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공략자들 207화>
겐지의 육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크윽!”
평소차럼 가볍게 착지하려 했지만,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간신히 죽진 않았지만 오러의 힘이 뇌리를 흔들었다. 눈이 핑글핑글 도는 기분이었다.
“놀랍군. 아직 5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는 거지?”
레오가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후욱, 후욱.”
겐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오러 익시드로 마력계와 육신을 강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머리가 터졌겠어.’
차이가 확연하다.
틈새를 노려서 공격을 하려고 해도, 수십 자루의 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격을 튕겨 낸다.
마치 5단계에 도달한 헌터 수십 명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후욱!
쉴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건지, 허공에 날아다니던 검의 일부가 겐지를 향해 날아들었다.
‘윽! 늦었다!’
아직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피하려고 했지만 검이 이미 코앞까지 들이밀어져 있었다.
“흡!”
카앙!
측면에서 몸을 날린 세릴.
검이 튕겨 나가며 벽면에 틀어박혔다.
“사, 살았습니다.”
“응.”
세릴이 짧게 대답하며 오러를 피워 올렸다.
그녀의 마나 스킬의 경지는 무려 마나 스킬 5단계.
5층 구간에서 오러를 개방했던 전적 덕분인지, 세릴의 마력에 대한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주위의 검을 쳐 내는 정도라면!”
유하영이 팀원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평소라면 위험하다고 물리고 싶지만, 고맙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허공에 떠 있는 검의 압박이 훨씬 줄어들었다.
쿵! 쾅! 콰앙!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고, 막대한 여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세릴, 그리고 3팀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겐지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저 괴물은 뭐야?’
정신없이 레오의 검격을 피하는 데만 열중하며 겐지가 표정을 구겼다.
‘마나 스킬만이 아니었구나. 검술도 수준급이야.’
겐지는 검술에서만큼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해태 길드 내에서도 임태호가 아니면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산산조각 깨져 버렸다.
형식이나 법도란 없는 겐지의 공격은 어떤 기술이라기보다는 야성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야성이란 결국 마구잡이란 말이었으니, 자연스레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흐음, 소용없을 거야. 내가 몸이 좀 특이하거든.”
레오에게는 아무리 베여도 단숨에 회복하는 불사의 육체가 있었다.
‘크으, 궤도를 읽을 수가 없다니…….’
겐지가 이를 꽉 깨물었다.
검의 궤도란 건 인간의 몸으로 펼쳐지는 이상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육체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고, 검을 휘두르는 당사자의 몸도 궤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오는 자기 자신의 육체가 궤도를 막고 있어도 거침없이 무기를 휘둘러 온다.
‘적어도…… 세릴 님과 함께라면 인한 님이 도달하기까지 버틸 수는 있을 줄 알았건만.’
말도 안 되는 오산이었다.
겐지 자신도 과거에 습격당한 이래로 뼈를 깎는 수련을 했건만, 레오는 그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닿아 있었다.
“그게 끝인가? 여기까지는 저번에도 보여 주지 않았나.”
마치 검술로만 상대해 주겠다는 듯, 레오는 묘한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오러를 일정 이상 끌어 올리지 않았다.
‘크으! 이 무슨 수치인가!’
그 모습에 열이 뻗친 겐지가 땅을 박차고 오러를 끌어 올렸다.
“일섬(一閃)!”
한 줄기 섬광과 함께 검격이 쭉 뻗어 나갔다.
폭발적인 속도의 일격.
가로막는 검들이 모조리 튕겨 나가며 일직선으로 레오의 목을 노렸다.
“이건 날카로웠어.”
나지막한 한마디.
그 후, 레오의 좌검이 겐지의 검을 튕겨 내고, 우검이 긴 호선을 그리며 겐지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 긴박한 순간에도 겐지는 본능적으로 전신의 오러를 복부에 집중시킨 겐지.
그야말로 눈부신 대처였다.
그러나.
“크, 허…….”
겐지의 입에서 폐부의 바람이 쥐어 짜이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방어로 돌린 오러 덕에 충격을 중화시켰는데도 몸통이 절단 나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아, 아직 멀었다!”
하지만 겐지는 이를 악물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으나 그건 거죽에 불과하다.
내장이나 근막까지 닿지는 않았다.
겐지는 애써 정신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충격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부웅!
