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78화 (178/266)

# 178

<공략자들 178화>

[폰 체술을 습득하셨습니다.]

[기본 격투술을 습득하셨습니다.]

……

리셴은 괴물이었다.

생김새는 평범한 중국인 남성이었지만, 그는 명실상부 경악스러운 괴물이었다.

리셴에게 자잘한 것들을 가르쳐 주며 같이 탑을 오르기를 1개월째.

리셴은 결국 권사의 기본 스킬을 모조리 획득해 버렸다.

리셴은 자신의 재능이, 어릴 적 마을에 있던 어르신에게 배웠던 마음공부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아이들은 모두 그 마음공부를 배웠는데, 리셴이 가장 성취가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노인은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고, 리셴이 말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노인이 우화등선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단다.

‘그게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야?’

혹시 몰라 그 마음공부에 대해 물어봤지만, 리셴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진지하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숨겨진 비술 같은 것을 모아 볼까 고민한 인한이었지만, 이내 생각을 훌훌 털어 버렸다.

“스승님.”

리셴은 어느 날부터 인한을 스승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한이 기겁을 하며 하지 말라 했지만, 의외로 고집스러운 면이 있던 리셴은 계속해서 인한을 스승이라고 불렀다.

‘거의 회귀 전의 나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리셴이 말하기를, 자신의 실제 나이는 43살이라 하였다.

그러나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겉보기에는 족히 50살은 되어 보였다.

“역시 스승님의 기술들은 따라 할 수가 없겠군요.”

“제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잘못하면 다칩니다.”

리셴은 한쪽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얼마 전, 인한이 펼치는 무극인의 기술을 따라 한 여파였다.

육체가 단련되어 있지 않았던 리셴의 팔이 과도한 마력 운용을 견디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래도 얻은 건 있습니다. 오늘 그것에 대해 여쭙고 싶어서 말입니다.”

리셴이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았다.

해태 시리즈, 그중에서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B+급 아이템이었다.

인한이 입단 기념으로 그에게 선물한 장비였다.

리셴은 검을 뽑고는 마력을 운용했다.

한순간, 그의 검날을 타고 마력이 나선형을 이루며 타고 올랐다.

‘이건…… 나선류(螺線流)잖아?’

무극인의 기술 중 하나.

본래는 트리아스 액셀의 세 가지 기운을 뒷받침해 펼치는 기술이다.

그런데 리셴은 그걸 오직 마력으로만 재현해 낸 것이다.

“흡!”

리셴이 검을 정면에 있던 암석을 향해 쭉 뻗었다.

그그그극!

돌가루가 확 튀기며, 암석의 표면에 파문과 같은 나선형의 흔적이 새겨졌다.

“아직 위력 면에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꽤 쓸 만할 것 같지 않습니까?”

“이건 뭐…….”

인한이 허탈하게 웃었다.

기운의 운용 자체가 나선류와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었다.

나선류의 경우 트리아스 액셀의 힘이 빙빙 비틀리다가, 타격의 순간 한 점에 집중되며 관통하듯 뻗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리셴이 펼친 것은 광범위하게 기운을 퍼뜨리게 하는 종류였다.

즉, 그는 혼자서 새로운 기술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슬슬 가르쳐 드릴 게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저는 주먹을 사용하고, 검은 문외한이거든요. 확실히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만, 스스로 이 정도로 할 정도라면…… 제가 더 이상 가르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더 많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고개를 젓는 리셴을 보며, 인한은 그걸 과연 배웠다고 표현해도 될 것인가 생각에 잠겼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저 인한이 마력을 운용하는 것을 보고 리셴이 베꼈을 뿐이었다.

조금 복잡한 운용법은 바로 따라 하지 못했지만, 그것마저도 한두 시간만 연습하면 금세 해냈다.

아주 어려운 운용법은 인한이 조언 한마디 툭 던져 주는 것을 곧바로 파악해 낸 이가 바로 리셴이다.

인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리셴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리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팀에 합류할 수도 있겠습니다. 최전선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23층을 오르고 있는 2팀에는 충분히 합류할 수 있을 겁니다.”

벌써 16층까지 진행한 리셴이다.

인한은 볼카누스에게 얻은 가르침을 되짚느라 전투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으니, 사실상 리셴은 솔로로 층을 오른 것이었다.

“예, 팀에 합류하겠습니다.”

“의외네요.”

“왜 그러십니까?”

“솔로를 희망하신 것 아닙니까?”

리셴이 고개를 저었다.

“제 능력을 제가 알게 되었으니, 십분 활용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마나 유저들을 만나며 제 것을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옳은 생각이다.

