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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08화 (208/266)

# 208

<공략자들 208화>

원형 구현은 말 그대로 전가의 보도.

상대함에 있어서 이만큼 무서운 일격은 없다.

인한에게는 오리하르콘 슈트가 있다지만, 고작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만 막아설 수 있을 뿐이다.

만약 그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인한을 노리고 레오가 원형 구현을 펼치면, 인한은 단숨에 죽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 보도, 뽑으려는 순간 이쪽이 이긴다.’

4단계와 5단계의 차이가 크듯, 5단계와 6단계의 차이도 크다.

전투의 승패를 단순 숫자 놀음으로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인한과 레오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한은 마력만 있는 게 아니다.

트리아스 액셀.

인한의 무기는 세 개의 힘이다.

투웅!

무극인의 열두 가지 기술 중 하나, 투인이 전개되었다.

근육과 골격, 마력로까지.

그 하나하나의 힘이 순식간에 증폭됐다.

콰앙!

직후 휘둘러진 일격.

데몰리션 킥.

무극인에 있는 유일한 발 기술이었다.

콰아아아아!

분명 발이 닿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황.

그러나 발에 휘감긴 오러가 지면을 훑듯이 스쳐 지나간 순간, 던전 밑바닥의 일부가 움푹 파이며 그 파편이 산탄총처럼 레오를 향해 쏘아졌다.

말로 하니까 파편이지, 사실상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암석 수백 개가 정면을 가득 채웠다.

“크으!”

탕! 타다다다당!

정면을 막고 있는 검에 돌무더기가 부딪히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개중에는 도탄되어 인한을 향해 날아온 돌도 있었으나, 그것들은 모두 인한의 몸에 부딪힌 순간 오히려 튕겨 나가 버렸다.

“허억, 허억…….”

레오의 전신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검으로 막았다지만, 애초에 인한이 부순 검도 많았고, 산탄총처럼 쏘아진 공격을 모조리 막진 못했던 것이다.

“아직 널 죽이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레오가 숨을 몰아쉬며 뒤로 땅을 박찼다.

허공으로 치솟는 그의 검.

순간적으로 위기감이 증폭된다.

인한의 손이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윽?”

촤아악!

레오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허공에 물이 뽀글뽀글 생성되더니 레오의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공격력이 전혀 없는, 그냥 깨끗하고 찬 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원형 구현을 펼치려는 레오의 집중력을 흩트리기엔 충분했다.

“치사하군!”

자세가 흐트러진 레오를 향해 인한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파공탄!”

거리를 좁히면서도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경지의 차이가 있다 한들, 인한의 마력량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무지막지한 마력량으로 휘둘러지는 파공탄은, 사실상 총탄보다는 포탄에 가까운 크기였다.

‘분명 일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레오의 표정이 구겨졌다.

분명 일대일의 상황이건만, 족히 서너 명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중거리에선 파공탄, 원거리에선 정령술과 마법과 비슷한 기술.

견제하기가 벅차서 거리를 좁히면, 던전을 통째로 부숴 버릴 듯한 오러의 공격이 몰아쳤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면 원거리에서 미친 듯이 두드린다.

딱 한 번 긴 호흡을 할 시간만 있으면 원형 구현을 펼칠 수 있으나, 인한은 그마저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강해졌지?’

분명 일전의 전투에서도 레오는 인한과 호각을 이뤘다.

아니, 전투 자체만 보면 인한이 훨씬 유리했을지 모르나, 적어도 레오의 기술은 충분히 인한에게 먹혔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분명 이전 전투 때와 크게 변한 건 없을 텐데 자신이 밀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사기군, 사기야.’

만약 게임에 이런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면 제작자들에게 엿 먹으라고 전해 주고 싶다.

이건 깨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니었다.

‘뭐, 이쪽은 코인이 여러 개 있으니, 일단 뭐가 달라진 것인지부터 알아내야겠군.’

레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스르릉!

잡힌 것은 레오가 평소 즐겨 쓰는 장검이 아니었다.

단검보다는 조금 더 크고, 장검보다는 조금 작은, 중간 사이즈의 짤막한 검이었다.

‘설마?’

인한의 눈이 반짝 빛났다.

미래를 아는 인한이기에, 그 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박철환한테도 숨겼는데, 이걸 보여 주게 됐네.”

그 검의 이름은 단순하다.

혈검(血劍).

S등급, 인피니티 시리즈 중 하나.

과거에는 레오의 마스코트와도 같았던 검.

