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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82화 (182/266)

# 182

<공략자들 182화>

43층 필드 클레플러.

40층 보스존은 큰 문제없이 통과했다.

마음의 정리가 끝났음일까.

다시 만난 큐베리아에게선 아무런 심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물며 해태 길드의 이름으로 마주섰음에도 그랬다.

그 뒤로 두 달에 걸쳐 두 개의 층을 더 올랐다.

“네가 합류한 이유를 알겠네.”

이정환이 신음을 흘렸다.

40층을 통과해 어엿한 중층 필드에 진입한 해태 길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나도 공략법을 잘 몰라서 말이지.”

40층을 돌파한 직후 올랐던 층이다.

인한은 거의 폐인…… 아니, 그냥 폐인이었다.

45층 정도부터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정보들이 있지만, 40층 초반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략했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둘러보니 어렴풋이 기억은 나네.”

시선을 돌려 바라보자, 밤하늘까지 물들일 정도로 새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콰아아아아!

가죽 북을 터뜨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럴 때면 안전지대에 설치한 몬스터의 부산물로 제작한 텐트가 맹렬하게 흔들렸다.

43층 필드인 크레플러는 설산 지대였다.

어딜 둘러봐도 하얀색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거기다 한시도 끊이질 않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간부들이나 랭커들은 괜찮았지만, 나머지 길드원들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에 이정환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일단 밖에 나가서 관련 장비를 챙겨오긴 했는데…… 이거 진짜 문제다. 마력을 계속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랑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데 사용해야 하니까.”

자연 환경만 있으면 괜찮은데, 이곳은 어디까지나 필드였다.

필드를 자신의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몬스터가 사방에 가득하다는 소리였다.

“면역 스킬이 4레벨쯤 되면 이 정도 추위에 마력은 사용하지 않아도 될 거다. 지금 대략 얼마 정도지?”

인한이 말을 꺼냈다.

“뭐…… 2레벨인 사람이 태반이야.”

“흐음, 바로는 안 되겠군.”

인한이 텐트 밖을 바라보았다.

오들오들!

그곳에, 발가벗은 채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일단의 헌터들이 보였다.

“차라리 죽여라아아!”

“엄마! 엄마아아!”

“흑! 흐으윽! 팔다리에 감각이……!”

인한이 동상 면역을 얻게 하기 위해 길드원들을 내던진 것이다.

“…….”

이정환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인한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너는 동상 면역 스킬 레벨이 몇 정도 되는 거야?”

“동상 면역? 잠시만.”

천문을 살펴보던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19레벨이군. 화상 면역과 다르게 의도적으로 온도를 낮추는 건 힘드니까.”

“……뭐?”

“왜 그러지?”

“몇 레벨이라고?”

“19레벨이다.”

“…….”

그게 가능한 레벨이란 말인가?

면역 스킬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실 꽤 오래 전이다.

대략 2년 전쯤에 인한이 스트리밍을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야 헌터들이 하나둘 얻어 가는 실정이었다.

워낙 레벨을 올리기가 힘든 스킬이다 보니, 대부분 포기하는 것이다.

애초에 레벨을 올리려면 자해를 하든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야 하는데…… 어떤 미친 사람이 그러겠는가?

“넌…… 어떻게 올린 거냐?”

“그냥 춥거나 뜨거운 지역 가면 맨몸으로 이동하면 된다. 그냥 일상에서도 습관적으로 몸에 자극을 주면 된다. 관련 아이템은 꽤 많으니까. 빙결구라고 알지?”

“그, 마력만 넣으면 영하로 뚝 떨어지는 아이템?”

“그래. 그게 꽤 출력이 좋아서 애용했지. 그리고 또…….”

줄줄이 방법을 토해 내는 인한을 보며 이정환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정환의 표정을 보며 인한이 피식 웃었다.

‘피해 면역이랑 화상 면역 스킬, 중독 면역 스킬은 벌써 25레벨인 거 알면 경악을 하겠군.’

동상 면역에 비해 위 세 가지 면역 스킬은 숙련도를 올리기 쉬웠다.

