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81화 (181/266)

# 181

<공략자들 181화>

40층.

인한이 설명을 시작했다.

“용족의 날개와 꼬리, 그리고 뿔은 마력 기관입니다. 인간처럼 마력로와 마력원이 더 존재하는 겁니다.”

용의 뿔은 각석과 별개로 존재하는 부위였다.

용족 특유의 마력 기관으로서, 뿔이 크고 많을수록 마력량도 비례한다.

그리고 그 뿔이, 용족 공략이 어렵다고 알려진 이유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용족은 수틀리면 이 뿔을 통해 자폭하기 때문이다.

“자폭이요?”

이소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용족의 마력계는 인간과 상당히 달라요. 마력원과 마력로가 녹아내릴 정도로 마력을 증폭시킨 후 뿔로 보내면 뿔이 버티지 못하고 폭발을 일으키죠. 보통 드라코니언 같은 높은 지성을 가진 용족들만 이런 짓거리를 합니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용족은 인간보다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들이 어째서 자폭이라는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취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한은 이소영을 바라보며 한 번 웃어 주었다.

“싸움 중간에 갑자기 자폭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싸움이 끝나고 확실하게 자신의 죽음이나 패배가 결정됐을 때, 그때 자폭을 하는 거죠.”

말을 하는 중간에 인한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냥 쉽게 말해서, 자존심이 강한 종족인 만큼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존재에게 졌다는 걸 인정 못 하고 도피하는 겁니다. 자신들은 숭고한 행위라고 여기는 모양인데…….”

한숨을 푹 내쉰 인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보통 용족 공략에서는 일단 승리가 확정되면 뿔부터 자르고 본다.

전신의 모든 마력을 격발시킨 자폭이기 때문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그 점 유의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공략이 시작됐다.

드라칸 산맥 외곽에 있던 몬스터들은 자폭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에 없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성을 가진 몬스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길드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법을 사용하고, 날개를 이용해 훨훨 날아다니면서 때때로 내려와 공격하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게 해태 길드를 막을 수는 없었다.

“좌측! 마법!”

이정환의 새로운 스킬, 전황 감지가 발동됐다.

실제로 마법이 날아오기 직전에 감지한 이정환의 외침에 임태호가 득달같이 그 위치로 몸을 날렸다.

“흐으압!”

화염계 마법 세 개와 빙결계 마법이다.

임태호의 대검에 오러가 휘감기고, 다음 순간.

드라코니언이 날린 마법이 임태호의 대검에 튕겨 나갔다.

‘마법을 튕겨 내?!’

인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튕겨 낸 마법은 그 시전자인 드라코니언들에게 날아가 폭발을 일으켰다.

“형님! 그거 어떻게 한 겁니까?”

“뭐? 뭐가!”

“마법을 튕겨 낸 것 말입니다!”

“그냥? 하면 되던데?”

“……?”

과거의 임태호도 못하던 짓거리를 아주 태연하게 해 버리는 지금의 임태호였다.

인한은 헛웃음을 지었다.

데스파티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못 본 방법이다.

보통 마법이 날아오면 베어 내거나 막아 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냥 대포나 총알도 튕겨 낼 수 있지 않냐? 대검 주위에 탄성이 있는 오러를 두른 다음 궤도 수정만 좀 해서 휘두르면 되는 거 같은데? 나도 얼마 전에 할 수 있게 됐어!”

임태호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 모습을, 인한이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러의 성질 변화야 어느 정도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면 전부 하는 일이다.

그런데 궤도 수정만 좀 해서라니. 기계도 아니고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한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하는 거고…….’

임태호가 끝이 아니었다.

“천궁(天宮)!”

겐지가 그렇게 외치며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오러가 전신을 휘감기 시작하더니…….

후욱!

한순간, 빨려 들어가듯 겐지의 전신에 오러가 흡수됐다.

“……?”

인한의 표정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오러를 흡수하다니 저건 또 무슨 해괴한 짓거리인 것일까?

“전 설명해 드릴 수 있소이다! 하하하! 인한 님을 보고 깨달은 기술이지요! 오러를 체내에서 운용하는 것입니다!”

“그게 뭔 설명이냐, 새꺄!”

“태호 님! 정면!”

“알아! 설명이나 제대로 해! 나도 대충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설명이 안 됐다.

오러를 체내에서 운용한다?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었던가?