지금 리셴에게 필요한 건 레벨을 높이는 것도, 스테이터스를 높이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시급한 것은, 많은 마나 유저들과 오러 유저를 만나며 운용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럼 23층까지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금 시간이 들더라도 대충 적당한 팀에 합류해 23층까지 올라가겠습니다. 역시 이것도 많은 헌터들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모든 팀이 우정과 전우애로 뭉친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층을 오르기 위해 임시로 뭉친 사람들도 존재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 스승님 소리 좀 어떻게…….”

리셴이 빙글빙글 웃음을 지었다.

인한이 탐탁지 않아 하는 눈으로 리셴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진보 정당의 대권 주자였던 정인석이 보수 진영의 후보와 팽팽한 접전을 이루다 계표 후반에 표 차이를 벌리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승리는 역시, 정인석이 대선 토론 때마다 꺼낸 문제, 즉 해태 길드와 정부의 관계에 있었다.

“에, 해태 길드는 여러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이구요. 그중 해태 길드의 길드장인 최인한은 비선 실세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토론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그런 말을 꺼냈다.

“아니, 해태 길드의 길드장이면 그 권왕과 구원자로 불리는 사람 아닙니까?”

“그게, 사실은 만들어진 영웅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 랭킹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 최인한 헌터는 랭커가 아니거든요. 거기다 애초에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한 강원도 소탕 작전도 조작이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조작? 이미 일어난 사건인데 조작이라뇨? 조작은 조금 말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출연진들끼리 짧은 싸움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대대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아주 천천히, 해태 길드와 그 길드장인 인한에 대한 음모론과 의문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그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유명 TV프로에서 ‘영웅,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라는 제목의 방송을 무려 2부작으로 나눠서 다루는 일이 발생했다.

워낙 사회 문제를 이것저것 다루기도 했고, 시청률도 어느 정도 나와 시민들의 신뢰도가 꽤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그곳에서 해태 길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하자, 여론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무관의 제왕과 그의 기사들. 한데, 제작진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어째서 그동안 출입을 금지했던 강원도 위험 지역에…… 민간 조직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하물며 당시에는 해태 길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이었습니다.”

당연히 먼저 난리 난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인한을 비롯해서, 해태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들의 신상이 털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인한이 사실은 살인 청부업자라거나, 이창훈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둥의 별의별 허위 사실들이 나돌아 다니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 반대로, 해태 길드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 * *

-살려 주게.

김명준이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갑자기 무언가가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명준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네.

“이미 일이 터지고 나서 그런 말을 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그런…….

“후우, 당신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단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설명부터 하시죠.”

김명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곧 차근차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한과 정부와의 관계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법했다.

강원도 위험 지역은 본래라면 민간인은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고, 그 외에도 갑작스러운 헌터 관리법 개정 등등 정부와의 접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여 그 점을 파고든 것으로 보였네……. 사실 우리 쪽에서는 누군가가 작업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네.

“작업?”

-헌터 관리법 개정의 경우, 그 자리에 있던 장관들이나 내가 아니면 외부로 유출될 일이 없네.

“그럼 장관들입니까?”

-그게…… 장관들의 입에서 흘러 나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증거가 없고, 대외적으로도 법의 실효성 문제 때문에 내용을 바꿨다는 식으로 되었기에 찔러 들어오기가 마땅찮아.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네와 엮었다는 것은…….

인한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작업, 즉 세력이 있다는 말인가.’

해태 길드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자들.

혹은, 인한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이번 사태를 키운 주체일 것이다.

김명준이 대통령직에 있을 동안 인한이 수차례 경고를 하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선에 있는 자들은 인한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굳이 힘을 숨기고 다니지 않았으니 인한의 위험성을 기득권자들이라면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 일은 김명준의 위신과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도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애초에 강원도의 존재 자체가 정부의 커다란 치부였기 때문이다.

‘다 엎어 버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력? 조직? 작업?

다 같잖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작은 나라 하나 정도는 지도에서 지워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

그런데 정면에서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스며들 듯 시비를 걸어오니 울컥 화가 솟아올랐다.

-안 되네.

그 순간, 김명준이 입을 열었다.

-알지 않나. 지금 문제가 터지면 곤란한 건 해태 길드 쪽일세.

“제가 들키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CCTV로는 인한의 모습을 잡아낼 수 없다.

보호하고 있는 헌터들은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마력만으로 기절시킬 수 있다.

발터나 레오 정도의 헌터가 아니라면…… 누구도 인한을 막을 수 없다.

-물론, 들키지야 않겠지. 하지만 그다음엔? 그들이 자네를 건드린 것을 보면 분명 뒤에 자네도 무시 못 할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네. 정치인을 얕보지 말게. 멍청해 보이고 세속적이게 보여도, 그들은 결코 만만한 족속들이 아닐세.

인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뒷배가 누군지 알아야겠군요.”

인한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