거기다 피해 면역은 극체술과 시너지도 좋아서 다른 것에 비해 숙련도가 빠르게 올랐다.

물론 인한이라고 자해(?)만으로 숙련도를 높인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얻어 온 몇몇 기연들을 통해 면역 스킬 레벨 상승 보상을 몇 번이나 받은 덕분이었다.

“자 그럼 나도 이번 기회에 동상 면역이나 조금 더 올려야겠군!”

인한이 윗옷을 벗어 던지며 밖으로 나갔다.

“자! 우리 같이 면역 스킬을 올려 보자! 어허! 마력으로 냉기를 밀어내고 있군? 그런 짓 하면 많이 안 올라! 내가 마력을 봉인시켜 주지!”

“끄아아악! 이 괴물!”

이정환이 덜덜 떨리는 눈으로 인한과 길드원들을 바라보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정환도 동상 면역 스킬 3레벨에 불과했다.

‘……비밀로 해야겠군.’

마른침을 꿀꺽 삼킨 이정환은 눈을 돌렸다.

* * *

필드 공략은 지지부진했다.

동상 면역 스킬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속도가 나지 않았다.

거기다 필드의 주를 이루는 몬스터인 설인은 몬스터다운 강인한 육체뿐 아니라, 눈의 정령술과 빙결계 마법까지 사용했다.

“일단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커다란 텐트 속.

해태 길드의 간부급들이 모였다.

인한이 샐러를 소환해 내부의 온도를 높이고 있을 때, 이정환이 말했다.

“문제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지면이 불안정한 것, 추위, 눈보라, 그리고 설인.”

이곳의 눈은 지구의 눈과 성질이 달랐다.

보통 이 정도 추위에 몇 미터씩 쌓인 눈이라면 사실상 흙바닥과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곳의 눈은 잘 뭉치지도 않고, 얼지도 않았다.

발을 대면 푹푹 빠졌다.

억지로 마력을 이용해야만 몸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또 문제가 된다.

원거리형 헌터라면 모를까, 근거리형 헌터는 단단한 지면의 유무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이 필드의 자연 환경은 힘의 수렴과 방출, 기술의 정확도에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추위도 문제지만, 설인이 제일 성가십니다. 솔직히 말해 40층에서부터 그랬지만…… 마법에 정령술, 거기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까지 하는 몬스터들을 필드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필드 보정을 받아서 강한 게 아니라, 설인은 그냥 강했다.

두세 마리 정도 모였을 때라면 30층 전후의 보스 몬스터에 버금갈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문득 든 생각이다만.”

“예, 말씀하십시오, 형님.”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임태호가 입을 열었다.

“거 왜, 17층쯤에 기억나냐? 몬스터 앤트.”

“그 몬스터가 왜요?”

몬스터 앤트는 소형차 크기의 덩치를 가진 개미형 몬스터다.

실제 지구의 개미들처럼 군체를 이루고, 역할 분담을 한다.

“아니, 문득 든 생각이다. 그놈들 물에 안 빠졌던 거 알지?”

“아, 예. 기억납니다.”

몬스터 앤트는 특이하게도 물 위에서도 둥둥 떠다녔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한 것인지, 몸의 대부분이 물 밖에 나와 있어도 잘만 떠다녔다.

“그놈 표피 있잖냐. 그게 아마 물에 안 빠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걸 어떻게 잘 가공하면 여기서도 빠지지 않지 않을까?”

“아뇨, 몬스터 앤트는 안 됩니다.”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발이 빠지는 것도 빠지는 거지만 미끄러운 것도 문제예요. 몬스터 앤트의 표피는 마력으로 다져진 것이라 무언가에 빠지지 않게 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미끈미끈하죠.”

“어! 그, 그럼 잠깐만. 그게 문제예요?”

이창훈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허공에 손짓했다.

-쉬익?

이제는 인벤토리를 사용하듯 몬스터를 소환하고 수납할 수 있게 된 이창훈이 드레반이라 부르는 몬스터를 소환했다.

