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공략자들 209화>
“박철환…….”
인한이 긴 침음성을 흘리며 박철환을 바라보았다.
사실 박철환은 크게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었다.
미남이라고 생각하면 미남이라 할 수도 있겠고, 흔하다고 하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인한처럼 체격이 큰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다.
풍기는 기세 또한 위험해 보이기도, 어떻게 보면 별것 없어 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단 하나.
박철환의 눈빛.
다소 권태로운 듯 내려앉은 눈꺼풀 사이로 사선을 몇 번이나 넘어온 자의 눈빛이 빛난다.
‘……단순히 사선 정도가 아닌가.’
인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인한도 저런 눈을 했었기에 알고 있다.
저 표정을, 풍겨지는 저 눈빛을 알고 있다.
저건 몇 번이나 죽어 본 사람이나 할 법한 눈빛이었다.
이로써 확신했다.
박철환은 회귀자다.
그리고.
우웅!
볼카누스에 의해 온몸이 트리아스 액셀을 이루기 위한 기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인한이기에 알 수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박철환에게서 흘러나오는 정령의 향기.
그리고 마법의 움직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트리아스 액셀?!’
인한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었다.
“어떻게 트리아스 액셀을 익힌 거지?”
“아, 느꼈나? 이 힘을 길들이는 데는 꽤 고생을 했지.”
“설마 네가 요정왕의 제자인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군.”
인한이 박철환을 노려보며 뜯어먹을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정령술의 힘. 그건 분명 넬레바나에서 얻었겠지.”
“그렇다면?”
박철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툭 내뱉은 말.
그 말 한 마디에 한순간, 눈앞에 처참했던 넬레바나의 참상이 플래시백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에 인한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물었다.
“그런 짓을 한 새끼가 요정왕의 제자일 리가 없지. 박철환! 어째서 엘프들을 모조리 죽인 거지? 고작 트리아스 액셀을 얻기 위해서였나?”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지. 놈들은 모두 인형에 불과하다. 이 탑에 영혼과 육신을 구속당한 채, 탑이 새로운 회차를 맞이할 때마다 리셋되는, 말 그대로 NPC나 다름없는 존재지.”
그렇다. 인한도 알고 있다.
루한은 그들을 노예라 했다.
왕들에게 목숨을 구걸한 배반자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고 유린한 게 합당한 일이란 말인가?
무려 수백 명이다.
박철환은 수백 명에 달하는 부족 하나를 몰살시켰다.
그러고서도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인한의 눈앞에 서 있다.
“그런 인형들에 불과한 것들을 몰살시키고 트리아스 액셀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그 말에 인한은 이를 빠득 갈았다.
“살인마 새끼. 너도 이 녀석이랑 똑같아.”
인한이 레오를 힐끗 바라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하지만 박철환은 인한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 갔다.
“흥, 여전히 너는 어수룩한 낭만에 빠져 있군. 검은 탑은 지옥이다. 여기서 앞뒤 가릴 것 다 가리고, 정의다 뭐다, 인연이다 뭐다 다 따지면서 오르면 어느 세월에 오를 수 있지? 아니, 성공할 수는 있나?”
말을 하면 할수록 박철환의 표정에 서서히 분노가 서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주둥이를 놀리지 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이 짓을 반복해 왔다. 내가 너처럼 생각하며 탑을 오르지 않았을 것 같나?”
인한의 눈이 커다래졌다.
몇 번이고, 라고 말했다.
‘설마 한 번이 아니었단 말인가?’
놀라 하는 인한에게 박철환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그랬다. 나도 정의를 생각하고, 옳은 일을 따지며, 동료와 함께 힘을 모아 탑을 올랐었다. 너처럼 헌터들의 수준을 높이고자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조리 뿌려 대고, 기업이며 정부며 같은 헌터 조직들을 끌어모아 탑을 올랐단 말이다. 그래서? 그런데 내게 남은 게 뭐였는지 아나? 실패다. 실패였다. 오직 실패 뿐이었다.”
피를 토하는 듯이 내지르는 박철환의 분노 어린 목소리에 인한은 잠시 숨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다시 인한의 눈빛에는 경멸이 어려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뭐?”
