‘지금까지도 죽을 뻔한 적은 많이 있었지만, 이건…….’
50층에서도 힘들었다.
하지만 50층에서는 어디까지나 환경 자체를 극복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힘들었을 뿐, 몬스터의 강력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60층은 달랐다.
몬스터뿐 아니라, 환경, 상황, 모든 부분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무섭다.’
지금까지의 전투는 사냥에 가까웠다.
하지만 60층에서의 전투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승자 독식, 적자생존의 전쟁.
해태 길드의 길드원들은 자신들의 안일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너무나 강한 사람들과, 힘들기는 했어도 수월하게 탑을 오르며 잊고 있던 것이다.
공략이 끝난 후, 1층의 마을로 돌아온 공략조의 안색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인한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만 채 꾹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편, 공략조는 일주일 동안의 휴식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인한은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1층에 있는 사무실의 강당에 부상자들을 제외한 공략조가 모였다.
“수고했다.”
“…….”
공략조의 길드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 주변이 없는 건 다들 알 테고, 질질 끄는 것도 싫어하니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예!”
겐지가 눈치도 없이 버럭 외쳤다.
주위의 시선이 한순간에 겐지에게 쏠리고, 인한이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60층.
고작 60층이다.
앞으로 40층이나 더 남은 탑을…… 과연 그들은 오를 수 있을까.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똑같을 거다. 공략은 힘들거고, 위험한 데다, 때때로 죽는 사람까지 나올 거야. 61층, 62층…… 70층, 80층, 90층을 오르다 보면 더더욱 그렇겠지. 시간을 들여 조심히 탑에 오르고 싶어도 60층 때처럼 한 번에 클리어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많을 거다.”
인한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 분수령이라 생각한다. 나는 몇 번이고 말했지만, 이 탑을 끝내고 싶다. 그렇기에 악을 써 가며 오르는 것이고…… 나 혼자선 부족하기에 너희들을 모았다. 내가 선별하고, 열심히 골랐던, 꿈에 그리던 팀인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수많은 인재들.
인한이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떠나고 싶은 사람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너희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나는 너희들을 붙잡지 않아. 하지만…….”
인한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으나, 눈빛에 짙은 진심이 묻어 있었다.
“난 너희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나와 같이, 이 탑을 올라 주기를 부탁한다.”
인한의 말이 끝나고, 강당에는 짙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인한은 숨을 짧게 내쉬고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때.
“흐!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라서 그렇지 저희가 어딜 간단 말입니까!”
“그냥 좀 쫄았을 뿐입니다! 언제 탑이 안전했던 적 있습니까?”
“맞아요! 아 갑자기 쉬고 있는데 모아서 무슨 얘기 하나 했더니! 이런 오글거리는 거 오버 아닙니까?”
“하여튼 길드장님 진지한 척하신다니까.”
“여기서 나가면 저 실업자거든요! 이거 은근히 해고 권고 아닙니까? 부당 해고 결사 반대!”
여기저기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인한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상 아래에서 보이는, 길드원 백수십 명의 면면들.
“우리는 하나입니다!”
문득 겐지가 이글이글 끓는 눈빛으로 외쳤다.
여전히 한결같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겐지였다.
“쩝, 뭐 제가 싫다고 해도 끌고 다닐 분이시지 않습니까. 형님은.”
“크하하! 이것들 청춘 드라마 찍네! 푸흐흐!”
이창훈과 임태호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인한이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해태 길드.
자신의 사람들.
떠들썩한 분위기 속, 인한은 잊고 있던 걸 깨달았다.
이 광경, 이 순간이 인한의 꿈이며, 인한이 만들려는 것이었음을.
‘그래.’
인한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