“갑자기 드레반은 왜?”

드레반 눈코귀가 하나씩밖에 달려 있지 않는 주황색 피부의 인간형 몬스터다.

전투에는 절대 강하지 않지만, 고블린만큼이나 손재주가 좋은 걸로 유명했다.

“그거 만들어 줘 봐.”

-끼룩!

드레반이 갑자기 뭔가를 척척 꺼내 놓더니 별의별 아이템들로 약초를 제조했다.

그리고.

[미끌미끌 방지약]

[효과 : 1시간 동안 약이 발린 부위의 마찰 계수를 높입니다. 농도의 조절에 따라 효과의 위력이 달라집니다.]

“짜잔!”

이창훈이 아이템을 내밀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간부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오! 이 새끼! 평소에는 쓸데없는 주제에 한 건 했구만!”

“아! 형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자, 자, 그럼 일단 아래쪽 팀원에게 어느 정도 수량을 부탁하도록 하고, 제작 팀에 의뢰도 해 보겠습니다. 그 아이템은 얼마나 만들 수 있어?”

“곱린이까지 도와주고…… 인간형이라면 한 사흘에 50병은 만듭니다.”

“흠, 그럼 사흘이면 100병 만든다는 소리군.”

“……제 말을 잘못 들으신 거 같은데요.”

“부탁한다.”

싱긋 웃는 이정환.

그 미소를 보며 인한이 흠칫 놀랐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그동안 길드를 어떻게 통제했나 했더니, 딱히 착하게만 대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자, 그럼 일단 그렇게 하고…… 창훈이를 제외한 랭커와 간부들은 필드를 탐색하도록 하죠. 길드원들은 일단 휴식을 취하게 합시다.”

그 뒤로도 회의는 계속됐다.

‘정말 공략자들 같군.’

공략법을 탐색하고, 머리를 맞대어 답을 도출해 낸다.

그야말로 공략자의 표본과 같은 모습이다.

인한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 *

땅의 돌로 향하는 길.

땅의 돌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해태 길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안전지대에서 하루 더 보내기로 했다.

-조심해라.

-조심.

-조심하세요.

한밤중. 수면을 취하고 있는데 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동일 인물의 목소리인데, 미묘하게 음성의 고저가 달랐다.

수면을 취하고 있던 이정환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멍한 상태로 흐려져 가는 정신을 붙잡는 걸로도 힘들었다.

‘……?’

그게 이상했다.

이정환은 헌터다. 그리고 오러를 깨우쳤다.

육체의 구석구석까지 통제를 할 수 있으며, 며칠 정도 잠을 안 자도 아무런 문제없고, 수면과 각성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런데 깨어나질 못한다.

그 괴리감에 이정환이 몸을 튕기듯 땅에서 일어났다.

“뭐지?”

몸이 묘하게 무거웠다.

마력을 익히기 전의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하게 무겁고 나른했다.

‘윽!’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지독한 현기증에 눈앞이 핑 돌았다.

이정환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다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대체…… 뭐가…….”

그제야 이정환은 깨달았다.

마력이 어딘가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느린 속도지만, 분명히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마력뿐이 아니야. 정신력까지!’

이렇게 일어서 있는 상황에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이상했다.

결코 정상이 아니다.

이정환이 까득 입을 악 물고 텐트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흠?”

그리고 한 사내와 마주했다.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것 같은 흰색 티와 청바지를 걸친 사내.

시선을 절로 빼앗을 것 같은 미남의 사내는 물을 마시듯 무언가를 꿀꺽꿀꺽 삼키는 중이었다.

살에 애는 듯한 추위와 폭풍과 같은 바람 속, 홀로 요동 없이 평온한 그 사내의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기이했다.

“설마 깨어나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씨익 웃는 사내.

그렇게 말을 뱉어내는 순간, 지속적으로 소실되던 마력과 정신력이 뚝 그친 기분이었다.

“당신은 대체…….”

“나?”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날 폭식의 왕, 글러트니라고 부르더군?”

이정환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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