“이러나저러나 네가 여기저기 선 대고 사람들 괴롭히고, 수백 명을 죽인 살인마에다, 정계와 재계를 뒷선에서 움직인 또라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만?”
“무슨 개소리를……!”
“아인족을 모조리 통제하고 해태 길드처럼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은 밀어내고……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
박철환의 모습에 인한은 속으로 긴장하며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박철환은 곧 피식 조소를 흘리며 구원의 검을 치켜들었다.
“알고 싶은 건 더 있지만, 보아하니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군. 고작 회귀 한 번 했다고 다 아는 것처럼 지껄이다니 말이야.”
박철환의 오러가 뭉클 뿜어져 나왔다.
그걸 시작으로 수많은 마법진이 후방에 그려지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속성력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지긋지긋하니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자. 네가 가지고 있는 비밀은 그 뒤에 알아내도록 하지.”
“선민사상에 푹 빠져 있는 또라이 주제에 혓바닥은 참 길단 말이지.”
인한도 지지 않고 비아냥대며 전력을 끌어 올렸다.
어차피 대화하는 동안 트리아스 액셀을 운용해서 힘을 회복한 후였다.
만전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부족함도 없다.
콰르르릉!
선공은 인한이었다.
땅을 박찬 인한이 박철환에게로 돌진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인한의 앞에 수많은 마력의 폭탄이 준비되었다.
‘이건……!’
그 마법의 기운을 느낀 순간, 인한은 본능적으로 박철환의 트리아스 액셀을 이루는 마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 공간 마법이다!’
클라우스를 죽인 것이 매지션즈를 흡수하기 위함으로만 여겼거늘, 그건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어떤 방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박철환은 클라우스의 공간 마법을 획득했다.
콰앙!
폭탄이 터지는 위치에 작은 공간의 왜곡이 발생했다.
공간 마법의 무서운 점은 상대의 육체의 강도나 장비의 내구도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부숴 버린다는 점에 있다.
공간 자체를 도려 내는 그 마법의 위용 앞에선 인한의 육체도 단숨에 갈려 나갈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직후, 인한이 주먹을 뻗었다.
일점폭발형 기술, 풍제의 발현이었다.
콰가가가가!
한순간 정면에 몰아친 힘의 폭풍에 공간 마법이 모조리 휩쓸려 나갔다.
인한이 다시금 땅을 박차 박철환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달려들려는 순간, 아주 미세한 틈을 노리고 무지막지한 힘을 내포한 열기가 선을 이루며 인한에게 쏘아졌다.
“읏!”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인한이 주먹을 뻗었다.
파공탄이 쭉쭉 뻗어 나가 박철환의 몸체를 노렸다.
하지만.
쑤우욱!
또다시 공간 마법이다.
이번에는 정면의 공간을 왜곡시킨 건지, 갑자기 파공탄의 궤도가 직각으로 꺾이며 전혀 다른 곳에 떨어졌다.
“흐아압!”
그사이, 빠르게 접근한 인한의 주먹에 세 개의 힘의 고리가 생성됐다.
콰아아아앙!
박철환을 막아서던 정령술과 마법, 거기에 오러까지 모조리 휩쓸려 나갔다.
“흠.”
콰가가!
박철환이 처음으로 검을 휘둘렀다.
박철환의 검과 인한의 주먹이 부딪치며 거친 폭풍을 주위에 흩뿌렸다.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인한이었다.
이런 접근전의 난타전에 있어서 인한은 최강을 자랑한다.
박철환이 충격을 회복하기 전에 인한이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제로 어택!’
전신에 휘감고 있을 오러를 뚫고 충격을 주기 위한 기술.
인한의 주먹이 뻗어지려는 순간.
쐐애애애애-
빠르게 날아오는 어떤 소음이 인한의 귀에 울려 퍼졌다.
‘큭!’
인한이 빠르게 몸을 뺐다.
무언가가 날아와 지면에 틀어박힌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쾅! 콰가가가강!
마치 SF영화 속 레이저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오러가 몰아쳤다.
콰아아!
인한이 오러를 방출하며 그 모든 걸 밀어냈다.
“이건 뭐지?”
“강극검(剛極劍)이라는 기술인데, 시작의 신전 5단계에 나오는 히든 피스다. 이건 얻지 못한 모양이지?”
