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공략자들 197화>
데스 파티 길드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2주가 흘렀을 무렵이었다.
일단 임태호가 레오에게 정보를 얻어 내고자 했는데, 레오가 생각보다 쉽게 미주알고주알 털어 놓았다.
“박철환 그놈은 씨앗 보유자야. 그리고 넬레바나를 턴 건 뭐였더라? 그 세계수의 정수를 원정이었나? 뭐, 하여튼 그거 말이야. 그거 덕에 정령술을 다룰 수 있게 됐고…… 그리고 또 10층에서…….”
과하다 싶을 정보를 털어 내는 바람에 오히려 그가 말하는 게 진실이 맞는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거기다.
“뭐야, 씨앗 보유자도 아닌데 이렇게 강했다고?”
“지금 뭐라고 했지? 갑자기 말이 안 들렸는데?”
“흐음, 이 산짐승 같은 아저씨가 못 알아듣는 건 당연한 거고, 그쪽은 알아들은 걸 보니 씨앗 보유자인가?”
레오가 빙글빙글 웃으며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임태호와 같이 있던 이정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정환이 임태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녹음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어? 아, 어어.”
이정환이 핸드폰 녹음기로 레오의 이야기를 저장했다.
그렇게 녹음기에 저장된 정보들만 해도 세상에 퍼지면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들이었다.
그에 기가 질린 이정환이 물었다.
“어떻게 이 정도로 박철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거지?”
“그야 빅엿 한 방 날려 주려고 그런 거였어. 내가 하는 계획이 아니면, 망치는 게 더 재밌으니까.”
“…….”
대충 얻고자 하는 정보들은 다 얻었다 판단했을 무렵이었다.
레오도 더 이상 말할 게 없다고 하자, 임태호가 말했다.
“그럼 죽을 차례군.”
대검을 치켜든 임태호가 레오에게 겨눴다.
이정환이 깜짝 놀라 했다.
“죽인다구요?”
“너는 빠져 있어. 우리가 무슨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새끼는 빨리 죽이는 게 맞다.”
임태호는 깔끔하게 레오의 목을 쳤다.
아무리 불사신이라 한들, 목이 날아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뭐야……?”
혹시 몰라 목을 쳐 낸 뒤 잠시 기다리고 있던 임태호의 눈에 경악스러운 광경이 비쳤다.
잘린 목에서부터, 천천히 재생을 하고 있는 레오의 모습이었다.
“목이 잘려도 살아났단 말입니까?”
“……그래. 그 뒤로 솔직히 보기 싫어서 그냥 뛰쳐나왔다. 어우,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밥은 입에도 못 댔어.”
그게 과연 사람이란 말인가.
문득 목이 잘린 레오를 떠올린 인한이 몸을 떨었다.
그때, 이정환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레오를 죽일 수도, 그렇다고 풀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목이 잘려 보긴 처음인데…… 흠, 신기하네. 보통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 같은 건 뇌가 관리하는 거 아니었나? 머리 잘렸으면 다 잃어야 정상인 거 같은데? 흐음?”
회복이 끝난 레오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뒤로 레오에게는 물도, 밥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레오는 죽었다 살아날 때, 모든 걸 회복하는 듯 했다.
한마디로, 레오는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이었다.
나쁜 기억을 떠올린 이정환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린 돌아가면서 레오를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놈이니, 계속해서 지켜본 거지. 여차할 때 제압하기 위해서 공략조가 몇 명씩 붙고, 나, 겐지, 그리고 아나스타샤 셋이서 돌아가며 살펴보았다.”
간부들 중 가장 전투력이 높은 것은 위의 셋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공략조 인원들과 함께 그를 지켜봤다면, 설령 레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방어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일이 터진 거다. 데스 파티가 다짜고짜 우릴 공격해 왔다.”
“……!”
출범 때부터 해태 길드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던 데스 파티.
아무리 그래도 벌건 대낮에 사무실을 습격할 줄은 몰랐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레오였다. 놈들이 레오 뒤보아를 데려갔어.”
당시에 레오를 지키던 것은 임태호였다.
그 외에도 공략조 인원이 20명이나 지키고 있었지만, 그들은 밀리고 말았다.
“습격? 다친 사람은? 다친 사람은 있습니까?”
인한의 눈이 다급해졌다.
레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조금 다쳤다. 근데 금방 회복할 정도의 상처야. 죽거나 한 사람은 없었어. 놈들이 노린 건 어디까지나 레오였으니까.”
“……다행이네요.”
습격이긴 했지만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레오의 이야기를 들어서 둘이 동료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그냥 공구리해서 물에다 던져 놓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제길!”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뭐가 괜찮다는 거냐?”
“레오에게 받아 낸 정보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놈은 원래 그런 놈입니다. 어떻게든 도망칠 줄 알았어요.”
“뭐……?”
“그리고…….”
인한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럴 줄 알고 조치를 취해 뒀죠.”
인한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따라갔다.
‘뭘 보고 있는 거지?’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인한의 눈에는 보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추격의 저주]
인한의 주먹이 서서히 그러쥐어졌다.
‘확실하게, 내가 죽여 주마.’
* * *
인한은 퇴원 수속을 밟았다.
이창훈은 자신의 차로 인한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형님! 그럼 언제 다시 탑을 오를 생각이십니까?”
인한이 집에 들어가려는데, 창문만 슬쩍 내린 이창훈이 물어 왔다.
“적어도 일주일 내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예? 그렇게 오랫동안요?”
“더 길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 내가 늦어지면 먼저 움직여도 상관없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인한은 그 말을 끝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도록 집에 오질 않았는데, 먼지가 쌓이거나 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얘기를 들은 바로는, 이창훈이 가끔 와서 청소를 했다고 했다.
