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공략자들 187화>
인한은 소리 나지 않게 옥상의 문을 열었다.
“커으! 어떻게…… 아, 안 돼……!”
그곳에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사내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꿈틀댔다.
헬 하운드 간부이자 랭킹 27위.
호크 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희대의 궁사, 유명진이었다.
과거, 인한이 레오와 부딪혔을 때 멀리서 천충시를 쏴서 승부를 방해했던 킬러이기도 했다.
“그러게 왜 자꾸 나를 건드려. 보아 하니 이 밑에 장이 있나 본데.”
“으, 으어어어!”
“어차피 이렇게 말할 거였으면 일찍 말하지 그랬어. 나도 순순히 말하면 고통 없이 보내 줬을 텐데 말이야.”
유명진의 상태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였다.
사지는 기이한 형태로 부러져 있었고, 활시위를 잡아야 할 손가락은 모두 잘려 나가서 손바닥만 남은 상태였다.
거기다 치아가 모조리 뽑히고, 위아래 입술 모두 터져 버려서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넌 죽지도 못해.”
인한은 오러를 불어넣어 꺼져 가는 유명진의 생명을 억지로 붙잡아 놓고 있었다.
유명진이 계속해서 거짓 정보를 넘기며 인한을 함정에 빠뜨리는 바람에 이런 거추장스러운 방식을 취한 것이었다.
인한은 축 늘어진 유명진을 질질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우어어어! 어어어!”
유명진이 지나가는 길에 핏자국이 길게 남았다.
유명진이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장의 기척에 변화는 없었다.
인한은 유명진을 비웃었다.
“이제 오러의 상태까지 파악하지 못하게 됐나 보지? 내가 모든 음파를 차단하고 있는 상태라, 소리를 질러 봤자 네 목만 아플 거다.”
조악한 조립식 건물의 내부는 어두웠고, 공기는 눅눅했다.
계단 위쪽 천장에 작은 알전구가 몇 개 박혀 있었는데, 한동안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먼지만 가득했다.
그런 계단의 끝자락에, 녹슨 문이 있었다.
인한이 문을 열었다.
“……주인님?”
문을 열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은 실내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손을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렸다.
“중압.”
“컥!”
쿵!
무언가가 지면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섰다.
용언은 인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지만, 고작 중력이 네다섯 배 정도 강해진 것은 인한에게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인한은 쓰러져 있는 사내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얼굴의 그 상처, 장 플뢰르가 맞군.”
인한이 유명진의 목에서 손을 뗐다.
“크륵!”
이미 중상, 아니, 치명상인 상태에서 중압의 압력까지 가해지자 유명진은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네, 네놈은…… 최인한!”
“만나고 싶었다, 살인마 새끼야.”
인한이 뚜벅뚜벅 걸어가 장 플뢰르의 목을 그러쥐었다.
장 플뢰르는 인한에게 붙잡히기 직전, 고민 없이 그가 테이밍한 몬스터들을 외부로 소환했다.
-크어어엉!
-크르르르!
-캬아아아!
족히 열 마리나 되는 수많은 대형 몬스터들.
그중에는 보스 몬스터도 여럿 섞여 있었다.
좁은 실내에서 갑자기 소환된 몬스터들에 의해 건물이 폭삭 내려앉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 마을에 몬스터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꺄아아악!”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출현에 주위에 소란이 일어났다.
인한은 주위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마치 파리를 쫓아내듯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콰아아아아!
백색 빛의 섬광이 쏘아졌다.
소환된 몬스터들이 트리아스 액셀의 힘에 관통되어 힘 한 번 못 써 보고 모조리 쓰러졌다.
화악!
몬스터들을 쓰러뜨린 걸로도 모자라, 하늘로 쭉 뻗어 나간 섬광이 구름을 갈랐다.
파랗게 갠 하늘 아래, 인한이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
웅성웅성!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개중에는 인한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귀찮게 됐군.’
우웅!
인한은 장의 내부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웬만한 헌터보다 월등히 많은 마력을 보유하던 장이었지만, 인한의 마력량에는 당해 내지 못했다.
그는 몸이 순식간에 축 늘어졌다.
인한은 유명진처럼 장의 목덜미를 쥔 채 땅을 박찼다.
* * *
“컥!”
거칠게 땅에 내팽개쳐진 장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주위는 어느새 1층 마을에서 위치를 알 수 없는 숲으로 변해 있었다.
“깨어났군.”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정면을 바라보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인한이 천천히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꽤 공을 들여 만든 조직인 모양이던데…… 어떻게 하나? 그걸 만지고 놀 수 없게 됐으니 말이야.”
깨어난 직후의 충격 때문일까.
거칠게 숨을 고르던 장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내가 망령들을 얕보았군그래…… 기껏해야 중간 관리자 정도나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미안하지만 망령들이 아니다. 네 사람들의 힘이 컸지.”
“…….”
그 말에 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헬 하운드의 조직원들에게서 얻은 정보로 인한이 이곳을 알아냈음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망령들이 준 정보에 적힌 것은 하위 조직, 즉 의뢰 창구의 위치와 몇 명의 관리자들의 정보뿐이었다.
결국, 점조직 형태의 단점이 문제였다.
장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래서 어쩔 거지? 어차피 헬 하운드는 주인님의 장난감이나 마찬가지다. 질리면 버리는 장난감 말이지. 그런 장난감 하나 망가진 걸로 주인님이 꿈쩍이라도 할 것 같은가?”
“나도 그 사이코가 그럴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널 이렇게 데려왔지.”
“인질? 하하! 그분이 날 신경이라도 쓸 것 같은가!”