콰아아아!
또다시 화살 비와 같은 오러의 폭풍이 쏟아져 내렸다.
‘이따위!’
한순간 오러를 끌어 올린 인한이 주위를 휩쓸었다.
콰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박철환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났다.
허공에 속성력과 용언, 그리고 오러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흠, 역시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군.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후두둑!
일격을 맞췄지만, 박철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중얼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온 인한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욱! 콰앙!
트리아스 액셀과 트리아스 액셀.
두 가지 힘이 동시에 부딪혔다.
세 개의 힘의 응집체가 작렬하고, 한순간 격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인한의 몸을 뒤로 튕겨 냈다.
그리고 그것은 마찬가지로 박철환에게도 적용됐다.
박철환의 몸이 허공을 훨훨 날며 지면에 처박혔다.
후욱!
직후 먼저 공격을 가한 건 박철환이었다.
인한을 노리며 한 줄기 화염이 쏘아졌다.
극도의 열기를 품은 창.
거기에 마법이 화력을 더하고, 오러가 주위를 감싸며 위력을 드높인다.
콰아아앙!
인한에게 화염의 창이 직격한 순간, 후끈한 열기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화아악!
그러나 충격은 없었다.
인한이 오러를 퍼뜨려 화염의 여파를 밀어낸 후, 땅을 박차며 박철환에게로 접근했다.
그리고.
콰앙!
검과 주먹.
최초로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러나.
“큭!”
밀려난 것은 박철환이었다.
땅을 긁으며 뒤로 밀려난 박철환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인한의 눈이 반짝였다.
‘이 녀석, 트리아스 액셀의 운용이 미숙해!’
마법, 정령술, 오러의 각각 세 가지를 운용함에 있어서 박철환은 인한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나 세 가지 힘을 합친 후의 운용이 쥐약이었다.
트리아스 액셀의 힘은 단순히 힘의 효율이나 총량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단순 마력과 다를 바 없다.
트리아스 액셀의 무서운 점은, 각자가 각자의 힘을 드높여 주고, 상생하며 순식간에 압도적인 힘을 뽑아내는데 있다.
바탕이 되는 오러, 보조를 해 주는 정령술, 그리고 마무리를 담당하는 용언까지.
그 세 가지가 합쳐져야만 트리아스 액셀이다.
‘그렇다면!’
박철환에게 레오처럼 재생의 능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큭?”
인한의 얼굴에 흙더미가 뿌려졌다.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순간, 구원의 검이 미세한 각도로 꺾이며 인한을 노려 왔다.
푸욱!
거죽이 베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분명 구원의 검이 인한에게 닿았다.
“얕았군.”
간신히 정령술을 통해 흙먼지를 털어 냈을 때.
그때는 이미 박철환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직접 접근전을 노려 온다고?’
접근전은 인한의 거리였다.
그런데 박철환이 먼저 걸어온 것이다.
그래서 인한은 내심 박철환이 이번에는 실수를 한 것이라 여겼다.
콰앙! 콰앙!
그러나 인한의 예상과 달리, 박철환은 인한을 쭉쭉 밀어붙였다.
‘큭! 검술이!’
힘을 실어 내기 위해 발을 뻗은 순간, 그 부분을 노리며 검이 휘둘러진다.
주먹을 뻗으려는 순간, 힘이 이동하는 곳에 먼저 박철환의 몸이 향해 있다.
중요 지점, 움직임의 허점.
그것을 모조리 박철환이 짚고 있었다.
“흐아압!”
인한이 우격다짐으로 박철환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역으로 들이박았다.
그 후, 박철환의 팔 한쪽을 움켜쥐고 그대로 날려 버렸다.
그러나 박철환이 지면에 구원의 검을 내리꽂으며 체조선수처럼 검을 쥔 채로 한 바퀴를 돌더니, 그 위력 그대로 발차기를 날려 왔다.
쾅!
충격은 없었으나 인한의 표정이 굳었다.
박철환은 임태호, 레오, 리셴처럼 괴물 같은 천재들처럼 기술적으로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한과 비슷할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보이는 임기응변이 너무나 눈부시다.
그게 바로 경험의 차이다.
수많은 경험이 박철환의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쯧…….”
박철환.
그는 인한의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