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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71화 (171/266)

# 171

<공략자들 171화>

인한이 퀭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높았고,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여긴 천국인가?’

인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천국은 무슨, 그저 지옥에 잠깐 발을 담그고 왔을 뿐이었다.

인한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여 보거라.”

볼카누스는 무슨 자동차 시승이라도 해 보라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인한은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고, 주먹을 몇 번 뻗어 봤다.

‘어?’

몸을 움직이는데 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도수가 미세하게 맞지 않는 안경을 낀 기분이었다.

걸으려는 순간,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언젠가 한 번 이런 일을 겪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내가 훈련했던 것과 비슷해.’

마력으로 감각을 뒤틀어 보았던 인한은 감각과 육체의 괴리에 익숙했다.

다만 그때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괴리가 있었다면, 지금은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인한은 의식적으로 그 위화감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감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되찾아 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꽤 길었다.

“끄응.”

오른쪽으로 기울려는 몸을, 아주 미세한 힘을 더해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일도 계속 해 주어야 했다.

그렇게 한동안 지그재그로 걸은 후에야 인한은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됐다.

“흐음, 의외로 감이 좋군.”

볼카누스가 신기한 것을 보는 듯이 눈을 빛냈다.

인한은 한동안 몸을 움직이며 육체에 적응했다.

여전히 위화감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콰앙! 콰아아!

몸 상태가 어느 정도 나아지자, 인한은 마력을 움직여 시험 삼아 기술을 펼쳐 보았다.

폰 체술, 아이언 크래시, 파검식에 이어 인한이 만들어 낸 기술까지 연달아 뿜어낸 인한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엄청나다.’

인한은 자신의 양손을 쥐락펴락하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몸이 균형을 이루자, 기술의 정확도와 정교함이 올라갔다.

아무리 같은 기술을 펼치더라도 그때그때에 따라 위력과 정밀도가 달라졌는데, 지금은 언제나 균일하게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이 세상에 몸의 오른쪽과 왼쪽을 완벽히 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발터라면 모를까…….’

문득 발터를 떠올린 인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 괴물 같은 사내라면 하고도 남았다.

“감사합니다.”

인한은 볼카누스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과정 자체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 모르는 고통이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기연이다. 감사를 표해야 했다.

“뭘 벌써 감사하느냐. 이제 시작이다.”

퉁명스러운 볼카누스의 음성에 인한이 멈칫했다.

“예?”

“너는 트리아스 액셀에 스스로 도달하긴 했지만, 그 사용법은 하나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저는 트리아스 액셀의 기술도 몇 가지 사용하고 있고, 거기다 극멸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한이 만들어 낸 기술의 골자는 트리아스 액셀에서 나왔다.

또한 정령술과 오러의 융합을 통한 극멸기도 이제껏 잘 사용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인한을 볼카누스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구나.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는 시점에서 잘못됐다는 것이다. 극멸기와 트리아스 액셀은 전혀 연관점이 없다. 극멸기는 레갈리아일 뿐이고, 트리아스 액셀은 그저 하나의 기술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정령술과 오러의 융합이 일어나야만 극멸기가 발동했다.

그런데 그게 트리아스 액셀이 아니라니?

“간단하게 설명해 주마. 우선, 오직 너만이 트리아스 액셀을 통해 극멸기라는 힘을 일으킬 수 있다.”

“예?”

“극멸기는 세상의 근간을 움직이는 힘이다. 시작이며 끝이지. 파괴와 창조는 종이의 앞뒷면과 같다. 창조는 파괴가 선행되어야만 하는 법. 극멸기는 그러한 힘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인한은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트리아스 액셀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갖춘 힘의 사용법이다. 세계의 이치를 조작하는 마법, 세계를 구축하는 정령, 그리고 그 모든 기반이 되는 마력까지 합일(合一)되어 있지. 너는 단지 그 세 가지 힘을 통해 세계의 중추에 접속하여, 극멸기라는 힘을 끌어왔을 뿐이다.”

