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공략자들 170화>
“트리아스 액셀은 힘을 다루는 방식이다.”
볼카누스가 말했다.
“그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원래라면 절대 한꺼번에 다룰 수 없는 힘인 오러, 마법, 그리고 정령술을 동시에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트리아스 액셀이다.”
볼카누스가 손을 뻗자, 속성력과 오러, 마법이 손바닥 위에 떠올라 회전했다.
“또한, 세 가지 힘에 대한 재능과 숙련이 정확히 균일해야 펼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보통 삼대 종족은 어느 하나의 힘에 특화되어 태어나기 때문에 절대 익힐 수 없는 것이지.”
용족은 마법을.
요정족은 정령술을.
인족은 오러를.
마법과 정령술은 어느 정도 동시에 다룰 수는 있지만, 두 기술과 전혀 다른 이론을 가진 오러까지 다룰 수는 없다.
“그렇기에 트리아스 액셀이 기적이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굴레를 벗어난 힘의 사용법이니까. 하여 나도, 그리고 날파리 자식도 쉽게 제자를 들일 수 없었다. 세 가지 힘에 적성을 보이는 것은 트리아스 액셀이 만들어졌을 때 정도의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그럼…… 직접 만드시면 안 됩니까?”
볼카누스는 초월자다.
가늠할 수도 없이 아득한 경지에 있는 존재.
그런 그라면 세 가지 힘을 동시에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억지로 한다면 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어느 정도 힘이 성장했을 때 내부에서 복잡하게 얽히며 불구가 되거나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인한은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것일까.
인한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볼카누스가 말했다.
“그런데 그 기적을 만들어 줄 방법과, 장소, 그리고 기적을 실현시킬 재목이 나타났다.”
볼카누스가 눈을 빛냈다.
“천문, 그 빌어먹을 시스템. 비록 찬탈자들이 만들어 낸 간악한 기술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과율을 비틀어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정령술을 익히든, 마법을 익히든, 오러를 익히든…… 그것 덕분에 절대 육체의 내부에서 꼬이지 않게 되어 버렸지.”
서서히, 세계의 비밀이 풀려 갔다.
“그리고 검은 탑. 그것이 트리아스 액셀을 익힐 수 있으나 이계에 있기에 닿을 수 없는 어떤 존재를 아발론에 연결시켜 주었다.”
볼카누스가 마지막으로 인한을 가리켰다.
“그게 바로 너다.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네놈.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힘의 비율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정령술도, 마법도, 오러도 대성할 수는 없지만, 트리아스 액셀만은 대성할 수 있는 재목인 것이다.”
* * *
“시작하기 전에, 어디 한번 겨뤄 보자.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하지.”
볼카누스는 인한의 대답도 듣지 않고 땅을 박찼다.
“정확히 너와 같은 양의 힘을 다뤄 주마.”
순간, 초월자와 같던 기세가 인간의 경지까지 떨어졌다.
인한이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량과 속성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라면……!’
인한도 마력을 끌어올렸다.
탐색전 같은 것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애초에 볼카누스는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인한의 구체적인 정보를 뽑아내는 존재였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임해야 했다.
‘실리암! 샐러!’
-……참 경이로운 계약자를 만났군. 대체 그 짧은 사이에 초월자들과 몇 번이나 싸움을 벌이는 건지.
-크르릉!
실리암의 이로운 효과를 가진 바람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 뒤로 샐러의 폭발적인 힘이 두 주먹에 느껴졌다.
‘위그라노아, 도와줄 수 있겠나?’
-물론이다. 위험한 게 있다면 알려 주지.
인한은 짓쳐 드는 볼카누스의 반대쪽으로 도약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파공탄(破空彈)!”
쾅! 쾅!
인한이 만들어 낸 기술 중, 유일한 원거리 공격 기술이었다.
오러를 총탄 모양으로 한계까지 응축한 후, 뒷부분만 폭발시켜서 날려 버리는, 총알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한 기술이었다.
