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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10화 (210/266)

# 210

<공략자들 210화>

재능.

누군가는 재능은 없으며, 노력하는 자가 모든 걸 가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건 전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재능 있는 자들, 소위 천재라 부르는 자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깨달을 수 있는 자.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해낼 수 있는 자.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걸어가는 자.

건축으로 예를 들자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머릿속에 설계도를 타고나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도면의 용어나 구조를 알아 가는 과정은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완성본을 머리에 가지고 있으니, 그 후에는 그저 현실에 그려 넣으면 될 뿐이었다.

그러나 재능이 없는 자들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수도 없이 많은 건물을 무너뜨리며 도면을 그려 나간다.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얻은 설계도는 누구보다 완성도 높은 것일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 천재들은 더 많은 설계도를 그리고 있을 터.

범인(凡人)은 천재(天才)를 이길 수 없다.

적어도 검은 탑에서 만큼 이 명재는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 인정하지. 네 트리아스 액셀의 완성도는 나보다 높다.”

박철환이 인한을 보며 말했다.

“그래 봤자 너는 햇병아리에 불과해.”

박철환은 검에 대한 재능도, 마력의 운용에 대한 재능도 일반인보다 조금 우수한 수준에 불과하다.

피나는 노력과 적절한 기연이 뒷받침된다면 랭킹에 진입할 수는 있는, 딱 그 정도.

그러나 최상위 랭킹에 닿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곳엔 발터나 레오처럼, 이미 머릿속에 설계도를 가진 자들이 오르는 곳이다.

하지만.

박철환은 그걸 극복해 냈다.

수도 없이 많은 설계도를 얻고, 또 얻어 내며.

천재들이 하나를 겪고 열을 얻을 때, 열을 겪을 때 하나를 얻어 내며 묵묵히 걸어왔다.

그 결과, 지금 박철환의 머릿속엔 경험이라는 이름의 수도 없이 많은 설계도가 가득 차 있다.

‘큭!’

인한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 구원의 검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 친 순간, 어느새 설치되어 있었던 건지 인한의 발뒤꿈치 쪽에 작은 공간 왜곡이 일어났다.

“큭!”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폭탄이었다.

그러나 반격을 펼치려는 순간, 인한의 발이 푹 빠지며 몸의 중심이 무너졌다.

콰앙!

그 위로 박철환이 강극검이라 불렀던 오러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

‘빌어먹을!’

허점을 찌르는 전투 방식.

교묘하고, 절묘하며, 동시에 야비하기까지 하다.

힘의 총량과 능력 자체는 인한이 앞선다.

그러나 박철환은 기술 사용 방법의 폭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크합!”

인한이 오러를 폭발시키며 전신에 쏟아지던 기운을 걷어 냈다.

그리고 직후, 역공을 시작했다.

아니, 그러려던 순간, 박철환이 거리를 쭉 벌렸다.

그 탓에 인한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쯧…….”

아까부터 이런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박철환은 큰 타격을 노리지 않는다.

아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타격을 누적시키는 방법으로 인한의 힘을 소모시키고 있다.

‘이러다 내가 큰 기술을 날리려고 할 때 카운터를 치겠지.’

우직! 우지직!

안 그래도 오리하르콘 슈트가 우그러지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인한의 몸도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심한 곳에는 상처가 꽤 깊숙이 베여 있기까지 했다.

‘쯧! 그런 걸 무서워할 거였으면 난 이미 죽었을 거다!’

인한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동시에 인한이 트리아스 액셀의 힘을 집중시켰다.

“데몰리션 킥!”

이번엔 지면을 걷어차는 일격이 아니다.

한순간, 발끝에서 뻗어 나간 오러가 반월형으로 박철환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

박철환이 그걸 막기 위해 검을 휘두른 순간, 인한이 빠르게 접근하며 손을 뻗었다.

“속박, 중압, 둔화.”

그러자 박철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박철환이 당황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여전히 눈빛만은 확실하게 인한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명백히 카운터를 노리고 있는 움직임.

‘그래, 때려라! 대신 너는 더 큰 걸 얻어맞게 될 테니까!’

카운터를 친다면, 그 카운터를 맞고 공격을 직격시키면 될 뿐!

부웅!

마치 활시위를 잡아당기듯, 인한의 주먹이 크게 당겨졌다, 한순간 쏘아졌다.

‘흥, 카운터를 노리는 걸 알면서도 달려들다니. 역시 어수룩하군.’

그 순간을 노리기라도 한 듯, 박철환이 완벽히 회피하며 검을 휘둘러 왔다.

앞뒤 생각 없이 온몸의 체중과 힘을 담은 일격이었기에, 카운터를 맞으면 모든 충격이 되돌아올 상황.

하지만, 그 순간.

인한의 트리아스 액셀이 역순(逆順)으로 운용되었다.

“마극포(魔極砲)!”