볼카누스는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리아는 본래 자신의 의지만으로 극멸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너는 왕이 아닐뿐더러, 세계의 선택을 받지도 못했지. 그러니 그녀처럼 극멸기를 사용하게 할 수는 없었겠지. 그러나 그녀는 곧 세계의 이목을 속일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세계의 규칙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기적, 그러면서도 세계를 이루는 모든 힘을 다루는 기술, 트리아스 액셀을 말이다.”

의문이 풀려 갔다.

멍한 인한을 바라보며, 볼카누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내가 가르치려는 것은 극멸기를 다루는 법이 아닌, 극멸기를 나오게 하지 않으면서도 트리아스 액셀을 다루는 법이다. 너는 그 세 가지 힘을 너무 개별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트리아스 액셀의 힘을 오히려 잘 못 다루고 있어.”

우우우우우웅!

볼카누스가 갑자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그의 팔을 휘감고 세 개의 힘의 고리가 생성됐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보거라.”

“크윽!”

쿠구구구구!

고작 세 개의 고리에서 터져 나오는 힘의 여파에 인한의 몸이 점점 뒤쪽으로 밀려났다.

마력을 앵커처럼 지면에 박아 넣고, 정령술과 미드 코어를 극한으로 사용한 후에야, 인한은 밀려나지 않고 눈을 뜰 수 있었다.

“이것이 트리아스 액셀의 진정한 힘이다.”

그 말을 끝내고, 볼카누스가 천천히 주먹을 뻗었다.

세 개의 고리가 한순간, 주먹의 끝에서 합쳐지며 맹렬한 속도로 팽창했다.

화악!

그러자 귀로 들어오는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완벽한 적막 속, 터져 나온 광휘에 온 세상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사물과 사물의 구분이 사라지고, 온 세상의 모든 게 다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은색으로 보였다.

콰아아아아아!

곧이어 소음이 돌아오고, 세상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세계가 비명을 지르고 붕괴를 시작했다.

인한은 정면에 펼쳐진 파괴의 흔적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볼카누스에 의해 생성되었던 산과 강과 들판.

그 모든 게 없어졌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만물이 소멸되고 사라져 있었다.

인한이 덜덜 떨리는 눈으로 볼카누스를 바라보았다.

능히 세계를 멸망에 빠뜨릴 수 있는 힘이었다.

“뭘 그리 놀라느냐. 전력의 3할 정도만 펼쳤을 뿐이거늘.”

“……!”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현상을 만들어 놓고, 전력의 3할뿐이라니!

새삼 볼카누스가 두렵게 느껴졌다.

“너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볼카누스의 말이 인한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 말에 인한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배워 보겠느냐?”

“……예. 가르쳐 주십시오.”

힘이 필요하다.

몇 년을 탑에 올랐어도, 과거로 다시 돌아왔어도 인한은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찾아온 기연은 붙잡아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볼카누스의 웃음을 본 인한은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후후, 어차피 거부해도 가르칠 생각이었다.”

“……예?”

볼카누스가 성큼 다가왔다.

인한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새록새록, 머릿속 한편에서 소름 돋는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팔다리가 전부 부러진 자신의 모습.

입으로 왈칵왈칵 피를 토해 내는 자신의 모습.

용암 지대에 처박히고, 심해에 빠지고, 낙뢰에 얻어맞고…….

볼카누스는 인한을 그렇게 가르쳤다.

볼카누스에게 사제 관계의 애틋함이나 제자를 향한 배려 같은 건 없었다.

거기다 그는 인한의 몸과 정신이 망가져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회복시키면 되니까!’

최고의 마법사이자 정령사인 볼카누스.

죽은 상태만 아니라면, 그는 어떤 사람이든 살릴 수 있었다.

“다행히 극체술도 익혔겠다…… 중간에 죽을 일은 없겠지.”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

“걱정하지 말거라. 상처를 입어도 금세 회복될 테니. 혹시 죽게 될 것 같으면 치료해 주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콰아앙!

무언가에 얻어맞은 인한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넌 마법도, 오러도 재능이 없다. 정령술에 대한 재능은 조금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 봤자 도긴개긴, 거기서 거기였지. 솔직히 말해서, 이미 한 번 경험한 탑을 오르면서 아직까지 40층이 뭐냐? 재능 있는 놈이었다면, 5년이면 100층 뚫었을 것이다.”

“크아아악!”