‘……이걸 어떻게 하는 건데!’

인한은 요령을 깨닫기까지 수십 분이 걸리고서야 ‘가능하기도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오러를 공격이나 방어에 사용하기보다, 버프로 사용하는 느낌이다.

이 방법대로라면 육체 능력을 상당히 증폭시키고, 감각 또한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한이야 오러를 체내로 운용하지 않아도 비슷한 걸 할 수 있는 육체가 있다지만…….

‘겐지는 분명 4단계였는데?’

마나 스킬 5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아직 오러를 다루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 해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앙!

해태 길드는 그 상대하기 어렵다는 용족을 압도적으로, 그것도 한두 마리씩이 아니라 떼거리로 쓰러뜨리며 나아갔다.

보통 드라코니언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고, 사람 말을 하는 데다 감정도 있기 때문에 헌터들이 상대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해태 길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이 우매…… 크헉!”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처치해 버린다.

인한은 자신이 개입할 것도 없이, 학살을 펼쳐 가는 자신의 길드원들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끔찍한 혼종을 만든 걸까.’

콰아아앙!

또 한 번 폭음과 함께 용족의 무리가 허공을 날았다.

* * *

부산물 처리가 계속되고, 인한이 주위를 둘러보며 부상자를 살폈다.

‘부상자도 없고…… 걱정이 과했나 보군.’

아무리 해태 길드라도 용족 상대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중층 구간도 거뜬히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서걱!

부산물을 해체는 어쩔 수 없이 오러를 개화시킨 랭커와 간부들이 도맡아서 하게 됐다.

용의 뿔을 자르고, 저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인한이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저것도 보내 드려야겠군. 용의 뿔과 각석이라…….’

인한은 용의 뿔을 보며 리 쉔펑을 떠올렸다.

용의 뿔과 각석.

상당히 비슷한 원리를 가진 것들이다.

어쩌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 쉔펑은 미국으로 넘어가 그의 친구들을 몇 명 불러 모은 후 단체로 탑을 오르는 모양이었다.

일단 호위로는 재활 훈련 삼아 달의 검 팀이 붙었다.

그들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니 큰일 없이 잘 해낼 것이다.

‘서서히 모습을 갖춰 가는군.’

인한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으로 그려 왔던 해태 길드의 그림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갔다.

* * *

검은 탑 1층, 물의 마을.

마을의 뒤편의 허름한 주점.

돈이 없기에 번화가의 주점에는 갈 수 없는 플러들이 모이는 그 은밀한 곳에서, 한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 그거 들었나?”

“뭘?”

“요즘 돌고 있는 괴담 말이야.”

사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검은 탑에 귀신이 돌아다니는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격변의 날 이후, 탑의 전역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지속해서 나돌고 있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목격담을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 다 이런 얘기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광장에 나타난 음식물 쓰레기 더미.

누군가 먹어 치우기라도 한 듯, 작은 동산을 이룰 정도로 높게 쌓여 있는 짐승의 뼈다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식량들.

아무도 앉아 있지 않던 테이블에서 들려온 주문 벨소리 등등.

한두 명의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헌터들이 목격한 것들이었다.

귀신 따위 웃기는 일이라며 몬스터가 한 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절대불변의 원칙이 있다.

몬스터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일이 마을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다.

“그 귀신은 검은 탑에서 아사(餓死)한 헌터들의 원념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거라는 소문이야.”

“그게 무슨…….”

“자네도 알지 않은가. 의외로 필드에 고립되어 죽은 헌터들은 몬스터에게 죽은 것만큼이나 굶어 죽거나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가 많은 거.”

“…….”

그건 맞는 얘기였다.

플러들은 물론이거니와, 날고 긴다는 헌터들도 팀에서 떨어져 필드에 고립되면 답이 없다.

거기다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서 부상까지 입고 있다면 더더욱.

몬스터가 두려워서 안전지대에서 나오지 않고 숨어 있다가 아사하거나, 독이 든 식물이나 동물을 먹고 죽은 것은 그리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거기다 여긴 검은 탑이야. 헌터들의 영혼은 지옥으로도 천국으로도 가지 못하지. 왜냐하면 사신이 그 영혼을 가지러 올 수가 없으니까! 그 영혼들은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되는 거야…….”