“이거 꽤 멋들어지게 생기지 않았어? 검신을 타고 흐르는 붉은색 선도 그렇고, 검면에 핏줄처럼 뻗어 있는 문양도 그렇고 말이야. 이거, 무려 성장형 무기라고? 너도 내꺼 열쇠 훔쳐가서 얻었을 거 아니야?”

“언제 얻은 거지?”

“아아! 오해하지 마! 이거 진짜 얼마 전에 얻었어. 너랑 싸울 때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니까?”

킥킥대며 웃는 레오를 보며 인한이 혀를 찼다.

혈검은 서양의 검보다는 동양의 검에 가까운 얇은 검이다.

다른 성장형 아이템이 으레 그러하듯, 혈검 또한 사기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마력 흡수 효과와 출혈 효과.

혈검에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오러를 통해 집중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출혈이 일어난다.

그리고 검에 베이면, 일정량의 마력을 강탈당한다.

“그래서? 그걸 꺼내면 뭐가 달라질 것 같나?”

“음? 네가 이거 효과를 몰라서 그러는데…….”

“미안하지만.”

인한이 땅을 박차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쪽은 S급 아이템이 두 개다!”

템빨로 밀어붙일 생각이었겠지만 크나큰 오산이다.

인한도 남부럽지 않은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었다.

레오가 다급히 검을 휘두르며 인한을 향해 몰아쳤다.

콰가가강!

레오의 검이 인한을 난도질했다.

그런데 정작 유효타가 하나도 없었다.

오리하르콘 슈트가 베이거나 우그러지기는 하지만, 그걸 입고 있는 인한에게 큰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뭐지? 대체 왜 이렇게 강해진 거지?’

공격을 가하던 레오의 눈이 차갑게 인한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던 중이었다.

콰앙!

생각을 하느라 약간의 틈을 보인 인한의 주먹이 레오에게로 날아들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레오가 강하게 얻어맞으며 후방으로 훨훨 날아가 벽면에 박혔다.

레오도 카운터를 날려 인한의 몸을 베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예 소득이 없던 건 아니다.

레오가 벽면에서 바로 일어서며 눈을 빛냈다.

‘그렇군. 뭔지 알겠어.’

인한이 갑자기 강해진 이유.

반응 속도, 그리고 움직임이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마력량에는 차이가 없는데 마력의 운용도 빨라진 것 같다.

‘마치 몸이 바뀐 듯한 움직임이야.’

인한이 무서운 점은 복잡한 기술이나 어중간한 움직임은 모조리 찍어 누르는 압도적인 힘과 육체였다.

하지만 반대로 기술적인 부분이나 움직임적인 부분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선이었다.

예측을 해도 막거나 피하는 게 어려웠을 뿐.

‘이대로라면 정말 죽겠군. 돌아가면 한마디 해 줘야겠어, 박철환.’

레오가 혀를 차고는 검을 움켜쥐었다.

밀리고는 있지만, 패색이 짙은 건 아니다.

애초에 지금껏 직격타는 거의 들어오질 않았다.

‘상황을 봐서 도망쳐야겠군.’

솔직히 마음 같아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즐기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애초에 이렇게 제한된 실내라는 공간은 레오보다는 인한에게 유리했다.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전투가 이어지며, 인한이 눈가를 찌푸렸다.

시종일관 공격적으로 전투를 펼치던 레오가 어느새 시간을 끄는 식으로 움직임을 바꿨다.

지극히 방어적으로 나온 것이다.

“흥! 혈검으로 자잘한 상처 조금 늘려 봤자 소용없다!”

쿵!

앞으로 뻗는 일 보.

한순간 몸의 힘이 모조리 주먹 끝에 휘감긴다.

풍제.

일점폭파형 기술이 레오를 휩쓸었다.

그때, 레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우웅!

레오의 정면에 코어 스톤이 나타났다.

‘설마?’

층간의 이동이 가능한 아이템.

“하하! 잘 있으라고!”

레오가 피식 웃으며 코어 스톤에 손을 얹었다.

화악!

그리고 다음 순간, 레오의 몸이 자취를 감췄다.

털썩!

25층 마을.

레오는 가장 가까운 곳에 나타났다.

‘크으…….’

풍제를 직격으로 맞은 레오의 몸 상태는 도저히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팔은 기형적으로 꺾여 있고, 가슴뼈가 푹 주저앉아 있었다.

“저, 괘, 괜찮으십니까?”

몰골이 말이 아니기 때문인지, 레오를 알아보지 못하는 헌터 하나가 레오에게 다가왔다.

“아아, 별거 아닙니다.”

