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공략자들 205화>
겐지와 세릴은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해 팀에 합류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기 전에는 조금도 돕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방에 12마리. 100미터 정도 앞인가. 뒤쪽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고. 이 정도면 고전하긴 해도 할 만하겠군.’
마력을 넓게 퍼뜨려 주위를 탐색하는 겐지.
마력에 대한 센스도, 감각에 대한 재능도 뛰어난 그는 거의 대부분의 몬스터의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키에에에엑!
히든 던전의 몬스터는 온갖 동물이 섞여 있는 괴기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흔히 키메라라 부르는 몬스터들이었다.
그 몬스터들이 생긴 것처럼 기형적인 패턴의 공격을 퍼부었다.
거기다 육체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듯했다.
‘그래 봤자 마력도 못 다루니 괜찮겠지만 말이오.’
겐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3팀의 전투를 관전했다.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온 팀이기 때문인지, 상당히 연계가 좋았다.
특히 히든 클래스 드루이드를 가지고 있는 유하영의 경우엔, 팀원들에게 버프를 주며 상당한 전투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겐지는 고개를 돌렸다.
“응? 세릴 님, 뭘 먹고 있는 것입니까?”
“……먹을래?”
앞에서 한참 피 튀기는 전투를 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세릴은 뭔가를 오독오독 씹으며 목 뒤로 넘기고 있었다.
마치 관람이라도 하는 듯이 편안한 자세로 말이다.
겐지 역시 그에 동조하며 손을 뻗었다.
“음, 그럼 감사히…….”
그때였다.
겐지가 흠칫 놀라며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
세릴도 기척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 이 던전에 들어왔습니다.”
* * *
히든 던전이 있는 폐허 외곽.
한 사내가 두꺼운 나무 가지에 걸터앉은 채 히든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튼, 조심성도 없지. 히든 던전에 들어갈 땐 출입 금지 설정을 했어야지.”
검은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내.
묘한 퇴폐미를 가지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레오였다.
“하긴 확실하게 미행이 없는 걸 확인한 상태인데 거기까지 신경 쓸 사람은 없으려나? 뭐, 안타깝게 됐네.”
레오의 손에는 작은 드루이드의 인형이 들려 있었다.
인형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다른 놈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나? 그것도 킬러 나부랭이들을.
“뭐? 그럼 나보고 혼자 저걸 다 상대하라고?”
-그래. 설마, 못한다고 말할 생각인가?
“아니, 귀찮잖아? 힘들기도 하고. 혹시라도 한 방 얻어맞아서 회복하는 데 시간 걸리면 어떻게 할거야. 네가 말한 사람들 놓쳐도 되는 게 아니잖아?”
-……뒤처리는 확실히 해라. 명심해라. 세릴은 놓쳐도 상관없다. 유하영, 겐지, 이 두 명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알았어. 그런 건 걱정 말도록 하고.”
레오가 나뭇가지에서 툭 떨어졌다.
“내가 궁금한 건 말이지, 겐지를 잡으라는 건 이해를 하겠어. 그런데 유하영이란 여자는 대체 누구길래 놓치지 말라는 거야?”
-최인한을 향한 선물 정도로 말해 두지.
그 말을 끝으로, 곧 드루이드의 인형의 연결이 끊겼다.
레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느긋한 걸음으로 천천히 히든 던전에 입장한 레오가 검을 휘둘렀다.
콰가강!
거대한 굉음과 함께 입구가 철저히 막혔다.
누군가 힘으로 뚫고 가려 해도 위에서 떨어지는 잔해에 고생할 게 분명했다.
칠흑으로 변한 어둠 속, 레오는 검을 뽑아 들었다.
* * *
“던전 공략을 멈추시오!”
겐지가 다급히 외쳤다.
마력이 섞인 음성에 밀폐된 공간이 웅웅 울렸다.
서걱! 콰각!
한참 길드원들이 사냥하던 몬스터들이 겐지의 공격에 단숨에 쓰러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3팀의 팀장 유찬웅이 천천히 다가왔다.
“뒤쪽에 침입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들어왔…….”
쿠르르르르!
그때, 던전 전체가 크게 진동하며 폭음이 메아리쳤다.