그 사내의 말에 호응하듯, 술을 마시고 있던 플러들 몇 명이 눈치를 보며 짐짓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 왔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뭘 봤어. 넝마를 걸친 채 멍하니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들…… 그래, 마치 좀비처럼…….”

“귀신이 맞아. 여긴 검은 탑이잖아. 귀신이 없는 것도 이상해.”

“그게 끝이 아니야. 얼마 전에 28층의 포이즌 드래곤 길드 알아?”

“아아, 그 랭커가 리더인?”

“그래.”

포이즌 드래곤 길드.

해태 길드처럼 세계구급 길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이름이 있는 길드였다.

그 포이즌 드래곤이 유명한 이유는, 다름 아닌 길드의 리더 때문이었다.

랭커 78위, 독검 안드라스.

히든 클래스 포이즌 유저를 얻은 그는 마력에 ‘독성’이라는 희귀 특성 부여를 얻은 것으로 유명한 헌터였다.

“그자…… 얼마 전에 팀원들에 호송돼서 탑 밖으로 빠져나갔어.”

“뭐, 뭐?”

“들리는 얘기로는…… 가지고 있던 마력, 스킬, 레벨, 스테이터스…… 모조리 헌터 일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간 모양이야.”

“왜? 그게 무슨…….”

“그게 말이야…….”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계속했다.

안드라스는 사실 31층까지 공략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헌터.

길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수준보다 낮은 층을 공략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가 필드에서 장비 하나 없이 혼자 돌아다니고 사내와 마주친 것이다.

안드라스는 바로 도망을 선택했다.

검은 탑에서 예외, 혹은 이상적인 일은 절대 좋은 일로 연결되지 않음을 안 것이다.

하지만, 안드라스가 고개를 돌린 순간…….

“왁!”

“깜짝이야!”

“아이 이 사람이!”

“크흐흐! 뭔 이런 얘기를 믿고 그러시나.”

“에잉!”

플러들이 혀를 찼다.

사내는 태연한 표정으로 끌끌 웃으며 주문되어 온 치킨과 맥주를 즐겼다.

“어 잠깐, 그런데…… 그러고 보니까 자네 누군가……?”

1세대 헌터이면서도 플러로 먹고 살고 있는, 플러들의 왕고인 중년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그러고 보니까 쟤 대체 누구지?”

“자네 누구…….”

“음,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은 싫다니까.”

사내가 천천히 일어섰다.

플러들이 이상한 기색을 느끼며 긴장했다.

그 순간.

“풋! 으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시나!”

사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낄낄댔다.

그 웃음에 플러들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에이, 시발! 진짜 그만해라!”

“재미없다! 진짜!”

“크흐흐! 전 잠깐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야! 화장실 저쪽이야! 어디로 가는 거냐!”

“헤헤.”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흐음, 정말 인간들은 이상하게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사내의 기세가 확 달라졌다.

그 미소에 담긴 건 소름 돋을 만큼의 섬뜩함이었다.

우웅!

그 직후, 공기가 일그러지며 갑자기 사내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사내의 뒤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는 사내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그 무언가로 변했다.

그 모습은 하마와도 비슷하며, 악어와도 비슷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벌렸다.

“히, 히이익!”

이상한 기색에 사내를 따라 나온 플러 하나가 털썩 넘어졌다.

눈앞까지 들이 밀어진 짐승의 입과 이빨.

그리고…… 끝없는 공허가 담겨진 듯한 목구멍이 드러난 순간.

와그작!

작은 주점이 통째로 모습을 감췄다.

흐릿한 괴수의 모습이 사라진 후, 사내가 뭔가를 씹듯이 입을 크게 오물거렸다.

“으음, 역시 치킨이 더 맛있군. 퉤퉤!”

“으, 으으으!”

밖으로 나왔던 플러는 오들오들 떨며 실금을 했다.

그런 플러를 내려다보던 사내가 싱긋 웃었다.

“운이 좋네. 아무리 내가 먹는 걸 좋아해도 오줌싸개는 싫어해서 말이야.”

사내는 그 말을 끝내고 허공에 녹아들 듯 모습을 감췄다.

“으, 으, 으으!”

살아남은 안도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공포.

그 사이에서 플러는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괴담이 나돌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주점.

단체로 실종된, 주점에서 자주 모이던 플러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다는, 제정신이 아닌 한 사내.

“자, 그럼 덜미를 잡았다니까. 한번 쉬엄쉬엄 가 볼까?”

입에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사내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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