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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69화 (169/266)

# 169

<공략자들 169화>

그그극!

한순간, 인한은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육체에 새겨지는 고통이 아니었다.

영이나 혼, 그도 아니면 존재 자체에 무언가가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큭!’

패시브 스킬 왕의 자격.

그 효과는 각인을 새기는 것이었다.

대체 각인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한은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새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저건…….’

고통이 잠잠해진 후, 인한은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몸을 뒤덮은 붉은색 비늘 하나가, 인한의 덩치보다 더 컸다.

그러니 대체 어느 정도의 크기를 한 생물인지 전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전설 속, 세상을 집어삼킨다는 거대한 용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정도의 크기이지 않을까.

“이 모습이라면 대화를 나누는 데 불편하겠지.”

거대한 존재가 그렇게 말했다.

한순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마력이 요동쳤다.

아니, 마력이 아니었다.

인한의 눈이 놀라 커다래졌다.

‘마나를 그대로 움직였다!’

대기 중의 마나가 자연스레 그 존재의 전신에 휘감겼다.

곧이어 마나의 성질이 변했다.

마력도 아닌, 그저 순수한 에너지체에 불과한 마나를 마력처럼 다루는 모습에 인한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저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여기까지 오면서 느꼈던 감각에 의해 인한은 마나의 본질에 대한 감각을 조금 깨우친 상태였다.

화악!

마나의 움직임 끝에, 허공에 수많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언뜻 보아도 드라코니언들이 펼쳤던 것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거대한 것들이었다.

그 마법진이 거대한 육체를 휘감는다 싶더니, 곧 밝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장 2미터 정도의 노을을 닮은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미청년이었다.

청년은 뚜벅뚜벅 인한에게 다가왔다.

청년을 바라본 인한은, 사지가 굳으며 눈이 크게 흔들렸다.

“역시 나를 잊은 것이냐?”

머릿속 한쪽에 뻐근한 고통을 느꼈다.

눈앞의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했다.

“그렇군. 모습이 살짝 달랐나. 코가 조금 높고, 입술이 조금 두꺼웠던 것 같군.”

사내가 손을 휘휘 젓자 얼굴의 형태가 일부분 변했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인한의 머릿속, 기억을 봉인하고 있던 또 하나의 봉인이 풀렸다.

그의 이름은 불카누스.

아발론에서 불을 상징하는 고대어를 이름으로 가진 자.

안개에 쌓여 있던 감정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그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된 인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내를 향한 감정은, 반갑거나 그리움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분노, 그리고 두려움.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볼카누스가 코앞에 섰다.

“감히, 나를 못 알아봐?”

사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인한은 전신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럼 쳐 맞아야지.”

“그게 무슨?”

“스승을 못 알아보다니!”

부웅! 콰앙!

들렸던 손이 휘둘러졌다.

오른쪽 안면을 노리는 주먹질. 막을 수 없었다.

인한은 팽이라도 된 것처럼 핑그르르 돌며 뒤편으로 나가떨어졌다.

인한이 지면에 쓰러지기 직전에, 따라붙은 볼카누스가 인한을 발로 걷어찼다. 소위 말하는 사커 킥.

고절한 기예가 있는 것도, 가공할 마력이 스며든 것도 아니었는데, 인한의 몸이 훨훨 날아갔다.

“크헉!”

인한은 아주 오랜만에 전신을 자르르 울리는 격통을 느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뭐야! 왜 마력이?!’

마력이 텅텅 비었다.

마력 스테이터스 4000포인트가 어디로 간 건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새끼가 이번에는 반항하려고 들어?”

“컥!”

걷어차여 날아간 인한의 착지 지점에 어느새 도착해 있던 볼카누스가 인한의 몸을 움켜쥔 채, 그대로 지면에 냅다 꽂아 버렸다.

그러자 인한의 몸이 무슨 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까지 지면에 처박혔다.

“커헉! 컥컥!”

인한은 전신을 울리는 고통에 기침을 토해 냈다.

언뜻 살펴보아도 얻어맞은 부위의 뼈와 근육이 부러지고 찢어진 게 느껴졌다.

“쿨럭! 쿨럭!”

웬만하면 극체술이 발동하며 온몸이 치료되고도 남을 시간인데, 기침이 멈추지가 않는다.

회귀 후, 이 정도까지 농락당한 적이 없었던 인한은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라? 얘 왜 이렇게 약해졌어? 뭐 그냥 툭 건들인 걸로 내장이 터져?”

뭐? 내장이 터져?

인한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흐릿한 시선으로 볼카누스를 올려다보았다.

“끄응…… 상당히 약체화되어 있구만. 땅에 묻어 놓고 정신 교육 좀 다시 시키려고 했건만.”

볼카누스가 손을 쭉 뻗어 인한의 뒷덜미를 잡았다.

다 익은 배추라도 뽑는 것처럼, 인한의 몸이 후두둑 뽑혀 나왔다.

“웩!”

그 순간, 인한이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 냈다.

자신이 쏟은 피를 본 인한의 표정이 공포감에 흔들렸다.

그제야 혼미했던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다.

기억난 것이다.

용왕 볼카누스.

그와 있었던 시간들.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었던…… 지옥의 시간!

인한이 덜덜 떨며 볼카누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기억난 모양이로구나.”

볼카누스가 씨익 웃었다.

인한은 정신을 잃고, 그대로 혼절했다.

* * *

인한은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상당히 기분 좋은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묘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한이 느낀 것은 불길함이었다.

“헉!”

하루에 두 번째로 기절했다 정신을 차린 인한이 본 것은 맹렬한 속도로 허공을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정신이 들었느냐!”

날아가고 있는 반대쪽 방향에서 호탕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그가 기절한 인한을 던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한은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며 벽면에 착 달라붙고자 했다.