열두 가지 기술로 이루어진 무극인, 그중 가장 큰 위력을 자랑하는 기술임과 동시에 가장 큰 위험을 내포한 기술.

마극포는 트리아스 액셀의 흐름을 한순간 역행으로 운용한다.

그렇게 정령술과 오러, 용언의 힘을 서로 충돌시켜 가공할 파괴력을 일으키는 기술이었다.

서걱!

인한의 몸을 구원의 검이 베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인한의 주먹은 허공만을 두드렸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이 노한 것처럼 뇌성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고, 막대한 파괴력이 홍수처럼 사방으로 흘러넘쳤다.

‘크윽! 이게 무슨!’

분명 자신은 완벽하게 피했을 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극포의 여파가 박철환의 주위 공간을 매섭게 휩쓸었다.

“크아아악!”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박철환이 처절한 비명을 터뜨리며 후방으로 날아갔다.

“크으, 흐윽…….”

둘의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던 이는 박철환이었다.

놀라운 검술과 경험의 차이로 인한을 압도하던 그가, 허를 찔린 일격에 의해 중상을 입게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인한은 그마저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끄응…… 조금 얕았나.’

인한이 신음을 흘리며 박철환을 노려보았다.

일격필살, 박철환을 죽이고자 펼친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박철환은 검을 들이밀어 충격을 상쇄했다.

‘크윽,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위력의 기술이…….’

박철환이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구토를 하듯 허리를 꺾었다.

박철환의 왼쪽 팔과 흉골이 기형적으로 부러져 있다

뿐만 아니라 몸통 대부분이 정령술과 용언에 의해 불에 타들어 간 상태였고, 칼에 베인 곳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큭!’

그러나 인한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직 마극포는 조금 일렀나.’

마극포의 반동으로 인한의 상태도 꽤 심각했다.

칼창, 총과 대포마저도 가볍게 튕겨 내는 인한의 육체.

그 육체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마극포는 트리아스 액셀의 조화를 무너뜨리는 위험천만한 기술이다.

인한도 박철환만큼은 아니지만 피부 이곳저곳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주먹을 뻗었던 팔과 어깨의 관절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삐걱대는 소리를 흘려 대고 있었다.

“쿨럭!”

그뿐이 아니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허벅지까지 그어진 박철환의 검격에, 내장과 골격까지 충격이 들어갔다.

트리아스 액셀의 운용에는 지장이 없지만, 충분한 중상이었다.

“쿨럭! 쿨럭! 이…… 괴물 같은…….”

박철환이 울컥울컥 피를 쏟아 내며 이를 갈았다.

“역시…… 너야말로 모든 변수의 근원이다.”

검에 체중을 지탱해서 간신히 쓰러지지는 않은 박철환이 차갑게 뇌까렸다.

“지금껏 네가 트리아스 액셀을 얻은 적도, 상위 랭커가 된 적도, 영웅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탑에 오르지 않은 적도, 채 이름을 알리지 못한 채 죽은 적도 수도 없이 많았다.”

“…….”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너는 어떻게 시간을 되돌린 거지? 모든 마왕이 힘을 잃었을 텐데…… 도대체 어떤 마왕과 계약을 맺었기에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거지?”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나?”

“큭! 큭큭! 그렇지. 그래, 맞다. 달라질 건 없다.”

박철환이 후들후들 하체를 떨면서 검을 움켜쥐었다.

“나는 널 죽인다. 이것 하나만 알려 주지. 지금껏 해태 길드와 네가 성장하여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희들은 약해 빠진 오합지졸들의 무리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인한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피식 웃었다.

“태호 형님이 랭킹 4위에서 6위 왔다 갔다 하고, 겐지는 7위고…… 내가 지금 막 2위짜리 레오를 쓰러뜨렸다만?”

박철환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무리 지금까지와 다른 해태 길드라 한들, 지금까지 겪어 온 인과는 변하지 않는다. 해태 길드가 무너져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박철환의 눈에는 광기와도 비슷한 열기가 서려 있었다.

“결코 이 힘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하지. 너는 최강, 아니, 최악의 적이다. 네놈을 위해 모조리 끌어다 써 주마.”

펄럭!

한순간, 박철환의 등에서 네 겹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박철환의 기파가 일변했다.

‘이건……!’

그 기파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이며, 인한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기운의 흐름은, 명백한 왕들의 기운이었다.

세계의 규칙을 어그러뜨리는 듯한 구역질 나는 느낌.

콰가가가!

그걸 시작으로, 박철환의 힘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윽?!”

콰아앙!

다음 순간, 인한의 몸이 허공을 훨훨 날아 지면에 처박혔다.

“네게 알아야 할 것도, 얻어 내야 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널 죽이는 데 집중하겠다.”

박철환이 차갑게 뇌까렸다.

직후.

오러, 마법, 정령술의 폭격이 인한을 향해 떨어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폭격이라고 말해야 옳았다.

일격 일격에 주변 지형이 격변했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고, 강이 없어졌다.

