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공략자들 166화>
인한은 단번에 드라코니언을 사로잡았다.
‘강하긴 강하군.’
상위 마법을 기관총 난사하듯이 쏘아 대는데, 그 과정에서 인한은 예상치 못한 자신의 약점을 발견했다.
‘설마 공기를 차단하다니.’
드라코니언은 인한과 공간을 동시에 고정하고, 그 공간의 산소를 전부 도려내는 공격을 사용했다.
인한 정도 되면 한동안 호흡을 할 수 없어도 전투에는 지장이 없기에 바로 드라코니언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호흡을 못하게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실리암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이 부분에 대해서 보완할 방법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인한이 드라코니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대화 좀 해 볼까?”
드라코니언의 머리에는 왕관과 같은 각석이 솟아 있고, 그 각석의 양쪽에 수정을 조각한 듯한 청록색의 뿔이 두 개 솟아 있었다.
그 두 개의 뿔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언뜻 보면 머리 장식으로 오해할 것 같았다.
“크윽! 하찮은 존재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말할 것 같은가! 뒤져라! 죽어라! 저주받아라! 크아아아악!”
“…….”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은 모른 인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드라코니언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인한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부었다.
인한은 드라코니언을 묶고 있는 오러의 강도를 조금 더 높이며 생각에 잠겼다.
‘대화가 안 되는군.’
차라리 전투할 때는 조롱과 도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제압해서 앞에 앉혀 놓고 나니 전혀 대화가 안 통했다.
“이 허접한 존재! 네 주제에…….”
“내가 널 제압했다만.”
“그건 내가 널 봐줬기 때문이다!”
“후우…….”
봐줬다고 1분도 안 되어 제압당하면, 그건 봐준 게 아니다. 그냥 약한 거지.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하던 인한은 용왕의 이빨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
드라코니언이 경악한 눈빛으로 용왕의 이빨을 바라보았다.
“모, 모른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 네가 그걸 어떻게!”
모른다고 해 놓고선 아는 척을 하는 이유는 뭘까.
말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단단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어수룩한 드라코니언의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유도해 볼 만하겠어.’
인한은 용왕의 이빨을 만지작댄 후,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고작 강룡의 위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강한 척이지?”
“뭣이?! 강룡?! 나는 천룡이다. 이 우매한 것!”
“천룡? 그런 것도 있었나?”
“크큭! 멍청한 놈. 아룡(亞龍), 하용(河龍), 강룡, 그리고 천룡이다! 고작 강룡 따위와 비교하다니!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오호라.’
인한이 씨익 웃었다.
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그토록 지능이 높은 주제에 의외로 단순했다.
“그래 봤자 진짜 드래곤에 비하면 천룡도 하급에 불과한 걸 알고 있지.”
“하!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지? 이 세계의 조정자이신 진룡(眞龍)분들의 수는 채 백 마리가 되지 않는다! 그 위에 있는 고룡(古龍)들은 그 수의 절반도 되지 않지.”
물어보지 않은 정보까지 알아서 전해 주는 드라코니언이었다.
“잠깐, 이 장갑의 주인에 대해선 말하지도 않았잖아. 너, 설마 모르냐?”
“병신! 그것도 모르다니! 용왕의 위계는 고룡보다도 아득히 머나먼 곳에 있다. 애초에 용족의 틀 안에 그분을 넣는 자가 있다니! 큭큭! 멍청한 것!”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드라코니언의 머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거, 어떻게 안 될까?’
드라코니언의 양쪽 뿔 사이에 있는 각석을 본 인한이 생각에 잠겼다.
각석을 없앤 위그라노아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드라코니언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 마라.
그때 위그라노아가 말해 왔다.
-내 경우에는 탑의 밖이기에 뿔의 제어가 느슨했지. 거기다 뿔의 제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가령 없애는 데 성공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태일지 불분명하다.
‘그래도 한번 해 볼 가치는 있다고 본다만.’
-통제되지 않는 힘은 없느니만 못하다. 너는 극멸기를 완전히 다룰 수 있는가?
인한은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인한은 극멸기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현재는 그저 만들어 내고, 원하는 만큼 뿜어내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회수하거나 세밀한 운용은 불가능하다.
-그건 마나마저 없애 버리는 극도로 위험한 힘이다. 네가 손으로 극멸기를 만들어 냈을 때, 만약 극멸기가 역류해 손을 뒤덮으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럼 끝이다.
만약 어찌어찌해서 팔이 사라지는 걸 버텨 낸다 하더라도, 마력로에 극멸기가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그 순간 인한의 팔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마치, 큐베리아에게 팔을 빼앗겼을 때처럼.
‘그래, 알았어.’
인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드라코니언의 정수리에 손을 뻗었다.
“키아아아아! 어디 손을 얹는 것이냐! 이 우매한……!”
콰앙!
한 줄기 폭음과 함께 드라코니언의 움직임이 멈췄다.
몬스터라고 인지를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의 모습을 닮은 것을 처리할 때 기분은 최악이었다.
‘일단, 계속 알아보자. 거기다 슬슬 나올 때도 됐고.’
드라칸 산맥은 상당히 넓은 필드다.
그리고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는 이상, 지능을 가진 몬스터는 계속 나타날 터였다.
게다가…… 슬슬 퀘스트가 나올 게 분명했다.
2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인한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산맥 안쪽으로 점점 더 깊게 들어갔다.
* * *
“이번엔 드라키엘까지 연결이 끊겼다.”
거대한 괴조, 지혜의 왕은 그렇게 말했다.