뚝! 우두둑!

곧 몸이 멋대로 회복했다.

방금 전까지는 시체와 다름없는 레오였지만, 금세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후우, 살았군. 다음에 싸울 때는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 만나야겠어.’

레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땅의 돌에 다시 한번 손을 얹었다.

* * *

38층, 필드 깊숙한 곳.

레오는 단숨에 필드를 달려 구석진 곳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교묘하게 지어진 조악한 오두막집이 있었다.

헬 하운드의 아지트 중 하나이자, 헬 하운드가 사실상 와해된 이후로는 박철환과의 접선 장소가 된 곳이었다.

“하아, 힘들었군.”

일은 모조리 실패했으니 한 소리 듣겠지만, 어쩔 수 없다.

모든 건 파악을 잘못한 박철환의 잘못이니까 말이다.

‘마력부터 회복하도록 할까.’

레오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마나 스킬을 운용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양의 오러를 소모했기 때문에 기력이 말도 아니게 떨어졌다.

레오는 긴 숨을 쉬며 휴식에 들어갔다.

그때였다.

[액티브 스킬 ‘추격의 저주’에 의해 표식이 활성화됩니다.]

[시전자 : 최인한]

“음?”

레오의 눈이 꿈틀댔다.

“이게 뭐지?”

추격의 저주?

거기다 시전자가 최인한이라니?

그때였다.

후욱! 콰아아아아아!

폭격이라도 일어나듯 지면이 뒤집어지며 레오의 몸이 사방으로 휩쓸렸다.

만약 5단계에서 얻은 상위 등급의 마나 스킬이 아니었다면, 마력계가 뒤틀려 단숨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허, 언제? 아니, 대체 어떻게?”

레오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앞에 나타난 누군가를 향해 탄성을 내질렀다.

“촐랑촐랑 도망치기만 하는 건 오늘까지다. 끝장을 보기 전에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쯧!”

레오가 인벤토리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

콰앙!

대지가 출렁일 정도의 파동이 사방을 휩쓸었다.

콰가가가!

공격, 그리고 또 공격이다.

인한이 레오에게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몰아쳤다.

“크윽! 크으윽!”

레오의 입에서 주륵 피가 흘러내렸다.

마나 스킬을 운용하던 중 충격을 입은 게 컸다.

마력이 제때 운용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억지로 마력을 자아내고 있으니, 자칫하면 폭주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나선류!”

콰드득!

레오의 팔이 오러의 폭풍에 휘말리며 뜯겨 나갔다.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또다시 파공탄이 몰아친다.

퍼걱! 퍼어어엉!

레오의 표정에 낭패감이 서렸다.

‘어쩔 수 없다.’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목젖 너머로 피가 한 움큼 토해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전신의 오러를 끌어 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콰앙!

인한의 기세가 한순간, 주춤했다.

‘이때다!’

아마, 아니, 분명 폭주할 것이다.

이미 마력계가 들끓고 있다.

이어지는 인한의 공격도 피할 자신이 없다.

아마, 이것을 펼친 뒤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될 터.

그러나 상처는 회복하면 그만.

승리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원형 구현.’

레오가 검을 치켜들었다.

다음 순간.

서걱!

레오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인한은 베이지 않았다.

“네놈이 그걸 노릴 줄 알았지.”

촤륵!

우그러진 오리하르콘 슈트를 우악스럽게 벗어 낸 인한이 천천히 레오에게 걸어갔다.

“쿨럭! 크학!”

전신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레오의 몸이 사방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마력이 폭주하고 있다.

억지로 마력을 끌어 올린 대가였다.

하물며 그 상태에서 인한이 노린 대로 원형 구현까지 사용했으니.

“이제 끝이다. 악연은 여기까지야.”

화르륵!

인한의 팔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레오를 죽일 방법은, 오래 전부터 이것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레오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죽은 뒤 완전한 상태로 단숨에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처든 시간을 들여 재빠르게 회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거기에 정령술의 불이 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크아아아아악!”

화르르륵!

레오의 몸에 정령술의 불이 휘감겼다.

몸이 불에 타 죽고, 또다시 재생하며 다시 불에 타고, 재생하고 불에 타고를 반복했다.

이것이 레오를 죽이는 방법.

인한이 바라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놈은 여분 목숨만큼 끊임없이 죽음을 경험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때.

“쯧, 어디에 있나 했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이 흠칫 놀라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쓸모없는 놈.”

천천히, 기세를 끌어 올리며 다가오는 사내.

그 사내를 본 순간, 인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박철환.

그가 인한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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