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공략자들 201화>
“나는 일단 레오가 준 정보를 되짚어 볼게. 먼저 공격 당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어?”
전면전은 아니라지만, 길드와 길드간의 전쟁이었다.
상당한 전력을 필요로 할 게 분명했다.
“이미 충분히 얘기한 거 같은데? 해태 길드는 최고의 헌터 집단이야. 너 하나 없다고 어떻게 될 거 같아?”
50층을 공략하는 것이 힘들게 된 이상, 해태 길드의 최우선 목표는 각 길드원들의 성장이 되었다.
간부들은 따로 움직였다.
바로 레오가 준 정보의 진위 확인과 그걸 통해 데스 파티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한.
인한은 평소 하던 훈련이나 탑을 오르는 일들을 모두 접었다.
인한이 현재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우우웅! 쾅!
한 줄기 폭발음이 산간에 울려 퍼졌다.
새들이 파닥이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자욱히 피어오른 잔해가 가라앉고, 그 속에서 인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앉아 있는 지면은 크레이터로 가득했다.
폭발의 여파인지, 지면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쯧, 또 실패군.’
인한이 혀를 차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신의 내면, 그 근원을 깨닫는 것.
마음의 형태, 심상(心象)을 깨닫는 과정이다.
육신과 감각에 수련을 쌓아 왔던 그동안과는 수련의 질이 많이 달랐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앉아서 명상만 하려니 좀이 쑤셔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게 맞는 방법인긴 한 건가?
‘……이젠 나도 모르겠어.’
위그라노아의 말에 인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어렵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혀 방향이 보이지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수련에 대한 의심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애초에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다 보니 더욱 그랬다.
레오의 검.
의식이 없을 때 경험했던 세계.
엘릭서를 흡수한 순간.
약간이나마 경험했던 감각을 총동원해서 되짚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닿을 듯 말 듯, 내면 세계로 의식이 이어지지 않았다.
‘막연하게 심상이라고 해 봤자…….’
내면이라 해도 종류가 다양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토록 간단한 하나의 형상을 띠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고행을 쌓는 고승들도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데, 인한이 그렇게 간단하게 깨달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으, 으으으악!”
콰아앙!
또다시 몇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명상에 빠졌던 인한이 한순간, 비명을 지르며 마력을 터뜨렸다.
사방에 폭풍과 같은 마력이 휩쓸며, 과거 숲이었을 장소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자연 파괴가 아닐 수 없었다.
“후욱, 후욱!”
-진정해라. 네 재능 없음을 비관해 화풀이를 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알았다고!”
얼굴을 팍 일그러뜨린 인한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땅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 * *
끼릭! 끼릭!
48층 히든 던전, 리제의 미로.
지하에 있는 미궁의 형태를 하고 있는 히든 던전에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미궁의 벽에 부딪히며 메아리쳤다.
“휠체어 소리 덕분에 몬스터가 더 잘 모여들어서 그건 좋구만. 이참에 탱커로 전향하는 건 어때? 어그로 잘 끌리겠는데?”
킥킥 낮게 웃음을 흘리는 자는 레오였다.
그 이죽거림에 휠체어에 타 있는 사내, 클라우스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무시함으로 일관했다.
“아, 그러고 보니.”
몬스터를 처리하던 레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너는 최후의 순간이 오면 뭘 하고 싶을 것 같아? 나야 죽어도 죽지를 않으니 잘 모르겠더라고.”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듯, 클라우스는 또 한 번 레오의 말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때마침 나타난 몬스터가 클라우스의 뇌격에 얻어맞아 새까맣게 타올랐다.
뒤에 남겨진 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말해 줬으면 편의를 봐줬을 텐데 말이야. 안타깝게 됐구만.”
레오의 의미심장한 말.
하지만 그 말도 역시 클라우스는 듣지 못했다.
10층에서의 사건 이후.