인한은 전신의 뼈가 부서진 것을 느꼈다. 곧 극체술이 발동해 뼈가 다시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 회복 과정에서 이상한 마력이 개입했다.

볼카누스의 마력이었다.

그가 인한의 육체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회복을 유도한 것이다.

[마력에 특성을 부여합니다.]

[치유.]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새로운 특성이 개화했다.

인한의 마력이 순식간에 전신에 퍼지며 몸을 회복시켰다. 극체술의 회복력이 순식간에 배가되었다.

“물론, 그토록 재능이 없기 때문에 트리아스 액셀을 익힐 수 있었지만 말이다. 하나 이젠 걱정 말거라. 나는 마법의 시작이자, 세상의 규칙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있는 존재. 재능이 없다면 강제로 네 몸에 트리아스 액셀을 새겨 주마!”

볼카누스의 주먹이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또 한 번 전신의 뼈가 다닥다닥 부러지는 것을 느끼며, 인한이 발악하듯 외쳤다.

“그냥 가르쳐 주면 되지, 왜 때리는 겁니까!”

“힘은 결국 몸으로 사용하는 법. 몸에 트리아스 액셀의 고절한 기예를 때려 박아 주마. 다시 말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네 몸의 개조도 착실히 진행할 것이니, 후후!”

“아, 안 돼!”

“들어올 땐 맘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콰앙!

인한의 몸이 또다시 하늘을 날았다.

* * *

36층, 이드 그라드.

그곳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건들거리며 터벅터벅 걷고 있는 레오, 휠체어에 탄 채 마력으로 이동하고 있는 클라우스, 그리고 박철환이었다.

박철환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오늘 저녁에는 도착할 것 같군.”

“뭐야, 밤샘하겠다는 건가?”

“그래.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니, 나야 괜찮은데, 우리 팀에는 몸이 안 좋은 사람이 한 명 있으니까.”

레오가 미소를 지은 채 클라우스의 휠체어 주위를 맴돌았다.

클라우스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레오에게 손을 뻗었다.

파지지지직!

전격계 마법이 레오를 노렸다.

레오는 전격에 그대로 얻어맞았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레오는 전신이 새까맣게 그을린 채 지면에 털썩 쓰러졌다.

“음, 짜릿하군.”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며 옷에 묻은 그을림을 털어 냈다.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레오를 보며, 클라우스가 이를 바득 갈았다.

“한 번 더 시비를 걸면, 그땐 정말 죽여 주마.”

“할 수는 있고?”

“죽이고 또 죽이다 보면 언젠간 죽겠지.”

레오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서워서 이거 참. 우리 팀원들은 너무 진지하다니까.”

“거기까지만 하고, 이제 그만 움직여라.”

박철환이 땅을 박찼다.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숲으로 파고드는 박철환의 뒷모습을 보며, 레오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미간을 찌푸린 클라우스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자, 곧바로 그들의 뒤편에 따라붙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을 계속하던 그들은 곧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적막한 숲에 도착했다.

주위의 숲에는 기다란 나무들이 곳곳에 자라 있었다.

박철환이 구원의 검을 뽑아 들며 나직이 말했다.

“이미 말했지만, 한 명도 살려 둘 필요는 없다.”

“나는 엘프랑 한번 자 보고 싶은데. 그렇게 예쁘다며?”

그 말에 박철환은 쓰레기를 보듯이 레오를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봐? 너는 남자 아니야?”

레오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둘 사이에서 클라우스가 말했다.

“최대한 부수지 마라. 아인종의 물건은 돈이 되니까.”

“봐! 이 회장님은 하반신이 마비됐는데도 돈에 미쳤잖아?”

박철환은 한숨을 내쉬고는 레오와 클라우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위이이이이잉!

거센 마력의 소음이 박철환의 검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순간, 박철환의 검이 휘둘러졌다.

서걱!

터져 나온 소음에 비해 짧은 소리였다.

그러나, 분명하게 무언가가 잘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계는 없앴다. 나머지는 너희 둘이 알아서 원하는 걸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박철환이 뚜벅뚜벅 안쪽으로 들어섰다.

엘프 전사들이 다급하게 뛰쳐나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박철환은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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