그런 그에게 레오의 공격이 이어졌다.
간신히 치명상은 면하고 있지만, 전신에 칼자국이 생겨났다.
그 탓에 평소 입고 다니는 트레이닝복이 갈가리 찢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그때와 별로 달라진 건 없는 모양이군.”
“후욱, 후욱…….”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을 뿐인 겐지가 어깨를 들썩였다.
‘……검이 무겁다.’
땅바닥에 검 끝이 닿아 있었다.
사실상 손잡이를 쥐고 있는 두 손은 검을 걸치고 있는 것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젠 일어서 있는 것도 고작인 모양이군. 그래도 나름 즐길 만했어.”
레오가 천천히 검을 치켜들었다.
레오의 검에 뭉클 피어오르는 오러.
‘아직…… 아직 딱 한 번 휘두를 힘은 남아 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번이었다.
오러 익시드를 해제하고 잔여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은다면 한 방은 어찌어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뱉을 수 있는 호흡도, 체력이나 기력도 딱 한 번 검을 휘두를 힘밖에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그 일격조차 시간 벌이 이상은 되지 않겠으나.
그런 생각을 하던 겐지의 눈이 돌연 번뜩였다.
‘이대로 연애도 못 하고 죽을까 보냐!’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번쩍 뜬 눈에서 줄기줄기 새어 나오는 기세에 레오의 안색도 슬쩍 변했을 정도였다.
“후우…….”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겐지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대놓고 궤도를 보여 주는 자세였다.
검을 쥔 양손은 머리 위로,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 뒷발은 뒤꿈치가 살짝 떠 있다.
투웅!
자세를 취한 직후 고무줄 튕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겐지의 육체에 스며들었던 오러 엑시드가 검 끝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흐음?”
레오의 눈가가 꿈틀댔다.
그리고.
“크압!”
검 끝에 겐지의 모든 게 스며들었다.
남아 있는 힘, 펼칠 수 있는 기술, 그동안의 수련 성과.
검이 겐지가 되고, 겐지가 검이 된다.
이제 더 이상 검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손발의 연장, 육체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투웅!
오러가 저절로 움직여 흐름을 바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달은 듯한 기분이었다.
“뭐?”
레오가 황당하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그 직후.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이 레오를 휩쓸었다.
후두둑!
자욱한 모래 먼지가 지상에 내려앉았다.
그 일격, 검 끝에 자신의 모든 걸 실어 날리는 일격은 충분히 먹혀들었다.
“크으…….”
오른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까지.
몸의 반신이 지면에 떨어진 레오가 신음을 흘렸다.
피를 줄줄 흘리는 와중에도, 레오는 태연하게 지면에 떨어진 자신의 몸의 일부를 주워 단면에 가져다 댔다.
“이쯤 되면 나는 깨달음 제조기가 아닌가 싶네. 벌써 두 명째잖아?”
“…….”
그리고 그런 레오의 정면.
겐지가 지면에 쓰러져 있었다.
전신의 힘이란 힘은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것이리라.
레오가 천천히 누워 있는 겐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사이로, 손톱이 유난히 긴 팔이 비죽 튀어나와 레오를 가로막았다.
“뭘 하려는 셈?”
세릴이었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검들이 떨어져 나가자, 세릴이 다급히 끼어든 것이었다.
“그야 죽이려는 거지, 묘족 아가씨.”
“안 돼.”
마나 스킬에 탁월한 세릴이지만, 그녀의 기술적인 부분은 평범한 그 자체였다.
레오와 부딪치면 10분도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켜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리를 잠시 쳐다보던 레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면, 너도 예외 중 하나였지. 아인족이면서 층간을 이동할 수 있고, 거기다…… 씨앗까지.”
“…….”
레오가 손을 거뒀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겨눴다.
달그락!
지면에 떨어져 있던 검들이 다시 한번 허공에 떠올랐다.
“내가 궁금한 건 못 참아서.”
레오의 검에 오러가 스며들고, 허공에 떠오른 검들이 쏘아지려는 순간.
“레오-!”
백색의 오러가 포탄처럼 레오의 육체를 강타했다.
대기가 진동하고,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잔여 오러가 번져 갔다.
백색의 오러, 거기다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위력까지.
“뭐? 네가 왜 여기 있어?”
레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한.