클라우스는 폐인처럼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하고 검은 탑의 신문물로 인해 수많은 치료법이 발견됐다 한들, 턱이 부서지고, 이가 모조리 빠지고, 전신의 뼈가 부러진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육신의 상처보다 정신의 상처가 더 컸다.
클라우스는 매일 밤에 진통제의 효과가 끝날 때면, 자신을 두들겨 패던 인한에 대한 악몽을 꿨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제 풀에 지쳐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 이름은 박철환이다.”
박철환이 찾아왔다.
그는 프랑스에 살았던 경험이 있었던 듯, 능숙한 불어를 구사했다.
“상태가 심각하군. 완벽히 치료하진 못하겠지만…… 휠체어에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는 해 주지. 거기다 새로운 씨앗도 주겠어.”
파격적인 제안.
누구라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클라우스는 사업가였다.
먼저 찾아왔다는 건 박철환 쪽에서 제안할 게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들어맞아, 박철환은 그에게 치료를 해 주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내 밑에서 몇 가지 일을 해 주면 될 뿐.”
굴욕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박철환은 달변가였다.
클라우스는 그의 말에 어느새 휘말려 있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계약이 끝난 후였다.
그 뒤로 클라우스는 박철환의 옆에서 탑을 올랐다.
박철환이 주는 정보와 성장 방향에 따라, 전에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을 거듭했다.
평생 하반신을 못 쓰게 된 데다, 음식도 한쪽 치아로 밖에 먹을 수 없게 됐지만, 박철환이 주는 정보와 지식들로 그는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레오와 박철환…… 아니, 데스 파티도 마찬가지다.
박철환이 모아 온 사람들은 모두 재능이 넘치고 뛰어나지만,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들투성이었다.
‘하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실리니까.’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뭐가 중요할까.
같잖은 자존심 내세우는 건 그야말로 우매한 처사다.
실제로 그는 지금 데스 파티의 간부이자 전체 랭킹 4위에서 6위를 왔다 갔다 하는 최상위 헌터 중 하나였다.
거기다 여러 정보와 아이템을 통해 탑 밖에서의 사업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가 총액 4천억 원의 기업, ‘매지션즈’.
비록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다지만, 상관없었다.
결국 성공한 것은 그였으니까.
터벅!
그때였다.
그의 탐지 마법에 묘한 기척이 걸렸다.
“뭐지?”
“응? 왜 갑자기 가다가 멈췄어?”
“……정면. 100미터 앞. 사람이 있다.”
“뭐어? 사아라아암?”
놀리기라도 하는 듯한 레오의 말투에 클라우스는 다시 한번 혀를 차고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방어 마법, 혹시 모르니 공간 왜곡도 준비해야겠군. 분명 이건 박철환 외에 발견한 사람이 없는 던전일 텐데…….’
하필이면 보스존이 코앞인데 이상한 변수가 끼어들었다.
하긴, 인간의 기척이기는 하지만 정말 인간일 리가 없다.
기껏해야 언데드거나 환상일 게 분명했다.
터벅!
그리고 곧 탐지 마법에 잡힌 기척이 정체를 드러냈다.
“……박철환? 네가 왜 여기서 나오지?”
긴장이 훅 풀렸다.
왜 레오와 단둘이서 가라고 했으면서 여기서 나타난단 말인가.
“…….”
박철환은 말없이 천천히 다가왔다.
클라우스는 그에게서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변수.
클라우스는 방심을 할 만큼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다.
‘공간, 왜곡, 이동. 마력 제어…….’
수많은 마법이 동시에 떠올랐다.
클라우스는 미리 준비해 뒀던 마법의 공식을 뒤틀어서 언제라도 발동할 수 있게끔 마법을 전개했다.
우웅!
마력이 요동치며 클라우스를 둘러쌌다.
그때.
와장창!
등 뒤에서 휘둘러진 오러에 방어 마법이 유리장처럼 깨져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어, 어어?”
우우웅!