“크윽!”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폭풍이 몰아쳤다.

이건 도저히 정령술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 그 자체의 힘을 뒤트는 듯한 힘이다.

콰드드득!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지면이 갑자기 쇳덩이로 바뀌더니 날카로운 꼬챙이가 되어 떠올라 쏘아졌다.

콰가강! 콰가강!

뇌격, 폭음, 열파, 냉기…….

수도 없이 많은 기운이 맥락 없이 떠올라 그저 인한을 죽이기 위해 몰아쳤다.

‘대체 이게 무슨……!’

이건 트리아스 액셀로 내는 힘이 아니었다.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금세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건 왕의 힘이다.

대체 어떤 왕과 계약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주변 자연과 세계의 규칙을 근본부터 뒤틀며 공격해 왔다.

“이제 끝을 내자.”

그때, 정신없이 공격에 도망치던 인한의 귀에 박철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모든 기운의 흐름이 멀어진다.

박철환이 허공에 떠오른 채, 검을 치켜들었다.

신화 속 영웅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하늘에 가득 퍼진 백색의 날개.

그리고 하늘을 향해 뻗어진 검에서 솟구치는 무시무시한 힘의 흐름.

‘이건……!’

인한의 눈이 커다래졌다.

온다.

원형 구현.

박철환도 6단계에 도달했던 것이다!

“크윽!”

떨어지는 검을 향해, 인한이 다급히 손을 뻗었다.

쩌어어어엉!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한순간, 쇳덩이가 터지는 듯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음 끝에 일어난 폭풍과 같은 여파에 인한의 몸이 훨훨 날아 지면에 처박혔다.

“커헉!”

그런데 곧 인한이 거칠게 숨을 토해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인한은 박철환의 원형 구현을 막아 낸 것이다.

인한의 펼친 건 미완성의 원형 구현이었다.

그 덕에 어찌어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철퍽!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인두에 지지는 듯한 고통이 오른팔에 느껴졌다.

지면에 오른팔이 떨어져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먼지였다는 듯, 바스라져 지면에 흩어졌다.

모든 걸 분해하는 검.

박철환이 회귀 전부터 해냈던 원형 구현이었다.

“6단계에 도달했군. 하지만 네 심상을 찾지는 못한 건가? 레오의 말대로군. 안타깝게 됐어. 하지만…… 이제 끝이다.”

박철환이 다시 한번 구원의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구원의 검이 휘둘러졌다.

‘죽는 건가…….’

인한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인한은 다시 한번 미완성된 원형 구현을 펼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당장은 어찌어찌 살아날 순 있어도, 결국 죽는다.

‘으윽!’

무서웠다.

두려움이 가득 차올라 전신을 잠식한다.

손발이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눈에서 흐르는 게 피인지, 눈물인지, 땀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인한이 입을 악 다물었다.

용기를 내 보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무 많은 후회와 미련이 남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안고 죽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의 겁쟁이야.’

멋진 죽음, 당당한 죽음 따위는 없었다.

지금 자신에게는 사시나무 떨리는 듯한 공포만이 있을 뿐이었다.

새삼, 인한은 자기 자신이 볼품없음을 깨달았다.

후웅!

그때, 박철환의 검이 휘둘러졌다.

뇌리를 노리는 일격이다.

인한은 그 일격에서 전에 없이 강한 힘을 느꼈다.

세계의 근원에 닿고, 원형 구현이 이뤄지는 순간.

인한은 죽을 게 분명했다.

“무섭다…….”

인한은 그 검격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인한의 손끝에서 미완성의 원형 구현이 펼쳐졌다.

그와 함께 인한의 의식이 한순간, 내면으로 파고들어 갔다.

* * *

그곳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청년이 있다.

부모님이 죽었고, 동생마저 어디론가 끌려갔다.

복수하겠다는 마음가짐에 탑을 올랐고, 동료들이 생겼다.

그 동료들은 몬스터에게 유린당했다.

그 청년은 패인이 되어 노예처럼 생각을 멈춘 채 기계적으로 탑을 올랐다.

회귀한 후, 청년은 또다시 탑을 올랐다.

그 근본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두려움이었다.

강인하고,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어수룩한 제 나이 또래의 청년에 불과하다.

두려웠기에 강해지려고 했고.

두려웠기에 탑을 올랐다.

검은 탑의 재앙, 악몽의 근원, 탑의 수많은 죽음과 검은 탑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절망을 근절시키려는 목적의 근저에 깔린 것은 어디까지나 두려움이었다.

시커먼 공간, 아주 작은 어깨의 청년은 온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인한은 그 청년을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아아.’

그랬다.

두려움이었다.

인한의 근본에 위치한 심상은, 인한을 움직였던 것은 어디까지나 두려움이었다.

그렇기에 눈을 돌리고자 했고, 두려움에 떠는 자기 자신을 무시했다.

‘이게 나였어.’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인한의 의식은 세계의 근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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