그가 도착한 것이다.
“박철환이 분명 전부 밖에 있는 거 확인하고 날 보냈는데? 게다가 아직…… 30분 정도밖에 안 흘렀잖아? 그런데 이렇게 빨리 도착했다고?”
레오가 혼란스러운 듯 횡설수설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인한은 그런 그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겐지.’
지면에 쓰러져 있는 겐지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들썩이는 걸 보면 죽은 건 아니다. 전신이 피투성이였지만 급소는 한 곳도 맞지 않은 사실 또한, 찰나에 파악할 수 있었다.
“세릴.”
인한이 세릴에게 눈빛을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세릴이 쓰러진 겐지와 3팀을 챙겨 자리를 피했다.
레오의 표정은 어느새 능글맞게 바뀌어 있었다.
그는 인한 외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이야, 정말 반가워. 내가 진짜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뭐지?”
“어떻게 그걸 맞고도 살아난 거야? 난 무조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원형구현.
벤다는 원형을 구현한 순간, 인한의 육체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마력계에 레오의 오러가 침투한 탓에 마력을 통한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운이 좋았지.”
이런 때를 예견하기라도 하듯 오리하르콘 슈트와 엘릭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승산은 있고?”
인한이 원형 구현을 이루지 못한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듯한 말투다.
인한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인한이 지면을 박찼다.
콰앙!
충돌하는 두 힘.
밀린 것은.
“큭!”
레오였다.
레오가 피를 토하며 뒤로 확 미끄러졌다.
촤르르륵!
그 와중에도 레오가 인한의 전진을 막고자 모든 검을 전면에 펼쳤다.
그러나.
콰가가강!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모든 검이 부서졌다.
인한이 주먹을 뻗으며 외쳤다.
“이제 네놈의 전투 방식은 익숙하다!”
첫 전투 때는 서로가 서로의 것을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전투 때도 마찬가지.
숨길 것이 없는 인한에 비해 레오는 한 방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상성은 무조건 인한이 윗선이다.
언제나 뭔가를 숨기고 있는 레오였기에 인한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이다.
“큭!”
레오가 신음을 흘리며 또다시 허공에서 검을 흩뿌렸다.
부채꼴로 펼쳐지며 인한의 접근을 막는 검의 방패.
“제로 어택!”
레오의 검은 부서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순간 크게 출렁이며 충격을 그 건너편으로 전달했다.
“크헉!”
설마 방패가 뚫려 자신이 충격을 입을 줄은 몰랐는지, 제어가 풀리며 검들이 비처럼 지면에 떨어졌다.
“그새 더 강해졌잖아? 진짜 나 무슨 깨달음 제조기야?”
레오가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엘릭서의 힘.
인한의 육체의 반응 속도는 이전과 극명하게 달라진 상태였다.
그러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레오는 인한에게 적응하고는 말을 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흐읍!”
몰아치던 인한을 향해 레오가 이내 거리를 좁혔다.
콰앙!
섬뜩한 일격.
인한의 몸에 사선으로 긴 혈선이 생겨났다.
지면에 피가 흩뿌려졌지만, 베이는 것과 동시에 인한의 몸은 금세 회복했다.
“와! 이제 무슨 트롤인데?”
레오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것도 엘릭서의 힘이었다.
육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며 안 그래도 단단했던 인한의 육체가 한층 더 내구도가 높아졌다.
특별히 방어하지 않았는데도 오러를 감은 검격에 다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타악!
인한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레오가 인한의 가슴을 발로 차며 거리를 벌렸다.
‘온다!’
사위를 잠식하는 위압감.
원형 구현이다.
천천히 검을 치켜드는 레오.
그러나 그 순간.
화악! 콰가가가!
지면에서 돌기둥이 치솟고, 허공에서 화염이 폭발했다.
순식간에 자세를 무너뜨리며 뒤로 넘어지는 레오를 향해 인한이 손을 뻗었다.
“중압!”
사위에 압력이 내려앉았다.
“큭! 이게 무슨!”
당황해하는 레오에게 인한이 말했다.
“아직 6단계를 완성하지 못한 너는 펼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
우우웅!
오러가 휘감기는 인한.
원형 구현만 없다면, 인한이 패배할 일은 없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내가 달려들 뿐이다!”
인한의 주먹이 용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레오를 향해 휘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