공간 왜곡 마법이 자동으로 발동하며 레오를 던전의 외딴 곳으로 날려 버렸다.
방해꾼을 날려 버린 클라우스가 싸늘한 시선으로 박철환을 바라보았다.
“왜지?”
박철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분노도, 배신감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믿지 않았던 자였고, 자신은 계약으로 묶였을 뿐인 존재였으니까.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뜬금없이 자신을 쳐 내는 이유가.
“처음부터였다.”
“……?”
“처음부터 이렇게 하기 위해 널 끌어들인 거야. 이곳에서 널 죽이는 건 결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말한 박철환이 검을 들었다.
위이이잉!
구원의 검에서 소름 끼치는 섬광이 토해졌다.
클라우스는 그와 정면으로 대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박철환과 같이 있었던 시간이 5년이다.
그의 강함에 대해 클라우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빠져나가야겠군. 여기까지다.’
클라우스는 언제나 던전에 들어갈 때, 입구에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좌표를 찍어 두었다.
싸움에서 도망치는 건 그에게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공간 이동.’
우웅! 파직!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아내던 마법이 중간에 끊기며 마력의 흐름에 공백이 생겼다.
“……뭐?”
그리고.
무투파의 헌터에게 그 짧은 공백은 죽음과 직결되기 마련이었다.
푸욱-!
검이 복부를 꿰뚫고 등 뒤로 빠져나왔다.
‘어떻게……!’
클라우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법이 중간에 끊겼다.
아니, 정확히는 공간을 도약하려는 순간 무언가가 클라우스가 있는 좌표의 공간을 어그러뜨렸다.
“쿨럭!”
피를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정신이 혼미해졌다.
‘설마, 죽는 건가?’
클라우스의 표정이 흔들렸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자신은, 분명 선택받은 존재일 터.
운은 언제나 그에게로 향했고, 모든 자들의 머리 위에 그가 있어야 할 터였다.
우매한 사람들을 이끄는 건 누구보다 뛰어난 그여야 했을 텐데!
그때, 박철환이 무심한 표정으로 클라우스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너를 죽였지만…….”
촤학!
검이 뽑히며 선혈이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넌 죽을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짓는군,”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죽였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털썩!
클라우스가 지면에 쓰러졌다.
박철환은 검을 털어 검신에 묻은 피를 닦아 낸 후, 클라우스의 상처에 오러를 주입했다.
위이이잉!
환부의 살이 타들어 가며 출혈이 멈췄다.
거칠긴 하지만, 클라우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런 클라우스를 어깨에 들쳐 멘 박철환이 보스존으로 향했다.
[보스 몬스터 재생성 중입니다.]
[재생성 대기 시간 : 30분]
박철환은 보스존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제단처럼 생긴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갈색의 투명한 빛을 발하는 커다란 광석이 놓여 있었고, 양옆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이나 제구(祭具)가 놓여 있었다.
[땅의 왕의 제단]
“이걸 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군.”
클라우스의 시신을 제단에 올린 박철환이 마력을 일으켰다.
중앙에 있는 광석에 박철환의 마력이 주입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우웅!
주위에 무거운 압력이 내려앉았고, 광석에서 뻗어 나온 정체 모를 기운이 클라우스의 몸을 감쌌다.
박철환의 마력이 광석을 향하고, 광석은 클라우스에게 뻗었다.
그 세 가지가 완벽히 이어진 순간.
콰과과과!
주위에 있던 제구들이 일제히 진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힘의 방향이 역전됐다.
클라우스에게서 광석에게로, 광석에게서 박철환에게로.
그 진동이 끝났을 때.
[클래스를 획득했습니다.]
[공간의 탐구가]
박철환의 눈앞에 그런 천문이 떠올랐다.
우득! 뚜둑!
박철환의 피부에 갑작스레 상처가 생겨났다.
내부에서부터 무언가가 터져 나가기라도 하듯, 몸의 표면이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끝났을 때.
박철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트리아스 액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