그게 입구에서 들려온 것이란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감지할 수 있었다.
“설마 입구를 막은 것인가.”
겐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유찬웅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어 왔다.
“침입자라니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분명 팀의 이동 반경에는 어떤 사람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여긴 헌터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에요. 운 좋게 발견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처음부터야.”
“하영아?”
“처음부터 노렸어. 애초에 너무 간단하게 히든 던전의 흔적을 찾았어.”
“뭐? 설마? 새치기했던 그 사람들?”
“그런 거 같아.”
유찬웅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달의 검 팀은 이미 한 번 23층 보스존을 클리어했기 때문에 다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호위하고 있는 교수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23층 보스존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23층 보스존 돌입 직전, 한 헌터 팀이 새치기를 한 것이다.
채 말릴 새도 없이 보스존에 들어간 그들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보스존에서 빠져나왔다.
“난 당연히 그냥 실패한 줄로 알았는데……!”
“나도 그랬어. 하지만 돌이켜 보면 상태가 너무 깔끔했지. 상처도 없었어.”
“지금은 그런 걸 되짚을 때가 아닙니다.”
겐지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팀장님, 어떻게 하는 편이 좋겠습니까?”
아무리 간부라지만 겐지는 전투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지금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유찬웅이었다.
“일단 찢어진 팀원들부터 빠르게 불러 모으도록 하지요. 하영아, 연락 돌려.”
“알았어.”
미로형 던전이기에 탐색조가 여러 갈래로 찢어진 상태였다.
“일단 지나쳐 온 안전지대로 돌아가도록 하죠. 그리고 세릴 씨.”
“……?”
“분명 탐색 스킬과 은신 스킬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어.”
“최대한 안전하게, 그리고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여전히 무표정한 세릴이 땅을 박찼다.
쿠웅!
한 줄기 돌풍이 되어 날아가는 세릴의 속도는 가히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이동에는 한 점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바람이 갈라지며 돌풍이 일어날 뿐이었다.
“자, 자, 다음으로…….”
유찬웅은 그리고는 드루이드의 인형을 들었다.
“어디에 연락하시려는 겁니까?”
“1층 사무실입니다. 나머지 간부님들이 탑 외부에 있으니까 인형으로는 연락이 닿지 않으니까요. 당직 근무 하는 사람한테 연락을 부탁하려고 그럽니다.”
유찬웅은 상당히 차분했다.
보통이라면 패닉에 빠질 법도 한데, 그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1층 사무실과 연락을 마친 유찬웅에게 겐지가 말을 건넸다.
“상당히 담담하시군요.”
그에 유찬웅이 쓰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불안해하면, 팀원들도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지금은 호위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말이죠.”
유찬웅은 그렇게 말하고는 팀원과 교수진들이 전부 모이자 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그의 설명을 듣고는 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겐지가 유찬웅을 향해 감탄을 터뜨렸다.
“대단하십니다! 그야말로 무사의 본보기가 아닙니까!”
“……네?”
유찬웅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휘익!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닥쳤다.
세릴이었다.
“벌써 오셨습니까? 침입자들이 그 정도로 가까이 있었습니까?”
출발한 지 고작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세릴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한 1시간.”
“아!”
그저 세릴이 빠르게 이동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적인 것 같습니까?”
“그 사람들, 피 냄새 나.”
세릴이 말을 이었다.
“79명. 실력자. 적어도 이 층 사람은 아냐. 30층 이상. 유난히 강한 사람도 두, 세 명.”
“79명…….”
유찬웅이 그 말을 곱씹었다.
숫자가 상당하다.
3팀의 숫자가 57명에 불과하니, 22명이나 차이 났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게 아니었다.
‘세릴 씨가 강하다고 표현할 정도라니.’
유찬웅이 혀를 찼다.
그럼 최소한 랭커라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겐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뭐, 얼마 없군요. 괜찮겠습니다. 혹시 데스 파티일 줄 알고 긴장했는데 다행이군요.”
“……예? 아!”
그렇다.
이쪽에도 랭커가 있었다.
그것도, 최상위 랭커가.
* * *
팀 드레드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헌터 집단이었다.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킬러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걸로 먹고 살거나 살인을 하기 위해 탑을 오르는 건 아니지만, 굳이 살인을 안 하지도 않았다.