‘고맙다.’
피식 웃은 인한은 바로 방 안에 틀어박혀, 아주 오랜만에 상태창을 켰다.
[사용자 정보]
이름 : 최인한
종족 : 인간
레벨 : Lv.328
타이틀 : 시작하는 자(A+), 언데드 학살자(C), 독보(A), 수련광(B), 비밀을 아는 자(B), 힘의 기원(A+), 페어리 테일(A)
클래스 : 워리어<2차>(히든 클래스), 아스트라<2차>(히든 클래스), 세계수의 신관(히든 클래스)
[스테이터스]
힘 : 2993
민첩 : 2618
체력 : 2791
지능 : 1453
마력 : 4201
속성력 : 1856
[스킬]
<액티브 스킬>
1. [트리아스 액셀 <5단계> (EX) Lv.6]
2. [무극인 (EX) Lv.3]
3. [정령화(S) Lv.3]
4. [정령융합(S) Lv.4]
5. [왕의 권세(EX) Lv.1]
<패시브 스킬>
1. [지도 제작 (C) Lv.3]
……
6.[왕의 유산(EX) Lv.1]
<마나 스킬>
1. [극체술 <6단계> (S) Lv.2(0.5%)]
2. [기공술 (A)] (상위 마나 스킬에 편입됩니다.)
3. [위그드라실류 마력 연공(S)]
<면역 스킬>
1. [피해 면역 (S) Lv.18(21.01%)]
2. [중독 면역 (S) Lv.22(7.01%)]
……
‘독주는 사라졌구나.’
해태 길드와 합류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얻었던 타이틀 <독주>는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서 누구보다 빠르게 층을 공략해야 얻게 되는 타이틀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뺏겼을 건 예상한 바였다.
그 외에도 살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테이터스가 올랐군.’
힘, 민첩, 체력, 지능의 4대 기본 스테이터스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엘릭서의 힘이다.
육체의 재구성과 이어져 스테이터스까지 상승하게 됐다.
‘덕분에 속성력과 마력의 흐름까지 좋아졌어.’
인한은 단순한 마나 스킬이 아닌 트리아스 액셀을 익힌 사람이었다.
근육, 뼈, 혈관…… 수많은 부위를 통해 힘을 다루는 특성상, 육체의 재구성은 힘의 효율 증가로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솔직히, 핵폭탄에 맞아도 살 것 같군.’
인한이 피식 웃었다.
육체가 재구성되며, 인한은 자신의 몸의 내구도가 또 한 번 단단해진 것을 알게 됐다.
‘엘릭서는, 섭취한 사람의 마력 특성에 따라 그 몸을 최고의 구조로 재구성시킨다. 그냥 뼈를 맞추고, 근육의 위치를 조정하는 정도가 아니야. 몸의 구성 요소와 구조를 모조리 바꿨어.’
인한이 익힌 것은 극체술.
오랜 전투 방식 또한, 몸으로 맞아가면서 하는 전투다.
그에 따라 엘릭서는 인한의 몸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효과가 이어진 것이다.
고작 무생물에 불과한 영약이, 사람의 특성을 파악해 효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전설의 영약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외모도 좀 달라졌군.’
키도 컸고, 피부도 하얗게 변하고, 잡티도 사라졌다.
온몸에 가득하던 게 흉터와 굳은살이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평상복을 입고 지나가면 누구도 인한을 헌터로 안 볼 것 같았다.
‘스킬들은, 역시 모두 합쳐졌군.’
그 많던 액티브 스킬은 모두 트리아스 액셀과 무극인으로 편입됐다.
이제 액티브 스킬은 5개, 패시브 스킬은 6개밖에 남질 않았다.
인한은 그 뒤로도 마나 스킬과 면역 스킬을 체크한 뒤 긴 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기댔다.
우두커니 스테이터스 창을 보던 인한이 피식 웃었다.
‘참…… 이게 내 스테이터스가 맞는 건지.’
이렇게 상태창을 모조리 띄워 놓고 볼 때면, 과거의 보잘 것 없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인한은 스테이터스 창을 내리고 한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할 게 있었다.
눈을 슬며시 감은 인한이 심호흡을 계속했다.
그리고 한순간.
후욱!
그 공간으로 들어섰다.
모든 힘의 흐름이 손에 잡히는 공간.
인한은 그 공간을 유지한 채, 생각했다.
‘엘릭서를 먹었을 때…… 그 감각……. 레오에게 베였을 때…… 레오가 검을 휘두를 때…….’
감각을 일깨운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지금이다.’
인한이 흐름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우우웅! 콰앙!
한 줄기 힘의 폭풍이 사방에 몰아쳤다.
그 힘의 여파에 뒤로 튕겨 나간 인한이 벽면에 부딪히고 떨어졌다.
“제길. 역시 쉽지 않군.”
인한이 집안을 둘러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인한은 지금 트리아스 액셀을 운용하지도 않았고, 극체술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흐름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했을 뿐.
그런데 주위 물건들이 내부에서 폭발한 듯 부서져 있었다.
값비싼 소파는 산산조각이 났고, 유리창이나 벽면에는 쩍쩍 금이 갔다.
띵동! 띵동!
부서진 잔해들을 치우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경찰들이었다.
“폭발음이 있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인한이 헌터 등록증을 보여 준 후에야 경찰들은 이해했다는 듯이 집 안을 한 번 둘러본 후 떠났다.
워낙 커다란 소음이었다 보니 졸지에 신고까지 받은 것이다.
‘…… 탑에서 할 걸 그랬나.’
인한이 한숨을 쉬었다.
‘마나 스킬 6단계. 멀고도 험하군.’
그랬다.
인한이 한 것은 마나 스킬 6단계의 초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