거기다 그 한 발 한 발에 정령술이 서려 있었다.
오러와 함께 각종 속성까지 터져 나갔다.
“호오?”
원거리 공격이기에 그리 파괴력이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적어도 축구 경기장 하나 정도는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이었다.
하지만 볼카누스는 여유롭게 그 공격들을 튕겨 냈다.
“전투 방식은 용케 익혔군! 단련된 육체를 기반 삼아 펼치는 기술이라! 마음에 들어! 자 어디…… 이렇겐가?”
쑤우욱! 콰앙!
볼카누스에게 마력이 집중된다고 느낀 순간, 인한의 그것과 똑같은 기술이 날아들었다.
아니, 완전 똑같지 않다.
인한의 그것보다 족히 배는 더 거대했다.
인한의 파공탄이 총탄이라면, 볼카누스의 파공탄은 포탄이었다!
‘같은 양의 힘이라니 이게 무슨…… 족히 두 배는 더 강해 보인다!’
-회피는 늦었다! 정령술과 미드 코어를 사용해라!
위그라노아의 외침에 인한이 옆구리에 응축시킨 불의 속성력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둔화!”
그걸로 끝내지 않고, 날아드는 파공탄을 조금이라도 늦췄다.
콰앙!
하지만 그렇게 하고서도 인한은 볼카누스처럼 회피하지 못했다.
팔꿈치가 파공탄에 스쳤다.
그러자 거의 요새에 가까운 방어력을 가진 오리하르콘 슈트가 처참하게 찢어졌다.
극체술로 단련됐을 육체도 정상적이진 않았다.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근육이 터져 나갔다.
‘크윽! 이 미친! 그냥 실력만 볼 거면 이렇게까진 할 거 없잖아!’
만약 심장이나 머리를 맞았으면 그대로 삼도천을 건넜을 일격이었다.
그 순간.
“어딜 한눈을 팔고 있느냐?”
인한의 코앞에, 어째서인지 즐거워 보이는 볼카누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큭!”
화악!
인한은 순식간에 그 공간에 들어왔다.
모든 것을 인한의 통제하에 둘 수 있는, 수많은 선이 포말처럼 떠다니는 공간.
인한의 경지에 맞춰 준 것인지, 볼카누스의 움직임도 극도로 느리게 보였다.
“꽤 재밌구나. 감각도, 센스도 한심하기 그지없으면서 이 정도까지 한다니 말이야.”
볼카누스가 말을 한 순간, 갑자기 볼카누스에게 이어진 선이 중간에 툭툭 끊겨 갔다.
인한은 다급히 주먹을 뻗었다.
‘아……!’
그게 실수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인한은 대놓고 빈틈을 내준 것이다.
“칭찬하자마자 이 모양이냐?”
콰아앙!
턱에 꽂히는 일격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깔끔하게 들어온 카운터펀치에 인한의 몸이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인한은 다급히 정신을 차리며 가드를 올렸다.
볼카누스가 씨익 웃으며 신나게 가드 위를 두들겼다.
콰앙! 콰앙! 콰아아아앙!
그 뒤로 인한과 볼카누스의 사이에서, 도저히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물론, 그 폭음 사이에 인한의 비명도 섞였다.
* * *
그건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알 수 없는 과거의 일.
“호오, 이 녀석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로군?”
볼카누스는 대뜸 인한을 보자마자 그런 말을 했다.
“조금 멍청해 보이지만…… 만족스러워. 모든 능력을 골고루 갖고 있군. 내가 원하던 재목이다.”
그 직후, 인한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사지가 축 늘어진 채 헐떡이고 있는 동안, 볼카누스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여인이다. 그런데, 아무리 떠올려 봐도 여인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았다.
여인의 모습만이 새까만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해 보였다.
여인의 입술이 달싹였다. 볼카누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괜찮겠나? 나야 그 거래를 받아들여도 상관없다. 원하던 재목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여인은 말없이 볼카누스를 바라보았다.
볼카누스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죽을 생각이로구나.”