누가 뭐래도 살인은 검은 탑에서 가장 효율적인 성장 방법이니 말이다.
‘히든 던전에, 데스 파티의 비호를 받는 데다, 3팀의 장비까지.’
이번 일을 위해 드레드의 팀장이자, 랭킹 87위의 헌터인 스탠은 평소 알고 지낸 헌터들을 불러 모았다.
물론 히든 던전 소유권과 데스 파티의 비호는 그의 팀인 드레드가 독식할 테지만 말이다.
발자국을 되짚어 이동하던 중, 스탠은 마력 탐색을 통해 목표가 이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들이 미쳤군. 명색에 해태 길드라 이건가? 어차피 간부도 없다고 하니까…….’
해태 길드의 간부나 공략조의 랭커들은 무섭긴 하지만, 이 의뢰를 할 때 분명 그 두 가지가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분의 정보다. 거짓말일 리도 없고. 이번에 조금 수고하면 대박이다!’
레오를 떠올린 스탠이 씨익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았다.
“자! 이제 기껏해야 4,500미터 앞이다. 여기서 정비를 끝내고 이동하도록 하자고! 축제 시간이다!”
툭!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대놓고 목청껏 외쳤건만, 그 목소리를 뚫고 발소리가 울렸다.
툭!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왔다.
“으응? 너 이 새끼, 누구야?”
시비조로 말하던 스탠은 곧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마력을 통해 전방을 전부 훑었는데, 사내의 기척을 깨닫지 못한 탓이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인사차 먼저 찾아왔소. 일단 뭐라도 하기 전에 의도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보아 하니 굳이 물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군.”
사내가 천천히 검을 꺼냈다.
“오러 익시드!”
사내의 외침과 함께 오러가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한순간 체내로 수렴됐다.
그 광경을 본 스탠이 당황스럽게 외쳤다.
“오, 오러!”
마나 스킬 4단계에 도달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극한의 힘.
스탠도 그 경지에 도달하긴 했지만, 저토록 선연한 오러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잠깐! 지금 일본어였지? 거기다 저 키에 저 외모…… 니시야마 겐지다!’
젊은 나이에 벌써 해태 길드의 간부, 거기다 최상위 랭커로 등록된 사내.
그자가 분명해 보이자, 스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에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 이쪽도 랭커가 세 명이나 있다! 모두들 들이박아!”
스탠의 외침과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푸른 오러가 사방에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검을 휘두르는 그 기상은 그야말로 하늘마저 베어 버릴 듯했다.
“타아앗!”
고함과 함께 겐지가 검을 휘둘렀다.
빈틈을 찾을 수 없는 깔끔한 일격.
오러에 스친 자들의 팔다리가 하늘을 날았다.
“겐지 씨를 호위해!”
“좌측! 무너진다!”
“이것들 별거 아니야! 좀만 더 힘내!”
사람들의 고함과 외침이 이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었다.
3팀이 압도하고 있다는 것.
‘어, 어째서……!’
스탠의 표정은 처절한 절망으로 점철되었다.
분명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탄탄대로로 뻗어 나갈 자신의 미래가 눈앞에 아른거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각오하도록!”
겐지가 땅을 박차며 날아왔다.
스탠이 이를 꽉 물고, 옆에 있는 부하의 멱살을 잡았다.
“어어, 뭐, 뭐를! 크아악!”
“으, 으으으, 시발!”
스탠은 동료들을 떠밀며 등을 돌려 뛰쳐나갔다.
“헉! 헉!”
간신히 그곳을 벗어난 그는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면서 전력으로 마력을 사용하고 무게가 나가는 모든 걸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몸을 빠르게 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나.
쾅!
스탠은 무언가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달려가는 속도가 있었던 탓일까.
스탠은 트럭에 치인 듯한 충격을 느끼며 땅바닥에 튕겨져 나갔다.
“어, 어떤 새끼야!”
스탠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선 순간.
푸욱-
한 줄기 소음과 함께 스탠의 목젖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륵!”
쓰러지는 스탠을 뒤로한 레오가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동했다.
촤르르륵!
그의 등 뒤로, 수십 자루의 검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