인한이 피식 조소를 흘렸다.
“……왜 웃는 거지?”
“자랑스럽다는 듯이 레오에게 관심 못 받고 있는 걸 말하는데, 안 웃기겠어?”
노골적인 도발이었지만 장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 미간을 찌푸린 채 인한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푸우욱!
검 한 자루가 인한의 심장을 정확히 노리고 튀어나왔다.
인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쿨럭!”
인한이 토해 낸 피가 장의 얼굴에 후드득 떨어졌다.
장은 놀란 표정으로 고통에 일그러진 인한을 살폈다.
촤악!
검이 뽑혀 나가고, 검에 휘감겨 있던 오러에 의해 커다란 구멍이 뚫린 인한의 심장에서 피가 울컥 울컥 쏟아져 나왔다.
“커흑, 누, 누구…….”
인한은 그 말과 함께 지면에 쓰러졌다.
아무리 철벽의 육체를 가진 인한이라 한들, 심장을 꿰뚫리면 죽는 건 똑같았던 것일까.
그리고 검의 주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장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새하얀 피부와 그에 대비되는 새까만 머리카락.
지루한 듯 쳐진 눈매와 그 안의 빠질 듯한 깊은 눈동자.
“귀찮은 일에 휘말렸군그래?”
선홍색 입술이 한쪽만 천천히 말아 올라갔다.
묘한 퇴폐미를 뿜어내는 미남자.
다름 아닌 레오였다.
* * *
“주, 주인님께서 여긴 어떻게?”
“잠깐 기다려.”
레오는 검을 들어 인한의 몸 이곳저곳을 푹푹 찔렀다.
확인 사살을 하려는 것이었다.
인한은 그 강함만큼이나 괴물 같은 육체로 유명한 자였다.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
“검이 잘 들어가지 않는군.”
혀를 한 번 찬 레오가 인한이 입고 있던 검은 광택의 코트를 벗겨 내고, 다시 인한에게 오러를 휘감은 검을 찔러 넣었다.
푸칵!
분명 사람의 피부에 검을 박아 넣는 것이건만, 무쇠끼리 부딪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동안 인한의 전신에 검을 박아 넣은 레오는 그제야 장에게 다가왔다.
“대, 대체 어떻게 이곳에?”
“1층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일을 벌였는데 설마 내가 몰랐을 거라 생각했나? 거기다 놈이 올 곳은 대충 예상이 갔지.”
“그, 그렇습니까.”
장이 비척비척 일어나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놈이…… 주인님을 노린 모양입니다.”
“자세히.”
장은 천천히 그동안의 일을 말했다.
레오가 피식 웃었다.
“고작 그 정도에 조직이 흔들렸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장은 정말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곧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하다.’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슬쩍 눈만 돌려 레오를 살폈다.
평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레오의 모습이었다.
마력, 분위기, 특징까지…… 모조리 다 똑같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에 레오를 살피던 장이 한순간 멈칫했다.
‘말투……?’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벌써 레오를 섬긴 지 20년이 가까워져 간다.
레오에게서 다른 점을 발견해 낸 장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눈빛이 돌아왔어! 출력을 높여!”
“알겠습니다!”
“예!”
인한의 외침에 두 사내가 스태프와 완드로 향하는 마력량을 높였다.
분명 레오에게 검상을 입어 죽었을 인한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환상 마법.
그리고 환영진.
주술과 마법을 사용해서 상대의 이지를 흩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본래 마력을 익힌 사람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 수법이었다.
하지만 그걸 하고 있는 것이 엄청난 마력량을 지닌 인한이다.
장의 마력계 전체를 제어하고 있기에 둘 모두 잘 먹혔다.
‘거기다 이것도 있지.’
인한은 장과 레오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흔들며 씨익 웃었다.
“야, 이창훈. 향 꺼뜨리지 마라.”
“아, 예, 예.”
옆에 있는 이창훈은 거대한 향로 앞에서 곱린이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클라리스 풀’이란 걸 정제한 연기였다.
마약의 일종으로, 자백제와 같은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었다.
심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인한은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킬러에게 그런 걱정을 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마법과 주술과 마약은 한데 합쳐져 장에게 무의식 속에 있는 염원을 이루게 해 줄 것이다.
레오가 자신을 도우러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우러 와 줬으면 하는 상황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인한과 사람들은 이미 해독약을 먹은 상태였기에, 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시금 자욱하게 클라리스 풀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한은 낮게 기침을 몇 번 하고는 장에게 입을 열었다.
“딴생각을 하고 있군.”
이제부터는 제대로 정보를 캐내야 했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장은 레오를 바라보았다.
인한에게 마력을 제어당했던 탓일까.
때때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딴생각을 하고 있군.”
레오가 갑자기 검을 들어 장의 목덜미에 겨눴다.
“너…… 정말 장이 맞는 거냐?”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당연히 저는 장입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가 아는 네 녀석은 내 앞에서 멍을 때리는 놈이 아니야. 최인한이 내게 함정을 파기 위해 널 준비했을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그럼 너와 나만 알고 있는 걸 말해라.”
장이 당황해하다가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저는 아직 파리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이 맞군.”
대답하기까지 잠깐 텀이 있었지만, 장은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꼈다.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내가 뭘 하고 있었던지는 아는 거냐?”
“예?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그렇군. 이왕 이렇게 된 거, 대화나 좀 나누도록 해 볼까.”
“네……?”
뭔가 이상했다.
대화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장은 거기에 의문을 품지 않으려 했다.
레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일까.
그 미소가 방금 전 자신의 앞에서 미소를 짓던 인한을 닮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