콰아앙!

하지만 워낙 날아가는 기세가 빨랐던 탓일까.

인한의 몸이 벽에 커다란 크리에이터를 만들며 박혔다.

커다란 공동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크게 흔들렸다.

‘기절한 사람을……!’

마력을 운용해 지면에 천천히 내려온 인한이 볼카누스를 노려보았다.

한마디 해야겠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입이 닫혔다.

‘입 열면, 죽는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인한은 애써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천천히 볼카누스에게 다가갔다.

“후딱 안 오냐?”

그 말에 인한은 허겁지겁 볼카누스에게 달려갔다.

볼카누스가 팔짱을 끼며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라고 해 봤자 너는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

“……예.”

봉인이 풀리며 떠오른 것은 있다.

그는 인한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

그게 트리아스 액셀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굉장히 과격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배웠던 기억이 났다.

‘이런 적은 처음이군.’

인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볼카누스의 모습과 가르침을 빙자해 사선을 넘나들었던 때의 기억이었다.

인한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죽음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기억을 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

어째서일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리로 와 보거라.”

볼카누스의 손짓에 인한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볼카누스는 마치 품평이라도 하듯, 인한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빛냈다.

“호오, 몸이 허약해져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줄 알았더니, 마력 쪽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구나. 마력량은 거의 6단계에 도달했고…… 속성력도 상당하군.”

인한의 눈에 경악이 머물렀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운을 판별해 내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몸이 허약하다니?

보통 인한을 상대하는 사람은 마력량이나 펼치는 기술이 아니라 육체의 단단함에 놀라곤 했다.

“흥! 그거야 약하기 그지없는 인간들과 싸웠으니 그런 거고. 너는…… 몸과 마력이 불균형을 이루었다. 그 마력으로 펼치는 기예가 허술해. 하여간 재능이 정말 없구나.”

볼카누스는 인한의 몸을 여기저기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툭 내뱉듯 말했다.

“그래도 트리아스 액셀에 혼자의 힘으로 도달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간단한 얘기다. 너는 혼자의 힘으로 트리아스 액셀에 도달했다는 거지.”

인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전부터 인한은 트리아스 액셀을 배웠다고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을 익혔을 때부터 너무나 빠르게 숙련도가 올랐고, 루한도 용왕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극체술이라. 재밌군. 그놈의 기술을 그대로 빼다 박았어. 거기다 폰 체술도 익혔겠지?”

“예, 그렇습니다.”

“트리아스 액셀은 세 종족의 정점이 모여 만들어 낸 기적이다. 정령술은 그 날파리 같은 놈이, 마법은 내가, 오러와 전투 방식은 그렉 아이언 놈이 구축했지.”

“그렉 아이언?”

“아, 넌 모르나? 폰 체술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오러 유저다. 인간에게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일 텐데…… 너무 오래돼서 잊혀진 건가?”

“…….”

“흠, 어쨌든 너는 그자가 만든 마나 스킬, 극체술을 익힌 것 같구나. 거기다 폰 체술의 오의도 몸에 담았으니…… 이거 참 재밌게 됐군. 그야말로 정통을 잇게 됐어.”

볼카누스의 말에 인한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생각 없이 했던 일이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렉은 인간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강력한 공격력보다는 뛰어난 방어력과 생존력을 우선시했지. 그래서 나온 게 극체술이었다.”

볼카누스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아직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꽤 시간이 있을 것 같구나. 대놓고 탑에 침입해 왔기에 꽤 촉박할 줄 알았건만…… 라스틴 그놈, 여전히 게으르군.”

볼카누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공에서 손을 휙 뒤집었다.

순간, 대기 중의 마나가 요동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거대한 공동의 모습이 변화했다.

벽은 나무가 되었고, 지면은 푹신한 카펫이 되었다. 옆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났다.

인한의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인한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마나로…… 사물을 창조해 냈어!’

환상이나 환영 따위가 아니었다.

볼카누스는 마나를 이용해 주위의 환경을 바꿔 버렸다. 그뿐 아니라 테이블과 의자까지 생성해 냈다.

거의 창조에 가까운 기예다.

인한이 경외심 가득한 표정으로 볼카누스를 바라보았다.

“대화는 이런 곳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마나만으로는 이런 짓 못한다. 연금술과 같이 사용을 해야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한 볼카누스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하얀색 의자에 앉았다.

인한도 쭈뼛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네 안에 있는 의문들에 대한 대답, 나는 전부라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것들을 가지고 있다.”

“……!”

인한이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볼카누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모든 걸 전할 수 없다. 그런 ‘규칙’이다. 네게 전하게 되면 인과율이 어그러질 게다. 왕에 대한 것도, 네 과거에 대한 것도, 그리고…… 이곳에 대한 것도. 애초에 이렇게 너에게 접촉한 것도 세계의 이치에서 상당히 벗어난 것이지.”

볼카누스는 한 번 숨을 훅 내쉬었다.

“그러니 그것은 직접 알아내도록 하거라. 그 대신에 나는 네게 힘을 주마.”

볼카누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차분히 이것저것 다 가르쳐 주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은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네 몸을 개조하겠다.”

“……예?”

개조.

지금 개조라고 했다.

절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가르친다거나, 주입한다거나, 단련시키겠다거나…… 그런 것인 줄 알았건만, 개조라니!

그 불길한 단어를 귀에 담은 인한의 표정이 잿빛으로 변했다.

“우매한 인간이 트리아스 액셀의 거대한 가르침을 어찌 짧은 시간 동안 받아들이겠느냐.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래 봬도 나는 마법의 창시자, 용족의 정점에 도달한 존재다. 절대 죽진 않을 것이다.”

볼카누스가 낮게 웃었다.

인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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