볼카누스가 그런 말을 했다.
죽을 생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참 치밀하게 준비했구나. 하지만…… 괜찮겠나? 정말로 길고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니, 애초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거기다…… 저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 거야.”
볼카누스의 말에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게 미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한은 분명 그녀가 미소를 지었으리라 생각했다.
* * *
하루에 세 번이나 기절하고 난 후, 인한은 또 한 번 기분 나쁜 부유감을 느꼈다.
이젠 놀라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벽면에 처박힌 인한이 지면에 착지했다.
“……정상적이게 깨워 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실수로라도 정신을 못 차리면 어쩌려고…….”
“그럼 벽에 부딪치는 고통에 정신을 차리겠지.”
“…….”
인한은 찌뿌듯한 몸을 펴며 볼카누스에게 다가갔다.
볼카누스는 그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은 채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제 힘의 양과 같은 힘을 쓴 게 맞습니까? 크기도 그렇고, 위력도 그렇고, 거기다 중간에 그건 대체…….”
“힘을 사용하는 요령의 차이지.”
“……예?”
고작 힘을 사용하는 차이로 그 정도로 달라진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인한이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굳은 표정으로, 볼카누스에게 물었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해라.”
“아리아…… 그녀가 죽을 생각이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인한의 말에 볼카누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봤구나.”
“이것도 말하면 안 되는 종류의 이야기입니까?”
“아니, 그건 상관없는 종류의 이야기다. 하지만 들은 후의 네 정신 상태가 상당히 걱정되는구나.”
“……예?”
“모든 게 끝난 후, 알려 주겠다. 알겠나?”
납득할 수 없지만,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볼카누스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이제 네 수준도 파악했겠다, 시작해 보자.”
인한이 몸을 흠칫 떨었다.
개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몸부터 만들자.”
“예?”
볼카누스가 손을 쭉 뻗어 인한의 미간을 툭 쳤다.
“아?”
그러자 인한이 멍청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진 인한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근육이!’
온몸의 근육량과 지방량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쇼크로 죽지 않았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볼카누스가 음흉한 표정으로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오른손잡이지?”
인한은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축 늘어진 인한을 바라보며 볼카누스가 말을 이었다.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기술은 오른팔로 자주 펼쳤겠지. 그러면서 단련은 양팔을 동일하게 했을 테고. 그렇게까지 극한으로 단련했으니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좌우가 비대칭이다. 일정 경지를 넘기 위해선 그런 미세한 차이가 중요한 거야. 거기다 하체는 완전히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더구나.”
볼카누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쪼그려 앉아 인한의 얼굴에 그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금 아플 거다.”
씨익 웃은 볼카누스의 표정이, 상당히 불길하게 느껴졌다.
욱신!
처음은 송곳으로 찌른 정도의 고통이었다.
수시로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인한의 입장에서는 그리 아프지 않은 시작이었다.
찌르르!
하지만, 점점 고통의 강도가 강해졌다.
이윽고, 인한의 입이 쩍 벌려졌다.
“끄아아아아악!”
온몸의 근육과 근육 사이로 벌레가 갉아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참고로 마력은 봉인해 두마. 작업에 방해만 되니까 말이야. 그리고 최대한 몸의 변화를 잘 기억해 두거라. 그래야 적응할 때 좋을 거다.”
볼카누스가 중얼거렸지만, 인한은 대답은커녕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우드득! 두득!
전신을 자르르 울리는 고통 이후, 곧이어 뼈를 잘근잘근 박살 내는 듯한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
척추가 이리저리 뒤틀리고, 골반이 부서졌다가 다시 달라붙기를 반복했다.
이대로 죽는 게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인한은 점점 정신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아, 이런. 기절하면 안 되지. 혀도 깨물면 안 되니까…….”
화악!
그 순간, 인한의 정신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거기다 입에 마력이 들어차서 이를 악물 수도 없게 됐다.
“……!”
비명을 지르다 못해, 갈라진 인한의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