“병마의 왕을? 아무리 유희용 육체라지만, 애초에 분체와 본체의 구분이 없는 놈인데…… 그런 놈을 처리했다고?”
대답한 것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미남자였다.
미남자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계속 꺼내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고기, 샐러드, 디저트…… 종류도 마구잡이고 국적도 마구잡이인 음식들이었다.
미남자는 입에 음식을 넣을 때마다 만족스럽게 씨익 웃었다.
사내가 있는 곳은 1층, 물의 마을이었다.
사내의 먹성과 거대한 괴조의 모습을 봤다면 누구나가 시선을 빼앗겼을 텐데, 1층에 있는 헌터들은 아무도 시선을 주고 있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 모두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듯 행동했다.
지혜의 왕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드라키엘의 말에 따르면, 드라키엘과 싸운 놈들은 모두 두 사내였다고 한다. 둘 모두 주먹을 사용하며, 마력을 사용한다고 하더군. 둘 중 한쪽은 정령술도 사용하는 모양이다.”
“음, 음, 그래서?”
“……그렇게 계속 놀 생각인가? 조금은 일을 하는 게 어떤가.”
“흐음, 하지만 이 세계의 음식이 조금 과하게 맛있단 말이지. 최하위 위계의 존재 주제에 대단해. 이건 정말 맛의 혁명이야. 내가 이래 봬도 폭식의 왕이 아닌가? 이토록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한눈팔 수야 없지.”
지혜의 왕은 뚫어져라 미남자를 바라보았다.
미남자는 그 시선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에 들고 있는 과자 봉지를 허공에 휙 던졌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일, 할 테니까. 라스틴과 약속한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이 세계의 시간으로 213일하고도 21시간 10분 10초, 9초…… 남았다.”
“그래, 알았다고.”
미남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그렇고, 정말 안 찾아지는 모양이네. 얼마나 꽁꽁 숨겨 둔 거야?”
“아무리 유희용 육체라 하나, 고작 최하위 위계의 존재에게 두 명의 왕이 희생되었다. 방심하다 일을 그르치지 말도록.”
“예이, 예이.”
“드라키엘과 싸운 둘 중 하나는 내가 알아보겠다. 너는 반대쪽을 알아보도록.”
미남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물의 마을 한쪽으로 걸어갔다.
마을에 가득한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남자에게 길을 터 줬다.
미남자는 일직선으로 뚫린 길을 느긋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혜의 왕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 높게 날아올랐다.
* * *
박철환이 검을 휘둘렀다.
까앙!
박철환의 검과 부딪힌 레오가 킥킥 웃으며 떨어졌다.
“갑자기 왜 그래?”
“해태 길드에 수작질을 했더군. 무슨 짓이지?”
“무슨 짓이긴. 무려 세계 최고의 길드잖아?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덮치고 본 거야.”
“…….”
박철환이 검을 든 채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다시 한번 거슬리는 짓을 해 봐라. 바로 마력을 터뜨려 주지.”
“설마 해태 길드를 그렇게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네. 미안해.”
레오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며, 박철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레오는 그 웃음을 유지하면서 박철환에게 다가갔다.
“그건 그렇고, 대체 뭘 하려고 해태 길드에 신경을 쓰는 거지?”
“알 바 없다.”
“대충 뭘 하려는 건지만 알려 줘도 괜찮잖아?”
박철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의 일과 너무 많은 게 달라졌다.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어. 왕들이 찾아온 것도, 마왕의 씨앗도, 해태 길드도…… 지금껏 없던 일이다.’
박철환이 눈을 빛냈다.
‘고작 최인한, 그 별 볼 일 없는 놈 때문에 이렇게까지 일이 틀어진 건가? 놈이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이란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토록 많은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가능성을 보이지 않은 놈이…… 어째서?’
박철환의 눈이 빛났다.
‘과거의 그놈이 지금과 다른 이유가 뭐지? 이 정도로 강해진 적은 몇 번 있기는 했다. 하지만…… 뭔가 달라. 뭔가…….’
박철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옆에서 레오가 재밌다는 듯 박철환의 표정을 살폈다.
박철환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놈을…… 만나 봐야겠군.”
* * *
인한은 드라코니언 무리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정보를 얻어 갔다.
와이번, 드레이크, 드레반, 드래곤 터틀 등 수많은 용족들을 상대했지만, 단 한 마리도 용왕에 대한 정보만큼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할까.’
반나절만 더 이동하면 메인 던전의 입구였다.
인한은 근처 안전지대에 자리를 잡고 침낭을 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인한은 다시 퀘스트 창을 띄워 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퀘스트는 용왕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인한이 생각하기에 가장 가까운 층 중에서 용족들이 많이 있는 층이 40층이었기에 이곳으로 왔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을 줄은 몰랐다.
그에 비해 2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퀘스트는 발견했다.
필드의 심층부, 유적지가 펼쳐진 공간이 있다.
유적지에 들어선 순간, 퀘스트 천문이 나왔다.
[퀘스트 획득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클래스 ‘스트라이커’의 2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퀘스트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 / N]
인한은 일단 유적의 위치만 확실하게 기억해 두고 퀘스트를 받지 않았다.
일단 퀘스트를 받으면 진행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스트라이커의 2차 퀘스트의 스킬이 상당히 좋긴 하지만…….’
스트라이커는 1차에서는 별다른 스킬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인한은 상위 스킬들을 미리 익힌 상태라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에서 주어지는 패시브 스킬이 꽤 매력적이었다.
‘일단 다음 층으로 올라가 봐야 하나.’
인한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슬며시 잠에 들었다.